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올해 8월 기준금리를 올린 뒤 "누적된 금융 불균형을 완화해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에 (금리 인상의) 첫발을 뗀 것"이라고 말했고 추가 인상 가능성에 대해서는 "서두르지도 지체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채권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이 10월이나 11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추가 인상해 연내 1%까지 높일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대출 억제에 정책·감독 역량을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승범 위원장은 올해 8월 31일 취임식에서 "급증한 가계부채가 내포한 위험요인을 제거하는 데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정책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감독 당국의 강력한 지도에 따라 이미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은 주택담보대출은 물론 신용대출과 한도대출(마이너스 통장)까지 조여가고 있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대부분 은행은 이달 신용대출 한도를 연봉 이내로 축소하기로 했고 신한은행·하나은행·우리은행·NH농협은행은 이미 마이너스 통장 대출 한도를 5000만원 이내로 묶었다. NH농협은행은 지난달 24일부터 신규 주택담보대출을 중단했다. 연간 가계대출 증가율을 5∼6% 수준에서 관리하겠다는 감독 당국의 방침에 따라 금융권이 돈줄을 죄자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지만, 금융위는 대출 억제를 더 세게 밀어붙이겠다는 태세다.
KB국민은행·신한은행·하나은행·우리은행·NH농협은행의 8월 말 현재 가계대출 잔액은 698조8149억원으로, 지난해 12월 말 670조1539억원과 비교해 올 들어 28조6610억원 늘었다. 올해 연말까지 4개월 남았지만, 증가율은 올해 초 당국이 시중은행들에 제시한 가계대출 관리 목표(5∼6%)에 이미 바짝 다가섰다.
주택담보대출은 올 들어 8월 말까지 4.14%(473조7849억원→493조4148억원) 늘었고, 특히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전세자금대출은 14.02%(105조2127억원→119조9670억원) 뛰었다. 전세자금 대출을 포함한 주택담보대출 증가액(19조6299억원)은 올해 가계대출 전체 증가액(28조6610억원)의 68.5%를 차지했고 특히 전세자금 대출 증가분(14조7543억원)이 51.5%로 절반을 넘어섰다.
신용대출도 올 들어 5.42%(7조2460억원) 늘었지만, 증가 규모는 전세자금의 2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처럼 올해 가계대출 증가세를 주택담보대출, 그중에서도 전세자금 대출이 주도하고 있지만 집값이나 전셋값 상승률과 비교하면 증가율이 특이하게 높은 수준도 아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보면 올해 준공 35년을 맞은 서울 강남구 개포동 현대3차 전용면적 163㎡는 지난달 10일 39억원에 매매가 이뤄져 작년 11월 30억원과 비교하면 9개월 만에 9억원 올랐다. 현재 재건축을 위한 이주가 진행 중인 서초구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 전용 106㎡는 지난달 45억5000만원에 거래되며 작년 9월 33억7700만원에서 11개월 만에 11억7000만원 넘게 올랐다.
은행권은 주택 공급 부족과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등으로 집값이 크게 뛰면서 불가피하게 주택 관련 대출액도 늘 수밖에 없다고 호소한다. 금융 당국과 한국은행이 위험 선호 현상에 따른 레버리지(차입 투자) 증가, 부동산 등 자산으로의 자금 쏠림 등을 가계대출 증가세의 배경으로 지목하며 강력한 '대출 조이기' 규제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것과 대조되는 진단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당국이 지키라는 5∼6% 가계대출 증가율은 기본적으로 경제 성장률과 물가 상승률만 반영돼도 쉽게 넘어설 수밖에 없는 수준"이라며 "더구나 집값과 전셋값이 올해 10% 안팎 뛰어 특별히 부동산 거래가 늘지 않아도 가계대출이 10% 안팎 증가할 수밖에 없는데, 5∼6%에서 관리하라는 건 너무 무리한 요구"라고 말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부동산 시장 불안의 책임을 금융에 떠넘기는 셈"이라며 "대출이 늘어 집값이 오른 게 아니라 공급 부족 등으로 집값이 올라서 대출도 늘어나는 부분은 애써 무시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가계대출 증가율 5∼6% 관리'라는 획일적 통제의 가장 큰 피해자는 치솟은 전셋값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NH농협은행은 지난달 24일부터 전세자금 대출을 포함한 신규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했고 우리은행도 최근 전세대출 중단했다가 일단 재개했지만 지점·월별 한도를 둬 대출이 쉽지 않은 상태다.
주택 관련 대출 금리도 줄줄이 오르고 있다. 신한은행은 6일부터 전세자금 대출금리를 0.2%포인트씩 더 높이기로 했다. 가산금리를 0.2%포인트 인상하는 것으로, 3일 기준 전세자금 대출금리(2.77%∼3.87%)를 고려하면 다음 주부터 최고 금리가 4%를 웃돌게 된다. KB국민은행은 지난 3일 신규 코픽스를 지표금리로 삼는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6개월주기 변동)의 우대금리를 0.15%포인트 낮췄다. 전세자금대출 신규 코픽스 변동금리(6개월주기 변동)의 우대금리도 0.15%포인트 깎였다.
은행권 관계자는 "현재 전세자금대출은 거의 무주택자만 받을 수 있는데, 이 대출까지 조일 수밖에 없도록 가계대출 총량 관리를 압박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행정"이라며 "결국 소비자들은 전세를 포기하고 반전세나 월세를 택할 수밖에 없게 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