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이미 ‘국가인종주의’에 물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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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호 대구대 교수는 “한국은 판타지적 민족 고대사 내러티브의 확산을 비롯해 이주민의 증가 상황에서 인종주의가 노골화할만한 거의 모든 조건이 갖춰져 있다”고 우려했다. 나인호 교수 제공
“한국은 이미 ‘국가인종주의’에 물들어 있습니다. ‘우수한 인종적 자질’을 가진 1%를 추려내는 것과 다름없는 교육·대입제도도 그 단면입니다.”

서양 인종주의의 지적 기원을 탐구한 책 ‘증오하는 인간의 탄생’(역사비평사·2만5000원)을 최근 발간한 나인호 대구대 역사교육과 교수(59)는 9일 전화 통화에서 “우리나라도 일상에서 인종주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책은 18세기 말~20세기 초 서양의 인종주의 사관과 역사철학을 다뤘다. 흔히 인종주의는 ‘일탈적 사상’이었고, 연합국의 2차대전 승전 이후에는 힘을 잃은 것처럼 인식된다. 그러나 나 교수는 “서양에서 인종주의는 자유주의, 민족주의, 사회주의와 같은 정교하고 체계적인 근대 핵심 사상이었다”라며 “오늘날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연합국은 ‘인종 청소’에 대해 “이게 다 히틀러 때문”이라고 몰아갔지만 인종주의는 연합국 내에서도 심각했다. 반유대주의 사상인 ‘유대인 세계지배 음모론’을 미국 전역과 세계에 유포한 핵심 인물 가운데 하나가 ‘자동차의 왕’ 헨리 포드(1863~1947)였다. 나치가 이를 학습했다. 열등한 유전자를 없앤다는 미명 아래 단종법(斷種法)을 처음 도입한 곳도 미국이다. 최근 뉴질랜드 이슬람 사원 총격 테러 역시 일탈한 광인(狂人)의 범죄로만 보기 어렵다고 나 교수는 지적했다. 유럽에서 난민 포용에 반대하며 ‘전통 기독교 문화의 수호’를 강조하는 것 역시 ‘인종’이라는 단어만 쓰지 않을 뿐 제국주의 시대부터 이어지는 문화적 인종주의라는 것이다.

특히 민족주의와 제국주의가 결합해 등장한 국가인종주의는 국민 구성원 내부에도 폭력으로 작용했다. 국가인종주의는 국가를 효율적으로 바꾸고, 민족을 우수하게 개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집단 내 경쟁을 강화해 우수한 인종적 자질을 가진 이가 살아남도록 해야 하고, 유전적으로 문제가 있는 이들은 ‘청소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어졌다.

나 교수는 최근 한국도 인종주의적 증오가 확산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유럽의 ‘난민 괴담’이나 반유대주의적 증오가 수입돼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널리 유포되는 현상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사회적 소수자 증오의 확산 역시 전형적인 국가인종주의라고 나 교수는 강조했다. 그는 “동성애, 조선족, 특정 지역 등에 대한 증오 발언이 차별 수준을 넘어 20세기 반유대주의나 유고 내전 당시에 비견할 수 있는 정도까지 이르렀다”라며 “국가인종주의의 진짜 무서운 점은 외부의 타자 차별 뿐 아니라 새로운 내적 타자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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