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협박에 손 든 HSBC… 어느편인지 다시 선택하란 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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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6.12. 오전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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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 갈등에 속타는 HSBC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9일(현지 시각) 중국 공산당이 영국 압박을 멈춰야 한다고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미·중 양국의 난타전은 어제오늘 문제가 아닌데, 유독 성명서의 한 부분이 화제가 됐다. 폼페이오는 성명에서 "(영국계 은행) HSBC가 중국에 머리를 조아렸다(kowtow)"며 HSBC를 비난했다.

HSBC가 지난 3일 위챗 공식 계정을 통해 피터 웡 HSBC 아시아지역 CEO가 홍콩보안법을 지지하는 청원에 서명했다고 밝힌 것을 저격한 것이다. 미국의 외교 수장이 서구 기업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도 이례적인데, 폼페이오는 중국어 고두(叩頭·머리를 조아림)에서 나온 커우터우(kowtow)라는 말까지 썼다. 대표적인 조공(朝貢) 의식인 고두를 동원해, 영국 대표 은행 HSBC가 중국 줄에 섰다고 표현한 것이다.

/조선일보

자산 기준 세계 6위 은행인 영국계 HSBC가 미·중 갈등의 틈바구니에 끼여 옴짝달싹 못 하고 있다. HSBC가 처한 지정학적 줄타기 상황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한 건 중국이 추진하는 홍콩보안법이다. 이르면 이달 안에 발효할 예정인 이 법은 중국이 홍콩 내 반(反)국가 활동을 감시·처벌하기 위해 추진 중이다. 중국은 테러 방지 등 안보를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영미권과 홍콩 민주화 진영에서는 중국이 홍콩을 돌려받으면서 약속한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 원칙을 훼손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HSBC를 중국 편에 서게 하려는 압박은 일찌감치 시작됐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 홍콩 행정장관을 지낸 렁춘잉 중국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은 지난달 말 페이스북에 "HSBC의 중국 사업은 중국이나 다른 나라 은행으로 하루아침에 대체될 수 있다. 어느 편이 이익이 되는지를 판단하게 해야 한다"고 몰아세웠다. 홍콩달러를 발권하는 독특한 지위가 HSBC의 주요 수익원임을 감안하면, HSBC의 역할을 다른 은행에 줘 버리겠다는 말은 HSBC에는 치명적인 위협이다.

HSBC는 지난해 이익의 54%인 120억5000만달러(약 14조4000억원)를 홍콩에서 벌었다. 중국 본토까지 더하면 이익의 3분의 2가 중국과 홍콩에서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HSBC는 2007년만 해도 유럽에서 전체 이익의 3분의 1을 벌어들였지만, 지난해에는 유럽에서 46억5000만달러(약 5조56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며 "무늬만 영국 은행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HSBC는 영국계이지만 주식 중 절반은 대주주인 중국 핑안보험(7%)을 비롯한 아시아계가 가지고 있고, 절반 정도를 미국 뱅가드그룹(2.85%) 등 서구 주주들이 보유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 당국을 거스르는 건 위험 부담이 너무 큰 일"이라며 "HSBC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했다. 홍콩이 중국에 완전히 반환되는 2047년까지 중국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는 현실에서 중국에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HSBC의 홍콩보안법 지지 선언은 회사 안팎으로 많은 반발을 샀다. 제이컵 리스모그 영국 하원장관은 "HSBC는 영국 정부보다 중국 정부와 더 긴밀하게 협력한다"고 비판했고, 영국 야당도 비판에 동참했다. 투자자 중 한 곳인 영국 아비바 인베스터스도 10일 "기업이 정치적 발언을 한다면 그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홍콩과 중국 사업 비중이 절대적인 현실 앞에서 HSBC가 정치 중립, 인권 등의 가치까지 챙길 여유가 없어 보인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 나라를 선택해야 하는 게 HSBC만의 고민은 아니다. WSJ는 "중국과 서방의 관계가 악화하고, 코로나 사태로 정부 지원이 더욱 필요해지는 상황에서 홍콩을 아시아와 유럽의 허브로 삼은 기업들에 중국 당국의 입장을 지지하라는 요구가 커질 것"이라며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한편을 들지 않을 수 있겠지만, 그러기엔 기업이 감수해야 할 비용이 더 커질 수 있다"고 했다.

[조재희 기자 joyja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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