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태의 요가로 세상 보기] 74. 도구(道具)가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 도구를 이용한 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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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 도구를 적절하게 활용하면 수련의 안전성과 편안함, 정확성을 유지하면서 난도가 높은 아사나에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다. 하지만 도구 사용에만 의존하는 수련은 바람직하지 않다. 맨몸으로 하는 수련과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시연 임은주.


인간은 사자처럼 날카로운 이빨도, 호랑이처럼 사나운 발톱도, 새처럼 하늘을 나는 날개도, 물고기처럼 물속을 헤엄쳐 다닐 수 있는 지느러미도 갖고 있지 못하지만, “우리 인간들에게는 도구(道具·tool)가 있습니다!”라고 외치며 도구를 사용한 관계로 만물의 영장이란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다.

마치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신에게는 아직 배 12척이 남아 있습니다!”라고 외치며 전열을 가다듬어 저 유명한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처럼 말이다.

도구는 어떤 일을 할 때 이용하는 소규모에서부터 대규모 장치까지를 총망라한 말이다. 삶을 값지게 하는 저 도구들, 건축하고 농경을 돕는 도구, 때론 칼을 만들어 적을 베기도 하고, 총포를 만들고,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만들고, 물 위를 떠다니는 배를 만들고, 땅 위를 질주하는 자동차를 만들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도구는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도구에 의해 신체의 한계와 시공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기도 하니 말이다. 생활의 진화와 도구의 진화는 비슷한 점이 참 많다. 도구는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끝없이 개선되고 시장의 선택에 따라서 살아남거나 사라지는 운명을 끊임없이 겪으면서 인류와 더불어 생활을 이어간다.

인간은 직립보행을 하게 됨으로써 두 손이 자유로워지고 두 손을 자유롭게 이용하면서 도구를 개발하고 불을 사용하여 문명을 발전시켜 오게 된 것이다. 물론 다른 동물들도 자연에서 여러 도구 등을 사용할 줄 안다.

침팬지 연구가인 제인 구달은 도구로 흰개미를 사냥하는 침팬지도 있다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막대기로 상대방을 때리는 침팬지가 발견되기도 한다.

늪을 건널 때 나뭇가지를 모아서 다리를 놓아 지나가는 고릴라도 발견되었다. 이집트 대머리수리의 경우 부리로 돌을 집어서 타조 알을 깨고, 갈라파고스의 핀치새는 선인장 가시로 나무 구멍 속의 벌레를 잡아먹을 줄도 안다. 뉴칼레도니아에 사는 까마귀는 굽은 철사로 실린더 안의 먹이를 꺼내 먹는 데 성공했다. 2009년 말 문어가 도구를 사용한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인도네시아 부근에 사는 핏줄 문어가 코코넛 껍데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집을 만들어 사용하는 모습이 촬영된 것이다. 얼마 전에는 한 잠수부가 세계 최초로 도구를 사용하는 물고기 사진을 촬영했다. 스콧가드너란 잠수부는 조개를 입에 물고 큰 바위에 후려치고 있는 검은 점박이 돔을 촬영했다.

이처럼 동물도 도구를 사용할 줄 알지만, 인간은 동물과는 다르게 자연 자체에서 얻어지는 도구에서 한 단계 개선된 도구를 개선 발전시킴으로써 인류 역사를 발전시켜 왔다는 점에서 동물의 그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일반적으로 도구라고 하면 각종 기계, 항공기, 텔레비전, 컴퓨터 등의 유형적 도구와 인간의 역사 과정에서 발전시켜 온 법이나 제도, 관습, 시간, 약속 등 무형적 도구로 나누어질 수 있다. 이렇게 인간은 여러 개의 도구를 창출함으로써 더 윤택한 삶을 살아가고 가치관과 문화를 정립하여 세상에서 인간이란 존재의 가치를 높여 가고 있다.

인간을 규정짓는 여러 호칭이 있다.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직립 보행하는 인간), 호모 파베르(Homo faber, 도구를 만드는 인간),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놀이하는 인간),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 능력 있는 사람),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생각하는 사람),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rtcus, 공감하는 인간), 호모 디지쿠스(Homo digicus,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인간), 호모 모빌리쿠스(Homo mobilicus, 모바일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인간), 호모 로퀜스(Homo loquens, 언어인), 호모 폴리티쿠스(Homo politicus, 정치인), 호모 릴리글로수스(Homo religlosus, 종교인), 호모 아르테스(Homo artex, 예술인), 호모 아쿠아티스(Homo aquaticus, 수생 유인원)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그중에서 호모 파베르(Homo faber)는 ‘도구를 만드는 인간’을 뜻하며, 자연을 가꿀 수 있는 ‘연장을 갖춘 자’라는 뜻이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다른 동물이나 생명체와 구분되는 인간의 특성으로 지성을 꼽았다. 특히 기술을 익히고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는 호모 파베르의 지성이 인류를 지금과 같은 성공으로 이끌었다고 주장한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로봇이 파베르의 역설을 만들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인간의 편의를 위한 도구로 만든 인공지능과 로봇이 오히려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무시무시한 괴물로 둔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그래서 나오는 모양이다.

다음으로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 즉 ‘손을 쓰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있다. 사람이 손을 쓰는 능력이 다른 동물과 비교할 때 뛰어나기 때문이다. 포유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가운데 그 무엇도 손가락을 5개 이상 활용하는 동물은 없다. 특히 한국인은 손이 발달한 민족이다. 젓가락을 쓰는 것도 그런 연유이다. 우리의 일상 언어도 ‘손 좀 빌리자’, ‘손이 달린다’, ‘손 끊었다’, ‘손 씻었다’, ‘저 친구 손 좀 봐야겠다’, ‘내 손 안에 있소이다’,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 등 손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 유난히 많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의 사회적 삶은 인공적 도구의 제작과 사용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나 도구를 만드는 도구를 제작하여 그 제작을 다시 무한히 변형시켜 발전시키는 능력이 있다.

이렇게 보면 데카르트와 베르그송이 인간을 각각 호모 사피엔스, 곧 ‘생각하는 존재’와 호모 파베르 곧 ‘제작하는 존재’로 정의한 것도 설득력이 없지 않다.

이러한 지성적 본능들은 인간에게 새로운 지식과 도구를 고안하게 하여 더 원활한 인간의 창조 활동을 가능하게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도구가 생기는 데는 첫째로 그 도구를 인간의 생존에 있어 불가결하게 만들어야 하는 외적 상황도 있고, 둘째로는 도구의 제작과 사용을 가능하게 하는 신체적 진화 및 감각기관과 지능적 메커니즘의 발달이 조건이 되었을 것이다.

본격적인 도구의 제작 사용은 인류 역사상 여러 가지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먼저 도구의 발달은 인류가 획득할 수 있는 식량의 양을 비약적으로 증가시켰다. 또한 도구의 제작과 사용을 통하여 자연의 여러 가지 성질을 배우고 그것들에 관한 과학적인 지식을 증대시켜 갔다. 수백만 년 동안 거친 자연을 이기고 어려운 생활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이 지적으로 설계한 도구는 다시 인간의 진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캐나다 철학자 마셜 맥루한이 말한 “우리는 도구를 만들고, 다시 도구는 우리를 만든다”라는 심오한 진리를 곰곰 되씹어보게 된다.

예수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필자가 연세대 대학원 시절에 많이 접했던 구절)고 했듯이 “도구가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해도 과히 틀리지는 않을 듯하다.

모든 산업 분야, 음악 미술 연극 등의 예술 분야, 과학 분야 등에서도 결국은 인간과 도구의 컬래버이고 융합이고 통섭이고 인간과 도구의 결합이라 할 수 있잖은가?

사람은 거의 모든 일을 손으로 한다. 도구는 손이 하는 일을 편하고 안전하게 해주는 장비이다. 인류의 지나온 역사는 어떤 도구를 사용했는가에 따라 나눌 수도 있다. 그 예로 맨 손이던 원시시대, 돌 도구를 쓰던 석기시대, 청동과 철을 사용하던 청동기·철기시대, 인력 대신 동력을 사용하여 자동기계로 일하는 오토메이션 시대 즉 산업 혁명 시대, 마지막으로 인공지능을 가지고 스스로 일하는 도구인 로봇을 쓰는 지금 시작된 인공지능 로봇 시대로 나눌 수 있다. 현재도 인간의 의식과 행동은 도구에 의해 매개되고 전개 발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도구는 본래 용도 외의 용도로 사용되면 오히려 자신에게나 인류에게 큰 피해를 줄 수도 있다. 도구가 생김으로써 인간은 지구별의 주인으로서 자신감이 확장되었지만, 너무 확장되면 오히려 오만해질 수도 있다. 가까운 예로 스마트폰 중독 등이 그렇고 앞에서도 말한 인공지능 로봇 등의 역작용이 그렇다.

붓만 좋다고 글씨가 덩달아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글씨가 더 잘 써지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악기 연주에서도 똑같다. 아무리 비싼 가격의 최고급 악기를 가지고 있다 해도 활용하는 데 미숙하면 만사 헛일인 것이다. 도구를 잘 갖추고 바른 자세로 그 도구를 잘 활용하기 위해, 수없이 연마하고 단련하는 진지한 노력과 정성이 뒤따라야만 비로소 도구의 효과를 백분 발휘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치 필자와 같은 사람들이 컴퓨터나 모바일을 이용하면서 그 많고도 다양한 기능 중 과연 얼마나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이미 사람보다 바둑을 잘 두는 인공지능을 만들었으며, 인공지능이 음악을 작곡하고, 노래를 부르고, 시를 쓰고, 연설문을 작성하고, 소설을 쓰는 단계에 와 있다.

“이제는 인공지능이 인공지능을 자유롭게 아무런 제약 없이 만드는 첫 단계가 이루어지는 순간, 인공지능의 무한 연쇄가 시작될 수 있다. (중략) 사람 없는 지구도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진화의 당연한 다음 단계일까. 사람 없는 세상은 우리 사람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 지금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각 개인의 신체적·정신적 상황이나 요가 수행의 목적, 날씨, 또는 외부 환경에 따라서 요가 수행의 방법도 다양하게 구사할 필요가 있다.

원래 요가는 어떤 기구를 이용하는 것이 아닌 우리 몸 그 자체를 자극하고 동작을 취함으로써 종국은 내면에 침잠하여 마음과 대화를 시도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몸이 동작을 함에 불편함이나 어색함이 있을 때는 적절한 도구들을 이용하여 안전하고 쾌적한 상태의 요가 환경을 조성해 주는 방법도 있다.

즉 신체 조건이 다른 사람들이 아사나를 보다 원활하고 용이하게 취하기 위하여 적절한 도구들을 활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몸을 신장·강화·이완시키고 몸의 체형 교정까지 도울 수 있다면 어떤 형태로의 것이든 요가 도구라 칭할 수 있다. 즉 요가매트, 탄성밴드, 벨트, 막대기, 담요, 수건, 짐볼, 블록, 쿠룬타, 폼 롤러, 젠링, 경침, 아이 펠로우, 의자 등 다양한 종류가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더욱이 요가 도구를 사용하면 에너지를 적절히 보존하고 분배하면서 아사나 수련을 즐길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때로는 요가 도구의 사용이 체력적으로 더 강하게 작용하여 운동량을 더 증대시키는 경우도 있다.

요가 도구는 잘만 활용한다면 체력적인 한계에 있는 수련자들도 각각의 아사나 효과를 더 효율적으로 얻을 수 있다. 즉 각각의 아사나에 대한 이해를 키우고 확대하는 것을 도울 수 있다는 뜻이다.

요가 도구 활용은 수련의 안전성과 편안함, 정확성을 유지하면서 난도가 높은 아사나에도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게 하며, 잘 안되는 아사나의 맛을 느끼게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지속시간 역시 맨몸일 때보다 더 늘릴 수 있도록 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

올바른 요가 도구의 활용은 노인, 임산부, 부상자, 장애인 등과 같은 특정한 대상의 요가 수행까지도 보다 용이하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도구의 사용에만 의존하는 수련은 바람직하지 않다. 도구를 사용하는 수련과 맨몸으로 하는 수련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허리가 완전히 뒤로 젖혀지는 등의 그런 완벽하고 완성된 자세를 취하는 것만이 결코 요가의 목적은 아니다. 육체에서 벗어나 마음으로 행하는 것, 그것을 도와주는 것이 바로 요가 수련이다. 잘 알다시피 요가란 몸과 마음·영혼의 결합을 말하는 산스크리트에서의 유즈(yuj) 즉 매다, 묶다, 결합하다, 만나다, 말을 마차에 매다라는 어원에서 출발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또한 요가용 도구는 어디까지나 주(主)가 아니고 부(副)의 개념이 되어야 한다. 요가는 본래 자연적(natural)임을 추구한다. 요가는 인위적인 어떤 것을 배제한 상태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먼저 염두에 두는 게 좋을 듯하다.

예를 들어 맛깔스러운 인스턴트식품이나, 빵, 라면, 피자, 떡볶이, 햄버거, 짜파게티, 짜장면, 스파게티, 파스타 등등은 가끔씩 먹으면 별미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런 음식을 매일, 일주일, 한 달, 일 년 내내 상용할 수는 없잖은가? 그러나 밋밋하고 담백한 쌀밥, 현미밥, 잡곡밥은 평생을 먹어도 싫증 나지 않고 물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위적인 것보다는 자연적인 것이 가장 오래간다는 사실이다. 노자와 장자의 도가사상(道家思想)에서 말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떠올린다. 이는 자연에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인공을 가하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 또는 그런 이상적인 경지 말이다.

노자의 도덕경에서는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道)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고 말하고 있다. 필자는 여기서 “요가는 자연을 본받는다”는 말을 발췌하고 싶다.

인도의 현인 크리슈나 마차리아의 “사람들을 요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요가 수행을 각각의 사람들에게 맞추도록 하라”는 말을 끝맺음으로 한다.

(*인터넷 블로그, 각종 서적 등에서 일부 인용, 참조하였음)

[도구를 이용한 요가/ 최진태]

두 손을 사용하는 신이 주신 혜택 덕분/인간이 도구 활용 가능케 되었으니/만물영장 호모사피엔스 그 덕분이 아니겠소

동물들도 도구 사용 가능타 하다만은/원시도구 다시 발전 시켜가는 지혜 덕에/인간이 그대들과는 비교할 수 없지라우

유형의 도구있고 무형의 도구있다/두 가지 아울러서 온세상 열어가며/인간의 존재가치를 더욱 상승 시켰도다

인간의 편의 위한 도구의 개발 창출/이제는 인공지능 시대까지 왔소이다/도구가 역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하오

파멸로 이끌 수도 괴물로 변할 수도/인간이 만든 도구에 인간이 당할 수도/꼼꼼이 살피시면서 과학기술 다져가길

도구의 활용으로 지구별 주인됐다/그러나 오만하면 큰 일을 당할 수도/도구의 올바른 사용 과학윤리 정립하길

도구를 활용하여 요가수행 더 알차게/유연성 근력성 등 보완하는 보조기구/막히는 요가수행을 원활하게 돕는 공신



최진태 부산요가지도자교육센터(부산요가명상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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