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제 더 이상 유예 없다… 6개월 피 마르는 재건축

입력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분양가 상한제, 규제개혁위 통과]

관리처분인가 받았더라도 분양까지 최소 1년 정도 걸려
상한제 유예 혜택 단지 많지 않아… 개포주공1 등 가능성 여부에 초조



민간택지 아파트에도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는 주택법 시행령 개정안이 지난 11일 정부 규제개혁위원회 심의를 국토교통부 원안(原案)대로 통과했다. 정부가 분양가 상한제를 추진하는 법적 근거인 상한제 적용 지역 기준에서 '최근 3개월간 아파트 가격 급등' 등 복잡한 요건을 없애고,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지역'으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정부는 앞으로 법제처 심사와 차관회의, 국무회의 등을 거쳐 개정안을 이달 하순쯤 시행할 계획이다.

이날 심의에서는 분양가 상한제 시행 추가 유예 문제는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 기획재정부와 국토부 등은 지난 1일 '최근 부동산 시장 점검 결과 및 보완방안'을 발표하면서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받은 재건축·재개발 단지에 한해 일정 조건(철거 중 단지 등)을 충족할 경우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된 뒤 6개월 안에 입주자 모집 공고만 마치면 상한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부동산 업계에서 "재건축·재개발 단지의 입주자 모집 공고를 마치기까지 6개월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반발이 일었지만, 정부는 더 이상 유예는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대표적인 반(反)시장적 정책을 결국 밀어붙이면서 고작 6개월 유예를 내놓은 것은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한 '얄팍한 술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상한제 유예 혜택 볼 단지 몇 군데 안 돼

박선호 국토부 1차관은 지난 1일 "서울에서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후 분양 단계에 이르지 못한 단지는 61곳, 총 6만8000가구"라며 "6개월 유예 기간이 적용되면 이들 중 상당수는 분양이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직 이주도 진행하지 못한 대규모 단지가 상당수이고, 소송 등으로 이주 계획에 차질을 빚는 곳도 있어 적잖은 단지가 유예 기간 안에 분양 신청을 하지 못할 전망이다.

서울 강남구 반포주공 1단지의 모습. 총사업비가 10조원에 달해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사업으로 불리지만 조합 간 소송 등으로 이주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전체 사업 추진이 불투명해졌다. /김연정 객원기자


내년 4월 말까지 충분한 유예 기간을 뒀다는 정부 방침에 대해 재건축·재개발 현장의 평가는 싸늘했다. 지난달 재개발·재건축 조합 총궐기대회를 추진한 김구철 미래도시시민연대 위원장은 13일 "작은 규모 단지를 제외하면 실제 혜택을 받는 곳은 5개 미만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재건축 단지 관계자는 "입주자 모집 공고를 내려면 이주와 철거, 분양가 협상까지 이뤄져야 하는데 짧은 기간에 마무리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철거를 마무리한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4단지는 올 12월 분양을 앞두고 있어 상한제 적용을 피할 것으로 보이지만 상당수는 "앞으로 6개월로는 턱도 없다"며 답답해하고 있다. 서초구 반포주공 1단지(1·2·4주구)는 조합원 간 소송 문제로 당초 이달부터 계획된 이주가 중단된 상태다. 다음 달 철거를 시작할 것으로 예상되는 개포주공 1단지 등은 빠듯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지만 상한제 적용을 피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 때문에 일부 조합은 일반 분양분을 임대사업자에게 통째로 매각하는 방안도 추진하는 등 각자도생(各自圖生)에 나서고 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내년 4월 말까지 분양이 가능한 단지는 많이 잡아야 20개를 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상우 익스포넨셜 대표는 "6개월 유예는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선거용 정책'"이라고 말했다.

◇정부 '핀셋 규제' 예고했지만 서울 집값은 오름세

정부는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을 내년 4월 말까지 유예하기로 하면서, 공급 위축 등 부작용을 막겠다며 상한제 적용 지역을 동(洞)별로 ‘핀셋 지정’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럼에도 서울 신축 아파트값은 신고가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에서는 지난해 준공한 방배아트자이 전용 84.9㎡가 지난 2일 18억원에 거래돼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 반포자이 59.9㎡는 19억7000만원에 거래돼 20억원 선에 육박했다. 강동구 둔촌주공 1단지는 분양가 상한제 적용을 피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커지면서 지난달 15억원에 거래됐던 전용 79㎡ 호가가 15억5000만~17억원 수준에서 형성됐다. 현지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매수 문의가 빗발치고 있지만 매물이 사라지면서 사실상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남구 개포주공 4단지 호가도 수천만원 올랐다.

전문가들은 아파트값 상승세가 멈추지 않는 것은, 분양가 상한제 시행으로 인해 주택 공급이 줄어들 것이라는 불안 심리가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사업 이윤이 감소하는 건설업체들이 공급 물량을 줄이고, 이것이 신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집값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정부가 수요와 공급 원리에 어긋나는 규제를 지속하면 일부 아파트의 희소성을 높여 집값만 올리게 될 것”이라며 “서울 도심의 재건축, 재개발을 활성화하는 등 수요자가 원하는 지역에서 양질의 주택 공급을 늘려야 지금 같은 시장 왜곡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채성진 기자 dudmie@chosun.com]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네이버 메인에서 조선일보 받아보기]
[조선닷컴 바로가기]
[조선일보 구독신청하기]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경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