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M본부] 왜 '사실'을 말해도 처벌될까…'배드파더스'와 헌법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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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9.19. 오후 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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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동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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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드파더스' 재판 잠정 중단…이유는?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들의 신상을 알리는 '배드파더스'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아시나요?

이 사이트에선 '양육비 미지급은 범죄'라며 지금도 300명이 넘는 부모들의 실명과 나이, 거주지와 직업은 물론 얼굴이 나온 사진까지 공개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개인간 '떼인 돈' 정도로 취급하고 있는 현행 제도만으론 무책임한 부모들에게서 양육비를 제대로 받아낼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이유인데요.

운영진들은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는 상황을 알리고 양육비를 받아내기 위해선 이같은 신상공개를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이런 방법으로 양육비 미지급 문제가 해결된 것도 171명에 달한다고 하죠.

하지만 목적이 아무리 정당하다고 해도 누구나 볼 수 있는 인터넷 공간에 특정인의 신상을 고스란히 올리는 건 너무 과하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사이트에 신상이 올라간 부모 5명이 운영자 구본창 씨를 고소하기도 했고요.

결국 구 씨는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앞서 1심에선 "양육비 미지급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사람이 많아지면서 다수의 관심이 되고 있다"며 "구 씨의 활동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해 무죄가 선고된 바 있죠.

그러나 아직 최종 결론이 난 것은 아니어서 여전히 2심 재판은 진행중입니다.

어제(17) 수원고법에서는 바로 이같은 내용을 다투는 구 씨의 2심 첫 공판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본격적인 절차가 시작되자마자 2심 재판부는 이 재판을 잠정 중단하겠다고 전격적으로 선언했습니다.

대체 무슨 이유인지, 지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 헌재 심판대에 선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재판부는 첫 공판에서 헌법재판소에서 심판하고 있는 다른 사건을 직접 언급했습니다.

"헌재가 이 조항과 관련해 지난주에 공개변론을 한 것으로 볼 때 머지않아 결론이 나올 것 같다"고 밝힌 건데요.

특히 재판부는 "해당 조항은 이 사건의 대전제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만약 위헌 결정이 날 경우 사건을 소급해서 재심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고 설명했습니다.

진행중인 재판을 완전히 멈추게 할 정도로 중요한 판단이 조만간 헌법재판소에서 나온다는 거죠.

'배드파더스' 재판부가 언급한 건 바로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라는 형법 조항의 위헌여부를 판단하는 사건입니다.

잠시 이 조항이 헌법재판소로 가게 된 사정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서 한 시민이 2017년 8월, 자신의 반려견을 담당한 수의사가 잘못된 의료행위를 해서 피해를 입게 되자 이같은 사실을 공개하려 했는데요.

그러나 자신이 공개한 사실이 진실된 것이라도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됐고, 결국 실행을 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이같은 법률때문에 헌법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가 침해됐다며 헌법소원을 낸 겁니다.

'배드파더스' 2심 재판부가 언급한 것처럼 지난주엔 양 측 참고인인 법학 교수들이 헌법재판소에 나와 공개 변론까지 벌였는데요.

그만큼 헌법재판소도 쉽게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사안이라는 의미겠죠.

그렇다면 무엇이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건지 양쪽 주장의 핵심 논리를 각각 짚어보겠습니다.


#. '진실을 알려도 처벌받을 수 있다?'

일단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말 자체가 어려우니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먼저 '명예'란 뭘까요.

보통 누군가의 사회적인 위신이나 체면 정도로 이해되곤 하는데요.

객관적으로 측정하긴 어렵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죠.

특히 사회적 관계에서 벗어나선 생존조차 할 수 없는 우리 모두에게 이 '명예'는 생명이나 재산 못지 않게 소중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이 때문에 우리 법은 '명예'도 중요하게 보호하도록 돼 있는데요.

만약 공개적인 곳에서 욕설을 한다거나 어떤 '의견'을 밝혀서 명예를 훼손한 경우엔 '모욕죄'로, 또 특정한 '사실관계'를 밝혀서 명예를 손상시킨 경우엔 '명예훼손죄'로 처벌하도록 한 겁니다.

그럼, 의견이 아닌 어떤 '사실관계'가 알려지는 바람에 명예가 훼손되긴 했는데, 알려진 내용이 진실이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런 사례는 실제로 흔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배드파더스' 사건 뿐만 아니라 가깝게는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미투' 폭로도 그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피해자들이 과거 자신이 당한 피해'사실'을 밝힘으로써 가해자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촉발되고, 그 결과로 가해자의 명예가 훼손된 경우죠.

우리 형법은 이런 경우에 폭로에 나선 피해자의 말이 모두 진실일지라도 처벌을 하도록 돼 있습니다.

그 근거가 되는 형법 조항이 바로 문제의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입니다.

바로 그 조항, 형법 제307조를 살펴보면요.

[형법 제307조(명예훼손)]
①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최대 형량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명예훼손의 내용이 진실(①)이든 거짓(②)이든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그런데 잠깐 생각해보시죠.

거짓을 퍼뜨려서 명예를 훼손한 경우 처벌하는 건 상식적으로 너무 당연해 보이지만, 반면 그 내용이 진실인데도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건 언뜻 이해되지 않는데요.

그러나 함께 고려해야 할 점은 이게 또 무조건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형법을 살펴보면 명예가 훼손됐다 하더라도 어떤 경우엔 처벌하지 않도록 한 예외조항이 있긴 하거든요.

'막힐 조'(阻)에 '물리칠 각'(却)자를 써서 위법성 '조각'이라고 하는데요.

아래의 조건을 충족하면 위법, 그러니까 법을 어기지 않은 걸로 본다는 규정입니다.

[형법 제310조(위법성의 조각)]
제307조제1항의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는 처벌하지 아니한다.


그러니까 사실관계를 밝혀서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했다 할지라도,

첫째, 그 내용이 진실한 사실이고.

둘째, '오로지' 공익을 위한 목적일 때는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거죠.

그러나 폐지론자들은 이런 예외조항 역시 수사와 재판을 거쳐 법원의 판단을 받기 전까진 사실상 무의미하다고 주장합니다.

최종적으로 자신이 처벌을 받게 될지, 아닐지를 예상하기 힘들고 설령 결과적으론 무죄가 된다 해도 수사부터 1심, 2심, 3심까지 이어지는 재판 과정에서 받을 고통을 피할 순 없다는 겁니다.

이렇게 뭔가를 알리기로 결심한 순간 앞으로 겪게될 과정들이 뻔히 예상되다보니 누군가 진실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공개하는 걸 지레 포기하게 된다는 거죠.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이 조항에 따라 21명에게 징역형이 선고됐고요.

실제로 '미투' 등 폭로 과정에서도 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을 형사 고소해 폭로를 초기에 잠재우는 수단으로 악용된 바 있습니다.


#. "거짓된 명예 '허명'까지 보호할 필요 없어"

다른 나라 사정은 어떨까요.

세계적으로도 명예훼손죄를 형사 처벌하는 법령은 점차 폐지되는 추세라고 하는데요.

미국과 독일, 프랑스 등의 대부분 선진국에서도 진실을 말한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 원칙을 취하고 있습니다.

대신 특히 미국에선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은 민사소송으로 적극 다뤄져서 천문학적인 금액의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되기도 하죠.

이런 사건은 '범죄'로 다루는 게 아니라 개인간의 '분쟁'으로 다뤄진다는 겁니다.

앞서 2015년 '유엔 자유권 규약 위원회'와 2011년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도 우리 정부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는데요.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 역시 "진실을 말해도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있는 현행 법규 폐지 여부가 한국 정부의 인권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가 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선진국들 사례에 비춰보면 우리 형법이 좀 유별난 점이 있긴 하다는 거죠.

또, 민주주의의 주체인 시민들은 물론이고 소비자로서도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기 위해선 '진실'을 아는 게 필수적이죠.

이같은 이유로 '진실'을 공개하는 것이 어떤 경우에도 범죄가 되어선 안 된다고 폐지론자들은 강조합니다.

진실이 밝혀지고 또 알려지면서 한 개인의 명예가 훼손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런 '명예'란 거짓으로 쌓아올린 그야말로 '허명'일 뿐이어서 법으로 보호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죠.

#. "민감한 사생활 비밀까지 공개될 텐데…"

하지만 존치론자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이 논쟁이 쉽지 않은 이유를 좀 더 짐작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누구나 진실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며 모든 사실을 무조건 공개하게 된다면 예상되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겁니다.

바로 '프라이버시', 내밀한 사생활의 영역과 관련된 사실도 널리 알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진실이라 해도 개인이 숨기고 싶은 전과기록이나 질병, 성적 지향 등이 공개되면 심각한 인권 침해가 일어날 수 있겠죠.

게다가 존치론자들은 이 조항이 폐지될 경우 번거로운 법적 절차 대신에 누군가의 치부를 널리 알려서 사회에서 아예 매장시키는 '사적 제재'가 횡행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법적인 수단 대신 손쉽게 타인을 응징하려 하더라도 법으로 막기 어려울 거란 얘기죠.

특히, 표현의 자유를 아무리 보장한다 해도 누군가를 사회에서 완전히 낙오시키고, 대화의 장에서 축출하려는 표현까지는 허용돼선 안 된다고 강조하는데요.

누군가의 명예가 '허명'이라 해도 대화의 장에 참여해 항변할 권리까지 빼앗아선 안 된다는 논리입니다.


#. '위헌'과 '합헌' 사이…헌재의 선택은?

앞서 헌법재판소는 2016년 2월에도 비슷한 쟁점을 다룬 바 있습니다.

정확히 같은 조항은 아니지만, 정보통신망법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과 유사한 내용이 담긴 조항을 살펴본 건데요.

당시 헌재는 7대 2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이번에도 당연히 '합헌' 아니겠냐는 예상도 가능하지만, 이후 시간이 4년 넘게 지났고 '미투' 현상 등이 촉발시킨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무조건 당장 전면 폐지하거나 이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단 두가지 답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헌법재판소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서 대안을 마련할 시간을 주는 선택지도 있거든요.

실제로 오랜 시간 논쟁이 거듭되면서 양측은 나름의 공통분모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해당 조항을 일부 고쳐서 우려되는 표현의 자유 침해를 최소화하는 방안도 국회에서 논의중이기도 하고요.

앞서 '간통죄'와 '낙태죄'를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했던 헌법재판소.

이번에도 변화한 우리 사회에 어울리는 현명한 답안을 찾아낼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곽동건 기자(kwak@m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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