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취임했으나 성도들 여전히 사모로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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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은 목사의 ‘아스팔트에 핀 부흥의 꽃’ <11>
이경은 순복음진주초대교회 목사(가운데)가 지난해 7월 경기도 광주 성령교회에서 열린 초교파 연합 세미나에서 청년들과 함께 찬양하고 있다.

2004년 10월 남편의 뒤를 이어 순복음진주초대교회 2대 담임목사로 취임했다. 환경적인 어려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힘든 것은 사람이었다. 엄연히 담임목사로 취임했음에도 여전히 나를 사모로 대하는 성도들, 내색은 하지 않아도 반신반의하는 속내가 엿보이는 성도들이 있었다. 여성 목회자에 대한 외부 시선은 둘째치고, 당장 성도들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옛 기억을 떠올렸다.

평신도 시절 목사님께서 내게 큰 임무를 맡기셨다. 3여선교회에서 새로 4여선교회를 결성하며 회장직을 맡긴 것이다. 회원 7명인 선교회에 임원을 뽑고 나니 사람이 없었다. 누군가 말했다. “회장님요, 회원도 하나 없는 선교회가 어디 있습니꺼.” “회원은 만들면 되죠.” 나도 모르게 담대하게 대답했다. 그 말대로 이루기 위해 부지런히 뛰었다. 무엇보다 참석하고 싶은 모임이 되도록 하는 게 급선무였다.

한 번의 모임을 위해 일주일에 100통도 넘게 전화를 돌렸다. 회원들 대부분이 어린 자녀들을 키우고 있어, 주 관심사가 자녀들에 대한 것이었다. 그래서 연령대에 맞는 예방 접종표, 자녀양육법, 아이들이 아플 때 필요한 민간요법 등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힘썼다.

무엇보다 약사인 시누이의 도움을 받아 제공한 약품 정보가 인기가 많았다. 다른 선교회에서도 궁금해하며 우리 선교회에 참석하고 싶어 했다. 회원들 가정의 경조사도 빠짐없이 챙겼고 좋은 것으로 대접하며 회원들을 섬겼다. 그 일들이 점점 결실을 보기 시작했다. 전도돼 오는 사람마다 4여선교회 소속이었다. 스스로 4여선교회라며 다른 선교회에서 넘어오는 이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총무가 일을 못 하겠다고 찾아왔다. “회장님예, 애도 못 낳는 주제에 교회에만 미쳐서 쫓아다니면 남편이 뭐라 하것습니꺼.” 그때 나는 호기롭게 선포했다. “총무님, 그 일을 잘 감당하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태의 문을 열어 주실 겁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자 총무 일을 잘 감당했던 총무가 다시 따지듯 물었다. “회장님, 1년 동안 열심히 했는데 와 아직도 소식이 없습니꺼.”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그때부터 무명으로 헌금을 올리면서 그 총무 집사님을 위해 기도했다. ‘하나님, 주의 일 하자고 말한 것인데 제발 책임져 주세요.’ 하루는 어찌 알았는지 총무가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회장님, 세상에 누군지 몰라도 나한테 애를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더. 그것도 헌금까지 올리면서 말입니더.”

그때 속으로만 말했다. ‘집사님, 그게 바로 저예요. 저.’ 말 한마디 할 수 없었지만 애타는 심정을 하나님께 아뢰었다. ‘하나님, 보셨죠. 꼭 태의 문을 열어주셔야 합니다.’ 그 모습을 기특하게 보셨는지 하나님은 드디어 총무에게 자녀를 허락하셨다. 그것도 쌍둥이로 말이다.

2004년 순복음진주초대교회 담임목사 취임예배에 참석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경남지방회원들과 함께한 이경은 목사 부부.

그렇게 회원들을 열과 성으로 섬기자 4여선교회는 점점 회원이 늘어났다. 1년 만에 폭발적으로 증가해 5여선교회를 새롭게 결성했다. 추억과 같은 그때 일은 목회에서 힘든 고비를 만날 때마다 일어설 힘이 됐다. “회원도 없을 때 4여선교회 회장을 해냈는데 이것 하나 못하겠어.”

목회를 하면서 한 가지 크게 깨달은 것이 있다. ‘감동은 부흥을 낳는다’는 것이다. 교회 부흥은 목회자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절대 이룰 수 없다. 성도들이 함께해야 한다. 성도들을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나는 감동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순복음진주초대교회를 수식하는 말을 생각해냈다. ‘감동이 있는 교회, 감동을 주는 교회, 감동을 만드는 교회, 감동 그 자체인 교회.’ 이는 목회 인생의 목표가 됐다. 그리고 ‘여성이라 약하다는 것은 편견일 뿐, 여성이라 더 섬세하고 부드럽다. 그것이 오히려 강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어머니의 마음으로, 언니 같고 누님 같은 마음으로 살갑게 성도들을 품었다.

무엇보다 성도들의 신뢰를 받아야 했기에 물질에 있어 깨끗한 주의 종임을 인정받고 싶었다. 당시 하나님의 은혜로 남편 못지않게 많은 집회를 다니고 있었다. 그때마다 사례비는 그대로 제단 위에 올려드렸다. 순복음진주초대교회에서 헌금을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은 담임목사인 내가 돼야 한다는 일념으로 드리고 또 드렸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다. “주여, 강대상에서 선포된 말씀은 어찌하든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이 여종과 함께하고 계심을 증거해 주십시오.”

그렇게 진액을 짜내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이제 갓 태어나 병아리 같던 새내기 목회자가 이제 겨우 중닭이 됐는데, 이렇게 하다가는 털이 다 빠져 곧 죽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푸념 아닌 푸념을 넋두리처럼 청년들에게 쏟아냈다.

“얘들아, 나 좀 도와줄래. 나한테 있던 닭털이 다 빠지고 이제 겨우 털 하나 남았다. 이것마저 빠지면 나는 죽을 것 같다. 나 좀 도와주라.” 청년들에게서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올 줄 알았다. “목사님, 제가 도와주겠습니다. 힘내세요!” 그런데 한 청년이 의외의 답을 했다. “목사님, 이제 닭털이 다 빠지고 봉황털이 났습니다요.”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죽으면 죽으리라. 털 하나 빠지는 게 뭐라고. 죽는 것 하나도 두렵지 않다.’ 그리곤 다시 일어나 힘껏 날아오르리라 각오를 다졌다. ‘피곤이 능력이다’ ‘희생이 능력이다’를 외치며 감동 목회에 집중했다. 그럴수록 하나님은 더 높이, 더 멀리 비상할 힘을 허락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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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세례 받았을 때의 네 가지 모습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고백할 때 물세례를 받는다.(행 8:12) 하지만 물세례를 받았어도 성령으로 세례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행 2장, 8장, 19장) 베드로가 그랬다. 그는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3)고 물으시는 예수님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다. 예수님은 그것을 알게 한 이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말씀하시며 그에게 천국 열쇠를 줄 것이라 말씀하신다.(마 16:19) 이런 고백을 했던 베드로도 당시 성령세례는 받지 못했다.

이를 통해 물로 세례받는 것과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받는 성령세례는 서로 다름을 짐작할 수 있다.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은 다르다. 물세례 받은 것은 육안으로 볼 수 있다. 성령세례 받은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세례 받았을 때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첫째,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나타났다.(행 2:1~33)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신다.(행 1:4) 사도들을 비롯한 120여명의 제자들은 그 말씀에 순종해 마가 다락방에 모여 기도에 힘쓴다. 그리고 오순절에 약속하신 성령을 받는다.

그때 나타난 현상이 무엇인가.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4) 그들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기 다른 언어,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듣고는 다 놀랐다. 이를 본 어떤 이들은 조롱하며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고 말했다.(행 2:13) 성령을 받으면 나타나는 현상에는 이처럼 보는 것(눈물을 흘리거나 기쁨에 겨워 춤을 추는 등 술에 취한 듯한 행동)과 듣는 것(혀의 말,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는 방언)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사마리아성 사람들이다.(행 8:1~24) 사마리아 사람들은 빌립의 전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세례를 받는다. 하지만 한 사람도 성령을 받지는 못했다.(행 8:16)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은 이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로 보냈고 두 사도가 안수하자 사마리아성 사람들이 성령을 받는다.(행 8:17)

이를 본 시몬의 행동을 보라.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행 8:18~19) 시몬의 행동을 통해 성령이 임하면, 분명 보고 들을 수 있는 표적이 있음을(행 2:33) 알 수 있다.

셋째, 이방인 고넬료 가정이다.(행 10:1~18) 베드로는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따라 고넬료의 집을 찾아 말씀을 전한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행 10:44~46)

베드로와 함께 온 신자들은 무엇을 보고 고넬료의 집에 모인 이방인들이 성령 받은 것을 알게 됐는가. 바로 ‘방언’ 말하는 것을 본 뒤다. 그들은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고 방언 말하는 것을 보고 성령이 임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바람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현상을 통해 바람이 분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과 같다.

넷째, 에베소 제자들이다.(행 19:1~7)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 제자들에게 한 질문이다. 그들은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했다고 말한다.(행 19:2) 요한의 세례만을 받았다고 말하는 그들에게 사도 바울이 안수하자 성령이 임한다. 그때 어떤 현상이 나타났는가.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행 19:6)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최초로 성령이 임했을 때도, 고넬료 가정에 성령을 부어 주셨을 때도 모두 방언을 말했다. 에베소교회 제자들 또한 성령을 받았을 때 방언을 말했다.

이경은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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