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디바리우스·과르니에리, 정체성 가진 명품 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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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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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현 비올코리아 대표 인터뷰
이탈리아 북부의 도시 크레모나는
현악기 사상 최고 명기 만들어진 곳
도시에 악기 제작 인프라 모두 갖춰
이곳 국립학교서 악기제작 5년 공부
이삭 대표와는 경찰교향악단서 만나
과르니에리 델 제수 등 국내 전시 호평
우리나라 악기 수리 실력 세계적 수준


과르니에리 델 제수 등 역사적인 바이올린을 한자리에 모아 전시회를 연 비올코리아 김다현(오른쪽), 이삭 대표. 각각 음대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전공한 후 경찰교향악단에서 만난 인연으로 함께 현악기 전문점까지 연 이들은 “가난한 음대생은 좋은 악기가 참 탐나겠다”는 기자 이야기에 “우리가 그랬다”고 크게 웃었다. 허정호 선임기자
“스트라디바리우스, 과르니에리가 왜 특별하냐고요? 굉장히 유명하고 역시 고가인 다른 악기도 많지만 이 둘은 바이올린으로서 완벽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요. 스트라디바리우스보다 더 예쁘게 만들 수 없고 과르니에리보다 더 개성있게 만들 수도 없어요. 정점을 찍어서 그 이후로는 아무리 더 잘하려 해도 완벽을 넘어설 수는 없는 거죠.”

이탈리아 북부의 유서 깊은 도시 크레모나는 클래식 역사에선 빠질 수 없는 곳이다. 스트라디바리우스, 과르니에리, 아마티 등 현악기 사상 최고 명기가 만들어진 곳이다. 지금도 당대 최고 현악기 장인이 모여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비올코리아 김다현 대표는 이곳에 세워진 국립학교에서 악기 제작을 5년이나 공부했다.

“크레모나는 도시 안에 악기제작 인프라가 모두 갖춰진 세계에서 유일한 곳입니다. 음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후 진로를 고민했는데 영국 소더비 경매장에서 우연히 만난 치메이 문화재단 큐레이터로부터 ‘크레모나에서 공부를 해보라’는 조언을 들었죠. 원래 악기를 좋아했기에 ‘악기 전문가가 되자’는 꿈을 가지고 크레모나로 갔습니다.”

5개년 과정인 크레모나 학교를 김 대표는 3학년부터 시작했다. 일주일 동안 친 입학시험은 이탈리아를 기본으로 디자인, 목재 이론 등 다양한 과목으로 짜였는데 지망자 중 악기를 전공한 경우는 드물었다. 교과는 이론과 실습이 절반씩인데 음악이론, 음악사, 목재이론과 현악기 음향, 음향 물리학 등을 배우고 실습시간에는 마에스트로들이 가르치는 대로 악기를 제작했다. 여기에 김 대표는 현악기를 켜는 활 제작만 따로 2년을 더 배웠다. “크레모나 졸업은 현악기 제작의 길을 걷기 위한 시작 단계를 가르쳐주는 거죠. 졸업 후 행보가 더 중요하고, 십 년, 이십 년은 더 해야 제작자라고 말할 수 있는데 제작자 자질을 갖추게 해주는 학교죠.”
비올코리아가 국내 연주자들에게 선보인 과르니에리 델 제수. 과르니에리가 동시대 거장인 카를로 베르곤지와 함께 연구해 제작한 바이올린으로 더욱 희귀하다. 비올코리아 제공
바이올린 제작 역시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장인이 제작에 전념해도 일 년에 많아야 여섯 대 정도가 나올 수 있다고 한다. “현악기는 파트가 150개 정도입니다. 하나하나를 다 손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제작과정이 길죠. 게다가 바이올린은 앞·뒤판이 ‘아칭’ 구조여서 평평한 기타 등보다 훨씬 더 오래 걸려요. 생각할 것도 많고….”

현악기 특유의 앞판과 뒤판의 볼록한 형태를 뜻하는 아칭(arching)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말 자연스러운 아칭, 가장 이상적인 아칭을 만드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아칭을 잘하지 못하면 앞판에서 줄에 걸리는 장력을 수십 년, 수백 년 악기가 견디기 힘듭니다. 물론 소리에도 영향을 미치죠. 평판 구조라면 대패로 밀어서 전체를 똑같은 두께로 만들면 될 텐데 바이올린은 포인트마다 두께가 다르고 위치마다 굉장히 세밀한 작업이 필요합니다.”
크레모나에서 귀국한 후 김 대표는 다시 서울 서초동 유명한 수리공방에서 악기 수리를 2년간 배운 후에야 고향 대구에서 자신의 공방을 열었다. 이곳에서 다시 5년간 경험을 쌓고 준비를 다진 후 이달 초 역시 비슷한 경로를 밟은 이삭 대표와 함께 현악기 전문점 비올코리아를 열었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 현악기를 판매할 뿐만 아니라 연주자 개성에 맞게 맞춰주고 수리까지 해주는 유기적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군 복무를 대신한 경찰교향악단에서 만난 이삭 대표는 비올라를 전공한 후 연주자로 활동하다 현악기 전문 딜러로 14년 동안 경험을 쌓은 전문가다.

비올코리아의 앞날에 대해 김 대표는 우리나라 악기제작·수리의 우수성을 강조했다.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우수한 연주자를 많이 배출하는데 악기 수리 실력 역시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연주자들은 실력만큼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데 악기 수리 분야는 실력에 비해 발전이 더뎠던 게 사실이에요. 또 현악기 시장의 어두운 부분도 많이 개선됐지만 아직 남아있고요. 악기를 투명하게 잘 팔아서 시장을 바꿀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연주자들이 악기를 보다 더 잘 알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카레이서가 자동차를 공부하듯 바이올린도 그 본질은 뭔지, 수리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배우는 그런 문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갓 출범한 비올코리아가 20일까지 개최한 바이올린 전시회도 이런 바람을 담은 작은 시도다. 천수를 누린 스트라디바리와 달리 제작자가 40대에 요절해 전 세계에 150여개밖에 안 남아 더 귀한 과르니에리 델 제수를 필두로 명기 스무 개가 국내 연주자들에게 선보였다. 과르니에리 델 제수는 박력 있고 개성 강한 음색이 특징. 모범적인 천재로 비유되는 스트라디바리우스와 대비된다. 이번 전시회에 선보인 작품 가격은 65억원대로 거론된다.
이 밖에도 이탈리아 토리노 지역의 전설적인 바이올린 제작자인 주세페 로카와 그의 아들 엔리코 로카의 바이올린, 20세기 최고 제작자로 꼽히는 토리노의 안니발 파뇰라의 바이올린과 안토니오 테스토레, 카를로 오도네, 리카르도 안토니아치, 주세페 레키 등 역사적인 제작자가 만든 바이올린도 등장한 전시회는 내내 연주자들로 붐볐다. 자동차 좋아하는 이들에게 온갖 명차를 직접 몰아볼 기회가 흔하지 않은 것처럼 연주자에게도 이 같은 전시회는 드물다.

“사전 예약제로 한 시간에 한 팀 정도만 전시장에 모셨어요. 유명 연주자도 여러분 오셔서 각 악기가 내는 소리에 대해 대화하는 자리였습니다.” 김 대표는 “악기마다 개성이 달라요. 저음이 풍부하다든지, 고음에서 치고 나가는 직진성이 좋다든지, 더 깨끗한 소리가 난다든지, 반대로 거친 소리가 나는 개성이 있고 취향에 따라 연주자들이 악기를 선택하는 거죠. 또 같은 악기로도 연주자에 따라 다른 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명기의 조건에 대해 김 대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작품성과 소리, 둘 다 좋아야 하는데 스트라디바리우스나 과르니에리에 대적할 명기는 아직 없죠. 악기는 만들어진 후 다시 자신만의 시간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명기 반열에 오르는 거죠.” 이삭 대표도 답을 보탰다. “우리는 연주장에 가면 맨 뒤편에서 들어요. 얼마나 무대에서 멀리까지 소리가 잘 퍼져나가는지, 연주자가 작게 표현해도 객석 끝까지 그 소리가 오는 악기들이 있고 무대 쪽에선 크게 들리는데 무대에서 멀어지면 힘이 사라지는 악기도 있거든요.”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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