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탑니다"···안전 위협받는 '자출족'의 불편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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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과 환경 위해 자전거로 통근하는 인구 늘어
매년 약 300명이 자전거 사고로 사망할 정도로 위협 여전
자전거 우선 도로에서는 '위협행위'로 인한 고통 호소
도로 설치 등의 문제보다 운전자들의 인식 개선이 우선돼야

자동차와 자전거가 함께 차선을 공유하게끔 설치된 자전거 우선 도로는 불법 주정차와 차량 운전자들의 인식부족으로 인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사진=이종호기자


[서울경제] # ‘자출족’(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6개월차 이영선(46)씨는 통근을 하며 매일 아침, 저녁으로 아찔한 경험을 하고 있다. 회사가 있는 도심에서 자전거를 몰 때면 차량들의 위협 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비키라’며 경적을 울리는 것은 예삿일이 됐고, 차량이 뒤에서 추월하며 안전거리를 지켜주지 않아 낙차도 여러 번 했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 시작한 ‘자출’이 오히려 이씨에게는 상처만 되고 있는 것이다. 이씨는 매번 반복되는 차량들의 위협 탓에 ‘자출’을 포기할까 고민하고 있다.

자전거가 탄소배출 문제를 해결하고 동시에 건강까지 챙길 수 있다는 점에 매료돼 ‘자출족’이 크게 늘고 있지만, ‘도로 위의 약자’로서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도로교통법상 ‘차’로 간주돼 차도로 달려야 하는 자전거는 차도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자전거 전용 도로가 아닌 이상 차량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에 따르면, 지난 2013년 1만3,316건이던 자전거 교통사고가 2년 후인 2015년 1만7,366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매년 자전거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 약 300명에 이를 정도로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자전거를 이용하려면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자전거로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중구 충무로까지 출퇴근하는 김정환(29)씨는 “차와 자전거가 함께 달리다 보면 양보나 배려를 해주는 차는 찾아볼 수 없다”며 “자전거 우선 도로의 ‘우선’이라는 단어는 왜 붙여놨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특히 지난 2014년 1월 원활한 자전거 이용을 위해 설치된 자전거 우선도로가 오히려 사고를 부추기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자전거 우선 도로는 당초 통행량이 일 2,000대 미만인 도로 위 자전거의 원활한 통행을 보장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져 현재 서울 시내 총 96개 노선, 113km가 설치돼 있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운전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서울 마포구에서 택시 기사를 하고 있는 김철형(67)씨는 “노면에 표시돼 있는 것은 봤지만, 정확히 어떤 의미를 가진 표시인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자전거 우선 도로 설치에 불만을 가진 운전자들도 많다. 마을 버스 운전기사 박상철(56)씨는 “가뜩이나 좁은 도로에 한 개 차선을 자전거와 함께 쓰라고 하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도로교통공단 명묘희 교수는 “현재 서울시에 설치된 자전거 우선 도로는 위치나 법률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있다”며 “통행량이 많은 도로에 설치돼 차와 자전거 모두가 불편을 겪고 있고, 도로교통법에 자전거 우선 도로가 규정되지 않아 차와 자전거 사이의 우선권이 불분명해 문제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 13일 오후, 자출사, 서울시, 서울지방경찰청이 함께 ‘자전거 안전 퍼레이드’를 열고 자전거 우선 도로에 대한 운전자와 시민들의 인식 개선을 위한 활동을 벌였다./사진=윤상언인턴기자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전거 이용자는 차량 통행을 저해하는 존재로만 인식돼 위협행위의 표적이 되고 있다. 경찰이 △보복행위 △과도한 끼어들기 △자전거 안전거리 미확보 △자전거 전용도로 주행 △자전거 우선도로 과속 주행 △자전거 뒤에서 과도한 전조등 △자전거 앞에서 급제동 △자전거를 향해 불필요한 경적음 등 차량의 자전거 위협행위를 단속하고 있다.

서울시도 66만명의 회원을 둔 ‘자출사’(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 카페와 손잡고 ‘자전거 안전 수호단’을 만들어 자전거 위협행위를 신고토록 하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 자전거 이용자가 느끼는 위협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자전거 우선 도로 단속 활동을 벌이고 있는 서울시 교통지도과 고재경(62) 단속원은 “단속을 벌일 때 운전자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자전거와 차가 안전하게 함께 다닌다는 인식 자체가 상당히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1인당 연간 880km 거리를 자전거로 이동하는 ‘자전거 천국’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시 자전거도로는 대부분 도로에서 완전히 분리돼 만들어져 있다. 진정 자전거만을 위한 도로인 셈이다. 트램, 자동차, 자전거도로와 보도, 4구간이 기본이다. 차도와 자전거 도로는 대부분 1차로다. 네덜란드 정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Bicycle Agenda 2017~2020’을 만들어 자전거 환경을 개선하고 사고율을 줄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자전거를 교통수단의 하나로 인식하고 차량과 동등하게 교통 정책을 수립하고 있기 때문에 차량 운전자도 자전거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자전거를 직접 이용하는 사람들은 자전거 도로 등의 설치보다 자전거에 대한 차량 운전자들의 인식 개선이 먼저라고 입을 모은다. ‘자출사’ 부매니저 이규섭(51)씨는 “자전거 타는 사람이 운전자고, 운전자가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라며 “‘자전거도 교통편이다’라는 것을 인식하고 서로 양보를 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호기자 윤상언인턴기자philli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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