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물 쿨렁대도 ‘40년째 재개발’…서울 복판 이 아파트 사연

입력
수정2021.02.13. 오후 12:57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스위트홈 촬영지 ‘충정아파트’ 직접 가보니
충정아파트 외관 모습. 김지은 인턴기자

서울 지하철 2호선 충정로역에서 50m. 고층 빌딩이 늘어선 초역세권 대로변에 어색하게 낡은 건물이 눈에 띈다. 몸채는 거대한데 바람에도 휘청일 것처럼 낡은 아파트의 이름은 ‘충정아파트’. 일제시대에 지어진 한국 최고령 아파트다.

충정아파트는 1932년(1937년이라는 기록도 있음) 준공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인 건축주 도요타 다네오의 이름을 따 도요타 아파트로 불리다 광복 후엔 미군 숙소로 사용됐다. 1975년 다시 아파트로 용도가 변경되며 충정아파트란 이름을 갖게 됐다.

격동의 한국사를 거치며 충정아파트는 늙어버렸다. 현판 위 타일들은 떨어졌고 건물 외벽엔 자글자글한 금이 주름살처럼 갔다. 철제 계단은 녹슬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몇 년 전부터는 생활하수가 건물 내벽 사이로 스며들어 붕괴 위험까지 지적되고 있다.

충정아파트만의 독특하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는 드라마 제작사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넷플릭스 드라마 ‘스위트홈’의 아파트 ‘그린빌’도 이곳을 배경으로 했다. 픽션과 현실, 역사와 현재 사이 그 어딘가에 위치한 충정아파트를 지난달 26일 직접 찾아가봤다.

충정아파트 외관 모습. 이홍근 인턴기자

영화 '스위트홈' 장면 일부


"한번 쭉 보세요. 사람 사는 곳 같나"

주민을 따라 충정아파트 현관에 들어서자 습한 기운과 함께 곰팡내가 훅, 올라왔다. 오후 3시였지만 복도는 어두웠다. 벽을 타고 맺힌 물방울들이 떨어지는 소리가 어두운 복도를 울렸다. 옅은 백열등까지 더해지니 마치 동굴을 걷는 것 같았다.

골목을 도니 중정이 보였다. 충정아파트는 복도식 아파트로, 삼각형의 마당 삼면을 5층 건물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중앙 난방에 사용되는 굴뚝이 높게 솟아 있었다.

중앙 마당에 굴뚝이 솟아있다. 이홍근 인턴기자

마당에서 가장 존재감이 도드라진 것은 높은 굴뚝도, 독특한 복도식 구조도 아니었다. 하수구 냄새였다. 냄새의 원인을 찾아 기웃거리자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던 한 남성이 말을 걸어왔다.

“내가 10X호 주인인데, 이거 덮어놓은 거 다 하수구야. 하수 시스템이 다 망가져서 오수가 지하로 떨어지는데 냄새가 말도 못해. 여름이면 울컥울컥 역류하기도 한다고.”

실제로 현관 앞 하수구를 덮은 장판을 걷자 음식물 찌꺼기가 뒤섞인 하수가 보였다. 물은 곧 넘칠 듯 출렁댔다. 하수도와 현관 사이는 성인 걸음으로 두 걸음에 불과했다.

음식물 찌꺼기를 가리기 위해 장판으로 덮었다. 이홍근 인턴기자


더 심각한 문제는 지하실이라고 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충정아파트의 하수관은 막힌 지 오래다. 이 때문에 누수된 생활 하수가 지하실로 모두 모이게 됐고, 지하실은 거대한 구정물 저장소가 됐다. 평소엔 이 오수를 펌프로 끌어 올려 도로변 하수도에 버리는데, 최근 이 펌프가 망가지면서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쓰레기 틈을 비집고 지하실로 들어가자 머리가 띵해지는 극심한 악취가 올라왔다. 카메라 플래시를 켜자 눈앞에 믿기지 않는 광경이 펼쳐졌다. 아파트 지하실은 거대한 오수 수영장이었다. 시꺼먼 폐수 위로 쓰레기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고, 물은 넘쳐 계단까지 삼킨 상태였다.

충정아파트 지하실 내부 사진, 오수가 가득차 악취가 올라왔다. 이홍근 인턴기자


오수를 펌프로 끌어 올려 도로변 하수도에 버리는 모습. 이홍근 인턴기자


어지러운 집기 사이 갈라진 천장… 비틀대는 충정아파트

한참을 악취와 씨름하다 보니 맑은 공기가 필요했다. 잠시 숨을 돌리려고 아파트 바깥으로 나갔다. 현관 옆 부동산엔 ‘충정아파트 투룸. 월세 1000/40’이라는 공지가 붙어있었다. 집을 보여줄 수 있냐고 묻자 걱정스런 대답이 돌아왔다. “깨끗한 집 찾으시면 못 살 텐데… 보여는 드릴게요.”

부동산 중개업자를 따라 계단을 올라가자 복도를 따라 늘어선 현관이 나타났다. 복도 난간에는 에어컨 실외기, 폐가전기구, 장독대, 화분 등이 어지럽게 늘어서 있었다. 멀쩡한 건 계단밖에 없다더니. 중개업자의 말이 무색할 만큼 계단 곳곳이 깨져있었다. 계단 옆에는 허리 높이의 조그만 쪽문이 있었는데 과거에는 연탄 창고로 쓰였다고 했다.

충정아파트 복도 모습. 이홍근 인턴기자


미로같은 계단을 빙빙 돌아 5층에 도착했다. 충정아파트 5층은 불법 증축된 탓에 이곳 소유주는 토지지분이 없다. 이 때문인지 다른 층에 비해 빈집이 많았다. 장시간 비어있다보니 외부인의 무단 출입도 자주 있는 듯했다. 501호 앞에는 ‘무단 출입시 법적 조치하겠다’고 쓰인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중앙 계단과 벽에 금이 간 내부 모습. 이홍근 인턴기자


방 문을 열자 초록 벽지의 투룸이 보였다. 장판과 도배는 비교적 새로 한 듯 보였으나 누렇게 변색된 문지방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였다. 화장실 문을 여니 낯선 기계가 보였다. 물을 퍼 올리는 모터라고 했다. 모터를 켜니 굉음과 함께 녹물이 쏟아져나왔다. 중개업자는 “건물이 낡다 보니 모터가 없으면 물이 안 나온다”며 “그래도 모터를 쓰면 물을 쓰는 데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화장실 내부에 물을 퍼 올리는 모터가 있다. 이홍근 인턴기자

충정아파트 내부 모습. 김지은 인턴기자

노후화로 인한 불편함보다 더 큰 문제는 안전이다. 건물을 둘러본 결과 시멘트가 떨어져 철근이 노출된 곳을 여러 군데 확인할 수 있었다. 철근이 노출되면 부식에 취약해져 건물의 내구력이 떨어질 위험이 있다. 이날 만난 한 주민 A씨는 금이 간 옥상 바닥을 한참을 바라봤다. 그는 “차라리 건물이 무너졌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해결이 될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 전문가는 “세면기와 화장실에서 나오는 오염된 물이 지하로 유입되었다”며 “외벽과 철근 구조물의 상태로 봤을 때는 이미 구조의 내력이 일부분 상실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충정아파트 건물 전체가 비틀거리고 있다는 뜻이다.

충정아파트 내부 모습. 김지은 인턴기자


13년동안 재개발 삽도 못 떴다… 그 이유는

충정아파트에 대한 재개발 논의는 오래 전 시작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 재임 당시인 1979년 9월 도시환경 정비사업구역으로 처음 지정됐고, 이후 2008년 4월 추진위원회가 설립된 데 이어 지금의 ‘마포로 5-2지구’ 도시환경 정비사업으로 정비 계획이 변경됐다. 하지만 13년이 지난 지금, 재개발 논의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조합 설립 인가조차 받지 못했다. 안전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첫 삽도 뜨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충정아파트 복도 벽에 붙은 대자보. 이홍근 인턴기자

가장 큰 걸림돌은 주민 갈등이었다. 4층 이하 세대와 5층 세대는 보상금 문제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충정아파트 5층 주민들은 토지 지분이 없었다. 기존에 4층이던 충정아파트를 1961년 5층으로 불법 증축했기 때문이다. 재개발 논의가 이뤄지면서 5층 주민들은 적절한 보상을 원했다. 하지만 4층 이하 세대들은 5층 세대는 지분이 없다며 반대했다. 인근 공인중개사 B씨는 “충정아파트 주변에 있는 무허가 주택, 빌라 주인들과 지분을 어떻게 나눌지에 대한 갈등이 심했다”며 “수십년 동안 추진위원회 설립, 해체만 수차례 반복했다”고 말했다.

아파트 복도 벽에는 10년도 더 된 대자보가 붙어있었다. “우리 5층 주민들은 재산권을 찾기 위해 법적 투쟁을 해서라도 끝까지 싸울 것이다” “우리 재산을 눈 뜨고 빼앗기고 엉뚱한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는 바보 짓은 할 수 없다” 주민들간의 오랜 갈등을 보여주는 흔적이었다.


지지부진하게 이어진 재개발 논의는 2019년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서울시는 충정아파트를 철거하지 않고 문화시설로 보존하겠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 최초 아파트라는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서다. 서울시는 충정아파트를 고쳐 기부채납 받는 대신 재개발 사업에 용적률 상향, 아파트 층수 상향 등 정책적 혜택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 역시도 확정된 것은 아니다. 서울 도시관리계획위원회 심의는 1년 넘게 이뤄지지 않았다. 서대문구 도시관리계획 관계자는 “현재 상정 요청을 한 상태”라며 “올해 초에는 심의가 이뤄질 것 같다. 심의 결과가 나오면 조합설립추진위원회가 조합을 설립하는 단계를 거칠 것”이라고 전했다.

심의만 이뤄진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주민들이 조합 설립을 반대하면 재개발 사업은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여전히 주민 내부 합의는 요원한 상태다. 주민 A씨는 “여기서 몇 십년 넘게 산 어르신들이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다”며 “새로 집을 구해서 나가는 것을 싫어한다. 이분들의 동의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현재 충정아파트에는 47가구가 살고 있다. 대부분은 세입자들이지만 집주인도 일부 거주하고 있다. 재개발을 염두에 둔 투자자와 오래 거주한 주민 간에도 의견은 엇갈린다는 뜻이다.

정부는 주민들의 갈등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대문구 도시관리계획 관계자는 “저희는 주민들이 원하는 방향을 반영하는 입장이다. 주민들이 다 결정할 문제”라며 “구나 시에서 푸시를 하거나 못하게 하거나 이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했다.

"도대체 누구한테 말해야 하느냐"… 깊어지는 이웃 갈등

아파트 천장에 구멍이 뚫려 물이 새는 모습. 이홍근 인턴기자

재개발 논의가 지연되고, 아파트 노후화가 심해질수록 이웃 갈등도 깊어졌다. 이날 주민 C씨는 화가 잔뜩 난 상태로 공인중개사무소를 찾았다. 천장에 물이 샌지 5일이 지났는데 윗집 주인도, 아파트 관리인도 모르쇠로 일관한다고 했다. 실제로 현장에 가보니 천장에는 주먹만한 크기의 구멍이 있었다. 주변에는 누런 얼룩이 졌고 바닥에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C씨는 천장에서 물이 샌 지 몇 달 정도 됐다고 했다. 윗집 수도에 문제가 생긴 탓이었다. 윗집 세입자와 C씨는 아파트 관리인에게 “수리업체를 부를테니 윗집 주인의 동의를 얻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관리인도, 부동산 중개업자도 모두 책임을 미뤘다. 오히려 수리업체를 부르면 다른 이유를 들며 돌려 보냈다. C씨는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도 집주인은 보수를 해준다고 말만하고 안해준다”며 “1층에도 공동 화장실이 있는데 고쳐달라고 해도 아무도 안 고친다.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다. 재개발도 안되는 상황에서 개보수까지 못하니 답답해 죽겠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주민 D씨는 이들이 의도적으로 관리 책임을 미루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한 두개씩 개보수를 해주면 입주민들이 계속 살려고 할테니까 의도적으로 시설 관리를 안해주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건물을 최대한 폐허로 만들어 재개발을 앞당기려고 건물 수리를 안하는 것이라는 의심이었다.

아파트 관리인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나도 이곳 주민이다. 무보수로 관리직을 맡고 있다”며 “정당한 보상도 안 받는데 내가 굳이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부동산 중개업자 역시 “나름대로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고 해명했다.

당장 개보수를 원하는 세입자, 무관심한 집주인과 관리인. 이처럼 풀릴 듯 풀리지 않는 내부 갈등은 충정아파트에서의 삶을 더욱 고단하게 만들었다.

"굴뚝 떨어져서 사람이 죽어야 해결할거냐"

벽에 금이 간 충정아파트 내부 사진. 이홍근 인턴기자

전문가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해 충정아파트를 방문해 안전 상태를 점검했던 경기대 건축안전공학과 최용화 교수는 “충정아파트는 사람이 살 곳이 아니다. 오늘 갑자기 무너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며 “지금 당장이라도 건물을 철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충정아파트는 2018년 안전 진단에서 C등급을 받았다. 서울시는 재건축을 위해 건물마다 등급을 지정해 안전 점검을 시행한다. 등급은 A, B, C, D, E 등급으로 구분된다. E등급을 받으면 무조건 철거지만 C등급을 받아 보존 대상이 된다.

최 교수는 말도 안되는 결과라고 했다. 그는 “굴뚝, 콘크리트, 기둥 등이 이미 5분의 2 정도 노후화된 상태다. 철근이 두겹으로 되어 있는데 한쪽은 다 부식돼 떨어져 나갔다”며 “지하실도 오수가 콸콸 쏟아져 나온다. 어떻게 사람이 여기서 살겠느냐. 우선적으로 살 수 있는 습도라도 마련해줘야지 그런 것도 전혀 없다. C등급이 아니라 D등급, E등급이 맞다”고 말했다.

5층에서 바라본 충정아파트 구조. 이홍근 인턴기자

최 교수는 “구청이든 시청이든 적극 행정으로 가서 중재 역할을 해야 한다”며 “세입자들은 나오게 해야 한다. 소유자들 간에 갈등이 있으면 조정을 해줘야 한다. 당장의 안전이 위험한 상태에서 ‘주민들끼리 알아서 해결하라’ 이런 태도는 안된다. ‘이 건물은 사용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확실히 제한을 해줘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기도 광명의 서울연립주택을 예로 들었다. “광명 연립주택 역시 2016년 안전 진단에서 E등급을 받았다”며 “당시 경기도지사도 현장을 보고는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다고 봤다. 그리고는 바로 직권으로 철거를 집행했다”고 했다.

물론 주민들 반대가 있다. 하지만 이는 행정이 해결해야 할 영역이라고 했다. 최 교수는 “당시 정부 공동주택에 이주 입주권을 주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도에서 운영하는 재난관리기금으로 철거 비용도 지원했다”며 “그런데 서울시는 이런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전혀 없다. 오히려 문화적 가치가 있다면서, 보존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유 재산 때문에 주민들끼리 알아서 하라고 한다. 굴뚝 하나 떨어져서 사람 죽으면 어떻게 할거냐. 그제서야 책임 질 것이냐. 그 때는 이미 늦는다”고 강조했다.

이홍근, 김지은 인턴기자

▶ 네이버에서 국민일보를 구독하세요(클릭)
▶ 국민일보 홈페이지 바로가기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경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