배구

Volley ball 음성듣기 , 排球

두산백과

비슷한 글6
보내기 폰트 크기 설정

요약 네트를 사이에 두고 두 팀이 볼을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고 서로 쳐서 넘기는 구기(球技).

제89회 전국체육대회 남자배구
구분 구기
기원국 미국
한국도입시기 1916년

발리볼(volley ball)이라고도 하며, 6인제와 9인제가 있다. 네트를 사이에 두고 공이 바운드 되기 전에 온 몸을 사용하여 공을 받아 3번 이내에 네트 너머의 상대 코트로 되돌려 보내어 득점을 겨루는 네트형 경쟁 스포츠이다. 손을 사용하여 공을 직접 타격하며 상대 팀 선수와 신체적 접촉없이 기본 기술과 팀의 협력으로 경기가 진행된다. 기본적인 점프 동작과 공격을 위한 팔과 다리의 근력과 근지구력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에는 1916년 3월 25일 YMCA(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기독교청년회)의 운동부와 유년부 고문으로 한국에 온 미국인 반하트(Banhart)에 의해 12인제 배구가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또 하나는 당시 제일고보 체육교사인 스기하라가 학생들에게 가르쳤다고도 한다. 그리하여 1925년 10월 4일 경성 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지금의 경기여자고등학교) 교정에서 일본인이 경영하는 전조선신문사 주최로 제1회 전조선 배구·농구대회가 열렸다.

1928년 조선체육협회 주체로 10월에 거행된 조선신궁종합경기대회 때부터 배구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지만, 이때부터 광복 전까지는 학교체육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경기내용면에서도 상당히 발전하였고, 참가팀과 대회 수도 늘어났다. 이 시기에 활약했던 선수들은 모두 해방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배구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 선수들 가운데 철도국의 박계조와 안종호는 우리 배구사에서 신화적인 인물이었다. 박계조의 배구에 대한 열정은 1962년 박계조배 배구대회가 창설되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으며, 안종호는 한국사상 처음으로 심판이 되었다. 1945년 11월 20일 KVA(Korea Volleyball Association대한배구협회)가 발족되면서 불붙기 시작한 배구열은 전국체육대회와 1956년 10월에 창설된 전국남녀 종별 선수권대회 등을 통해서 9인제배구의 전성기가 펼쳐졌으며, 1960년에는 6인제로 바뀌었다.

1958년 5월 제3회 아시아경기대회에는 6인제만을 출전시켜 남녀 모두 은메달을 차지함으로써 아시아에서의 2위의 지위를 확보했으며, 국내에서는 1959년 제40회 전국체육대회부터 처음으로 6인제 경기를 정식으로 채택하였다. 또한 1959년 10월에는 정식으로 FIVB(Fé dé ration Internationale de Volleyball:국제배구연맹)에 가입하였다. 1964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일본 도쿄에서 열린 올림픽경기대회에 참가하여 남자 10위와 여자 6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1969년 12월 서울에서 개최된 제3회 아시아 청소년배구대회에서 최강을 자랑하던 일본을 물리치고 남녀팀이 함께 우승하였으며 1970년대 한국배구는 기업들의 스포츠 참가가 두드러져서 많은 실업팀의 창단에 기여하였다.

1980년대에는 변혁의 바람이 불어와 4개 단체로 나뉘어 있던 실업·대학·중고등부·초등학교 연맹을 통폐합함으로서 새로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으며, 1984년 백구의 대제전이라 부르는 대통령배 배구대회가 창설됨으로써 그동안 계속되온 실업연맹전이 없어지고 성인배구도 반은 프로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1990년대 들어 한국배구는 새로운 양상을 보인다. 여자팀의 경우 대농과 현대의 양대산맥이었던 체제가 무너지면서 호남정유를 시작으로 한일합섬과 흥국생명 등 신흥세력들이 부상하였고, 남자팀의 경우도 상무와 한양대학교·성균관대학교 등이 코트의 새로운 주인으로 등장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열기를 띠었다. 그동안 파워와 조직력을 위주로 했던 플레이는 세계적 기류에 맞춘 힘과 높이의 배구로 전환되었다.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개최된 제21회 올림픽경기대회에서 한국 구기종목 사상 처음으로 여자배구에서 동메달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2000년 제27회 시드니(Sydney) 올림픽경기대회에서 남자배구는 9위를 하였으며, 여자배구는 1976년 몬트리올 대회 이후 24년 만에 메달획득에 도전했으나 힘과 높이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여 출전 12개국 가운데 8위에 그쳤다.

국내경기로는 전국체육대회의 배구경기를 비롯하여 종별배구선수권대회·한국배구슈퍼리그·한국실업배구대제전·전국남녀대학배구선수권대회·대통령배전국남녀고등학교배구대회·춘계전국남녀중고배구연맹전·박계조배전국 9인제 배구대회 등이 있으며, 전국대회 규모의 초등학교 배구대회도 여러 개가 있다.

관련 이미지7

전체보기

출처

출처 도움말
확장영역 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