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폐업시켜달라” 아모레 가맹점들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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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10.12. 오후 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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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 온라인몰서 30% 싸게 판매… 사업 파트너 가맹점에 대한 배신”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상도동의 아모레퍼시픽그룹 계열 화장품 브랜드 ‘이니스프리’ 가맹점. 점주인 성낙음(61)씨가 온라인 쇼핑몰 쿠팡 앱을 열어 제품 가격을 비교해 보여줬다. 매장에서 2만4000원에 파는 세럼을 쿠팡에선 40% 저렴한 1만4430원에 팔고 있었다. 매장 가격 6000원인 파우더는 4160원이었다. 제품 대부분이 쿠팡에서 30~40% 정도 더 쌌다. 전국이니스프리가맹점주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성씨는 “우리가 본사에서 받는 공급가보다 쿠팡 판매 가격이 더 싼 경우도 수두룩하다”며 “이런 본사 가격 정책은 가맹점에 죽으라는 이야기”라고 했다.

온·오프라인 공급가를 다르게 책정하는 아모레퍼시픽의 ‘이중 가격 정책’으로 가맹점들이 생존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구매력이 큰 거래처에 납품가를 낮춰주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 같은 ‘가격 차별’이 사업 파트너인 가맹점들이 도저히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상시적으로 이뤄지는 만큼, 사실상 ‘이중 가격(동일 상품에 대하여 두 가지 이상 가격을 매기는 것)’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가맹점주들은 작년 11월 ‘아모레퍼시픽 본사의 가격 정책이 불공정 거래 행위에 해당한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고,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다. 지난 8일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2020년 10월 5일 서울 이니스프리 신대방삼거리점에서 판매하는 제품 가격과 온라인상에서의 가격이 차이가 크다.
아모레퍼시픽 본사로부터 로드샵 가맹점들이 쿠팡 등 이커머스 업체보다 제품을 비싸게 공급받으면서, 가격 경쟁력을 잃고 추락하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가맹점 공급가보다 싸게 인터넷 공급"

12일 오전 서울 강남의 아모레퍼시픽 ‘아리따움’ 매장. 간혹 들어온 손님들은 핸드크림·립스틱 등 테스트용 제품을 발라보고는 그냥 발길을 돌렸다. 매장 직원은 “나중에 인터넷 판매가를 알게 된 고객들이 찾아와 ‘사기꾼’이라고 언성을 높인 적도 여러 번”이라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의 오프라인 매장들 중에선 손해를 감수하고 온라인과 ‘할인 경쟁’을 고민한 곳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 가격을 보고 곧 포기했다고 한다. 지난 7월 가맹점들은 본사로부터 남성 화장품인 ‘오딧세이 2종 세트(판매가 5만5000원)’를 3만2500원에 공급받았다. 하지만 똑같은 제품이 온라인에선 1만8750원에 풀렸다. 이 때문에 가맹점주들이 이 제품을 본사가 아닌 인터넷에서 구입해 판매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작년엔 로드숍 매장 공급가가 1만1000원인 이니스프리 스킨이 인터넷에서 9820원에 판매됐다. 한 점주는 “사업 파트너인 가맹점에 대한 배신”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화장품 브랜드의 경우, 본사가 아닌 개인 판매자가 온라인몰에서 싼값에 제품을 파는 경우는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본사가 직접 온라인몰에 들어가서 제품을 대폭 할인해 판매한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본사가 직접 판매하는 경우에는 판매 채널이 달라도, 가격은 거의 비슷하게 유지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했다.

아모레퍼시픽이 이렇게 온라인 가격을 극단적으로 낮추는 것은 위기감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아모레퍼시픽이 경쟁 업체에 밀리면서 온라인에서 시장 점유율 높이기에 사활을 걸었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 측은 “유통업체별 공급가를 공개할 순 없지만, 큰 차이는 없다”며 “개별 온라인 쇼핑몰이 손해를 감수하고 판매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커머스 업체 관계자는 “대량 판매 때 이렇게까지 가격을 낮추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가맹점주 “차라리 폐업시켜달라”

본사 측의 이중 가격 정책으로 온라인으로 손님이 빠져나가면서 아모레퍼시픽 로드숍 매장은 고사(枯死)하고 있다. 국민의힘 유의동 의원이 공정위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말 2257개였던 아모레퍼시픽 3개 브랜드 가맹점 가운데 661곳(29.3%)이 문을 닫았다. 이 논란이 확산되면서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은 이번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고열 등을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점주들은 매장을 접고 싶지만, 이것도 여의치 않다. 본사에서 인테리어 비용을 지원받고 개점했는데 3년 안에 폐점하면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김익수 아리따움가맹점주협의회장은 “작년에 리모델링을 한 약 300개 점포는 당장 가게를 접을 수도 없다”고 했다.

아모레퍼시픽 측도 가맹점주와 상생하겠다고는 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직영 온라인몰에서 구매한 소비자가 ‘단골 매장’을 지정하면, 그 매출이 해당 매장으로 잡히는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하지만 이 시스템을 이용하는 고객은 소수에 불과하다.

‘가맹점 상생’ 노력은 경쟁 업체인 LG생활건강과도 대비된다. LG생활건강의 경우, 직영 온라인몰 매출을 모두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는 가맹점주들에게 넘겨주고 있다. 또 쿠팡 등 다른 온라인 쇼핑몰에는 직접 진출하지 않고 있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상도동의 이니스프리 매장은 한산했다. 이니스프리 가맹점주들은 "본사의 이중 가격 정책으로 오프라인 매장은 온라인 판매를 위한 테스트 매장으로 전락했다"고 주장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한경진 기자 kj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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