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타인의 시선과 기준이 신경 쓰였나요? 그 타인의 시선이라 생각했던 것이 혹, 나의 욕망의 시선은 아니었나요?”라고 질문을 던져주셨죠. 심오한 내용이라 의미가 궁금했어요.
내 경험에 미루어 얘길 해보면, 누군가 ‘저 사람은 며느리 역할로 잘 한다’는 칭찬을 내게 하면 나 역시 그에 맞추려고 노력하게 돼요. 그럴 때 ‘내가 다른 사람에게 자랑거리가 되고 싶었나?’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죠. 나는 내 평판에 대해 신경을 많이 써왔어요. 일을 하기도 하고, 근방에 언니, 시댁 할 것 없이 다 몰려있어 내가 뭘 하나 잘못해도 ‘저 집은 왜 저래’하는 말이 나올까 봐 그랬죠. 어찌 보면 ‘다른 사람이 신경 쓰니까 내가 조심 한다’가 아니라 ‘저 사람에게 내가 자랑스러워 보이고 싶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평판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욕구가 나를 비비크림 바르고 얌전한 척하고 밖에서 술 안 먹는 사람처럼 보이게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다른 경우에도 마찬가지예요. 다른 사람의 시선에 의해 내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내게 그 욕구가 있기 때문에 거기에 맞추는 거예요. 남 탓이 아니라 나 자신의 욕구에서 비롯되는 것 말이에요. 그러니까 남들이 뭐라 하든 무슨 소용이에요, 아무 의미가 없는 건데. 내 욕구가 그만큼 차있기 때문에 시선을 의식한다는 핑계로 표현을 하는 것 같아요.
서현 님은 조르바를 만나면서 그걸 알게 되셨는데, 다른 사람도 조르바 같은 매개가 있어야 알아차리는 걸 수도 있겠어요.
맞아요. 살면서 또 다른 걸 통해 느낄 수도 있겠죠. 내 경우엔 조르바를 통해서였고요.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던 거네요. 혹시 조르바를 만나면서 달라진 점으로는 뭐가 있을까요?
주부이면서 일을 병행하는 분들이 놓칠 수 있는 게 나 자신에 대한 부분이거든요.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나 자신에 대한 시간, 금전적인 부분,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부분에 대한 할애를 놓쳐버리는 것 같아요. 나는 책이 계기가 돼서 작년부터 오후 3시면 문을 닫고 배우고 싶은 거 배우러 다니고, 월/토는 내 시간을 가져요. 그러니까 (다른 분들도) 일과 내가 하고자 하는, 지향하는 목표에 가까운 공부 같은 걸 하는 데 많이 할애했으면 좋겠어요. ‘바쁘다’, ‘시간 없다’고 하지 말고요. 시간은 내야 해요, 시간은 항상 없어요. (주부는 일마치고) 집에 가면 다 일이에요. 냉장고 문만 열어도 일이고 한도 끝도 없는데, 그 가운데서도 초등학생들이 생활계획표 짜듯 나만의 시간표를 짜서 금전적으로나 시간을 내서 (뭔가를) 하는 게 좋다고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