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집에 기부한 내 성추행 합의금 900만원 돌려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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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6.02. 오전 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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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강민서씨 반환소송 나서
정의연 후원금 유용 의혹에 결심
“할머니 용기있는 고백에 부채의식
감사한 마음으로 기부했는데 충격”
나눔의집에 성추행 합의금 900만원을 기부했다가 정의기억연대 사태를 보며 후원금 반환 소송에 나선 강민서씨. 위안부 문제를 다룬 다큐 영화 ‘주전장’ 포스터를 배경으로 서 있다. [사진 강민서]
“위안부 피해자인 할머니들이 편안한 노후를 보내셨으면 하는 마음에 제가 받은 합의금을 전부 기부했어요. 그런데 목적에 맞게 쓰이지 않았으니 돌려받아야죠.”

한양대 철학과 4학년 강민서(25)씨의 말이다. 강씨는 지난 3월 ‘성추행 피해 조정합의금’으로 받은 900만원을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나눔의 집에 기부했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정의기억연대·나눔의 집 후원금 유용 의혹에, 후원금 반환소송을 하기로 결심했다. 강씨는 1일 “오로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하는 마음에, 내 아픈 상처를 드러내면서까지 입을 열게 됐다”며 인터뷰에 응했다.

강씨는 지난 2018년 학교에서 한 강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이 상처로 한동안 학교에 못 나가고, 정신과 치료도 받았다. 그 학교를 그만두고 편입도 했다. 이후 가해자로부터 등록금 손실액과 정신과치료비 등 명목의 조정합의금 900만원을 받았다. 강씨는 이 돈을 곧바로 소송대리 변호사를 통해 나눔의 집에 기부했다. 강씨는 “위안부 문제는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성추행을 당한 후 성범죄 피해자임을 고백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준 위안부 할머니들께 감사함과 부채감을 느꼈다”며 “작게라도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소송과정에서 ‘꽃뱀’이 아님을 증명하고 결백을 주장하는 게 너무 힘들고 위축됐다”며 “30년 간 할머니들이 한 싸움은 감히 상상도 못 할 위대한 것임을 깨달았다”고도 했다.

그는 “할머니들의 잃어버린 세월과 쌓은 업적에 비하면 900만원은 초라하다”면서 “성범죄 피해를 직접 겪은 후 피해자로서 일종의 연대의식을 느껴 선뜻 기부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강씨는 자신이 낸 후원금이 할머니들의 노후와 명예회복에 사용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학자금 대출 빚이 2000만원 정도 남아 있다고 했다. 강씨는 “나도 소시민이지만, 더 힘든 일을 겪은 할머님들이 행복한 여생을 사시길 바랐다”며 “기부 목적이 달성되지 않았기에 후원금 반환신청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강씨는 김기윤 변호사(김기윤 법률사무소 대표)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 정의기억연대·나눔의집 후원금 반환 소송에 참여할 후원자를 모집한다고 올린 글을 보고 함께 소송에 나서기로 했다.

강씨는 최근 정의연과 나눔의집을 둘러싼 논란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동안 두 곳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드러난 사실들이 충격적이었다”며 “단체들은 자신들이 기부금 수령의 주체가 아닌 ‘대리인’이란 사실을 잊은 듯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고령의 할머니들과 전국, 각국을 돌며 기부금을 모으지 않았느냐”며 “여러 논란에 변명으로 일관하는 그들에게 정의는 허울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후원금 반환소송 참여는 금전적 이득을 위해서가 아니다. 강씨는 후원금을 돌려받으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나 기부금을 직접 전달하거나 회계처리가 투명한 다른 단체에 기부할 예정이다. “기부금을 할머니들께 온전히 전달하지 않은 단체들이 자신들의 공(功)을 외치는 건 위선”이라며 “측은지심·수오지심도 없이 ‘나눔’ ‘정의’라는 단어를 쓰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애정과 죄책감을 가진 후원자들이 분노하는 건 당연하다”며 “이 단체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썩은 부분은 도려내 새로운 미래로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지아 기자 kim.j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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