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고 안 봐줘” 우리가 몰랐던 조선궁궐의 추석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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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6.09.15. 오후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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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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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문소전(文昭殿)에 나아가서 추석제(秋夕祭)를 행하였다"

조선왕조실록 태종 14년 8월 15일에 실린 내용이다. 임금이 추석을 맞아 제사를 지냈다는 내용이다.


오늘날 추석은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정을 나누는 명절로 여겨진다. 하지만 조선 시대에는 왕이 직접 제사를 지내는 국가 행사 중 하나였다고 한다.

추석은 귀하게 여겨져 사형 집행이 금지된 날이기도 했다.

형조에서 의정부에 보고하기를,
"《속형전(續刑典)》에 이르기를, …… 입춘(立春)으로부터 추분(秋分)에 이르기까지와 초하루·보름 상하현(上下弦) 되는 날과 24절기와 비 오는 날과 밤이 밝지 아니한 때에는 사형을 집행하지 못한다.’ 하였사오나, …… 지금부터는 상항(上項)의 날과 속절(俗節)인 단오(端午)·중추(中秋)·중양(重陽) 등에는 모두 사형을 금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세종 21년 12월 4일

중추는 오늘날 추석을 의미한다.

제사 중 실수했다가 결국…

특별하게 여겨진 때인 추석에 왕이 드리는 제사는 매우 엄숙했을 것이다. 제사에서 실수를 했다면 큰 벌을 받았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데, 실제로 그러한 일이 조선왕조실록에 실려 있다.

문소전(文昭殿) 추석(秋夕) 제향에 대축(大祝) 윤은보(尹殷輔)가 제4실(第四室)의 신위판(神位板)을 받들다가 발이 헛놓이는 바람에 땅에 떨어져서 독이 깨져 금이 갔다. 왕이 이르기를,

"신(神)이 놀라서 동요되었을 것인데, 고유제(告由祭)를 드리는 예가 있지 않느냐? 예관으로 하여금 고례를 상고하여 행하게 하라."

하고, 윤은보를 의금부(義禁府)에 하옥시켜 국문하게 하였다.
- 연산 3년 8월 15일

대축은 제사를 관장하는 관직이며, 신위판은 제사 중 지방을 붙여 놓을 비품을 말한다. 신위판을 떨어뜨려 독을 깨뜨린 윤은보는 비록 실수였지만 그 일로 의금부(조선시대 사법기관)에 하옥돼 죄에 대해 신문을 당했다.

'아프다'는 핑계 댔다 관직에서 내려와


추석제가 중요한 국가 행사였던 만큼 관직에 오른 이는 되도록 참석해야 했던 것으로 보인다.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추석제에 불참하는 것은 결코 허용되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뒤탈이 났었다.

헌부가 아뢰기를,

" …… 불참한 자는 으레 모두 병을 칭탁하니 만일 병이라 하여 추고하지 않는다면, 조정 예의가 볼썽사나울 뿐만 아니라 제사를 지내는 예절에 있어서도 매우 미안합니다. 그래서 병을 칭탁하고 나오지 않은 자는 본부(本府)에서 모두 추고하였습니다. 따라서 대사헌 홍언필(洪彦弼)도 병을 칭탁하고 참여하지 않았으니 직에 있을 수 없으며, 대사간 황사우(黃士祐)와 헌납 하계선(河繼先)도 모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체직시키소서."

하니, 전교(명령을 내림)하였다.

"아뢴 대로 체직하라."

- 중종 26년 8월 17일

관리의 비행을 조사해 책임을 규탄하는 헌부는 병을 핑계로 추석제에 나오지 않는 벼슬아치에 대해 그 죄를 추궁할 것을 요청했다. 급기야 추석제에 오지 않은 이들은 헌부의 요청대로 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모두 즐기는 추석 연회, 중단될뻔한 사연은?


모두의 마음이 넉넉하고 먹을 것이 풍성한 추석인 만큼 궁궐에서도 연회가 치러졌다. 추석 때 뜨는 보름달을 보며 즐기는 것이라 하여 이 행사에는 '완월연'(翫月宴)이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다.

어서(御書)를 승정원(承政院)에 내리기를,

"옛사람이 추석(秋夕)에 달구경을 한 것이, 어찌 황음(荒淫)하여 그러하였겠는가? …… 그렇다면 옛사람의 달구경은 반드시 뜻이 있어 나무랄 수 없다. …… 오늘 저녁에 내가 경연 당상(經筵堂上)과 출직(出直)한 승지(承旨)·주서(注書)와 홍문관(弘文館)·예문관(藝文館)에게 주악(酒樂)을 내려, 청량(淸?)한 곳을 가려서 태평(太平)의 날을 즐기게 하려고 하는데, 이 또한 아름답지 않겠는가?"

하니, 승정원(承政院)에서 아뢰기를,

"이는 매우 성사(盛事)입니다. 상교(上敎)가 윤당(允當)하십니다."

하였다.

- 성종 20년 8월 15일

그런데 이듬해 완월연은 열리지 않을 뻔했다. 완월연을 중지해달라는 건의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완월연 중단 요청의 배경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 유빈(柳濱)이 와서 아뢰기를,

"이제 듣건대, 의정부(議政府)·육조(六曹)·홍문관(弘文館)에 완월연(翫月宴)을 내려 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뇌진(雷震)이 변고를 보이고 바야흐로 또 공구 수성(恐懼修省)하신 지가 달을 지나지 않았거늘, 온 조정이 연락(宴樂)하여 희롱하여 노는 일을 하면, 그 하늘의 경계를 삼가는 데에 어떻겠습니까?"

- 성종 21년 8월 15일

즉 천둥, 벼락과 같은 자연현상을 하늘의 뜻이라 믿었던 당시 몹시 두려워하고 반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음 편히 노는 것이 하늘의 노여움을 살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왕은 그 청을 들었을까?

"그대의 말이 옳으나, 다만 중추 절일(中秋節日)을 만난 것뿐이다. 옛사람도 달을 구경한 일이 있었고, 또 진찬(進饌)을 대비전(大妃殿)에 갖추어야 하는 까닭으로 겸하여 재상(宰相)을 먹이려고 함이니, 내 어찌 이르지 않고서 하겠느냐? 또 한 번 재변(災變)이 있다 하여 끝내 연음(宴飮)하지 않게 되면 어느 때에 즐기겠느냐?"

- 성종 21년 8월 15일

성종은 건의한 내용이 일리가 있다고 봤지만, 완월연을 강행했다. 성종은 천재지변 하나하나에 얽매이면 즐길 때가 없다는 매우 소박한 이유를 들었다.

사간원 정언은 이후에도 거듭 연회 중단을 요청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재현기자 (hono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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