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K] 나경원 vs 심상정 주장 따져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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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3.20. 오후 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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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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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이하 정개특위) 위원장인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여야 4당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이틀째 설전을 벌였다.

나 원내대표는 19일 한국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일부 야당이 야합해 급조한, 명칭도 낯선 50%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실체가 여의도 최대 수수께끼가 되고 있다."면서 "심지어 선거제 개편에 합의한 장본인들도 설명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같이 복잡한 선거제도는 계산식 그 자체가 바로 선거제도다. 그런데 이 산식을 알려달라는 기자들 질문에 심상정 의원이 (17일 기자간담회에서) 국민들은 계산식을 알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답했다. (이는) 오만한 태도"라고 주장했다.

이에 심 위원장은 '법안설명 기자간담회'를 열어 즉각 반격에 나섰다. 그는 나 원내대표의 주장이 "완전한 가짜뉴스다. 천부당만부당한 말"이라며 "선관위에서 계산식이 나오면 추후에 설명하겠다는 취지로 이야기를 한 것인데, (나 원내대표가) 발언의 취지를 왜곡하고 국민을 호도하는 것에 대해 매우 유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심 위원장은 나 원내대표가 "여의도 최대 미스터리 법안"이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선 "지난해 5당 원내대표 합의에 서명한 당사자가 나 원내대표다. 그런데 5당 합의사항을 180도 뒤집고 정반대의 법안을 제출한 것이야말로 미스터리라고 생각한다."고 맞받아쳤다.

선거제 개편을 놓고 여야 간 극한 대치가 이어지는 상황.
'가짜뉴스'까지 언급한 심 위원장의 위 두 가지 주장이 사실인지 따져봤다.

[검증.1] "(계산식 관련 나 원내대표 주장은) 완전한 가짜뉴스"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이 지난 17일 기자들과 질의응답하는 모습

정확한 판단을 위해 나 원내대표가 문제 삼은 심 위원장의 발언록과 실제 육성이 담긴 취재 영상 원본을 살펴봤다.

심 위원장은 지난 17일 여야 4당의 공직선거법 개정안 초안 합의 직후 기자들에게 브리핑하는 자리에서 관련 언급을 했다. 비례대표 의석수를 도출하는 구체적인 계산법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고 심 위원장이 답하는 과정에서 "계산식이 아무리 복잡해도 나중에 컴퓨터로 처리하면 된다. 이걸 여러분들(기자)이 이해하려면 굉장히 힘들다."는 말이 나왔다.

그는 계산법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이 반복되자 웃으며 "오늘 그것(계산법)까지 기사에 담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도 했다. 개정안 초안을 전반적으로 브리핑하는 상황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묻는 말이 반복되자 상황을 정리하려 한 취지로 읽힌다. 심 위원장은 이 발언 이후에도 계산법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여러 차례 추가 답변을 이어갔다.


해당 영상과 발언록에는 나 원내대표가 주장한 것처럼 "(심 위원장이) 국민들은 계산식에 대해 알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답했다."는 발언은 없었다.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봐도 그런 뉘앙스가 풍기는 발언도 없었다.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이 고압적이거나 일방적으로 진행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문제의 발언은 그 이후에 나온 것으로 파악된다. 방송카메라가 돌아가는 상황에서 이뤄진 공식 브리핑이 끝나고 심 위원장이 자리를 뜨는 과정에서 일부 기자들과 계산식에 대한 추가 질의가 오갔다.

"산식을 보여달라"는 기자들 요구에 심 위원장은 "산식은 여러분들이 이해 못한다. 산식은 과학적인 수학자가 손을 봐야 하기 때문에 국민들은 산식이 필요없다."면서 "우리가 예를 들어서 컴퓨터(자판)을 칠 때 치는 방법만 알면 되지, 그 안에 컴퓨터 부품이 어떻게 되는 것까지 다 알 필요는 없다."고 말한 것이다.

해당 발언은 방송카메라에 담기진 않았지만 한 기자의 녹음파일을 통해 알려졌다.

한국당에서 이 발언을 문제 삼자 정의당 측은 "한국당이 선거제 개편에 대해 공격하려고 발언 취지를 왜곡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심 위원장은 "제1야당 대표가 정치개혁이라는 큰 호박을 굴리려고 해야지 말꼬리나 잡는 그런 좁쌀 정치를 해서 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 위원장의 발언을 전체 맥락에서 살펴보면 복잡한 산식을 일일이 다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지만, 한국당 입장에서는 그 말이 국민을 무시하는 발언으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결국 이는 발언을 어떤 시점에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인데, 심 위원장이 '완전한 가짜뉴스'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다소 과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심 위원장이 산식에 대해 수차례 반복해서 설명했던 점을 고려하면 본심이 왜곡된 부분에 대해 억울한 심정이 들수도 있지만, 발언 내용 자체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 위원장이 나 원내대표의 주장을 "완전한 가짜뉴스"라고 언급한 주장은 `대체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볼 수 있다.


[검증.2] "여야 5당 원내대표 합의에 서명해 놓고 180도 바뀌었다"

나 원내대표가 지난해 말 5당 원내대표 합의안에 서명해 놓고 최근 180도 바뀐 법안을 제출했다는 심 위원장의 주장은 대체로 사실로 볼 수 있다.

나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 15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선거제도 개혁안에 전격 합의했다. 나 의원이 한국당의 원내사령탑으로 취임한 지 4일째 되는 날이었다. 5당 원내대표들은 토요일이었던 이날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합의문을 발표했다. 전날까지도 여야 간 합의가 어려워 보였던 국회 상황 때문에 이날 합의문 발표는 매우 전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는 합의문 1항을 발표한 데 이어 5당 원내대표들이 돌아가면서 합의 내용을 공개했다.

바통을 이어받은 나 원내대표는 "비례대표 확대 및 비례 지역구 의석비율, 의원정수, 지역구 의원 선출 방식 등에 대하여 정계특위의 합의에 따른다."고 발표했다. "선거제도 개혁 관련 법안 개정과 동시에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 논의를 시작한다."고도 했다.

2018년 12월 15일 국회 정론관에서 여야 5당 원내대표가 합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 합의문 전문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5당은 선거제도 개편과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합의한다.

1.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
2. 비례대표 확대 및 비례·지역구 의석비율, 의원정수(10% 이내 확대 여부 등 포함해 검토), 지역구 의원선출 방식 등에 대하여는 정개특위 합의에 따른다.
3. 석패율제 등 지역구도 완화를 위한 제도 도입을 적극 검토한다.
4. 선거제도 개혁 관련 법안은 1월 임시국회에서 합의 처리한다.
5. 정개특위 활동 시한을 연장한다.
6. 선거제도 개혁 관련 법안 개정과 동시에 곧바로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논의를 시작한다.

합의문 내용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전제로 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합의문이 민주당과 야 3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이 일찌감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원칙에 뜻을 모은 것과 달리 한국당은 부정적 입장을 견지했던 터라 한국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원칙에 합의했다는 소식은 큰 주목을 받았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와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합의를 촉구하며 열흘간 단식 농성을 벌이면서 여론의 비판이 고조되자 한국당이 기존 입장을 선회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잇따랐다. 합의문 발표 후 손 대표와 이 대표는 단식 농성을 접었다.

나 원내대표는 합의문 발표 직후 "원내대표에 취임한 지 며칠 되지 않았고 여러 사정이 복잡하기 때문에 (한국당) 의원님들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시간이 매우 부족했다."면서 "두 분이 단식하는 상황에서 한국당 입장만 고집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선거구제에 대해서 확답을 드릴 순 없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것을 열어놓고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진일보한 주장을 내놨다."고 자평했다.

합의문 발표 직후 나경원 원내대표가 기자들에게 합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합의문 발표 다음날(16일) 한국당은 윤영석 수석대변인과 정양석 원내 수석부대표의 논평과 성명을 통해 "일부 보도처럼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로 최종 합의한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며 "열린 자세로 논의와 검토를 하자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 하루가 지나(17일) 나 원내대표는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합의문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선거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것"이라면서 "일부 정치권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기정사실화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이에 대해 심각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후 해가 바뀌면서 한국당의 입장은 많이 바뀌었다.

나 원내대표는 지난 10일 "현재 대통령제하에서는 오히려 의원정수를 10% 줄여서 270석으로 하자는 게 한국당의 안"이라며 비례대표를 아예 폐지하는 한국당 안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내각제 개헌 없이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동의할 수 없다"며 "내각제 개헌과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말 합의문 발표 이후 별다른 당론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가 나온 나름 '파격적인 안'이었다.

나 원내대표는 여야 4당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희대의 권력 거래이자 밀실야합"으로 규정하고 있다.

나 원내대표가 지난해 말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는 여야 5당 원내대표 합의안에 서명하고 이후 여러 차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포함한 열린 선거제 논의를 강조했던 점을 고려하면 입장이 "180도 바뀌었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

다만, 나 원내대표의 주장대로 여야 합의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전제로 한 건 아니라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어 심 위원장의 주장을 '대체로 사실'로 봤다. 이는 연이은 진통 끝에 도출된 합의문의 무게감도 함께 고려한 판단이다.


[결론 종합]

[검증.1] "(계산식 관련 나 원내대표 주장은) 완전한 가짜뉴스다" → 대체로 사실 아님
[검증.2] "지난해 5당 원내대표 합의에 서명해 놓고 180도 바뀌었다" → 대체로 사실

[팩트체크K 판정기준] 


※ 취재 지원: 팩트체크 인턴기자 최다원 dw0824@naver.com

※ 기사 수정 이력 및 수정 사유
이 기사는 19일 21시 20분에 송고됐다 일부 중요한 사실이 누락된 점이 발견돼 20일 오전 9시13분에 기사내용을 보강·수정했음을 알려드립니다. 그 과정에서 2개의 검증 내용 중 한 개의 검증 결과가 바뀌어 혼란을 일으킨 점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앞으로 보다 면밀하게 사실확인 과정을 거쳐서 정확하고 공정한 기사를 제공하도록 하겠습니다.

임주현 기자 (le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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