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직접 만든 향초를 지인에게 선물하려 한다’고 하니 동료 기자가 걱정 어린 소리를 했다. 최근 개그맨 박나래가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해 자신이 만든 향초를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줬다가 문제가 된 것을 거론하면서다. 박나래는 안전 인증을 받지 않은 향초를 ‘무상판매’했다는 이유로 환경부로부터 행정지도를 받았다. 그렇다면 개인이 향초의 안전 인증을 받는 건 수월할까? 기자가 직접 KC인증(국가통합인증) 받기를 시도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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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증을 받지 않은 향초와 디퓨저(Diffuser)를 친한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것도 불법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향초와 디퓨저는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살생물제법)’에 따라 안전 확인대상 생활화학제품으로 분류된다. 향초를 증여하거나 판매하려면 3년마다 시험·검사기관에 안전기준 적합 여부를 확인하고 환경부장관에게 신고해야 한다. 요컨대 개인이 직접 만든 향초와 디퓨저를 인증받지 않았다면 본인만 사용해야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어기면 살생물제법 제56조에 따라 7년 이하 징역이나 7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이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처음 들었다’며 놀라워하거나 안전을 감안한 조치라고 해도 ‘지나치게 경직된 규정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평소 수공예 활동으로 스트레스를 푼다는 직장인 박모(32)씨는 “공방에서 만든 향초를 친구들에게 선물하는 게 문제가 될지 전혀 몰랐다”며 “향초 만들기 수업 수강료가 한 회 기준 5만~10만원이다. 나눠주는 재미로 만드는 건데 거기서 만든 걸 혼자 다 써야 한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수업을 듣겠는가”라고 답답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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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최근 서울 한 공방에서 유료로 진행되는 ‘원데이 클래스’ 향초 수업을 들었다. 약 3시간 동안 마카롱 모양의 깜찍한 향초를 8개 만드는 과정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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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공무원이 이 장면을 봤으면 기겁했을 것 같다. 안전 인증을 받지 않은 향초의 증여와 판매는 불법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정성껏 만든 향초를 가족 등 가까운 사람들에게 선의로 선물했다간 징역형이나 거액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해당 공방과 강사는 이런 내용을 잘 모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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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박나래가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해 향초를 만들고 있다. |
◆개인의 KC인증 ‘언감생심’, 절차 복잡하고 인증 수수료는 제품당 최소 18만원
환경부고시에 따라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이 인증 시험검사를 담당하고 있다. 관리품목은 세정제품, 세탁제품, 방향제품, 염색제품 등 35개 품목이다. 기자가 만든 향초는 기타 분류의 ‘초(향초 포함)’에 들어간다.
호기롭게 신청서를 작성하려던 순간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먼저 KCL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은 신청서에다 사업자등록번호 외에도 초를 만든 주요물질-보존제-함량제한물질 등의 배합비, 고유번호 등 전문 정보를 적어야 했다. 그러려면 향초에 벤젠, 염화비닐, 트리클로로에틸렌, 붕소산 사나트륨염 등의 화학물질이 들어갔는지도 확인해야 했다. 단순히 ‘왁스가 굳지 않게 계속 저으세요’, ‘원하는 향을 골라보세요’, ‘숟가락에 반쯤 따른 후 왁스와 섞으세요’ 등 강사의 지시만 충실히 따랐던 체험자로선 전혀 알지 못하는 내용이었다. 신청서를 작성해 접수할 경우 해당 제품당 시료(시험용 제품)도 4개씩 보내야 했다. 예컨대 복숭아·포도·유자향 등 4가지 향의 초를 만들었다고 하면 각각 4개씩 모두 16개의 시료를 KCL에 제출해야 한다. 4가지 향초 8개를 만든 기자로선 신청서 작성과 시료 제출 요건에 인증받을 엄두를 못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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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인증 절차가 생긴 걸까? 피해자만 6000명 정도에 이 중 1309명이 목숨을 잃었던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의 유사 사고 재발방지를 위해 이른바 ‘옥시법’이 제정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인증을 받지 않은 유해 위험 화학물질은 규제 대상이다. 인증 제도 관련 전문가는 “가습기 살균제가 그런 큰 피해를 낳을지 누가 알았겠느냐”며 “인증 및 신고 절차는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알리고 제품에 유해물질이 있는지 없는지 체크하기 위한 제도”라고 밝혔다. 이어 “개인이 선물용으로 만든 향초일지라도 자가소비 목적이 아닐 경우에는 법의 규제를 받는다”며 “시험성분 기관에서 적정 성분에 관해 확인을 받고 환경부 산하 기술원에도 신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국민 건강 보호를 위해 강화한 중요한 법안임에도 홍보가 잘 안 돼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박나래 사례에서 보듯 관련 내용을 아는 국민이 적고, 심지어 관련 공방과 강사 중에서도 모르는 경우가 상당하다.
환경부 관계자는 “올해 새롭게 법이 제정돼 지속적인 홍보활동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면서 “지난 1월부터 전국을 돌며 교육회와 간담회를 하고 있다. 공방 등 소규모 업체는 홍보하기가 어려워 한국아로마테라피강사협회나 플리마켓 등을 통해 홍보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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