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서고악도(信西古樂圖)』는 고중세 일본에서 만들어진 그림 두루마리로, 14가지의 악기의 모습과 44가지의 무악(舞樂)과 산악(散樂) 장면이 그려져 있어 당시 동북아시아의 유희문화를 둘러볼 수 있는 중요한 시각 자료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러나 이 두루마리가 언제 그리고 누가 제작했는지는 현재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12세기 경인 헤이안 시대의 귀족이자 승려로서 한때 강력한 권력을 누렸던 후지와라노 미치노리(藤原通憲)가 출가 후에 사용한 법명으로 유명한 "신제이(信西)"라는 호가 적혀 있기 때문에 편의상으로 『신서고악도』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된 것이며, 실제 제작연도는 그보다 앞설 수 있다는 추측도 있다.
『신서고악도』에서 묘사된 다양한 종류의 악기와 유희는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나 혹은 임읍 일대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 것도 있다. 그런데 또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그 중에서도 신라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는 유희가 조금씩 보인다는 점이 흥미롭다. 바로 아래의 그림에서 소개할 「신라박(新羅狛)」과 「신라악(新羅樂) 입호무(入壺舞)」가 그 것이다.
신라악(新羅樂) 입호무(入壺舞)는 다룬 문헌이나 자료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놀이로, 아마도 음악에 맞춰 사람들 앞에서 선보이는 산악(散樂, 곡예 및 기예)에 가까운 유희로 생각된다. 『신서고악도』에 실린 그림에서는 재주꾼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작은 항아리에 몸을 구겨넣어 반대편에 놓인 다른 항아리로 빠져 나오는 등 마치 오늘날의 마술사들을 연상케하는 기묘한 재주를 부리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신라의 재주꾼들이 무슨 수로 이런 재주를 부렸는지는에 대해서는 일절 설명이 없기 때문에, 그림만 보고 있으면 자못 신비로운 느낌마저 들기도 한다. 그 숨은 비결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정교한 장치를 설치해서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눈속임을 하며 재주를 부렸을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의 고급 마술과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묘기와 기술 등을 철저하게 연마한 사람들만이 이런 재주를 부릴 수 있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경욱 교수 등의 연구에 따르면, 이와 같은 묘기는 아마도 신라 내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졌거나 혹은 중국이나 서역 등의 교류를 통해 유입된 이래로 세월이 흐르면서 더욱 발전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신라의 이와 같은 공연 문화에 대하여 전하는 자료가 극히 미량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자세한 내막을 알기 어렵다.
참고문헌
박전열, 「일본 산악의 연구」, 『한국연극학』 8, 한국연극학회, 1996
전경욱, 「탈놀이의 역사적 연구」, 『구비문학연구』 5, 한국구비문학회, 1997
전덕재, 「고대 일본의 고려악에 대한 기초 연구」, 『동북아역사논총』 20, 동북아역사재단,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