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질문을 쏘아올리다

인공위성에 쏘아올린 1번째 질문 “당신은 타인의 시선과 기준이 신경 쓰였나요?”

질문서점 인공위성님의 프로필 사진

질문서점 인공위성

공식

2019.09.12. 15:4972 읽음

김서현 님, 51세, 여, 공인중개사 운영

서현 님의 질문을 인공위성의 10월의 한 권의 책 하나의 질문으로 선정했어요보내주신 질문은 나다운 것 에 대한 거예요다른 사람의 기준이나 시선이 아니라 나다운 걸 찾아가는 것, 우리 서점 인공위성도 같은 질문에서 시작했던 것 같아요. 우리 다운 질문을 우리 다운 응원을 할 수 있는 서점을 만드는 것.

처음 서점 인공위성에 대해 얘기 들었을 때 그동안 읽었던 책 중 내가 손가락으로 꼽는 책이 몇 있는데 딱 떠오르는 책이 이거였거든요. 책이 두께가 있다 보니 주부들이 읽기엔 쉽지 않은 책이었죠.
머리에서 쩍 소리가 났다면 과한 표현일 테고 그동안의 내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됐던 책이에요.
그래서 책 기부 외에 질문을 던져야 된다고 했을 때 이 책이 가장 먼저 떠올랐어요. 질문을 준비한다고 앉아서는 이거 금방 써지겠지. 몇 자 안 되니까 생각했는데 막상 글로 옮기려니 정리가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하루 이틀 더 생각하고 기록했어요.

그리스인 조르바 속 조르바가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하셨나요. 서평이나 백과사전 등지에 정의된 조르바를 말할 수도 있지만 서현 님이 자신의 삶을 통해서 조르바를 만났을 때 감명 깊었던 부분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를 것 같아요.

(인물의 부류를) 조르바와 두목(책 속 인물)으로 나눠 봤을 때 나는 두목의 삶을 산 사람이에요. 결혼해서 많은 가족들과 살다 보니 내 감정을 자꾸 숨기고 움츠러들더라고요. 나보다는 전체를 위한 부속 역할에 충실하게 10년을 살았지요. 또 한 동네에 시댁, 친정 할 것 없이 살고 공인중개사 일을 하고 있다 보니 내 모습이 곧 가족의 평판이 된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맨얼굴로 (집 밖에) 나와 본 적이 거의 없어요. 그렇게나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았어요.
나와 달리 조르바는 그런 남의 시선, 상대의 지위, 직업, 가정환경을 개의치 않고 자기 주관대로 살아요. 그게 매력 있었어요. ‘왜 나는 그 시선에만 신경 쓰고 그 사람들의 기준에만 나를 맞추려고 했을까.’ 조르바의 삶을 보면서 내 삶을 반추해보는 계기가 됐어요. 누군가의 평가나 판단 기준이 내 선택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살아온 내게 이 책은 네 삶은 무엇인지, 누구의 삶인지를 생각하게 했어요. 나 자신으로 판단하게, 나 자신의 시선으로 나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던 셈이죠. 그래서 지금도 누군가 내 삶에서 접했던 책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당근  『그리스인 조르바』 예요.

누군가 삶이 흔들린다면 즉시 조르바를 만나보길 권해요.

“당신은 타인의 시선과 기준이 신경 쓰였나요? 그 타인의 시선이라 생각했던 것이 혹, 나의 욕망의 시선은 아니었나요?”라고 질문을 던져주셨죠. 심오한 내용이라 의미가 궁금했어요.

내 경험에 미루어 얘길 해보면, 누군가 ‘저 사람은 며느리 역할로 잘 한다’는 칭찬을 내게 하면 나 역시 그에 맞추려고 노력하게 돼요. 그럴 때 ‘내가 다른 사람에게 자랑거리가 되고 싶었나?’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죠. 나는 내 평판에 대해 신경을 많이 써왔어요. 일을 하기도 하고, 근방에 언니, 시댁 할 것 없이 다 몰려있어 내가 뭘 하나 잘못해도 ‘저 집은 왜 저래’하는 말이 나올까 봐 그랬죠. 어찌 보면 ‘다른 사람이 신경 쓰니까 내가 조심 한다’가 아니라 ‘저 사람에게 내가 자랑스러워 보이고 싶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평판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욕구가 나를 비비크림 바르고 얌전한 척하고 밖에서 술 안 먹는 사람처럼 보이게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다른 경우에도 마찬가지예요. 다른 사람의 시선에 의해 내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내게 그 욕구가 있기 때문에 거기에 맞추는 거예요. 남 탓이 아니라 나 자신의 욕구에서 비롯되는 것 말이에요. 그러니까 남들이 뭐라 하든 무슨 소용이에요, 아무 의미가 없는 건데. 내 욕구가 그만큼 차있기 때문에 시선을 의식한다는 핑계로 표현을 하는 것 같아요.

서현 님은 조르바를 만나면서 그걸 알게 되셨는데, 다른 사람도 조르바 같은 매개가 있어야 알아차리는 걸 수도 있겠어요.

맞아요. 살면서 또 다른 걸 통해 느낄 수도 있겠죠. 내 경우엔 조르바를 통해서였고요.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던 거네요. 혹시 조르바를 만나면서 달라진 점으로는 뭐가 있을까요?

주부이면서 일을 병행하는 분들이 놓칠 수 있는 게 나 자신에 대한 부분이거든요.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나 자신에 대한 시간, 금전적인 부분,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부분에 대한 할애를 놓쳐버리는 것 같아요. 나는 책이 계기가 돼서 작년부터 오후 3시면 문을 닫고 배우고 싶은 거 배우러 다니고, 월/토는 내 시간을 가져요. 그러니까 (다른 분들도) 일과 내가 하고자 하는, 지향하는 목표에 가까운 공부 같은 걸 하는 데 많이 할애했으면 좋겠어요. ‘바쁘다’, ‘시간 없다’고 하지 말고요. 시간은 내야 해요, 시간은 항상 없어요. (주부는 일마치고) 집에 가면 다 일이에요. 냉장고 문만 열어도 일이고 한도 끝도 없는데, 그 가운데서도 초등학생들이 생활계획표 짜듯 나만의 시간표를  짜서 금전적으로나 시간을 내서 (뭔가를) 하는 게 좋다고 봐요.

그 얘길 들으니 서현 님이 생각하시는 나다운 삶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져요.

그 얘길 들으니 서현 님이 생각하시는 나다운 삶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져요.

첫 번째가 나를 아끼는 삶이요. 내가 소중하고 나를 아껴야 여력이 생겨서 남도 따뜻한 시선으로 볼 수 있는 거죠. 내가 피폐하고 황폐한데 누굴 어떤 눈으로 볼 수 있겠어요? 내 가족, 특히 내 자식에겐 집착이란 게 생기더라고요. 친목계 같은 데서 남들에게 내 자식을 언급했을 때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가야하고 좋은 배우자 만나는 것들을 자랑할 수 있는, 집착에 가까운 감정들을 사랑으로 착각하곤 해요. 가족에게 집착하지 않고 정말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먼저 나 자신을 본인이 소중하게 여기는 게 아닌가 싶어요. 나 자신이 사랑스럽고 나 자신이 즐겁고 나 자신이 가득 차야 누군가에게 집착 아닌 사랑에 가까운 마음을, 눈을 내줄 수 있다고 봐요.
그러기 위해 택한 게 나를 위한 시간이에요. 지금 내 공간에도 블라인드를 만들었어요. 블라인드를 내리면 나만 있죠. 저녁에 업무 끝나고 집에 가면 내 공간이 아닌데, 블라인드만으로도 내 공간이 돼요. 그럼 내 시간을 거기서 보내는 거예요, 공부도 하고, 하고 싶은 생각도 하면서요. 바깥에서 이뤄질 수 없는, 떠오르지 않는 생각들도 솟아나곤 하죠. 그 ‘여백’이라는 게, 종이의 여백뿐 아니라, 나 자신의 생활, 생각에도 공간을 주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공간이 공간(비었다는 의미)이 아닌 거예요, 재생산의 의미지. 생각도 재생산이고 공간이 힘이에요. 하루 24시간 중 비어있는,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 신경 쓰지 않는 시간은 허비하는 게 아니라 가장 힘을 주는 시간이기도 해요.

질문지를 보내주신 때는 ‘코에서 가을 냄새가 나는 때’였는데 지금은 벌써 완연한 가을 날이에요. 서현 님은 지금 어느 계절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질문지를 보내주신 때는 ‘코에서 가을 냄새가 나는 때’였는데 지금은 벌써 완연한 가을 날이에요. 서현 님은 지금 어느 계절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나누기엔 우리 삶은 너무 복잡하고 다양하게 펼쳐지는 것 같아요. 하루 사이에 사계절을 다 경험할 때도 있고 몇 달 내내 겨울을 경험하기도 하고 때론 매일매일 봄 같은 날을 경험하기도 하니 말이에요.
어느 계절을 살고 있다기보다 난 지금 익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토마토의 완숙이나 청국장의 발효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셈이죠.
성장과정에서는 ‘내가 왜 이렇게 힘든 가정에서 태어났고 왜 이렇게 힘든 과정을 겪고 결혼도 장남에게 가는 바람에 시댁 살림도 하면서 사나’,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삶에 힘든 점들이 많았어요. 누구나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이 크잖아요. 요가나 불교 경전 공부를 하면서 ‘나는 그렇지 않았다’, ‘큰일을 했구나. 그래서 이 공부를 내가 접하게 됐구나’하는 생각으로 공부를 재밌게 하고 있어요.
현재 51세인데 앞으로의 삶이 더 기대돼요. 진짜로요. 앞으로도 내 공부하고 지향하는 방향으로 산다면 노년이 어떻게 될까요.

노년이 기대되는 삶이라니, 너무 멋져요! 서현 님이 삶에 부침이 많았다고 하셨죠. 저는 지금을 살아내는 게 버겁고, 이게 언제 끝날지 모르겠고, 끝난다는 확신도 없고, 용기는 더 없어요. 그러다 보니 ‘나답게 살아야지’하면서도 생계가 1차적으로 중요하니 그걸 자꾸 따라가게 되더라고요. 이렇게 인연이 닿아 서현 님과 대화를 나누고 나니 저도 조금은 앞으로가 기대되고 두근두근해져요. 그래서 자꾸 뭔가를 묻게 되네요.

앞으로 어떤 시간을 꿈꾸세요?

서현님 앞으로 어떤 시간을 꿈꾸세요?

요가하는 시간요. 요가하면서 가장 좋았던 게, 항상 집에서는 엄마 역할, 아내 역할, 밖에서는 일적으로 손님을 만나는 역할만 하다가 요가를 할 때만큼은 정말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게 됐어요. 그게 가장 큰 발견이었어요.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질 수도 있었는데 그동안 왜 나는 시간 할애를 안했지?’ 나한테 먼저 시간을 할애하면 길이 보이고 생각도 달리하게 돼요. 그런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꿈꿔요.

그런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꿈꿔요.

그리고 나는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직 그 이유를 찾는 중이에요. 그 이유에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아직 구체적으로 계획한 건 아니지만, 할머니가 됐을 때, 아마 15년 후쯤 북 카페를 열고 싶어요. 카페 한 편엔 요가 공간을 마련해서 할머니들과 함께 하고요. 그리고 요가라고 하면 너무 딱딱하니까 체조라고 바꿔서요. 그게 내가 나답게 꾸는 꿈이에요.

그게 내가 나답게 꾸는 꿈이에요.
인공위성에서는 당신에게 질문을 던진 한권의 책과 한권의 질문을 기부받고 있습니다.
인공위성
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중앙로27가길 32 1층
지도보기

로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