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타고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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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사모스
직업 철학자

기원전 6세기에 활약한 그리스의 철학자. 생몰연대 미상. 사모스의 상인 무네사르코스가 아내와 함께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참배했을 때 준 자식으로, <아폴론의 대변자>라는 의미로 피타고라스라고 이름붙였다고 한다. 젊었을 때 사모스에서 이오니아 철학을 공부하고, 친구인 폴리크라테스와 함께 정치개혁에 임했다. 이 시도는 성공을 거두었는데, 폴리크라테스가 점차로 독재자가 되어가는 것을 비판해서 고국을 버렸는데 30세 전후 무렵으로 생각된다. 그후 30년 동안 세계각지의 밀의전수를 구해서 편력하고, 이집트,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카리아, 인도 등 발이 닿지 않은 곳이 없으며, 당시의 모든 학문을 몸에 익혔다고 전해지며, 그 박학다식은 많은 고대 작가에게 경탄받았다. 60세 전후, 남이탈리아의 크로톤에 거주를 정하고, 거기에 밀의 학교로서 피타고라스 교단을 창립했는데 이 교단은 즉시 부흥하고, 그 영향하에 크로톤은 남이탈리아의 패권을 장악했다. 한편 90세 때, 교단과 세속권력의 확집이 격렬해져 가혹한 탄압을 받게 되었는데 메타폰티온으로 추방되어서 그곳에서 죽었다. 그러나 사후에도 탄압이 계속되고 교단은 각지로 흩어졌으며, 결국 비밀결사화하였고 피타고라스 교단에서는 일체의 교설이 피타고라스의 것이 되었는데 그는 절대적 권위를 가진 교조였다. 여기에서 남녀는 평등하게 취급되고, <피타고라스적 생활>을 보내도록 지도되었으며 청정을 유지하고 육식을 끊고, 침묵 중에 자기혼을 응시하는 수행이 부과되었다.

피타고라스에 의하면 혼은 원래 불사, 즉 신적인 존재인데, 무지로 자신을 더럽게 하고, 그 죄를 씻기 위해서 육체라는 묘에 매장되고 있으며 우리들이 생이라고 하는 지상의 생활은 실은 혼의 죽음이며, 그 죽음에서 부활해서 다시 신적 본성을 회복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인데 그에 실패해서 무지한 인생을 계속 살면, 윤회전생의 틀에서 영구히 벗어나지 못한다. 한편 이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해서 혼은 지혜(소피아)를 구하고, 그로써 본래의 순수존재로 돌아가야 한다. <지혜의 탐구(필로소피아)>야말로 해탈을 위한 가장 유력한 방법인데 이 교단에는 종교적 해탈을 구하는 청문생과 학문적 연구에 정진하는 학문생의 두 파가 있었다고 하며 여기에서 학문은 종교적 해탈과 불즉불리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이 두 파는 현교밀교, 또는 신참자와 숙달자로 구별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또한 지혜에 이르기 위한 준비적 과정으로서 네 개의 학문이 있었다. 첫 번째에 <수의 학>, 두 번째로 <형의 학>, 세 번째로 <별의 학>, 네 번째로 <조화의 학>이다. 이 4학은 후에 중세에서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 유럽학문의 중추를 이루었는데, 근대적 의미에서의 수학, 기하학, 천문학, 화성학과는 현상적으로는 어찌되었든, 본질적으로는 다르다는 것에 주의해야 하는데 그것은 고대적인 <수>의 관념에 의거한 일종의 명상체계였다.

1은 최초의 자연수 또는 단위수일 뿐만 아니라, 시원, 전체, 궁극, 완전을 의미했다. 마찬가지로 2는 2개의 단위수가 아니라 대립, 분열, 투쟁, 무한을, 3은 조화, 미, 질서, 신성을, 4는 사물, 현실, 배분, 정의 등을 의미한다. 수는 양이 아니며 존재의 원형적 형상 이었다. <만물의 원리는 수이다>라고 그가 말했을 때, 세계는 양적 관수관계로 이루어진 수학적 질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만물은 수의 존재분절기능에 의해서 질서가 확립되고, 존재의 각 층에는 동일한 수의 유비관계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 다음에 제시하는 <4원소>이다. 이 1, 2, 3, 4로 된 10개의 점은 대우주와 소우주에 공통하는 세계질서(코스모스)를 나타내는 만다라로 되어 있으며, 피타고라스 교단에서는 이 도형 앞에서 서약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한편 위와 같은 <수>의 중시는 수학사상에서 피타고라스 또는 피타고라스 학파에 돌려지는 많은 업적을 낳게 되었다. 삼평방의 정리(피타고라스의 정리), 피타고라스의 수, 무리수의 발견 외에, 수론과 결부된 음계이론이 특히 유명한데, 최근에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수학의 영향도 주목되며, 그 독창성에 대한 평가는 정하기 어렵다. 수를 만물의 원리로 보는 피타고라스주의는 이후의 유럽사상사, 과학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엠페도클레스의 사대론,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 소크라테스, 플라톤의 철학도 그 권내에 있다. 한편 지동설의 최초의 제창자라는 피롤라오스, 입방체의 배적문제의 해결로 유명한 아르키타스 등은 피타고라스 학도였다. 기원전 1세기에는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에서 신(新)피타고라스주의가 일어나 종교적 전통에 수학적 빛을 비추었다. 티아나의 아폴로니오스가 이 대표이며, 이안브리코스에도 신 피타고라스 학파와의 결합이 인정된다. 또한 근대를 연 상징적 사건이었던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론이나 케플러의 우주 모델도 피타고라스 학파 사상의 힌트가 되었으며 자연을 수학적으로 기술하려는 근대자연과학의 방법론은 적어도 그 중요한 일부분을 16~17세기의 피타고라스 부흥운동에 의해서 지지되고 있다. 또한 르네상스는 어느 의미에서 플라톤과 함께 피타고라스의 재생운동이었다고도 할 수 있으며, 당시의 음악, 회화, 건축, 문예 등에도 피타고라스적 우주론이 반영된 것을 지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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