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10살 아이의 그림에…"살고 싶어요"[남기자의 체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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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05.14. 오후 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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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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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안 보였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집에서 학대당해 벗어난 다섯 아이들이 함께 사는 '그룹홈'에서의 하루…겉으론 밝더라도 상처 남은 아이들, 돌봄 인력 부족해 꼭 필요한 심리 치료도 쉽게 끊겨]

10살 아이가 그린 그림에, "살고 싶어요"라고 쓰여 있었다. 어떤 삶이었던 것일까. 고작 10년이란 삶에 이렇게 울부짖게 만든 장본인일 당신은, 이걸 보고 느끼는 게 있는가./사진=남형도 기자
일곱 빛깔 무지개 그림이라 흐뭇하게 보고 있을 때였다. 10살 약지(가명)가 그렸단 그림이었다. 문득, 그림 왼편에 "살고 싶어요"라고 쓰여 있단 걸 알게 되었다. 행복합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축복합니다 이런 말들 사이에 살고 싶다는 말이 있었다.

이걸 본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가 말했다. "3학년짜리가 살고 싶다는 말을 쓰잖아요. 보통 그렇게 글을 안 쓰지요"라고 했다.

약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홀로 방치됐었던 아이라고 했다. 엄마는 약지를 집에 두고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했단다. 컴컴한 밤, 굶주림, 본능적으로 죽을 수 있다는 공포스러운 나날, 그걸 아이는 이른 나이에 그 작은 몸으로 다 견뎠다.

현관 옆에 걸린, 알록달록한 손편지도 눈에 띄어 누가 쓴 거냐고 물었다. 10살 소지(가명)가 쓴 거란다. 편지엔 "아빠! 엄마! 키워주어서 감사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언뜻 보기엔 평범한 감사 편지였다.

엄마, 아빠가 아니라 아빠, 엄마라 쓴 것. 그것도 어떤 아이에겐 상처가 표현된 거라 했다. 그걸 알아봐주는 어른도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그걸 본 공 대표는 "이 아이는 아빠보다 엄마한테 더 많이 맞았을 수도 있다"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원장님이 그렇다며 "아빠는 때리진 않았고, 엄마가 때렸다"고 했다. 공 대표에게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자 그는 "보통은 엄마, 아빠라고 하는데 아빠를 먼저 쓰지 않았냐"라고 설명했다.

학대당한 두 아이는, 그리고 다른 아이들은, 그 뒤로 어디에 갔을까. 그곳은 이젠 안전하고 편안하고 괜찮은 걸까. 그 이야기를 하려 한다. 아이는 이제부터라도 잘 살아야 하므로. 부디 그러기를 바라므로.



아이들의 '새로운 집'에 가보았다


태어나게 했다고 다 가족이 아니다. 학대당하고 버려진 아이들을 돌봐주는 이곳 역시, 혈연이 아니어도 '가족'이고 '집'이었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날 공 대표와 함께 아이들이 지금 살고 있다는 으로 갔다. 아동학대를 막으려 10년 넘게 진심으로(열정으로) 활동하고 있는, 공 대표와 함께 갔다. 그가 나선다는 건 무언가 이 집에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란 걸 알았다. 가보면 알게 될 거라 여겼다.

아파트 단지에 있는 깔끔하고 아늑한 가정이었다. 들어서니 좋은 봄날의 아침 햇살이 거실에 쏟아지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어 우릴 반긴 건 그 집과 잘 어울리는, 얼굴이 온화한 원장님이었다. 공 대표가 바리바리 싸간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귀여운 두 아이 그림이 있는 가방과, 버스 모양의 간식 꾸러미와, 압력 밥솥까지.

이 집에 사는 가족은 일곱 명. 아이가 다섯이고, 원장님과 다른 선생님까지 그리 함께 살고 있었다. 태어난 가정이 해체되고 부모가 보호하지 못할 때, 대신 아이들을 돌보고 키워주는 곳. 그걸, 함께 생활하는 가정이란 뜻에서 '공동생활가정(그룹홈)'이라고 부른다. 통상 생각하는 양육시설(보육원)과 기능은 같지만, 아이들이 더 적고 집과 비슷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일반 그룹홈이었다. 이런 곳이 전국에 총 520곳이 있고, 2758명의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다(2020년 12월 기준, 보건복지부). 아이들 보호를 위해, 그리고 편의상 이 집의 이름을 '다섯 손가락'이라 하겠다. 서로 붙어 함께하기도 하니까.



발가벗겨져 쫓겨나고, 홀로 방치되고…빠짐없이 상처가 다 있었다


햇볕이 드리우고 식물이 그걸 쬔다. 무럭무럭 자란다. 아이들도 자란다. 그늘이 아닌 햇볕 아래에서. 온기가 가득한 봄날, 그룹홈의 베란다에서./사진=남형도 기자
이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다행히 학교에 가 있는 시간이라, 조심스레 이야기를 하나씩 들을 수 있었다.

친엄마와 동거하는 남자는 중학생인 엄지(가명)에게 발가벗으라고 했다. 아이가 자해한다며 그러라는 거였다. 아이는 고분고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상식 밖이고 불쾌해도 그 말을 안 들었다간 죽는다고, 평소 그로부터 심어진 기억이 그래서였다.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건 아이 잘못이 절대 아녔다, 그딴 환경에서는.

엄지는 어릴 때부터 이 자(者)에게 정서적 학대를 당했다. 아이를 무시하고, 질책하고, 찍어누르고, 그게 일상이었다. 집은 더는 집이 아니었고, 보호자는 이미 보호자가 아니었다. 엄마 역시 동거남에게 맞고 무시당했다. 아이가 그리 당하는데도 그를 말리지 못했다. 엄지는 발가벗겨진 채 집에서 쫓겨났다.

중지(가명)는 엄마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엄마는 세상을 떠났고 아이는 남겨졌다. 충격으로 중지는 정신병원에 6개월 동안 입원했다. 검지(가명)도 부모에게 방임 학대를 당했다.

'다섯 손가락' 식구들은 빠짐없이 그리 상처가 다 있었다. 아동학대를 당한 아이들만 모인 거였다.



학대에서 벗어나자, 살찌고 키크고 뽀얘진 아이들


소지가 원장님께 쓴 손편지. 힘내지 않아도 괜찮고, 물건 잃어버려도 괜찮단다. 어떤 너라도 다 괜찮단다. 우린 고유한 존재이고 넌 존재 자체만으로 귀하니까./사진=남형도 기자
원장님은 학대 피해를 입은 아이들을 우연히 만났고, 마음을 먹었다. '이 아이들을 잘 살려서, 성장할 수 있게 해야겠다'고. 힘든 길이란 걸 알았다. 다른 선생님 한 명과 하루씩 교대하며 아이들과 살았다. 사실상 홀로 24시간 돌보는 거나 다름없었다.

원장님은 '다섯 손가락' 아이들을 돌보느라, 집에도 잘 가지 못했다. 자녀들에게도 미안했다. 그러나 철이 든 막내 아이가, 미안해하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전 그래도 엄마, 아빠가 있고 사랑받잖아요. 그러니 그 아이들을 잘 챙겨주세요."

지난해 2월부터 시작해, 벌써 1년 4개월째. 여전히 밤에 잠도 편히 못 자건만, 그를 오롯이 버티게 하는 건 아이들이 좋아진다는 '보람'이다.

두려움에서 벗어난 아이들이 살아나고 있어서다. 잘 먹였다. 고기는 한 번 먹일 때 두 근씩 먹였다. 치킨도, 피자도 만들어줬다. 사랑을 주고, 자꾸 예쁘다고 해줬다. 그러면서도 아이들과 함께 지켜야 할 약속을 정해, 함께 살며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게 했다. 수척하고 피부가 우중충했던 아이들이 살이 찌고 키가 크고 뽀얘졌다. 달라졌다. 가끔 그룹홈에 오는 수사관이 아이를 눈앞에 두고도 "그 아이 어디 갔어요?"라고 못 알아볼 정도로.

소지가 원장님에게 썼단 손편지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원장 선생님, 저를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말 안 듣지만 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른이 돼서 어려운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될게요."



씩씩하고 밝아 보이는 이면에는…그게 더 맘 아팠다


고생한다며, 공 대표가 원장님에게 점심으로 돼지갈비를 사주고 싶다고 했다. 든든히 먹고 돌아오니, 오후 2시쯤 아이들이 집에 왔다. 초등학생인 약지소지였다. 약지는 머리를 예쁘게 묶었고, 소지는 바깥이 덥다고 했다. 공 대표가 준비해 온 사탕이며 간식을 주니 좋다며 까서 먹었다. 나와 공 대표에게도 먹으라며 고사리손으로 하나씩 나눠주기도 했다. 대화도 밝게 잘했다.

"피아노는 뭐 배워요?"(기자)
"바이엘이요. 4권 배우고 있어요!"(소지)
"우와, 1, 2, 3권은 다 한 거예요?"(기자)
"네, 제가 진도가 좀 빨라서…(자랑)."(소지)

약지는 꼼꼼해서, 기억을 하나하나 잘하는 장점이 있었다. 점심을 뭐 먹었냐 물어보니 "저 어묵볶음이랑 깍두기랑 김이랑 된장찌개랑 밥 먹었어요"라며 빠짐없이 똑똑하게 답했다. 그러면서도 "집에서 먹는 게 제일 맛있어요"라며 목소릴 높였다. 원장님이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만 해줘서 그래요"라고 했다.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아이들이 지역아동센터에 간 뒤, 원장님은 밝은 모습의 이면을 걱정했다. 그는 "과하게, 굉장히 밝은데 완전히 또 가라앉고 그런다. 자존감이 없어서 무조건 괜찮다고 다 맞추려고 한다"고 했다. 소지는 알아서 신발장을 정리하고, 신발을 가지런히 놓고, 빨래를 갠다고 했다. 공 대표는 "학대상황을 겪었으니, 살아남기 위해 눈치를 보며 끊임없이 생각해왔던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침대 머리맡에 놓여 있던 아이의 인형.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건 무엇이었을까./사진=남형도 기자
그러고 보니 방금 봤던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소지가, 며칠 뒤엔 소풍을 간다며 "돈가스 김밥을 싸서 가져가고 싶어요"라고 했다. 그런데 원장님이 "어, 우리 가서 국수 먹으려고 했는데?"라고 하자, 아이는 금세 "국수, 국수, 국수요"라고 말을 바꾸었다. 원장님이 김밥을 싸자고 하는데도, 소지는 "저 김밥 안 좋아해요"라고 손사래를 쳤다. 새삼 그 모습이 생각나, 마음이 속상해졌다.



더딘 건 마음의 상처… 엄지는 아직도 '자해'를 한다


아이들이 만든 모형집. 그 바람대로 앞으로는, 온기가 가득한 집에서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러니 예전에 학대당한 상처만큼은 원장님 바람처럼 쉬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

엄지는 여기 들어오기 전에 자해를 했다. 원장님은 처음 만났을 때 엄지와 약속을 했다. 꼭 한 가지만은 지켜달라고. "네가 너를 소중히 여겨줘.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널 소중히 여기지 않아. 함부로 대해. 널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고 아껴줘." 그렇게 말했었다.

그러나 엄지는 들어와서도 자해를 했다. 정도는 줄었으나 멈추진 못했다. 하루는, 샤워하는 엄지가 너무 안 나오기에 불안해 들어갔더니, 자해하고 있었다. 어떤 날엔 자신의 몸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기도 했다. 원장님이 왜 그랬냐고 물으니 아이는 "호기심에 그랬다"고만 대답했다.

이야기를 듣던 공 대표는 "일부러 망가지는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자존감이 낮아서라고 했다. 이어진 설명이 마음 아팠다.

"철저하게 '난 쓸모없는 사람이야, 난 이런 게 맞아.' 그러는 거예요. 그런 게 학대한 부모에 대한 최고의 복수인 거죠. 당신들이 그렇게 하니까 내가 이렇게 됐다고, 전부 그런 건 아니지만 상당수 그래요."



아이들 '심리치료' 꼭 필요한데…원장님 마음이 무너졌다


곰돌이 인형에게도 이렇게 옷을 입혀주었는데. 하물며 인간이, 부모란 이들이 어떻게 아이에게 그럴까./사진=남형도 기자
이쯤 이야기하면 꼭 심리 전문가가 아니어도 잘 알 것이다. 이 아이들에게 '심리치료'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단 걸.

원장님도 그걸 잘 알아서 마음이 아팠단다. 소지는 아동보호전문기관서 심리치료(무상 지원)를 받았었는데, 아이들만 집에 남겨두긴 불안해서 다 데리고 다녔다. 그러다 몇몇 아이들이 가기 싫다고 거부해 중간에 중단됐다. 이를 대신해 집으로 찾아오는 심리치료를 알아보니 비용 부담이 컸다. 엄지는 정신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기초 수급자라 저렴한데도 한 달에 25만 원씩 든다고 했다.

그룹홈은 1년을 자립하면 일부 정부 지원(운영비, 인건비)을 받을 수 있지만, 여기는 아직 못 받고 있단다. 월세 90만 원, 일하는 선생님 4대 보험료, 관리비, 식생활비 등 한 달에 700만 원씩 나가는데, 원장님은 아이들 수급비로도 턱없이 부족해 모아뒀던 자비로 감당하며 버티고 있다. 그마저도 이제는 거의 다 썼다.

그러니 '심리치료'가 가장 필요한데도 운영 형편이 어려워 못하고 있는 거였다. '사각지대'다. 원장님은 사실상, 이곳의 아이들 모두가 심리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것도 충분히 길게, 제대로 받아야 한다고. 평생 안고 가야 하는 경우도 많을 거라고. 다들 같은 마음으로 이야길 나눴다.

학대의 상처가 오래간다는 거다. 얼마 전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서 40~50대 아동학대 피해자들과 힐링 세미나를 했단다. 피해자 세 명이 전문가와 함께 대화를 나눴다. 무려 11시간 동안이나 울고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각인된 기억에서 헤어나오질 못해서, 다 이루고도 더는 살기 싫다며 왔던 이가, "당장 안 죽어도 될 것 같다"며 조금은 나아져서 돌아갔단다. 그러니 공 대표는 아동학대를 '자존감 강도'라고 표현했다. 아이들이 일어나 살아갈 힘을 다 뺏어간 거라고. 그래서 세월이 흘러도 계속 억울해하고, 계속 힘들어하는 거란다.

'다섯 손가락'엔 다행히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들이 마음을 모아, 두 아이가 집에서 받을 수 있는 심리치료비(한 달 60만 원) 엄지의 정신병원 치료 비용(한 달 25만 원)을 지원해주기로 했다. 원장님은 "마음은 있는데, 너무 해주고 싶은데, 아이들에게 못 해주는 게 그동안 많이 힘들고 속상했다"며 공 대표에게 정말 감사해했다. 다른 선생님은 고마워서 울었다고 했다.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그만큼 컸던 게다.



셋이 함께 쓰는 방, 오죽하면 화장실을 꾸미고…


나만의 공간은, 어쩌면 이곳 화장실 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마음이 아팠다./사진=남형도 기자
저녁 무렵, 중학생 아이들이 돌아오기 전 그룹홈을 나왔다. 섬세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아닌가. 외부인의 방문이 혹여나 안 좋은 기억이 될까 두려웠다. 취재를 더 못하더라도, 상처를 더는 남기긴 싫었다.

나오기 전에 집안 곳곳을 천천히 살펴봤다. 초등학생인 약지와 소지, 그리고 중학생인 중지가 같은 방을 쓴단다. 그 방에 딸린 화장실 거울에, 중지가 친구들에게 받은 편지 몇 장을 곳곳에 붙인 게 보였다. 그걸 본 공 대표는 "사춘기 아이들은 자기 공간이 필요한데, 이런 건 가슴 아프다"고 했다.

이곳도 물론 좋은 환경이지만, 정말 가정이라면 어떤 환경일까, 보다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거였다. 거울에 붙은 아기자기한 스티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인형, 벽에 붙은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 한눈에 보기에도 여느 아이들과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이를테면 아이들에게 필요한 도 그래 보였다. 계절마다 사고 싶고, 유행하는 브랜드도 있을 거였다. 원장님은 "언젠가 아이들에게 준다며 입던 옷을 빨지도 않고 그룹홈에 보내줘서 상처 받았다"고 토로했다. 공 대표는 "헌 옷을 주면 안 된다. 불쌍한 수혜자라 생각하는 거고, 그런 마음이 이 아이들을 두 번 상처 주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들이 남긴 댓글. 옷을 사주고 싶단 공 대표의 글에 이렇게 지지했다. 이런 어른들도 있다./사진=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카페 화면
그러면서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서 옷값을 지원하고 싶다고 했다. 절대 싼 거 사주지 말라고, 애들 입고 싶은 브랜드 옷 사주라고 말이다. 적어도 또래만큼은 아이들이 누리게 해주고 싶다고.



평균 17시간 근무, 월급 200만 원, 수당 전무…이대로는


선생님이 재원 같은 것 너무 고민하며 맘 아파하지 않는, 좋은 선생님일 수 있도록. 그게 정부가 할 일이고 국민들이 고단하게 일하고 세금을 기꺼이 내어 그대들에게 맡기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러나 정부의 그룹홈 예산 편성이나 지원 방식은, 여전히 먹고 입는 것만 충족시키는 단계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처우는 특히 사회복지시설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편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룹홈 한 곳당 5.3명의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 '다섯 손가락' 그룹홈만 해도 아이 다섯 명을, 시설장과 보육사가 각각 하루씩 돌아가며 보고 있다. 사실상 한 명이 다섯 아이를 돌봐야 하는 거다.

그러니 '1인 다역'이 필수다. 보살피는 건 기본이고, 조리, 상담, 사무, 회계, 간호, 안전 관리 등을 다 책임져야 한다. 그러니 시설장 근무 시간은 하루 평균 14시간, 보육사는 평균 11시간에 달한다.

그에 비해 처우는 열악하다. 명절 휴가비, 가족수당, 시간 외 수당, 야간 수당 같은 것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호봉제가 없어, 경력이 쌓여도 월급은 똑같다. 그래서 시설장 평균 월급이 219만 원, 보육사 월급이 203만 원 정도다(2020년 기준, 보건복지부). 그러니 종사자들 이직이 잦다. 그에 따른 불안, 질 저하는 오롯이 아이들 몫이다.

/사진=한국아동청소년그룹홈협의회 '아동그룹홈 예산안 분석 보고서'
부족한 운영비도 문제로 지적된다. 그룹홈에 지급되는 운영비는 올해 기준 35만 1000원이다. 한국아동청소년그룹홈협의회가 발간한 '아동그룹홈 예산안 분석 보고서'에선 "체감적으로 소비자물가 인상분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그래서 시설장의 사비 등으로 충당해야 하는 실정이다. 근무 인력이 적으니 후원금 모금에 신경쓸 여유도 없다.

공 대표는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던졌다.

"학대당한 아이들이 '저희 심리치료비 더 주세요', 이렇게 못하잖아요. 보건복지부, 아동보호전문기관, 아동권리보장원, 우리 같은 시민단체가 다 보호자가 돼 줘야 하는 거죠. 그런데 과연 내 자식이어도, 그렇게 쉽게 심리치료가 중단됐을까요? 입던 옷을 팔아서라도 적극적으로 아이들 치료해주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과연 보호자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지 형식적인 부분에 그치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롯데월드에 가기 위해, 지켜야 할 약속을 하나씩 열심히 쓰고 있는 소지./사진=남형도 기자
에필로그(epilogue).

약지와 소지가 롯데월드 이야기가 나오자 눈이 반짝였다. 아직 못 가봤다고 했다.

그러자 공 대표가 "그럼, 우리 롯데월드 가자!"고 했다. 한 달 동안 원장님과, 선생님과 약속을 잘 지키면 데리고 가겠다고. 자유이용권도 쏘고, 피자와 치킨도 사주겠다고.

두 아이가 갑자기 노트를 가져오더니, 지켜야 할 약속을 열심히 적기 시작했다. '월드월드갈 약속'이란다.

1. 약속을 잘 지키기 2. 저녁 때 양치 샤워 잘하기 3. 거짓말하면 바로 고백하기 4. 학교, 학원 다녀와서 알림장 꼭 보여주기 5. 줄넘기로 운동하기 6. 라면 적당히 먹기 7. 나눠 먹기 등.

그러더니 몇 날 밤을 자야 하는 거냐며 동그라미를 막 그리기 시작했다. 30개를 열심히 그리는 동심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정말 지키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아이들의 멋진 표정을 보며 홀로 생각했다.

우리 어른들이, 이 아이들을 위해 지켜야 할 약속은 무엇인지를.

우리가 이 아이들을 위해 꼭 지켜야 할 약속은 몇 개나 될까. 쓰기는 커녕, 생각조차 안 하고 있는 건 아닌지./사진=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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