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文 임기내 뭔가 이루겠다는 조바심 버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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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6.25. 오후 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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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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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 명예기자 리포트 / 김형석 前 통일부차관

北 최근 거침없는 언사·위협
경제난 따른 `내부 다잡기`

韓, 사사건건 대응보다는
긴호흡 갖고 일관된 정책펴야

대북특사·정상회담 추진
지금 상황선 실효성 떨어져

`북핵 우선 해결구도` 중요
美-강한제재, 韓-유인책
한미 `채찍 당근` 역할분담을


◆ 6·25 70주년 특별 기획 ③ ◆

인천상륙작전 중 미 군함이 해안에 도착해 트럭 등 차량을 통해 군수 장비를 이동시키고 있는 장면. 1950년 9월 15일 인천에서 촬영.
북한이 남한을 향한 군사행동 조치를 유보함에 따라 6·25전쟁 70년을 맞아 한반도에 다시 감돌던 전운이 다소나마 걷히게 됐다. 지난 70년간 이 같은 위기는 늘 있어왔다. 군사정권 시절부터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남북관계는 대결과 대화 국면을 반복했다. 북한이 대북전단을 빌미로 조성한 최근 긴장 국면도 차분하게 긴 호흡으로 대응해야 한다.

서울을 재탈환하기 위해 유엔군이 1950년 9월 20일 서울에서 북한 병력을 소탕하고 있다.
사실 남북관계는 2018년 세 차례의 정상회담 이후 이미 소강 상태에 빠져 있었다. 미국과 북한의 핵협상이 교착 국면으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2019년 5월 이후 북한은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지속적으로 발사하며 대남 무력시위를 펼쳐왔다.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역시 지난 1월부터 코로나19로 인해 운영을 중단하는 등 남북관계의 문은 사실상 북한에 의해 닫혀 있었다. 기계적인 하루 두 차례 남북 간 통신은 차단과 다를 바 없었다. 개성공단 역시 미·북 간 비핵화 협상 교착에 따라 기업인들의 방북조차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됐다. 9·19 남북군사합의는 북한이 지난해 11월 서해상 창린도에서 해안포 사격을 하면서 이미 파기됐다.

그럼에도 북한이 새삼스럽게 요란하고 자극적인 '말폭탄'을 쏟아내는 이유는 우선 북한 내부적 요인을 들 수 있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말 당 중앙위 전원회의 결정에 따라 '자력갱생을 통한 정면돌파'를 선언했다. 이런 기조에서 '백두산 칼바람 정신' 등을 내세워 주민들을 자력갱생의 경제전선에 적극 나서도록 독려해왔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더해 코로나19라는 변수를 만났다. 역점 건설사업의 정상적 추진이 어려워졌고, 장마당 사정이 악화되면서 수도 평양시민 삶조차 어려워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북전단을 통해 김정은을 폄하하는 '불순사조'가 유입되자 주민들에게 '대남 적개심'을 고취하고 있다.

경제제재가 지속되면서 남한에 대한 불만과 실망도 쌓여 있다. 북한은 2018년 이후 남한을 통해 미국과 통하고, 체제 안전과 경제제재 해제 등의 실익을 얻고자 하는 소위 '통미용남(通美用南)' 접근을 해왔다. 그러나 남한의 한계를 알고 실망하면서 화풀이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입장에서 남한은 미국의 동의 없이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추진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나라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미합동군사훈련과 최첨단 무기를 도입해 북한의 체제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를 지속하는 우유부단하면서도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탱크 앞에서 남동생을 업고 있는 소녀의 모습. 1951년 6월 9일 경기도 고양 일대에서 촬영.
남한과의 협력으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미국의 경제제재 완화를 통한 실익보다 크지 않다는 계산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때 북한이 연간 얻을 수 있는 수입은 2억달러 수준이지만,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중 무연탄이나 인력 송출 제재만 해제되더라도 연간 10억달러 이상을 확보할 수 있다. 북한의 공세에는 오는 11월 미국 대선 이후 국면 전환을 위한 분위기 조성의도도 깔려 있다. 북한은 여전히 대선 때문에 미국이 북핵 협상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듯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해 '재선에 실패하지 않으려면 북한에 양보를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셈이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거친 언사와 위협에 적절히 대응해야겠지만 과민하게 해석하거나 조급한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 북한은 지금 '우상의 동굴'에서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 동굴 밖 움직임을 경계하면서 입구에 잔뜩 웅크리고 있는 형국이다. 북한이 이 동굴을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때까지 조바심을 갖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 이 과정에서 불가침이나 체제보장 등을 통해 동굴 밖 세상이 안전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설득하면서 북한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부분에서 지원과 협력을 제공해야 한다. 당국 차원의 대화·협력이 중단되더라도 민간 차원에선 교류협력의 끈이 끊어지지 않도록 측면 지원할 필요가 있다.

전쟁 당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학생궐기대회를 하는 모습.
'북핵문제 우선 해결 구도'에서 단계적으로 전환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북한은 체제 특성상 핵을 쉽게 내려놓을 수 없다. 체제 위협을 줄여주는 조치와 일부 대북제재의 해제 등 적절한 유인책을 제시해 북한이 동굴 밖으로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오도록 유인해야 한다. 북한이 핵비확산체제(NPT)에 복귀해 핵활동을 국제원자력기구(IAEA) 관리하에 두면서 점진적으로 비핵화되는 길을 가도록 하는 접근법도 있다. 동시에 북한에 무연탄과 인력 송출 등 대북제재 일부를 조건부로 해제하는 '채찍과 당근'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총을 든 북한 군인들이 전선으로 향하기에 앞서 대기하고 있는 모습.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미의 역할 분담'과 국제적 공감대 확보다. 국제적 공감대 확보를 전제로 미국은 제재를 가하고 우리는 북한에 대한 유인책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국제사회의 공감대 확보 없는 단독 협력 추진은 미국과의 불필요한 마찰과 한미동맹 균열 논란을 초래할 수 있다. 미국과의 역할 분담하에 우리가 북한에 자신 있게 유인책을 제시한다면 북한도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를 품고 호응해 나올 수 있다.

과거 그랬던 것처럼 남북관계에 대한 열정을 앞세워 대북특사를 파견하거나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은 실효성이 떨어진다. 한미 간 전략적 소통을 강화해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인책을 마련한 다음에 북한과 마주앉아야 한다. 비핵화 요구를 반복하는 것보다 북한의 경제건설 욕구를 자극할 수 있는 '보따리'를 마련하고, 한미 간 역할 분담하에 '남한'이 보따리를 제시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북한은 임기 반환점을 돈 문재인정부의 조바심을 계산하고 있을 것이다. 5년이란 시간에 쫓겨서 무언가를 이뤄내야 한다는 강박 관념으로는, 남북관계를 이끌어가고 싶어도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내 임기 동안에 성과를 내겠다'는 조급함을 버린다면 대북정책은 정권에 관계없이 '국가적 어젠다'로 일관되게 추진될 수 있다. 일관된 대북정책에 의해서만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北 변화의 희망 '8090 세대'…인구 30% 차지, 이념보다 경제

시장경제·스마트폰에 친숙
개인적 가치 중시하는 특성
이들이 주도할 시대에 대비
'일상속 통일'부터 실현해야

북한 사회 변화를 주도할 8090세대를 주목해야 한다.

북한에서도 스마트폰 보급이 늘면서 일상생활에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택시를 호출해 이용하거나 음식을 주문해 배달하고 장마당에 직접 가지 않는 '언택트 소비'가 확산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는 세대는 IT미디어에 익숙한 1980년대생과 1990년대생이다.

북한 사회 세대 구분은 4가지 정도로 할 수 있다. 1세대는 김일성과 같은 항일빨치산 세대, 2세대는 박봉주·김영철과 같은 6·25전쟁 이전 세대, 3세대는 최용해 등 6·25 전쟁 이후 1970년대 북한 경제 풍요를 경험한 세대다.

그리고 4세대는 북한 경제 어려움을 경험한 1980년대 이후 출생 세대로, 1990년대 중반 극심한 식량난을 경험하면서 국가배급제가 무너지고 장마당이 활성화한 삶을 경험한 세대다. 이들 8090세대는 현재 북한 인구 중 약 30%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국가가 모든 걸 해결해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장마당을 통한 시장경제에 익숙하고 스마트폰 등 정보통신을 적극 활용한다. 외부 정보, 특히 한류에 노출돼 있어 개인적 가치를 중시하고 개방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 8090세대는 요즘 중국 사회처럼 사회주의를 유지하면서도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남한에 정착한 탈북민 가운데서도 스타트업을 세워 사업을 키우고, 유튜브 채널을 열어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8090세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8090세대다. 스위스 베른에서 유학한 경험은 경제적 풍요와 발전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욕구를 심어 주기에 충분하다.

2011년 12월 집권 이후 평양 문수물놀이장, 평양거리 현대화, 순안공항 신청사 건립 등 평양 거리를 현대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온 것도 그런 배경에서 볼 수 있다. 2017년 핵 개발 이후 '경제건설 총력집중'을 선포한 김정은은 북한 전역에 22개 경제개발구를 지정해 외부 투자 유치를 도모하고 있다.

현재 갈림길에 서 있는 북한이 핵 포기와 경제 정상화를 택한다면 김 위원장과 8090세대가 주축이 되어 중국과 같은 개방의 길로 나올 것이다. 우리 정부와 사회의 대북 정책도 현 상황에 일희일비할 게 아니라 '일상 속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

지금 중국 전역을 자유롭게 여행하는 것처럼 우리 국민이 평양과 원산, 신의주를 일상적으로 방문하고 북한 주민들과 사업을 함께하는 게 '일상 속 통일'이다. 국제 정치구도에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정치법적인 통일'이 아닌 이러한 일상 속 통일을 우선 실현하는 데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정리 =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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