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혜정 칼럼] 소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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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해를 넘기는 마지막 칼럼만은 훈훈한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는데 또 힘든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이달 들어 ‘대전 여고생’에 이어 ‘대구 중학생’이 목숨을 끊었고, 특히 차분한 유서와 함께 주고받은 문자와 온라인 게임 기록 등을 남긴 대구 소년은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안겨주고 떠났다.

열네살에 생을 마감한 소년은 유서에 이렇게 썼다. “제가 일찍 철들지만 않았어도 저는 아마 여기 없었을 거예요. 매일 장난기 심하게 하고 철이 안 든 척했지만, 속으로는 무엇보다 우리 가족을 사랑했어요. 아마 제가 하는 일은 엄청 큰 불효인지도 몰라요. 집에 먹을 게 없어졌거나 게임을 너무 많이 한다고 혼내실 때, 부모님을 원망하기보단 그 녀석들에게 당하고 살며 효도도 한 번도 안 한 제가 너무 얄밉고 원망스러웠어요. 제 이야기는 다 끝이 났네요. 그리고 마지막 부탁인데, 그 녀석들은 저희 집 도어키 번호를 알고 있어요. 우리 집 도어키 번호 좀 바꿔주세요. 저는 먼저 가서 100년이든 1000년이든 저희 가족을 기다릴게요.”

그의 시련은 친구들과 인터넷 게임 캐릭터 키우기를 하면서 시작된 것 같다. 9월부터 숨지기 전날까지 소년에게 보내진 문자메시지는 273통. 대개 오후 10시부터 오전 2시 사이에 명령하는 문자메시지들이 쏟아졌다고 한다. 목을 조였을 문자들을 받으면서 소년은 사실상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 뜨기 전날 소년은 라디오 선으로 목을 묶인 채 방바닥에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를 주워 먹고, 집단 폭행을 당했다 한다. 친구여야 할 존재가 악한으로 변하고, 노예처럼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에 자괴감을 느끼면서 그는 더 이상 감시와 지시와 협박과 폭행과 갈취가 없는 세상으로 떠났다.

학교법인 쪽은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교장을 직위해제시켰다. 27일 대구시교육청도 발 빠르게 해당 중학교 2학년 학생 331명을 대상으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검사’를 했고, 앞으로도 임상심리사 등 전문가들을 투입해 학생들이 받은 충격을 분석하고 병원 치료를 받도록 할 방침이라고 한다. “소년의 책상에 꽃이라도 하나 놓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교감은 “자살한 애 영웅 만들 일 있습니까. 다른 애들이 멋있게 보고 뛰어내리면 어떡하려고 책상에 꽃을 놓아둡니까?”라고 했다고 하고, “책상에 놓아 달라며 꽃을 갖고 오는 시민들까지 있어 다른 아이들이 동요할까 봐 돌려보내고 있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학교는 사건을 봉합하는 데 급급하고, 소년의 넋은 교정을 서성대고 있다. 나는 어떤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도 교사와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여 꽃을 바치고 통곡하는 학교라면 그 학교는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을 해내지 못하는 곳이라면 그곳은 더 이상 삶의 자리일 수 없다.

언론 인터뷰를 통해 “매일 아침 아들 영정을 보며 (가해 학생들을) 용서하려고 기도합니다”라고 한 소년 어머니의 말이 전해지면서 온라인 댓글이 올라오고 있다. “가해자를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자살한 그 아이 한명뿐입니다. 아무리 부모님이라도 아이의 아픔에 대한 대가를 섣불리 용서하지 말아 주세요. 용서라는 말, 입에 올리지 말아 주세요.” 이런 사건에서 누가 누구를 용서할 수 있는 것일까? 시대의 감독 이창동은 진작에 <시>와 <밀양>이라는 두 편의 영화를 통해 감당이 안 되는 범죄 앞에서 물어야 할 ‘용서’와 ‘속죄’의 화두를 던져준 바 있다.

악의 평범성을 용인한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우리는 소년의 교실과 교육청과 교육과학기술부 앞에 모여 108배를 하고 기도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 사태는 감시와 처벌과 개인적 치유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구원과 장기적 공생의 시각에서 풀어낼 일이다. ‘피해자’를 위한 애도의 자리를 마련하지 못하는 사회는 ‘가해자’를 처벌할 지혜도 갖지 못한다. 따라서 그 자리에는 판사도, 변호사도, 교육감도, 교육부 장관, 나라의 수장도 참석해야 할 것이다. 소년과, 앞으로 소년이 될 국민들의 이름으로 우리는 그가 좋아할 방식으로 그의 넋을 보내는 의례를 정성껏 준비해야 한다.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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