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評>사법부 사태, 공화주의 위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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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사회정책학

선출된 권력의 無所不爲 막을

견제·균형이 민주공화政 핵심

정치권·사법부에서 훼손 심각

관료도 ‘선출 권력’ 견제 책임

일부 판사들은 법관 탄핵 자청

정파利害 겹쳐 憲政질서 흔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정치권은 물론 사법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정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음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70년간 대한민국은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뤄 세계 많은 개발도상국의 모범이 됐다. 또한, 공정한 선거를 통해 여러 차례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며 민주주의를 정착시켜 왔다. 이렇게 볼 때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지적에 수긍하긴 쉽지 않다. 실제로 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민주주의 위기라기보다 정확하게는 공화주의 위기다. 그렇다면 공화주의란 무엇인가?

그 첫째 대답은 헌법 제1조 2항에 명시돼 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영국처럼 군주가 주권을 소유하더라도 실질적으론 국민이 선출한 내각이 국가를 통치하는 경우, 민주주의는 가능하지만 공화주의는 아니다. 국민이 주권을 소유할 때에만 가능하단 말이다. 또, 대표자를 선출하고 자유로운 경제생활을 영위하지만, 국가로서 주권을 보유하지 못하는 홍콩과 같은 정치체제는 민주공화국이 될 수 없다. 우리가 국권을 수복하고 만든 제헌헌법에서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분명히 한 것은 군주의 지배뿐만 아니라, 외세의 압제로부터 국민이 주권을 회복했음을 분명히 밝히고자 함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선출된 통치 세력이 정부를 구성하더라도 법을 무시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다면 공화주의의 원칙에 위반되는 것이다. 헌법을 수호하고 법을 준수해야 하는 대통령이 헌법적 책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판단에 따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한 것은 공화주의와 민주주의가 때로는 팽팽한 긴장 관계에 있음을 잘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이 같은 헌정 질서의 위기 상황이 아니더라도 입법·사법·행정을 분리해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공화주의의 핵심이다. 국민의 선택을 받은 행정부가 정책을 집행하고, 국민의 대표자인 입법부가 이를 감시하고 견제한다. 그러나 선출된 권력만이 정당성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법적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근간으로 하는 사법부도 입법부와 행정부를 합법성의 원칙에 따라 견제하는 정당한 권한을 가진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우리 헌법이, 집행 권한을 가지는 행정부 내에서도 선출직 공무원과 관료제 사이에 견제와 균형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헌법 제66조 4항에 따르면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고 규정돼 있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에게만 행정권을 부여하는 게 아니라,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선출직 공무원과 더불어 전문성을 가진 관료에게도 행정권을 주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명시한 헌법 제7조 1항은 공무원이 영혼 없이 선출된 권력에 봉사하는 게 아니라, 합리성과 전문성에 기초해 국가적 관점에서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해야 함을 명확히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나라 관료들이 권력에 대한 견제 역할을 충실해 해왔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개인의 영달을 위해 정권의 입맛에 맞춰 정책을 재단(裁斷)한 경우가 많았던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더욱이, 문재인 정부를 포함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관료들을 적폐로 규정하고 사정의 칼을 휘두르면서 견제와 균형은 약해지고,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만 강화되는 현상이 반복되면서 공화주의는 지속적으로 훼손돼 왔다.

최근의 사법부 사태는 공화주의 관점에서 더욱 심각한 헌정 질서의 위기를 초래한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부의 재판 거래 의혹이 제기되면서 사법행정권 남용에 대한 수사가 계속되고 있다. 이와 관련, 일부 판사가 전국법관대표회의라는 이름으로 탄핵을 요구하고 이를 정치권에서 호응하면서 양상이 복잡해지고 있다. 추이를 지켜봐야겠지만, 헌정 질서의 근간인 사법부가 기초부터 흔들리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근본적 차이는, 개인적·정파적 이익을 추구하느냐 공동체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느냐에 있다. 편협한 정파적 이익에만 매몰되면서 공화주의가 위협받고 있다. 이제는 정파를 넘어 국가를 먼저 생각하는 새로운 정치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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