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尹東柱

두산백과

비슷한 글13
보내기 폰트 크기 설정

요약 일제강점기에 짧게 살다간 젊은 시인으로,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실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 고민하는 철인이었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그의 얼마되지 않는 시 속에 반영되어 있다.

윤동주
출생-사망 1917.12.30 ~ 1945.2.16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북간도(北間島)
주요작품 〈서시(序詩)〉,〈또 다른 고향〉,〈별 헤는 밤〉

만주 북간도의 명동촌(明東村)에서 태어났으며, 기독교인인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아버지는 윤영석(尹永錫), 어머니는 김룡(金龍)이다. 1931년(14세)에 명동(明東)소학교를 졸업하고, 한 때 중국인 관립학교인 대랍자(大拉子) 학교를 다니다 가족이 용정으로 이사하자 용정에 있는 은진(恩眞)중학교에 입학하였다(1933).

1935년에 평양의 숭실(崇實)중학교로 전학하였으나, 학교에 신사참배 문제가 발생하여 폐쇄당하고 말았다. 다시 용정에 있는 광명(光明)학원의 중학부로 편입하여 거기서 졸업하였다. 1941년에는 서울의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 문과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 있는 릿쿄[立敎]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다가(1942), 다시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로 옮겼다(1942). 학업 도중 귀향하려던 시점에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1943. 7), 2년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그러나 복역중 건강이 악화되어 1945년 2월에 생을 마치고 말았다. 유해는 그의 고향 용정(龍井)에 묻혔다. 한편, 그의 죽음에 관해서는 옥중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를 정기적으로 맞은 결과이며, 이는 일제의 생체실험의 일환이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28세의 젊은 나이에 타계하고 말았으나, 그의 생은 인생과 조국의 아픔에 고뇌하는 심오한 시인이었다. 그의 동생 윤일주(尹一柱)와 당숙인 윤영춘(尹永春)도 시인이었다. 그의 시집은 본인이 직접 발간하지 못하고, 그의 사후 동료나 후배들에 의해 간행되었다. 그의 초간 시집은 하숙집 친구로 함께 지냈던 정병욱(鄭炳昱)이 자필본을 보관하고 있다가 발간하였고, 초간 시집에는 그의 친구 시인인 유령(柳玲)이 추모시를 선사하였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첫 작품으로 <삶과 죽음> , <초한대>를 썼다. 발표 작품으로는 만주의 연길(延吉)에서 발간된 《가톨릭 소년(少年)》지에 실린 동시 <병아리>(1936. 11), <빗자루>(1936. 12), <오줌싸개 지도>(1937. 1), <무얼 먹구사나>(1937. 3), <거짓부리>(1937. 10) 등이 있다. 연희전문학교에 다닐 때에는 《조선일보》에 발표한 산문 <달을 쏘다>, 교지 《문우(文友)》지에 게재된 <자화상>, <새로운 길>이 있다. 그리고 그의 유작(遺作)인 <쉽게 씌어진 시>가 사후에 《경향신문》에 게재되기도 하였다(1946). 

그의 절정기에 쓰여진 작품들이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발간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의 자필 유작 3부와 다른 작품들을 모아 친구 정병욱과 동생 윤일주에 의해 사후에 그의 뜻대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정음사(正音社)에서 출간되었다(1948).

그의 짧은 생애에 쓰인 시는 어린 청소년기의 시와 성년이 된 후의 후기 시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청소년기에 쓴 시는 암울한 분위기를 담고 있으면서 대체로 유년기적 평화를 지향하는 현실 분위기의 시가 많다. <겨울> <버선본> <조개껍질> <햇빛 바람> 등이 이에 속한다. 후기인 연희전문학교 시절에 쓴 시는 성인으로서 자아성찰의 철학적 감각이 강하고, 한편 일제 강점기의 민족의 암울한 역사성을 담은 깊이 있는 시가 대종을 이룬다. <서시>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쉽게 씌어진 시> 등이 대표적인 그의 후기 작품이다. 그의 시비가 연세대학교 교정에 세워졌다(1968).

윤동주 연보
출생 1917.12.30~ 사망 1945.2.16

1917

12월 30일 윤영석과 김룡의 맏아들로 북간도 명동촌에서 출생.

1925

4월 명동 소학교에 입학.

1931

3월 명동 소학교 졸업.

1932

은진중학교 입학.

1934

12월 처녀작 <삶과 죽음>, <초한대>, <내일은 없다> 등 3편의 시 집필.

1935

평양 숭실중학교로 전학. 숭실중학교 문예지 《숭실활천》에 시 <공상> 인쇄화.

1936

신사참배 거부로 숭실중학교 폐교. 광명학원 중학부에 편입.

1937

《가톨릭 소》에 동시 <오줌싸개지도>(1월호), <무얼 먹고 사나>(3월호), <거짓부리>(10월호)를 윤동주란 이름으로 처음 발표.

1938

4월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 문과에 입학.

1939

산문 <달을 쏘다>, 시 <유언> 발표.

1941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간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현재 유일한 원고는 정병욱 보관본.)

1941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히라누마’로 창씨 개명. 창씨개명계를 내기 전 시 <참회록> 집필.

1942

일본 유학(릿쿄대학) 시절 시 <쉽게 씌어진 시>를 비롯한 5편의 시를 서울에 한 친구에게
우송.

1943

독립운동 혐의로 검거.

1944

후쿠오카 형무소(복강 형무소)에 투옥.

1945

2월 16일 사망(당시 29세). 간도 용정에 안장.

1947

2월 13일 《경향신문》에 시 <쉽게 씌어진 시>가 해방 후 최초로 발표.

1948

1월 유고 31편을 모아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간행.

1976

7월 게재 유보하였던 시 23편을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추가 수록.

1990

8월 15일 건국공로훈장 독립장 추서.

출처

출처 도움말
확장영역 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