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무료 대출로 손실, 보상해야"... 이 주장의 허점

입력
수정2022.04.20. 오전 10:30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주장] '공공대출보상권' 개정안에 부쳐... 도서관 예산 축소, 결국 이용자들 피해로 이어질 것

 책들이 쌓인 모습(자료사진).
ⓒ unsplash

 
우리나라는 성인 한 명당 한 해에 읽는 책이 4.5권 밖에 되지 않고, 성인 10명 중 절반 이상이 1년 내내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 나라다. 그런데도 부커상수상자, 최종 후보자가 나오는 신기한 나라이다.  
 
이렇게 독서율 낮은 나라에서 최근 공공도서관에게 책 이용료를 징수하겠다며 공공대출보상권(PLR: Public Lending Right)을 포함한 저작권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공공대출보상권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도서관의 책 무료 대출로 인한 매출·인세 손실을 고려해 작가와 출판사 등에 일정한 보상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뜻한다. 

의안정보를 통해 본 해당 법률 개정안(법안 바로보기)의 제안 이유는 이렇다. "공공도서관의 양적 증대와 코로나 위기상황이 맞물리면서 창작계, 출판계 등의 문화예술 분야에서 심각한 수익 감소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 그러니 "도서관등은 도서등을 공중에게 무료로 대출하는 경우 공공대출보상금을 해당 저작재산권자에게 지급하도록" 하자는 얘기다. 공공도서관의 대출 횟수에 따라 도서관이 저작권료를 지급하라는 것이다.

공공대출보상권, 만약 실시되면....
 
▲ 국가도서관통계시스템 국가도서관통계시스템
ⓒ 박근주

 
법안이 통과되면 공공도서관에서부터 이 제도가 먼저 시행될 예정이다. 보상비는 약 300억원 정도를 책정할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는데 국가도서관통계시스템상의 2020년 공공도서관의 대출권수(117,726,445권)를 보상비로 나누면 권당 약 255원 정도의 보상이 예상된다.  
 
해당 개정안이 발의되고 난 뒤 여러 찬반 의견들이 있지만, 도서관계와 창작, 출판업계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일부 창작, 출판업계는 공공도서관 때문에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반면 도서관계는 공공도서관의 설립 취지를 무시한 채 출판업계 자체의 불황을 도서관에 떠넘기고 있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이미 도서관과 독자들은 어렵다는 창작·출판업계를 위해 모든 도서의 할인율을 10%이내로 강제하는 도서정가제를 받아들인지 수년째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업계는 불황을 타개하지 못했고 이제는 그 책임을 공공도서관에게까지 떠넘기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한편, 사안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공공도서관의 의미에 대해 짚어보자. '공공도서관(公共圖書館, public library)' 한자 표기에는 '공평할 공'자가 포함되어 있고 '대중을 위한(정부의 의지가 들어간)' 뜻의 'public'을 영문 표기에 담고 있다. '유네스코 공공도서관 선언문'에는 공공도서관은 원칙적으로 무료여야 하며 운영은 정부의 책무로 규정한다. 한국 역시 이 선언문의 취지를 따라 공공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렇듯 공공도서관은 정부에서 배정한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이기 때문에 사서들은 신중히 자료를 구매하고 이용자의 입장을 최대한 고려하여 운영 방향을 잡는다. 사서들의 급여체계가 몇십년째 최저임금 수준에 머무는 것은 이런 도서관의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사서들의 우려는
 지난 4월 1일 발의된 '저작권법 일부개정법률안(김승원 의원 등 11인)' 내용. (출처: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사서들은 단지 도서관 운영비용이 늘어날까 우려하는 것이 아니다. 회사라면 운영비용의 증대가 예민한 문제일 수 있으나 공공도서관은 장사하는 곳이 아니다. 게다가 저작권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자료를 다루는 사서들이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지 않겠나.

그런데도 도서관계 일각에서 공공대출보상권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들이 나오는 것은, 이 개정안이 도서관 설립 취지와 이용자의 권한을 상당히 침해할 것이 분명해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창작, 출판계의 이익을 위해 내세운 듯한 적절치 않은 개정안 제안 이유와 두루뭉술한 개정안의 문구들 때문이다. 

개정안 제안 이유를 보면, 제도를 도입한 다수의 '세계 선진 저작권 국가'에 미국, 일본 등은 빠져 있다. 그런데도 "세계 선진 저작권 국가의 경우에는 저작권자와 출판계의 정당한 권리 보호를 위하여 일찍이 공공대출보상제도를 도입하였으며 독일, 영국 등 세계 34개국에서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고 써서, 마치 한국을 제외한 다른 선진국들은 일찍이 이 제도를 도입한 것처럼 오인할 수 있게 서술돼 있다. 
 
또한 개정안에는 공공도서관이 대가를 받지 아니하고 대출한 도서 등에 '상당한 보상금'을 지적재산권자에게 지급하여야 하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급에 필요한 비용 전부 또는 일부를 도서관 등에 지원할 수 있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상당한 보상금'은 대체 얼마인가. 나아가 문체부장관이 지원한다는 비용은 '전부 또는 일부'라는 단어를 포함하는 바람에, 단 1%만 지원한다 해도 전혀 문제가 없게 되었다(만약 그 경우 나머지 99%는 누가 지원하는가?).

법안 개정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도서관 예산의 단 10원도 손대지 않겠다고 장담하고 있지만, 개정안의 모호한 단어들은 그 장담에서 빠져나갈 길을 만들어 두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개정안이 나온 뒤, 우민화 정책 일환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나오는 것은 공공대출보상권 도입이 결국 자료 구매예산 축소 또는 자료 이용의 유료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공공도서관 운영예산 축소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이용자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는 도서구입비가 부담스러운 사람들에게는 지식 접근의 제한을, 동시에 이용 비용 부담을 발생시킨다. 

공공도서관은 정말로 출판계 권리를 침해했나 

그렇다면 정말로 공공도서관이 창작, 출판계의 권리를 침해하여 재산적 손실을 끼쳤을까? 여기서 두 가지 질문을 해야 할 것 같다. 

첫번째. '읽히지 않는, 인기 없는 책은 누가 구매했을까'다. 

전국 공공도서관의 수는 약 1130개, 학교도서관은 1만 1700개에 육박한다. 대학, 특수, 전문, 작은 도서관 등등까지 합하면 2만개에 가깝다. 도서관에는 '주제별 장서 구성 비율'이 법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인기도서는 물론 흥행성이 적은 책들도 내용이 좋으면 도서관에 비치한다. 이용자들은 주제별로 정리된 책들을 도서관을 통해 손쉽게 접할 수 있다. 이렇게 매일 쏟아져 나오는 신간들을 최소한이라도 소화해 주는 곳이 바로 도서관이다. 
  
도서관 이용자들은 읽고 싶은 책이 대기가 길거나, 책이 두껍거나 하다면 책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읽어보니 내용이 좋아 소장하고 싶은 경우에도 구매로 이어진다. 도서관 이용자들이 책 구매율도 높다는 것은 연구 결과로도 밝혀져 있다. 이를 보면 도서관에서 무료로 빌려봐서 구매율이 저조하다는 책은 도서관에 없어도 구매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두번째. 사서들은 책 마케터인가.

도서관에서는 사서들이 이용자들을 위해 많은 행사를 기획해 책의 세계로 이끈다. 오죽하면 공공도서관 사서의 업무 스킬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자료분류 능력이 아니라 행사 기획 및 진행력이라 하겠는가. 독서교실 등 다양한 책 관련 행사 기획 및 진행은 기본, 이용자 취향별 북큐레이션은 추가 옵션이다. 이용자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도서관의 행사만큼 순수하고 열정적인 도서 광고 행위가 또 어디 있을까.

그러나 사서들이 마치 이벤트 회사 직원처럼 책을 열심히 홍보해도, 그걸로 출판사와 작가에게 비용을 청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작가들은 강연회를 하면 강연료를 받아간다. 사람들이 독서에 소홀할까봐 다양한 책들을 소개하려 안달인 사람들은 출판사와 작가들보다는 도서관 사서들이 아닐까. 

보통 대부분의 사람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되면, 부모와 손잡고 가장 먼저 찾는 곳이 공공도서관의 어린이실이다. 그로부터 한 사람의 생애 주기 내내 도서관이 늘 곁에 있는 것이다. 그것도 아무 조건 없이 말이다. 논의에 앞서 이 점을 먼저 기억해야 할 것 같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