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상단의 上편을 먼저 보고 오시면 편한 이해가 가능합니다!
본편인 하편의 배경을 깔고 가기 위해 작성된, 사실상의 서론인 상편에서 서술했던 내용부터 간단히 짚고 넘어가 보자. GT40의 헤리티지를 계승하고자 이 세상에 등장한 포드 GT는 분명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명차였지만 어딘가 아쉬움이 남는 차종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GT40를 현대에 환생시킨 듯한 그 아름다운 디자인과 미국 차량이 가진 이미지를 쇄신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는 업적을 가지고 있는 차량이기도 하지만 GT40와 외형이 어찌 보면 과하다 생각될 수 있을 정도로 흡사하다는 점, 그러면서도 외형 말고는 GT40와 닮은 게 그리 많지 않다는 점 때문에 추억팔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혹평도 동시에 존재했기 때문. 이러한 혹평의 목소리는 호평보다야 확실히 작긴 했고, 이러한 디자인은 오히려 그만큼 GT40의 명맥을 이어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요소이기도 했지만 어쨌건 모든 사람을 완전히 만족시킬 수 있는 차는 아니었다.
1세대 GT는 출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단종되어 포드 슈퍼카의 명맥은 한동안 끊겨 있었는데, 그러던 2015년에 공개된 것이 바로 본문의 주인공인 2세대 GT이다.
1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2세대 GT 또한 그동안 미국 차가 가지고 있던 편견을 깨부순다. 1세대 GT는 미국 차라고 믿기 힘든 정도였다면, 2세대는 아예 유럽 차로 보일 정도까지 디자인뿐만 아니라 드라이브트레인 등의 내장까지 모두 엑조틱스럽게 변화했기 때문. 특히 차체의 공기역학 성능은 유럽의 차량들보다도 앞서 있을 만큼 매우 정교하게 짜여져 있고 1세대의 6단 수동 트랜스미션이 아닌 게트락의 7단 듀얼클러치 트랜스미션을 채용하는 등 더욱 정교하고 똑똑해졌다. 이러한 큰 폭의 변화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미국스러운 미국 차였던 GT에게는 매우 큰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III 졸작인가, 수작인가?
사실상 포드는 2세대 GT를 내놓으며 사실상 GT는 이제 더 이상 미국만의 전유물이 아닌 더 큰 것을 바란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유럽을 닮아간다는 것이 미국적인 색채를 잃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되기도 하고, 그것은 실제로도 맞는다. 미국 차만이 풍기는 특유의 느낌은 세계화의 물결 앞에 점점 흐려지고 있고, 미국 차의 큰 특징이던 레트로한 올드스쿨 분위기도 시대의 흐름 앞에 점점 지워져가고 있다.
그리고 2세대 GT는 그러한 흐름과 변화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차량이다. 때문에 2세대 GT는 1세대보다도 같은 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굉장히 많이, 그리고 아주 극명하게 갈렸다. 1세대보다 2세대가 더 멋져 보인다는 의견도 많았던 반면, 2세대는 1세대가 지켰던 것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등의 이유로 실망스러워하는 견해 또한 많았다. 단순히 관점에 따라서 평가가 이렇게 확연하게 갈리는 차량은 정말로 손에 꼽을 만할 것이다.
그럼에도 2세대 GT는 특별했다. 확실한 것은 2세대 GT는 1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차량이라는 것. 그리고, 점차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 그것에는 바로 이 공기 터널로 대표되는 압도적인 패키징의 공로가 컸을 것이다. 필자가 2세대 GT를 보고 상편에서 굳이 '혁신적인' 디자인이라고 평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당대에는 물론 지금까지도 2세대 GT로부터 5년이나 뒤에 공개된 로터스 에바이어 같은 사례를 제외하면 거의 아무도 시도하지 않는, 그러면서도 최고의 공기역학 성능을 끌어낼 수 있는 파격적인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비록 2세대 역시 그 디자인의 심미성이나 의미를 놓고 보면 호불호가 갈릴 수 있긴 해도 퍼포먼스의 방면에서는 모터스포츠에서나 시도할 법한, 아니 모터스포츠에서도 거의 보지 못했던, 그러한 동시기의 최첨단을 달리는 디자인이었던 것이다.
앞서 서술했듯이 2세대 GT의 디자인 또한 완벽한 디자인은 아니다. GT라는 이름을 쓰면서도 아주 미국적이고 GT40를 판박이처럼 재현해 놓으면서까지 과거의 명맥을 이어가는 것을 중요시했던 1세대와는 다르게 GT40의 헤리티지에 유럽과 미래의 색채를 1세대보다 더욱 많이 묻힌 디자인이다. 따라서 여전히 GT40의 색깔이 남아있기는 하지만서도 포드와 미국이 자동차 역사에 남긴 발자취를 동경하는 팬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실망스러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필자에게는 그것이 그리 나쁘게 다가오진 않는다. 비록 시간이 흐르며 미국만의 클래식하고 원초적인 멋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 매우 아쉽게 다가오기는 해도, 그것이 아름답지 못해졌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실제로도 여전히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으니까.
생각해 보면, GT가 유럽의 차량들을 닮아가는 것은 어찌 보면 시대와 세계화의 물결을 배제하고 보더라도 당연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상편의 도입부에서도 깊게 짚고 넘어갔듯이 GT의 직계 조상인 GT40부터가 미국과 유럽의 합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즉 GT가 이어가야 할 유산들을 남긴 GT40 자체가 순수한 미국 혈통이 아니라 미국과 유럽의 혼혈이다. 엔진은 미국에서 만들었지만 섀시는 그 태초에 영국의 롤라의 큰 관여가 있었기 때문에 GT40의 역사에는 애초부터 유럽의 향수가 묻어 있던 것이다. 상편에서 GT40의 얘기를 하며 롤라를 비중 있게 다룬 이유가 바로 이것을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과거의 레트로한 차량을 잘 재해석했다는 의견도, 유럽 냄새가 나서 싫다는 의견도, 기존의 GT가 가지고 있던 아이덴티티를 갖다 버렸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비록 중화되긴 했어도 GT40가 가지고 있던 디자인적 특징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1세대가 제대로 닮지 못했던 부분에서는 GT40와 더욱 닮았다. 전면부의 거대한 2개의 에어 벤트와 후면부의 동그란 테일 램프, 그리고 후면부 중앙에 있는 머플러와 그 양 옆에 있는 공기 구멍은 영락없는 GT40의 오마주로 보아도 무방하다. 못생겼다는 지적을 가장 많이 받는 부분이 바로 머플러인데 사실은 GT40의 디자인을 이어받은 것이라고 유추해볼 수 있는 부분. 1세대와 2세대 GT를 모두 선호하는 필자의 입장에선 요즘 시대 관점의 엑조틱과 아메리칸 스타일 사이의 그 어딘가를 정확히 짚어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칭찬이 길었다. 2세대 GT가 디자인 만큼이나, 또는 그 이상으로 비판받으며 팬의 입장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요소는 바로 대배기량 V8과 결별하고 3.5L V6 트윈터보라는 새로운 짝을 찾은 것일 터이다. 물론 환경의 문제도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환경을 최대한 보존하는 기술에 대한 압박이 심해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어쩐지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명쾌히 되지 않는 것 같은 찜찜함이 남는다. 요즘도 5리터 이상의 엔진을 사용한 스포츠카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말이다. 설마 다운사이징 유행을 슈퍼카에까지 적용시키려 했던 걸까?
가격 또한 문제가 되었는데, 훗날 포드의 차량들에 적용될 각종 신기술이 적용되었기 때문인지 가성비가 출중했던 1세대 GT에 비해 2세대는 40만 달러, 한화로 4억이 훨씬 넘어가는 가격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거의 10년이 지났다곤 하지만 세대가 교체된 게 아니라, 아예 다른 차종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비싸졌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갑자기 이렇게 비싸졌을까? 포드가 돈독이 오른 걸까?
이쯤 되면 이러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다. GT라 함은 그 이름부터가 GT40를 직접적으로 계승하는 차가 아니었던가? 왜 배기량만이 아니라 8기통까지 포기했던 것일까? 더 나아가서, 포드는 왜 2세대 GT를 1세대와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가게 했을까? 그들은 왜 과거를 계승하려는 차량에게 미래를 선도하라는 임무를 내려준 것일까?
그것은 1세대에서 이미 과거의 헤리티지를 충분히 어필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고 GT가 포드 유일의 슈퍼카니까 신기술을 집약시켰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2세대 GT가 모터스포츠에 참가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세대 GT는 자신의 선배보다 과거를 중요시하지 않는다고 비판받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 무엇보다도 GT40의 헤리티지를 주목하고 있었던 것이다. GT40의 생김새뿐만이 아닌 '업적'을 계승하려던 것이다. '모터스포츠'라는, GT40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헤리티지를 계승하려고 했던 것이다.
모터스포츠. 2세대 GT에 그 키워드를 대입하면 지금까지 생각했던, 칭찬했던, 신기해했던, 그리고, 의문을 가졌던 모든 요소들의 존재 이유가 말끔히 설명된다. 사실 1세대가 디자인보다도 더 아쉬움을 많이 샀던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다. 디자인은 GT40와 거의 다름없게 나왔지만서도 모터스포츠에서의 활약은 크지 않았기 때문. 그렇기에 포드는 2세대의 모터스포츠 진출에 더 목을 맸을지도 모른다.
후면부의 거대한 공기 터널로 대표되는 진보적인 공기역학 디자인은 양산차로서도 최고의 효율과 퍼포먼스를 제공함과 동시에 양산차 기반의 레이스카로서 튜닝이 불가능한 부분을 양산형부터 파격적으로 설계함으로써 공기역학상의 큰 이득을 볼 수 있었고, GT40의 상징 중 하나였던 루프까지 올라오는 도어를 버린 선택은 여느 일반적인 레이스카들과 같은 설계를 하는 데에 불편함이 없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이해하기 힘들었던 거대했던 V8와 결별하고 굳이 V6 에코부스트라는 새로운 짝을 만나게 했던 그 선택은, 바로 그 V6 에코부스트 엔진이 2010년대 중반 IMSA에서 내구 레이스에 사용되던 엔진이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배기량을 줄이고 실린더 수를 줄임으로써 엔지니어들이 더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도록 해 주어 더욱 타이트한 패키징을 짜는 것도 가능케 했다. 가격 또한 이러한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비싸진 것.
그러니까, 2세대 포드 GT는 1세대와는 나아가는 방향 자체가 다른 차량이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1세대와 2세대 간의 차이가 큰 것도 납득이 된다. 1세대 GT는 GT40의 생김새를 닮으려고 했다면, 2세대 GT는 GT40가 남긴 발자취도 따라가려고 했던 것. 닮는다는 것과 따라간다는 것은 분명히 다르지만 얼핏 보기엔 매우 비슷해 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간과했던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1세대는 육체를 물려받고 2세대는 정신을 물려받아, 두 세대의 GT 모두가 GT40의 직접적인 후예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1세대와는 달리 GT40의 형태를 흔적으로만 남겨둔 것이 '새로운 시대의 GT40'이자 'GT40의 정신적 후속'이라는 것을 오히려 더욱 잘 부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여 되려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III 꿈과 유산을 찾아서
그렇게 GT는 GT40의 업적을 계승한다는 꿈을 안고 본래의 목적지인 모터스포츠로 향했다. GT가 향한 곳은 당연히 내구 레이스. 시대의 흐름에 따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1960년대와 2010년대의 프로토타입(LMP1 등의, 양산을 고려하지 않고 레이스만을 위해 만들어진 차량)은 하늘과 땅만큼 달랐고 GT는 양산차였기 때문에 비록 오리지널 GT40처럼 최고 클래스에 참가한 것은 아니었지만, GT40의 피를 이어받은 차가 르망 24시에서 경쟁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GT가 데뷔한 곳은 IMSA의 데이토나 24시. 서킷의 67%가 풀 스로틀 구간이며 옆으로 기울어진 오벌 트랙의 뱅킹을 24시간 동안 견뎌내야 하기 때문에 르망 24시 못지 않은 혹독한 레이스이다. 전년도 우승 팀인 칩 가내시 레이싱과 파트너십을 맺고 데뷔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데뷔 시즌이었기 때문에 팬들도 2016년 포드의 그리 높은 등수를 기대하진 않았고 GT가 내구 레이스에 돌아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출전한 두 대의 GT는 예선에서 전체 15위와 25위, 클래스 등수로 따져도 9위와 10위를 기록하며 석연치 못한 포지션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아무리 데뷔 경기라곤 하지만 야심차게 준비한 차량이 뒤에서 2번째와 3번째 자리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썩 달가운 일은 아닐 것이다.
어쨌건 경기는 14시 40분, 녹색 깃발이 휘날리며 시작됐다. 시작은 예상 외로 매우 순조로웠다. 66번 GT가 시작부터 치고 올라가서 클래스 리드 싸움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 것. 한동안 사투를 벌이다 3위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하지만 희망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아직 열 바퀴도 채 돌지 않은 67번 차량이 피트로 들어와 개러지에 입고되었다. 변속기에 기어를 6단 기어 하나밖에 사용할 수 없는 큰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 변속기는 빠르게 수리할 수가 없는 부위이기 때문에 개러지로 입고되어 현장 인력들의 대규모 수리가 시작됐다.
설상가상으로 66번 차량조차 브레이크 라인이 탈착되어 피트로 들어왔다. 브레이크 라인을 급하게 수리한 다음 재빠르게 다시 트랙으로 내보내는 데에 성공했지만, 66번 차량까지 변속기가 말을 안 듣기 시작했다. 킬스위치 이슈까지 생기며 갓길에 멈춰서기도 하는 등 차가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다. 결국 66번 차량까지 개러지에 입장하게 되며 24시간 중에 20분도 지나지 않아 포드의 데이토나 24시 우승이라는 달콤한 미래는 산산조각났다.
어찌저찌 고친 끝에 정말 다행히도 두 대 모두 완주에 성공해냈지만, GTLM 클래스에서 완주한 차량들 중에서는 꼴찌였다. 하지만 포드는 이에 낙담하지 않았다. 내구성 문제는 데뷔전에서는 누구나 겪을 수 있으므로 낙관적인 태도를 고수했고, 르망 24시 등의 레이스가 열리는 WEC(World Endurance Championship)의 2016년 시즌도 시작함에 따라 포드는 유럽으로 향한다.
그래도 르망 24시는 WEC 2016 시즌의 3번째 라운드였고, 그것은 르망 24시가 열리기 이전에 2번의 실전에서 차량을 테스트하고 데이터를 쌓을 기회가 있다는 것이었다. 포드로서는 아직 기회가 더 남아있다는 얘기.
시즌 1라운드와 2라운드는 각각 영국의 실버스톤 서킷과 벨기에의 스파-프랑코르샹 서킷에서 치러졌다. 데뷔전인 실버스톤 6시간 레이스에서 두 대의 포드는 잠시 2위와 3위의 자리에서 달려 보기도 하고, 클래스 4위와 5위를 차지했다. 해당 경기에 참여한 차량들 중 포드 GT가 소속된 GTE-Pro 클래스의 차량이 7대 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전히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었지만, 데이토나 24시에 비하면 더욱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 다음 라운드인 스파-프랑코르샹 6시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67번 포드가 하위 클래스인 GTE-Am의 페라리와 충돌하며 페이스를 잃는가 하면, 경기 종료 1시간을 남겨둔 시점에서 250 km/h에 가까운 속도로 돌파하는 오루즈-라디옹 구간에서 66번 GT의 오른쪽 뒤 타이어가 터지며 스핀하여 방벽에 추돌하는 대형 사고를 내 버렸다. 이 사고는 GT의 미래가 암울하다고 암시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포드는 여전히 희망을 가지고 낙관적인 태도를 고수했고, 그렇게 GT는 팬들의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안고 프랑스로 향했다. GT는 마침내 1966년 GT40가 우승을 차지했던 땅을 밟았다. 최대 라이벌은 공교롭게도 또 다시 페라리였다. 이번 라운드는 르망 24시인 만큼 4대라는 많은 수의 차량을 투입했고 전통 강호인 이탈리아의 AF 코르세 팀이 운용하는 페라리 488은 포드가 포디움에도 들지 못했던 실버스톤과 스파-프랑코르샹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한 차량이었다. 488 또한 양산형부터가 모터스포츠를 염두에 두고 설계한 것이 다분히 보이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엄청난 강적이었다.
포드는 GT40의 헤리티지를 등에 업고 페라리와 포르쉐를 비롯한 유수의 브랜드들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고, 더군다나 2016년은 GT40가 첫 우승을 거뒀던 1966년으로부터 정확히 반 세기가 지난 해였기 때문에 그들은 칼을 갈았다.
그렇게 시작된 예선을 지켜본 이들은 하나같이 패닉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LMGTE의 타임 시트 맨 위에 있던 것은 포드였다. 그 바로 밑에 있던 것도 포드였다. 4위도 포드였고, 5위도 포드였다. 바로 전날까지 치러졌던 테스트 세션에서의 최고 기록보다 5초나 빠른 기록이었다. 당연히 선두에서 예선과 레이스를 지배할 것이라고 믿어졌던 페라리와 포르쉐를, 포드는 처음으로, 그리고 너무나 제대로 눌러 버린 것이었다.
갑자기 이렇게 강력한 퍼포먼스를 보여준 포드에게 모든 시선이 쏠렸고, BoP 이득을 보려고 그동안 힘을 숨기고 있었다는 의혹도 제기됐으나 포드에선 강력히 부인했다. ACO는 예선 결과에 따른 BoPBalance of Performance, 시즌 중 또는 경기 중에 각 차량에 적용되는 일종의 실시간 밸런스 패치를 적용시켜 예선에서 강한 면모를 보인 포드와 페라리에게는 성능 하향을, 포르쉐를 제외한 나머지 제조사들에게는 성능 상향 조정을 했다. 포드에게 주어진 BoP 사항은 10 kg이라는 무게 핸디캡과 터보차저 부스트압의 하향 조정이었다.
대망의 본선 경기는 시작부터 말썽이었다. 비가 와서 경기 시작이 1시간 가까이 지체된 것. 레이스카들은 53분 동안 세이프티 카 뒤에서 머무르며 르망 역사상 전례가 한 번도 없던 세이프티 카 스타트 상황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66번 GT가 세이프티 카 상황 속에서 기어박스 압력 부족을 호소했다. 이는 기어 변속에 지장을 주었고 경기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개러지에 입고되었다.
한 시간의 지연 끝에 비가 그치고 트랙이 마르기 시작하자 경기는 드디어 시작되었다. 아직 노면의 빗물이 완전히 마르지 않았기 때문에 유일한 RR 레이아웃의 911 RSR이 강력한 후륜 그립을 이용하여 치고 올라가 14초에 가까운 차이를 벌려냈다. 하지만 이내 트랙이 완전히 마르며 포드에게 랩당 2초라는 무서운 기세로 따라잡히며 리드를 내 준다.
GTE에서 우승을 다툴 것으로 점쳐졌던 AF 코르세와 포르쉐는 초반부를 제외하면 힘을 전혀 쓰지 못하고 맥없이 쓰러졌다. 3대 중 2대의 포르쉐와 2대 중 1대의 AF 코르세 페라리가 150랩도 채우지 못하고 리타이어해 버린 것. 마지막 남은 AF 코르세조차 엔진 문제로 리타이어했고, 그에 따라 열세할 것으로 점쳐졌던 포드, 그리고 또 다른 페라리의 소규모 커스터머 팀인 리시 컴페티치오네의 82번 차량이 우승을 놓고 싸우는 장면이 연출되며 예선에 이어 레이스에서도 대이변이 연출되었다.
위기도 많았다. 선수들과 미캐닉들의 집중력이 점점 흐려져가고 사고가 많아지기 시작할 때인 저녁-밤 시간대에 67번 포드가 제동 실수로 모래밭에 갇히며 그 시작을 끊었다. 67번은 자력으로 탈출하진 못했지만 크레인을 이용해 트랙에 복귀하는 데 성공하였고, 그 여파로 사르트 서킷에는 한동안 슬로우 존(사고 등이 발생할 시 안전을 위해 특정 구간에서 다른 모든 차량들을 일정 속도 이하로 달리게 하는 것)이 걸리게 되었다.
실수와 사고, 피트스탑 전략 등을 통해 엎치락뒤치락하며 치열한 싸움을 이어가던 포드 진영과 페라리. 그러던 중 68번 포드가 재급유 도중 엔진의 시동을 끄지 못해 피트레인에 한 번 강제로 들어가야 하는 드라이브 스루 페널티를 부여받게 된다. 이를 통해 82번 페라리가 선두로 치고 나갔으나 드라이버 교대 후 끈기있게 따라잡아 추월해냈다. 페라리는 뒤에서 68번 포드를 계속해서 압박했지만 포르쉐 커브에서 제어를 잃고 런오프로 빠지게 되면서 포드는 리드를 제대로 잡게 된다.
이때 연료 전략을 비틀어 반등한 차량이 있었으니 바로 3위로 달리고 있던 69번 포드가 피트스탑을 다른 차량들보다 한 바퀴 더 늦게 하며 맹추격을 시작한 것이다. 이는 다른 상위권에게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고 1위부터 3위까지 같은 랩을 달리고 있었을 정도로 치열한 접전이 펼쳐졌다. 68번 포드 또한 포르쉐 커브에서 있었던 82번 페라리의 실수를 기회 삼아 빠른 페이스로 달리며 승리를 굳히는 데에 들어가고 있었고, 1분에 가까운 차이를 벌린다.
메인 스트레이트에 위치한 거대한 롤렉스는 마침내 오후 3시를 가리켰고, 그렇게 68번 포드는 모두를 제치고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다른 GT들도 네 대 모두 완주에 성공하고 69번과 66번이 3위와 4위를 차지하는 등 굉장한 결과를 거뒀다. GT40가 르망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지 정확히 50년 만의 일이었다. GT40가 남긴 발자취를 충실히 따라가, 비로소 궁극적인 목적지에 다다르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그런데 시상식이 끝나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경기 결과표의 정상에는 68번 포드가 아닌 리치 컴페티치오네의 82번 페라리가 있었다. 바로 우승한 68번 포드에게 70초라는 어마어마한 페널티가 들어와 버린 것. 페널티 사유는 바퀴에 달린 속도 센서의 상태가 온전하지 않았고 슬로우 존에서 속도를 충분히 줄이지 않았기 때문. 다른 종목이었다면 그리 큰 타격을 입지 않았겠지만 24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달리는 르망이었기에 페널티 타임도 그만큼 긴 것이었다. 1966년 이후 정확히 50년 만의, 최고 같았던 포드의 우승이 이렇게 허망하고 어이 없게 끝날 줄 누가 알았으리라.
하지만 그들의 앞에는 또 다른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82번 리치 컴페티치오네 역시 오렌지볼기(즉시 차량을 수리하라는 명령의 깃발)를 여러 차례 받았으나 차량 수리를 즉시 진행하지 않아 20초 페널티를 받게 된 것이다. 그것은, 포드가 다시 우승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2016 르망 24시의 최종 우승 차량은 포드가 되었다.
반전에 반전에 반전.. 셀 수도 없이 많았던 반전 속에서 끝끝내 포드는 우승을 쟁취해 냈다. GT40가 남긴 르망 우승이라는 헤리티지를 계승해내는 데 완벽히 성공한 GT의 가장 중대한 임무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포드와 GT는 GT40의 르망 우승 50주년을 맞아 모두의 축하와 축복을 받으며 미국으로 돌아왔다. 승리의 영광을 쟁취한 68번 GT는 고국으로 돌아와 내구 레이스의 훈장과도 같은 먼지와 벌레, 기름때를 실컷 뒤집어쓴 레이스 피니시 때의 몰골 그대로 헨리 포드 박물관에 자신의 대선배인 GT40 Mk.IV의 옆에 나란히 전시되는 최고의 영광을 누렸다.
이 우승은 종합 우승은 아니었지만 포드에게는 의미가 아주 크다. 2016년은 1966년에 이어 포드로서는 가장 중요하고, 가장 달콤한 해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이 우승을 통해 포드는 GT의 존재 의의였던 GT40의 모든 헤리티지를 계승해내는 데 성공했고 그것은 GT가 어느새 위대한 차량이 되었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그렇다, 완벽이란 단어와는 약간의 거리가 있었던 이전과 달리, GT는 이제 비로소 포드 최초이자 유일의 슈퍼카로서 맡은 임무와 본연의 목적을 모두 달성해낸, 완전히 위대한 차량이 된 것이다. 이제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III CAR GO STUDIOS 이현빈 에디터
cargostudio@naver.com
댓글과 좋아요, 팔로우는 에디터에게 큰 힘이 됩니다.
2021.03.25. III CAR GO STUDIOS
III 함께 보면 좋은 포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