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 테러단’ 엄지척한 홍콩의원···부모 묘 훼손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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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7.24. 오후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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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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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밤에도 툰먼에서 흰옷에 의한 테러 발생
친중파 허쥔야오 “집과 민족 지키려는 것” 변호
중국 환구시보, 백색테러를 “교훈 줬다” 표현
허쥔야오 부모묘 파헤쳐지고 사무실 공격 당해
홍콩 내 친중과 반중 세력 상호 폭력 행사 경우
홍콩주둔 중국인민해방군 개입 현실화 될 수도
홍콩 정부의 ‘범죄인 인도법’ 추진으로 촉발된 홍콩 시위 사태가 최근 홍콩 내 친중과 반중 세력 간의 충돌로 격화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선 홍콩 주둔 중국 인민해방군이 개입할 명분이 될 수 있다.
홍콩의 친중파 입법회 의원 허쥔야오가 21일 백색테러에 가담한 것으로 보이는 흰옷 차림의 사람들과 엄지척 포즈를 취하거나 등을 두드리며 격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 환구망]
지난 21일 밤 홍콩 위안랑(元朗)역에서 흰옷을 입은 100여 명이 시위대와 시민을 무차별 폭행한 사건이 발생한 데 이어 23일 밤에도 툰먼(屯門) 지역에서 백색 상의 남성 3명이 검은 옷을 입은 남자를 구타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홍콩 명보(明報)는 24일 전했다.
이에 앞서 지난 21일 위안랑에서 흰옷을 입은 사람들과 '엄지 척' 사진을 찍고 이들을 격려햇던 홍콩의 친중파 의원 허쥔야오(何君堯)는 23일 부모묘가 훼손되는 봉변을 당했다.
홍콩 툰먼에 있는 허쥔야오 의원의 부모묘가 23일 파헤쳐지고 유골이 바깥으로 뿌려지는 등 크게 훼손됐다. [홍콩 명보]
툰먼에 있는 허쥔야오 부모의 분묘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이 난입해 묘를 파헤친 뒤 유골을 사방에 뿌렸으며 묘비도 부쉈다. 또 묘역엔 허쥔야오가 깡패들과 손을 잡았다는 의미의 ‘관리와 흑사회가 결탁했다(官黑勾結)’는 글이 스프레이로 쓰였다.
툰먼구 의회 의원인 허쥔야오는 엄지척 사진과 관련해 당일 길을 지나다 평소 알고 지내는 이들을 만났고 이들이 자신이 바른말을 잘 한다며 “영웅”이라고 칭찬하기에 악수를 나눴을 뿐으로 자신이 ‘백색 테러’를 사주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임산부를 포함해 45명이 병원에 실려 갈 정도로 무차별 구타를 당한 홍콩 시민들의 분노는 쉽게 풀리지 않을 전망이다. 22일과 23일에 걸쳐 툰먼 등에 있는 허쥔야오의 사무실 세 곳이 공격을 받았으며 부모 묘까지 파헤쳐지는 일까지 벌어졌다.
허쥔야오는 부모 묘 훼손과 관련해 “사람과 신이 함께 분노할 일”이라며 배후에 민주파 의원 주카이디(朱凱廸)가 있다고 주장했다. 허쥔야오는 23일 아침 홍콩 방송에 출연해 주카이디와 백색 테러 사건을 놓고 설전을 벌였었다.
허쥔야오가 백색 테러는 “위안랑 주민이 집과 민족을 지킨 것(保家衛族)”이라 말하자 주카이디가 “무고한 시민이 얻어맞았는데 도대체 어떤 집과 어떤 민족을 지켰느냐”고 따지며 말싸움이 벌어졌고 끝내는 흥분한 허쥔야오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서 방송이 중단됐다.
한편 중국 환구시보(環球時報)는 24일 허쥔야오의 부모 묘가 훼손된 일을 집중 보도하면서 흰옷을 입은 ‘백의인(白衣人)’이 위안랑에서 폭력 시위와 관련된 이들에게 “교훈을 줬다”고 보도했다. 심야에 임산부까지 무차별 공격한 테러를 “교훈”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홍콩 경찰은 위안랑 백색테러 사건의 용의자로 22일 6명, 23일엔 5명을 추가로 붙잡아 조사 중이다.
23일 홍콩에 있는 친중파 의원 허쥔야오의 사무실이 몰려든 시위대로 문을 잠갔다. 문 앞에는 항의 포스트잇이 가득하게 붙었다. [홍콩 문회보]
명보에 따르면 체포된 사람 중엔 핑산컹웨이(屛山坑尾)촌의 촌민대표로 별명이 싸움닭이라는 덩즈쉐(鄧志學)도 포함돼 있다. 그는 홍콩을 뜨려고 공항에 갔다가 붙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홍콩 시위대를 향한 친중 세력의 테러가 가해지고 이에 반발해 묘를 파헤치는 등의 일이 벌어지면서 홍콩 사태는 충돌이 격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7일엔 위안랑에서 시위대에 의한 대규모 시위가 예고돼 있기도 하다.
이 같은 홍콩의 혼돈 상황이 지속할 경우 중국 당국의 개입 가능성이 커질 전망이다. 중국 환구시보는 22일 중국 당국이 홍콩 사태에 개입할 경우의 하나로 “홍콩 내 서로 다른 파벌 간에 대규모 복수전이 벌어져 도시가 무정부 상태에 빠지는 상황”을 꼽았다.
현재 친중 세력으로 의심되는 백색테러와 이에 반발한 시위대의 폭력이 충돌할 경우 중국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의 치안 유지를 표방하며 홍콩에 주둔한 중국 인민해방군의 개입을 현실화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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