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혐의'로 고소된, 64세 박모씨가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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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7.12. 오후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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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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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피의자에 대한 '서사' 배제한다면…피소 하루만에 숨져 수사 종결, 피해자의 시간 계속되는데 '2차 가해'만]

/삽화=임종철 디자인 기자
서울시청서 근무하던 전직 비서 A씨가 상사 박모씨(64)를 성추행 혐의로 8일 밤 고소했다.

A씨는 "2017년 이후 성추행이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박씨가 A씨에게 신체 접촉을 했을 뿐 아니라, 메신저 '텔레그램'을 통해 개인적인 사진도 수차례 전송했단 것.

그는 경찰에 "더 많은 피해자가 있지만, 박씨가 두려워 아무도 신고를 못했다"며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를 입은지 3년이 지난 뒤에야, 힘겹게 용기를 낸 셈이었다.

그러나 상사 박씨는 10일 오전 12시1분쯤 서울 성북구 소재 삼청각 인근 산 속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씨는 전날인 9일 서울시청에 출근하지 않았고, 그의 딸이 이날 오후 5시17분쯤 실종 신고를 했다.

A씨는 끝내 박씨에게 죄(罪)를 물을 수 없었다. 피의자가 사망해, 수사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기 때문이다.



성추행 사건에, '3선 서울시장'이 왜 필요한가


쉬이 짐작할 수 있듯, 5문단으로 구성된 이 짤막한 기사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혐의와 이후 극단적 선택에 이르기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서울시장'이란 부분을 철저히 배제한 채 기술해서다. 반대로 생각하면, 성추행 사건에 피의자-피해자 간에 있었던 일이 아닌, 그 외 부분이 상당히 많이 개입돼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 그랬다. 박 시장이 사망하자마자, 새벽부터 그간 그가 이룬 업적에 대한 기사들이 쏟아졌다. 약자를 대변한 인권 변호사였단 것, 세 차례나 당선된 역사상 최장수 서울시장이란 것, 차기 대권 후보였단 것 등이 총망라 됐다. 소탈하게 웃는 흑백 사진은, 망자에 대한 그리움을 자극했다. 피의자에 대한 '서사'를 부여한 셈이었다.

어떤 성추행 사건 기사에서도, 피의자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상세히 다루진 않는다. 사건의 본질을 흐릴 뿐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될 수 있어서다. 이를 우려하듯, 관련 기사들엔 "성추행 사건을 미화하지 말아라", "용기를 내어 고소한 피해 여성에게 격려를 보낸다"는 댓글이 이어지기도 했다.



철저하게 지워진, '피해자' 이야기


/삽화=임종철 디자인 기자
그러는 동안 지워진 건 '피해자'다. 고소한 지 하루 만에 피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조사는 한 번도 받지 않았고, 그렇게 수사는 끝났다.

그러니 피해자 A씨 입장에선, 그가 겪은 일을 밝힐 방법이 요원해졌다. 평소 '인권'을 그리 부르짖으며 시민인권보호관이란 부서까지 만들었던 서울시는 "박 시장 성추행 피소와 관련해 조사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박숙미 서울시 인권보호팀장은 "방법을 찾고 있다" 정도의 언급만 했다.

피의자의 시간은 자체적으로 끝났지만, 피해자의 시간은 계속 되고 있다. 일단 그가 지켜봐야 하는 건,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치르는, 5일장이다. 발인은 13일이고, 박 시장을 향한 추모 행렬은 계속 되고 있다. 일부 지지자들은 A씨의 신상을 터는 등 2차 가해에 비윤리적 행동까지 일삼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그의 주장대로라면 성추행 피해를 오랜 시간 입었고, 어렵게 용기를 냈고, 고소를 했지만 죄를 밝히지 못했고, 그로 인해 오히려 2차 가해를 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피해자를 향해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힘내세요"란 응원도 이어지고 있다. '박원순 시장을 고발한 피해자와 연대합니다'란 해시태그 응원도 같은 맥락이다. 박 시장의 조문을 안 하겠단 정치인들도 나왔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저는 조문하지 않을 생각"이라며 A씨를 향해 "당신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위로하기도 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10일 "피해자가 말할 수 있는 시간, 그리고 이걸 들을 책임을 사라지게 하는 흐름에 반대한다"며 "피해자 곁에 있겠다. 약자 곁에서 이야기되지 못해온 목소리에 연대하겠다"고 밝혔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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