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 - 소월의 〈진달래 꽃〉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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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를 소재로 한 시가 읊어진 먼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장 널리 인구에 회자된 시는 아마 소월의 〈진달래 꽃〉일 것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진달래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 김소월, 〈진달래꽃〉

이 작품은 한국의 현대시가 도달한 최고의 이별미학으로 흔히 평가되어 왔다. 이 시는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의 슬픔을 체념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라고 한다. 그리고 산화공덕(散花功德)과 애이불비(愛而不悲)를 나타냄으로써 유교적 휴머니즘이 짙게 깔려 있다고도 한다.

이 시는 사랑하는 이를 떠나 보내는 데 대한 사무친 정과 한, 동양적인 체념과 운명관으로 빚어내는 아름답고 처절한 사랑의 자기희생적이고 이타적인 인고의 마음이 완벽하리 만큼 깊고 맵고 서럽게 표현되었다.1)

이 시는 4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연에서는 임께서 나 보기가 싫어서 떠나신다면 원망하거나 매달리지 않고 곱게 보내드리겠다고 하고, 제2연에서는 뿐만 아니라 임께서 가시는 길에 저 유명한 영변 약산의 아름다운 진달래꽃을 한 아름 꺾어다가 뿌려 축복하겠다고 한다. 제3연에서는 임께서는 내가 뿌린 그 꽃을 한 걸음 한 걸음 사뿐히 눌러 밟으라고 하여 시적 정감의 절정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제4연에서는 임께서 내가 싫어 떠나신다면 나는 임을 너무 사랑하는 까닭에 꾹 참고서 절대로 눈물을 보이지 않겠다는 인고의 정신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 이 시 속의 진달래꽃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먼저 이 시의 작중화자(作中話者)는 여성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진달래꽃은 자기 희생을 통한 헌신적 사랑을 지닌 여인, 또 한을 뜨거운 사랑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여인의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진달래꽃잎은 한없이 부드럽고 가냘프지만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진달래꽃은 모진 학대 속에서도 참고 견디며 한 많은 삶을 이어가는 여인에 비유될 수 있다. 또 소박하고 청순한 여인의 이미지가 환영처럼 떠오르기도 한다. 이것은 곧 전통적인 한국 여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자신의 모습에 비유될 수 있는 진달래꽃을 임이 가시는 길에 뿌려서 그 꽃을 즈려밟고 가라고 한 것은 거룩하고도 처절한 자기 희생을 의미한다.

그러면서도 여인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진달래꽃잎에는 마음속으로 흘린 한량없는 피눈물이 고여 있을는지 모른다. 또 그 진달래꽃에는 그리움·이별·미련·원망·체념 등의 정한이 응결되어 있을 것이다. 붉디 붉은 꽃잎에는 버림받은 여인의 원한이 스며 있을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 시의 위에서와 같은 종래의 통설적인 해석에 대해서 이설이 있다. 이어령(李御寧)은, 이 시는 이별을 노래한 시가 아니라고 풀이한다. 즉 이 시는 이별의 가정을 통해 현재의 사랑하는 마음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밤의 어둠을 바탕으로 삼지 않고서는 별빛이 영롱함을 그려낼 수 없듯이 이별의 슬픔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서는 사랑의 기쁨을 가시화할 수 없는 역설로 빚어진 것이 바로 소월의 〈진달래꽃〉이라고 한다.

그 근거로는 첫째로 소월의 〈진달래꽃〉은 이별의 시제가 "가실 때에는······" "······드리우리다"와 같은 시어에 드러나 있듯이 미래추정형으로 되어 있고, 둘째로 진달래는 이별의 슬픔을 억제하고 너그러운 부덕을 상징하는 자리에 등장하는 꽃이 될 수 없다고 했다. 그런 메시지에 어울리는 꽃이라면 저 유교적 이념의 등록상표인 '국화'나 '매화'일 것이라고 한다.

'진달래꽃'은 결코 점잖은 꽃, 자기 억제의 꽃이라고는 할 수 없으니 그것은 울타리 안에서 길들여진 가축화(家畜化)한 완상용 꽃이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겨우내내 야산의 어느 바위틈이나 벼랑가에 숨어 있다가 봄과 함께 분출한 춘정을 주체할 바 모르는 야속(野俗)의 꽃이라고 한다. 그러한 꽃이 자기를 역겹다고 버린 임을 원망은커녕 꽃까지 뿌려주겠다는 마음씨 고운 한국여인의 관용이, 그리고 눈물조차 흘리지 않겠다는 극기의 그 여인상이 '진달래꽃'의 메시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달래꽃'은 어둡고 청승맞은 사사조(四四調)의 우수율(偶數律)이 아니라 밝고 경쾌하며 조금은 까불까불한 느낌조차 주는 칠오조(七五調)의 기수율(奇數律)로 되어 있다고 한다.2)

진달래를 소재로 한 시가는 위에서 든 것 외에도 너무나 많다. 그 중 한시에서 진달래(두견화)를 시제로 한 것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서거정(徐居正), 〈두견〉, 《사가집(四佳集)》
• 정여창(鄭汝昌), 〈두견〉, 《일도집(一蠹集)》
• 정수강(丁壽崗), 〈두견화〉, 《월헌집(月軒集)》
• 이춘영(李春永), 〈두견화〉, 《체소집(體素集)》
• 최명길(崔鳴吉), 〈두견화〉, 《지천집(遲川集)》
• 이민구(李敏求), 〈두견화〉, 〈두견화가〉, 《동주집(東州集)》
• 권호문(權好文), 〈두견화차고운(杜鵑花次古韻)〉, 《송암집(松巖集)》
• 이관명(李觀命), 〈두견〉, 《병산집(屛山集)》
• 김로(金鐪), 〈두견〉, 《담정집(潭庭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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