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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장 구운몽
    최인훈 저
    문학과지성사
    2008.11.13
    줄거리
    이명준은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가 월북하자 홀로 서울에 남아 대학 철학과를 다닌다. 공산주의자 아버지와 달리 이데올로기에 무관심한 그는 어느 날 아버지가 대남 비난방송에 자주 나온다는 이유로 사찰계 취조실에 불려가 고문을 당한다. 이 사건으로 그는 남한에서 개인의 밀실을 빼앗겼다고 생각하고 이상적인 사회를 기대하며 북으로 간다. 아버지는 그에게 노동신문 편집부 기자로 일하게 주선한다. 하지만 그는 혁명은 없고 혁명의 화석만 남아 있는 북한 상황에 크게 실망한다. 그가 본 북한은 개인의 밀실은 없고 사회적 광장만 존재하는 곳이었다. 6.25가 터지자 그는 군관 신분으로 참전하여 서울로 오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아이를 잉태한 연인 은혜는 낙동강 전투에서 죽고, 그는 포로가 된다. 정전 후 그는 제3국을 택해 중립국으로 가는 타고르 호를 타고 동지나해를 항해한다. 지상에서 볼 수 없었던 푸른 광장을 바다에서 본 그는 갈매기의 환각 속에서 투신자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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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인과 집단 사이의 조화 가능성, 혹은 제3의 길을 찾아서

개인과 사회, 혹은 개인과 집단 사이의 진실이 조화를 이룰 수 있기를 소망한 것은 유사 이래 아주 오래된 것이었다. 어쩌면 인류의 오랜 지혜와 상상력의 역사는 바로 이 소망을 이루어보고자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소망이 오래도록 지속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문제였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일 게다. 정녕 가망 없는 희망이었을까.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도 그 소망 때문에 갈등하고 고난을 겪다가 죽어간 인물이다. 1960년 중편 형태로 발표된 이래 모두 네 차례에 걸쳐 개작된 작품이 [광장]이지만 그 기본 구조는 흔들리지 않았다. 바로 ‘광장’과 ‘밀실’로 상징되는 대립상의 해소를 통한, 다시 말해 ‘광장-밀실’의 변증법적 지양을 통한 제3의 공간 내지 제3의 길을 발견하고자 한 희망의 원리와 그 현실적 좌절이 기본 골격을 이룬다.

많은 논자들이 지적했다시피, 이 작품에서 광장이 집단적 삶, 사회적 삶을 상징한다면, 그 반대편에서 개인적 삶, 실존적 삶을 상징하는 것이 곧 밀실이다. 타락한 밀실 위주의 남한 사회와 타락한 광장 위주의 북한 사회에서 공히 실망하고 절망한 이명준이 제3국으로 가는 배 위에서 바다로 투신자살하는 이야기가 이 소설의 중심이다.

1948년경 주인공 이명준은 남한에서 살았다. 철저한 공산주의자 이형도의 아들인 그는, 어머니는 죽고 아버지가 박헌영을 따라 월북하자 홀로 서울에 남아 아버지의 친구 집에서 기식하면서 대학 철학과를 다닌다. 그가 보기에 남한은 광장은 없고 밀실만 존재하는 공간이다.

그렇다고 밀실 또한 온전히 존재하는 게 아니다. 그는 없는 광장을 수긍하고 진정한 밀실의 삶을 추구하고자 했었다. 밀실에서 자기 사유를 저작하고 또 이데올로기에 무관심한 윤애와 사랑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밀실에의 소망마저 그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대남방송에 나왔다는 이유로 치안 당국자들에게 고문 받는 것을 계기로 그의 밀실은 철저하게 훼손된다. 게다가 밀실의 삶에 대한 마지막 소망이었던 윤애와의 사랑마저 실패로 돌아간다.

2 이데올로기라는 암초?

광장 없는 밀실에서의 상처를 안고 이명준은 단신 월북한다. 거기서 그는 개인의 밀실 없는 광장의 현실을 보게 된다. 개인적인 삶의 공간인 밀실은 아주 닫혀 있을 뿐만 아니라, 광장 또한 당의 독재 아래 타락해 있는 현실을 보고 그는 더더욱 상처를 받는다. 개인적 삶은 물론 사회적 삶도 당이 빼앗아버린 상태였던 것이다. 그 절망의 끝에서 상처를 추스를 수 있는 계기를 만난다.

북에서 만난 애인 은혜에게서 그는 은총처럼 ‘광장-밀실’이 어우러진 희망의 새로운 지대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폭격과 아비규환으로 얼룩진 전선의 한 동굴에서 은혜와 아름다운 사랑을 나눌 때까지 그 희망의 지렛대는 가동되지만, 유엔군의 폭격으로 은혜가 죽게 되자, 그 역시 지독한 상처로 남게 된다.

결국 이명준은 포로가 되고, 석방 무렵 남도 북도 거절한 채 제3국을 택한다. 어느 한쪽만을 강요하는 이데올로기의 상황을 견뎌낼 수 없었던 까닭이다.

작품이 발표될 때마다 문단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문학사의 새로운 의미를 일구어낸 작가 최인훈

현실의 모순을 성찰하고 그 때문에 상처받았던 이명준은 일단 수평적 공간 이동을 통해 새로운 소망을 일구어보고자 했던 인물이다. 광장을 없애고 밀실로 스며든 남쪽의 삶, 그러나 밀실마저 온전하지 못한 남쪽의 삶에 대한 혐오가 그로 하여금 북쪽으로 수평 이동을 하게 했다.

하지만 개인의 밀실을 폐쇄한 채 집단적인 광장만을 강요하는 북쪽의 삶, 그러나 광장마저 철저하게 타락해버린 북쪽의 삶에 분노가 치밀었을 때, 그는 갑자기 갈 길을 잃게 된다. 남이든 북이든 문제적인 주인공인 이명준에게 열린 길은 없었다. 어디로 갈 것인가. 일단 제3의 길을 택했지만, 그것은 추상일 뿐 현실일 수 없었다.

다시 말해 당시 지구상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양대 이데올로기를 넘어설 수 있는 제3의 이데올로기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약관 20대 중반의 철학도 출신 포로가 그 제3의 이데올로기를 당장 제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이명준은 이데올로기라는 암초에 걸려 꼼짝도 못하게 된 형국이었던 셈이다.

이데올로기는 암초였다. 이데올로기의 길은 닫혀 있었다. 그렇다면 다른 길은 없는가. 이 지점에서 작가 최인훈은 사랑의 길을 발견한다. 주인공 이명준이 그토록 소망하던 ‘광장-밀실’이 어우러진 삶의 소망스러운 지평을 은혜에게서 발견하는 장면에서 그것은 뚜렷하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에 의해 훼손된 현실에서의 사랑이란 또한 상처뿐인 것이었던가. ‘광장-밀실’이란 소망스런 삶의 상태는 불가능한 것이었던가. 전쟁 도중 은혜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 소망은 추락하고 말았다

3 푸른 광장의 진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는가. 오직 환각이나 메타포 속에서만 가능한 것. 이명준은 제3국행 배 위에서 바다 위를 나는 두 마리의 갈매기를 보게 된다. 은혜와 배 속의 아이였을까. 은혜는 이데올로기의 포화 속에서 사랑을 상실한 채 추락했으되, 환각처럼 날개를 달고 갈매기로 수직 상승한 셈이었다.

그렇다. 현실적인 수평 이동에서 의미 있는 새로운 공간을 발견할 수 없을 때는 불가피하게 수직 이동을 꿈꾸는 것이다. 일찍이 스스로 미로를 만들었던 장본인 다이달로스가 그랬고, 이상의 [날개]의 주인공 역시 날개 달기를 소망했던 것은 수평 이동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수직 이동은 신화의 세계에서나 가능하다. 이명준이 하늘의 갈매기를 보았을 때, 눈 아래 바다는 문득 잃어버린 광장처럼 다가왔다.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른 바다로 그가 뛰어든 것은 현실적 수평 이동의 불가능성을 결정적으로 증거해준다. 사랑 또한 이데올로기에 의해 훼손되었을 때 어쩔 수 없는 암초였을까.

더불어 사랑하며 ‘광장-밀실’의 조화로운 삶을 꿈꾸던 은혜는 죽어 갈매기가 되어, 이명준의 수직 이동 경로를 알려 주었다. 그에 따라 수직 하강 이동한 이명준은 죽어 무엇이 되었던가. 그 역시 은혜를 따라 갈매기가 되었을까. 아니다. 센티멘털한 새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매우 이지적인 소설 한 편으로 그는 거듭났다.

이데올로기와 사랑이 더 이상 암초가 아닌 상태, 서로 교감하며 조화를 이뤄 새로운 삶의 지렛대를 형성해나가는 상태, 그리하여 인간 삶의 진정성을 추구하고 누릴 수 있는 상태, 그 제3의 길에 대한 성찰과 모색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소설 [광장]의 핵심 메시지를 죽음으로써 살려낸 게 아닐까.

소설 [광장] 이후 많은 지혜와 상상력들이 운명적인 인물인 ‘이명준 이후’에 대해 그토록 고뇌했던 까닭도 바로 거기에 있다.

4 작가 소개

최인훈 (崔仁勳, 1936~2018)

최인훈은 한국의 분단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일찍이 김우창 은 최인훈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다른 작품임, 편집자 주)을 일컬어 ‘남북조시대의 예술가의 초상’이라 명명한 바 있거니와, 그의 문학은 대부분 ‘분단/남북조시대의 소설’이라는 성격을 지닌다. 평판작인 [광장]을 비롯하여 [ 회색인 ] [서유기] [총독의 소리] [태풍] 등 여러 작품에서 그는 분단된 남북조시대의 삶의 본질을 성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이유로 왜곡된 근대인의 삶을 심층적으로 조망해 보인다. 스타일 면에서도 재래식 리얼리즘 소설 기법을 넘어서 다채로운 실험정신을 펼쳐 보임으로써, 우리 소설의 혁신을 도모한 작가로 꼽힌다.

1936년 4월 13일 두만강변의 국경도시 함북 회령에서 태어난 최인훈은 회령, 원산 등지에서 성장했고, 1950년 6.25 와중에 가족들과 함께 해군함정편으로 월남했다. 목포고를 거쳐 서울대 법대에서 공부하다가 중퇴했다. 1955년 시 [수정]을 <새벽>지에 발표한 바 있던 최인훈은, 군복무 중이었던 1959년 단편 [GREY 구락부 전말기] [라울전]으로 안수길의 추천을 받아 <자유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그 후 [광장](1960)에서 [화두](1994)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탁월한 소설들과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달아 달아 밝은 달아] 등의 희곡들 및 [문학 활동은 현실 비판이다] [길에 관한 명상] 등의 비평, 에세이 등을 매우 열정적으로 발표했다. 작품이 발표될 때마다 문단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문학사의 새로운 의미를 일구어냈다. 그 결과 동인문학상, 한국연극영화예술상 희곡상, 중앙문화대상, 서울시문화상, 이산문학상, 서울극평가그룹상 등을 수상했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를 역임했다.

주요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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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고전’은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과 함께합니다.

  • 발행일2011. 06.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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