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의동의 사람·사이-김현아]“정치 잘 모르니…소신보다는 상식으로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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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7.06.30. 오후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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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자유한국당 비례 초선의원 김현아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자유한국당이 문재인 정부의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과 관련해 “국정공백을 시급히 메워야 할 시기임을 감안해 당이 대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자유한국당 비례대표 초선 의원인 김현아(47)는 국회의원이 된 지 반년 만에 기묘한 처지가 됐다. 마음은 바른정당에 합류하고 싶지만 비례대표가 당을 제 발로 떠날 경우 의원직을 잃게 돼 당적을 옮기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출당을 원하지만 자유한국당은 출당 대신 의원총회나 당무 참가가 금지되는 ‘당원권 정지 3년’의 중징계를 내렸다. 정치 초년생에겐 ‘절체절명의 위기’이겠지만 김현아의 표정은 어둡지가 않다. 마치 ‘우주 유영을 하듯 국회를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는’ 느낌마저 받는다. 그를 지탱하는 생명줄은 ‘당론’이 아니라 ‘상식’이다.

김현아는 이낙연 국무총리 인준 투표 때 자유한국당 의원으로서는 홀로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가 찬성표를 던졌고,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때도 자리를 지켰다. 자유한국당으로선 괘씸한 행동이었을 테지만 여론은 김현아에 기울어 있다.

부동산·도시계획 전문가인 김현아는 국회에 들어온 뒤 ‘주택시장’에서 ‘주거복지’로 관심을 옮겨가고 있다. 청년주거에 관한 논의에 ‘포퓰리즘적’ 주장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다가 감옥보다도 비좁은 청년들의 주거실태를 직접 확인하면서 생각을 바꿨다. 보수성향에 시장을 중시한다는 그가 청년 월세 보증금 지원, 주택수당 지급 등 정의당에 버금가는 제안을 내놓은 건 흥미롭다. 김현아는 지난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특별히 정치철학이나 신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정치를 잘 모르다 보니 소신보다는 국민의 상식 수준에서 행동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는 “청년주거는 단순한 주거 문제가 아니라 고용정책이나 사회(복지)정책 전반과 맞닿은 문제”라며 “국회에 있으면서 청년주거 문제의 해법을 찾는 데 힘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 “국회 들어온 지 5년은 된 것 같다”

김현아 의원이 지난 21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을 위해 열린 국회 상임위에서 자유한국당·바른정당 의원들이 모두 불참한 가운데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때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쪽에서 홀로 자리를 지켜 주목을 받았다.

“전문성이 탁월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장관이 전문성만 갖고 하는 건 아니다. 논문표절을 깔끔하게 인정하지 않아 좀 아쉬웠지만, 나는 국정이 빨리 세팅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 이낙연 국무총리 인준에 찬성한 것도 자유한국당으로선 돌출행동일 거 같다.

“당원권이 3년간 정지돼 의원총회나 당 관련 회의에 들어갈 수 없고, 당론을 전달받는 채널도 없어 보이콧 방침도 언론보도로 알게 됐다. 보좌진은 본회의장에 들어가지 말라고 말리더라. 하지만 본회의장에 들어가서 의사표시를 하는 것은 국회의원의 의무이자 권리인데 회피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 자유한국당이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부터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장 큰 문제는 자유한국당이 국민 신뢰를 잃었다는 점이다. 설사 맞는 이야기를 하더라도 (국민에게) 제대로 들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조기대선을 치르게 된 건 집권여당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고, 국정농단을 견제 못했기 때문이다. 국정공백을 시급히 메워야 할 시기임을 감안해 당이 대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 정권 시절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이 많이 괴롭힌 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매번 이런 식으로 가야 할까?”

- 당원권 정지상태가 오히려 정치에 대해 많이 배우는 기회가 된 건 아닌가.

“그런 면도 있다(웃음). 내가 처한 상황이 오히려 운신을 자유롭게 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 김 의원의 정체성은 바른정당에 가까운가.

“인터넷을 보면 ‘민주당으로 옮기라’는 댓글이 많이 보이는데 내 스스로를 진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의 보수가 그만큼 부패하고 제대로 하지 못해 이런 행동이 진보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다.”

- 대선 토론회 때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를 보면 국내 정책에서는 전향적이란 평가가 많았다.

“원래 보수·진보 편가르기는 좋아하지 않지만 유 후보를 보면서 ‘보수·진보 프레임을 걷어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더 하게 됐다.”

- 국회의원이 된 지 1년이 조금 넘었는데 원래 정치에 관심이 있었나.

“1년이 아니라 5년은 흐른 것 같다(웃음). 연구자로서 15년가량 정부정책에 참여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만들고, 행정부가 의지를 보여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꼈다. 그런데 국회 들어와 보니 국회의원은 전문성만으로 되는 게 아니고 정치력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어설프게 흉내를 내는 대신 잘할 수 있는 걸로 기여하자고 마음먹었다. 나더러 ‘소신행보’라고 표현들을 하시는데 그 정도로 정치철학이나 신념이 있지는 않다. 잘 모르다 보니 소신보다는 국민의 상식 수준에서 행동하는 거다. 총리 인준도 국민 상식으로는 들어가 투표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한 거다.”

- 정치인이 됐다고 생각하나.

“일단 경험상으로 보면 정치인은 맞는 것 같다. 대통령 탄핵에 국감 보이콧, 대통령 선거도 치러보고 당원권 정지도 당해보고(웃음). 근데 아직 정치가 뭔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 정치 관련 책들을 많이 읽고 공부하고 있다.” 김현아는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와 유시민 작가의 <국가란 무엇인가>를 꼽았다.

- 지난 1년간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였나.

“역시 탄핵정국이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지지자들이 ‘자식들이 너무 부끄러워한다’고 그러더라. ‘보수의 미래가 위태롭구나’ ‘나는 그간 뭘 했나’ 싶더라. 내 분야만 보고 사회에는 관심 없었다는 자책이 들었다. 그럴 때 바른정당에서 보수개혁을 고민하는 동료들이 힘이 됐다. 가슴 아프고 힘들었지만 지나고 보니 ‘껍질을 깨는’ 계기가 됐다고 본다.”

- 반대로 보람을 느꼈을 때는.

“연구원에 있을 때는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일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내 분야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쪽에 연구 결과를 주며 살아왔다. 근데 국회 들어와 보니 월급도 받으면서 남을 위해 일할 수 있더라. 재선을 꿈꾸거나 당내 입지에 신경 쓰지 않고 좋은 일만 하자고 들면 할 수 있는 게 정말 많다.”

■ “청년의 방에 창(窓)을 내주고 싶다”

한 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대학생들이 거주하는 원룸의 평균 넓이는 4.9㎡(1.5평)로 청송2교도소의 독방(6.48㎡·2평)보다 좁다. 김현아가 지난 5월 낸 의정보고서 <청년의 방, 청년의 창>에 나오는 표현대로 ‘감옥보다 못한 청년의 방’이다. 김현아는 지난해 여름부터 고시원과 옥탑방, 반지하방을 찾아다니며 청년주거의 열악한 실태를 확인했고, 해법 마련을 위해 청년주거지원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지난 3월 방영된 MBC <무한도전> 출연도 법안 발의에 탄력을 불어넣었다.

- 청년주거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국회에 들어온 뒤부터인가.

“맞다. 처음엔 포퓰리즘적 주장 아닌가 싶어 반대논리를 찾아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현장을 가보니 출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심각하더라. 청년주거는 고용정책이나 사회(복지)정책 전반과 맞닿은 문제다. 미래의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차원에서도 청년주거 문제는 해결돼야 한다. 그런데 공감대가 잘 형성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청년 때는 다 힘든 거야’라고 보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 언제 입법화되나.

“원래 제정법은 오래 걸리니 관련법 개정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법 제정 이후 어떤 액션플랜(실행계획)이 가능할지 고민하느라 아직 발의는 하지 않고 있다. 상징적·선언적 의미만 있는 법을 내고 싶지는 않다.”

- 구상 중인 액션플랜이 있나.

“예를 들어 보증금 없이 한 달 월세 50만원의 창문 없는 방에 거주한다고 치면, 보증금을 500만~1000만원만 정부가 지원해주면 똑같은 월세로도 창문 있는 방을 얻을 수 있다. 청년들에게 창을 선물하는 거다. 신혼부부나 결혼이 임박한 사람들에게 주택수당을 주는 방안도 해볼 만하다. 거주하는 주택의 임대료가 소득의 25%를 초과할 경우 그 초과분을 정부가 현금으로 지급하는 거다.”

- 법이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하자는 취지인가.

“국회 초기에 보좌진이 ‘법안 발의 실적이 중요하다’면서 실적을 만들라고 법안을 20~30개 가져왔길래 ‘내가 모르는 법안은 발의하기 싫다’며 물렸다. 내 관련 분야나 관심 있는 분야만으로 31개 법안을 발의하고 7개를 본회의 통과시켰다.”

■ “현장에는 늘 혁신가가 있다”

김현아에 대해 ‘시장과 업계를 대변해 왔다’는 일각의 시선이 있고 스스로도 ‘시장주의자’를 자처한다. 하지만 ‘서는 위치에 따라 달라진 풍경’을 외면하지는 않는다. “예전엔 시장의 입장에 서 있었다면 의원이 된 뒤엔 시장영향권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 현장 중시 스타일인가.

“그랬다. 연구원에 있을 때 분양시장이 과열인지 알아보려고 분양현장에 가서 모델하우스도 둘러보고 위치도 살펴보곤 했다. 내 연구가 이론적으로 대단할 건 없고, 어떤 현상이나 문제가 있을 때 해법을 모색하는 그런 거였다. (결국 답은 현장에 있다는 생각인가) 그런 거다.”

- 경기도판 행복주택 ‘따복마을’을 들어 주거정책의 지방분권화 강조하던데.

“주택 문제는 로컬한 사안이다. 최근 들어 서울·경기·제주는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역량이 갖춰진 것 같다. 따복하우스는 행복주택보다 집 면적도 넓고 보조금을 줘서 임대료를 확 낮췄다. 역량이 되는 자치단체에는 정부가 주거복지를 위임할 필요가 있다.”

- 박근혜 정부의 행복주택은 새 정부가 계승해야 한다고 보나.

“장관 인사청문회 때 김현미 장관이 계승하겠다고 했다. 행복주택도 청년들에게 저렴하게 주거공간을 제공한다. 전 정권의 정책이라고 모두 폐기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 주택시장을 규제로 조절하려 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인가.

“우리 주거정책은 LH가 시장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복지를 하려다 보니 시장실패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투기하다 망하기도 해야 하는데 우리는 다 구제해 주잖나. 그러다 보니 규제가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그 사회적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복지를 정부나 공공부문만이 맡는 건 재원을 감안하더라도 지속가능하지 않다. ‘민간 참여’란 말만 나오면 (진보진영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지만 비영리법인이나 사회주택조합 같은 공공성을 추구하는 민간의 참여도 필요하다.”

- ‘전·월세 상한제’ 법제화를 반대하는 이유는 뭔가.

“찬성하면 공익적이고 반대하면 기업친화적이라고 평가하지만, 사실 획일적 적용에 따른 문제점이 있다. 임대주택이 양도 문제이지만 질도 낮다. 그런데도 (전·월세 상한제를 법제화해) 무조건 가격을 통제하면 질이 더 낮아진다. 지역에 따라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외국에서도 전국 일률로 적용하지는 않는다. 김 장관도 점진적으로 적용해 보겠다고 했는데, 필요한 지역에서는 해볼 수 있다고 본다.”

- 최근에 건설기술인 권리헌장을 제정한 취지는 뭔가.

“건설이 부패산업으로 지목되곤 하는데 기업들 책임이 물론 크지만, 발주자의 불합리한 지시에 건설기술인들이 저항하지 못한 데도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건설기술인들이 발주자의 불합리한 요구를 거부할 수 있도록 권리장전을 만들어 법에 명문화하는 게 필요하다. 건설이 ‘노가다’나 ‘부패’ 이미지를 벗고 지식기반 서비스업으로 거듭나야 한다.”

- 군산의 도시재생 현장을 다녀왔던데 도시재생은 어떤 방식이어야 하나.

“예전엔 지붕 개량이나 길 닦는 수준이었지만 이젠 거주자들 생활의 질이 바뀌어야 한다. 군산은 정부 도시재생 자금을 받은 지 4년이 지나면서 효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청년들이 셰어하우스나 카페촌을 만들기도 하고 자치단체도 열심히 한다. 혁신의 현장에는 언제나 혁신가들이 있더라. 괴짜 공무원이나 청년들을 발견한다. 세상을 바꾸는 건 정치인이 아닌 것 같더라.”

<서의동 선임기자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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