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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이칭 가야, 이칭 금관가야, 이칭 대가야
유형 개념
시대 고대/삼국/가야

요약

임나란 가야 혹은 금관가야를 달리 부르는 이름이다. 특히, 김해의 금관가야를 칭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역사 기록에서는 3곳에서 '임나'라는 표현이 확인된다. 「광개토왕릉비문」에서는 '임나가라', 「봉림사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문」에는 '임나왕족', 『삼국사기』 열전 강수열전에서는 '임나가량'이라는 표현이 쓰였다. 임나는 중국과 일본의 문헌에서도 확인되며, 『일본서기』에서는 임나와 함께 '임나일본부'라는 표현도 다수 쓰였다.

정의

가야 혹은 금관가야를 달리 부르던 이름.

내용

임나(任那)라는 표현은 한 · 중 · 일 고대 사서와 금석문에서 간간이 확인된다. 우리 측 역사 기록에서는 3곳에서 확인되며 왕족, 가라(加羅), 가량(加良) 등의 어휘와 결합되어 있다. 즉, 「광개토왕릉비문(廣開土王陵碑文)」에서는 '임나가라(任那加羅)', 「봉림사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문(鳳林寺眞鏡大師寶月凌空塔碑文)」에서는 '임나왕족(任那王族)', 『삼국사기』 강수(强首) 열전에서는 '임나가량(任那加良)'이라는 표현이 쓰였다. 학계에서는 이 중 임나가라를 금관가야로 특정하기도 하고, 임나와 가라로 나누어 보기도 한다.

중국 사서 가운데는 『송서(宋書)』 왜국전, 『남제서(南齊書)』 왜국전, 『양서(梁書)』 왜전, 『남사(南史)』 왜국전, 『통전(通典)』 신라전 등에서 확인된다. 일본 사서 가운데는 『일본서기』와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録)』에서 확인되는데 『일본서기』의 기록이 압도적으로 많다.

광개토왕릉비에 새겨진 ‘임나가라’라는 표현은 종발성(從拔城)이라는 성 이름 앞에 배치되어 있다. 종발성을 고구려가 공격한 가야성으로 보았을 때 임나가라를 임나와 가라 등 두 나라로 나누어 보기 어렵다.

『삼국사기』 강수열전의 '임나가량'이란 표현의 뒤에는 인(人)자가 붙어 있다. 가량은 가라와 같은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이며, 강수가 왕에게 자신의 출신을 이야기하는 내용 중에 등장하므로 하나의 나라로 볼 수밖에 없다. 이 기록에 보이는 임나가량을 금관가야로 보기도 하고 대가야로 보기도 한다.

「봉림사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문」의 ‘임나왕족’이란 표현은 진경대사의 조상에 대한 설명에서 등장하며, 그는 김유신의 후손이므로 여기서 임나란 금관가야를 의미한다.

『일본서기』 숭신기(崇神紀)에 "임나가 현재의 규슈[九州]에 해당하는 축자국(筑紫國)으로부터 이천여 리 떨어져 있고 신라의 서남쪽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임나가 곧 금관가야임을 알 수 있다. 그와 달리 같은 책 흠명기(欽明紀)에 대가야의 멸망을 서술할 때 ‘임나관가(任那官家)’라는 표현이 쓰였다.

사료에 등장하는 '임나'는 때로는 가야 전체를 통칭하기도 하고, 금관가야 혹은 대가야를 특정하기도 한다. 임나의 어원에 대해 '님의 나라'라는 의미로 추정하기도 하고, 임나의 일본식 발음이 '미마나'인 점에 착안하여 그것과의 음상사(音相似)를 통해 의미를 해석해보려는 시도가 있지만 아직 정설이 없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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