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브랜드? 나전에 ‘현대’ 입히면 성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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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4.05.15. 오후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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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 공예품의 세계화를 통해 대한민국의 브랜드를 새롭게 만들고자 발벗고 나선 손혜원 크로스포인트 대표가 자신의 사무실에 전시할 나전칠기를 설명하고 있다.

[한겨레] [카페하니] 밀라노 전통공예전 기획한 손혜원 대표

‘법고창신전’에 대한 현지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전시장에서 만난 한 이탈리아 건축가는 ‘한국이 세계적인 제조업 강국이 된 것은 단지 테크놀로지 때문이 아니라 한국인의 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자동차와 휴대폰 같은 첨단 제품이 아닌 전통의 뿌리를 들고나온 한국인들이 위협적이라고 했다. 오랜 공예 전통으로 디자인과 패션 강국이 된 이탈리아인들은 전통이 미래의 성장 동력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는 뿌듯해했다.

그는 “법고창신(法古創新·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전을 통해 케이팝(K-POP)과 케이드라마(K-DRAMA)처럼 우리의 전통 공예품은 또다른 한류의 맥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네이밍 전문가로 경지에 이른 그가 부러 공예품 전시 기획자를 자처하고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박물관에서는 현대 공예품을 수집하지 않는다. 하지만 박물관은 당대 최고의 물건을 사들여 그 시대의 가치를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 고려와 조선 초·중기의 나전 명품들은 대부분 일본 등 외국 박물관 소장이다. 세계에 몇점밖에 없는(물론 한국에도 없는) 고려 경함과 가치 있는 조선 나전칠기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대영박물관은 지난해 밀라노에 소개되었던 정해조(69) 배재대 명예교수의 옻칠공예 작품을 사들였다. 대영박물관의 동아시아 담당 큐레이터는 ‘21세기 한국의 나전칠기를 대표하는 정 작가의 작품을 갖춰 이제 대한민국 나전칠기의 제대로 된 흐름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소라와 전복의 껍질을 가공한 나전이 영어로 ‘진주의 어머니’(마더 오브 펄)로 불리며 보석 대접을 받는데 정작 우리는 그 가치를 모른다고 안타까워했다.

무엇보다 그가 한국 나전칠기의 수호자로 나서게 된 이유는 바로 대부분의 수집가들이 일본인이라는 현실이었다.

“10년 전 국립박물관에서 나전 전시회를 보았다. 그런데 전시된 나전 작품들 대부분이 일본인의 소장품이었다. 일본 수집가들은 한국 나전칠기 전문가, 옻칠 전문가 계보까지 줄줄이 꿰고 있었다. 한국 나전칠기 명인들의 주요 고객도 일본인들이다. 일본인들 아니었으면 한국 나전의 맥이 일찌감치 끊겼을지도 모른다. 2006년부터 시작해서 이제 200점이 넘는 나전칠기를 수집했다. 결코 투자 목적이 전혀 아니다. 나라에서 나전칠기박물관을 세운다면 기꺼이 모두 무상기증할 것이다. 나전칠기는 도자기보다도 더 경쟁력이 뛰어난 우리의 대표 전통공예 아이템이다.”

손혜원 크로스포인트 대표

국가가 하지 않으니 개인이라도 나서겠다는 ‘오지랖 열정’이 2년째 직접 대표단을 이끌고 밀라노에서 한국공예전을 열게 했다. “알루미늄판으로 만든 자개상은 나무로 만든 것보다 훨씬 모던한 느낌을 줄 수 있고 뒤틀어질 염려가 없어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모던하면서도 전통적인 아름다움이 혼재된 새로운 가구를 들고 세계 무대에 나가면 분명 호평을 얻을 것이라 믿었다. 밀라노에 가고자 문화체육관광부를 집요하게 설득했다. 어느새 세계 패션의 중심지인 밀라노에서 우리 공예품의 진가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는 학창 시절 유난히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고교 시절에 이과였고 건축을 전공하고 싶었다. 책을 많이 읽었다. 그땐 글자란 글자는 모두 먹고 싶었다. 그래서 그런지 국어를 특히 잘했다”고 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감성도 큰 자산이 됐다. “아버지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아침에 일어나시면 원두커피를 직접 갈아 드셨다. 새벽에 집안에 퍼지는 커피 향기가 곧 아버지의 향기였다. 어머니는 허리에 고무줄을 넣은 학교 체육복이 맵시가 나지 않는다며 양장점에서 맞춰 주셨고, 매일 다려 주셨다. 운동화도 4~5켤레를 준비해 항상 하얀 운동화를 신게 만들었다. 그런 부모의 고급 문화 취향과 예민함이 내 디자인 능력의 바탕이 됐을 것이다.”

그는 특히 숙명여중·고 시절 자신을 키워준 스승들의 ‘전인교육’에 감사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무감독 시험이었다. 우리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셨다. 또 한자 교육을 열심히 시켜준 선생님 덕분에 넓어진 어휘력이 내 인생의 기반이 됐다.”

“소주를 얼마나 잘 마시길래 ‘참이슬’, ‘처음처럼’ 같은 국민이 사랑하는 소주 이름을 혼자 다 지었나?”라고 물었다. “사실 소주는 반잔도 못 마신다. 1924년 ‘진로’(眞露)라는 브랜드를 지은 이의 머리에는 틀림없이 ‘참이슬’이라는 이름도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그 당시 소주의 이름을 찾아 옥편을 펴들고 고민하는 사람을 상상했다. 그리고 그의 감정에 몰입했다.” 이는 ‘발명’이 아닌 ‘발견’이다. 그가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본질을 꿰어보는 노력에서 시작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그는 “우리 주식인 쌀밥과 전통주, 나물 요리가 새로운 한류의 주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서양의 샐러드에 비해 사철 다양한 산나물을 먹을 수 있는 지혜를 물려준 조상의 지혜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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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깊은 산속 어딘가에 도인이 있다고 믿고 언젠가는 그런 스승을 모시고 살고 싶어한다. 이소룡에 반해 무예의 매력에 빠져 각종 전통 무술과 무예를 익히고 있고, 전국의 무술 고수를 찾아다니며 그들의 인생과 몸짓을 배우며 기록해왔다. 몸 수련을 통해 건강을 찾고 지키며 정신과 몸이 함께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싶어한다. 한겨레신문 창간에 동참했고, 베이징 초대 특파원과 스포츠부장, 온라인 부국장을 거쳐 현재는 라이프부문에서 건강 담당 선임기자로 현장을 뛰고 있다.

아직도 깊은 산속 어딘가에 도인이 있다고 믿고 언젠가는 그런 스승을 모시고 살고 싶어한다. 이소룡에 반해 무예의 매력에 빠져 각종 전통 무술과 무예를 익히고 있고, 전국의 무술 고수를 찾아다니며 그들의 인생과 몸짓을 배우며 기록해왔다. 몸 수련을 통해 건강을 찾고 지키며 정신과 몸이 함께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싶어한다. 한겨레신문 창간에 동참했고, 베이징 초대 특파원과 스포츠부장, 온라인 부국장을 거쳐 현재는 라이프부문에서 건강 담당 선임기자로 현장을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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