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을 교육 시키는 해로”… 음성 듣고 ‘아바드리더시스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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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은 목사의 ‘아스팔트에 핀 부흥의 꽃’ <12>
경남 진주 순복음진주초대교회에서 2008년 11월 개최된 아바드리더시스템 1기생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순복음진주초대교회 제공

평신도 시절, 내 주위에는 신앙생활에 대해 정확히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목사님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무조건 순종했다. 그리고 혼자 성경을 읽으면서 깨닫는 대로, 마음에 감동이 오는 대로 순종했다. 그랬더니 우리 가정에 넘치는 복을 허락하셨다. 급기야 섬기던 목사님으로부터 “집사님, 복 좀 그만 받으소”라는 말까지 들었다.

목회의 길을 오면서 비로소 깨달은 사실이 있다. 그동안 내가 복 받은 비결은 모두 성경 안에 있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집회나 세미나를 통해 그 말씀을 하나하나 가르치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목사님, 복 받기 쉽습니다”라며 고백하는 간증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확신을 갖게 됐지만, 매번 집회를 다니며 일일이 가르칠 순 없었다. 그래서 그 말씀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바드리더시스템’의 시작이었다.

2006년 한 해를 마무리하며 기도하던 중, 하나님께서 이런 음성을 주셨다. “2007년은 교육하는 해로 정하라.” 그래서 교회 표어를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는 해’(행 2:42)로 정했다. 아바드리더시스템으로 성도들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기 시작했다.

성경은 곳곳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말씀을 지켜 행할 때, 하나님의 백성답게 복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말씀한다. 주의 종이 강단에서 아무리 목이 터지라고 말씀을 외쳐도 성도들이 듣기만 하고 지키지 않는다면 10년, 20년 신앙생활을 해도 어떤 변화도 있을 수 없다.

말씀은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 행해야 한다. 아바드리더시스템은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는지 육하원칙에 따라 자세히 가르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이 땅의 복을 넘치도록 받을 뿐 아니라 영생의 복까지 얻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것이 곧 아바드리더시스템의 교육 목적이다.

교육을 시작하면서 원칙을 세웠다. 신앙 경력이 오래된 중직자라도 예외 없이, 새가족반부터 시작해서 전 과정을 교육받게 했다. “목사님요, 제가 권사입니더. 교회 다닌 지가 얼만데 새가족반입니꺼. 고급반으로 바로 가게 해주이소.” 그런 항의도 소용없었다.

교육 시간도 철저히 지켰다. “목사님요, 겨우 1분 늦었는데 결석처리 하믄 너무 심한 거 아입니꺼?” 따져도 소용없었다. 지각하는 이는 수업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아예 강의실 문을 잠갔다. 매주 교재에 쓰인 성경 구절을 필사하라고 과제로 줬다.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이었는데도 성도들은 잘 따라주었다.

“목사님, 지 평생에 볼펜 한 자루 다 닳도록 글씨를 써본 건 이번이 처음입니더.” “목사님, 우리 남편이 그렇게 교회 나오라 해도 안 듣더만, 제가 힘들어서 남편보고 숙제를 해 달라 했는데, 인제는 교회 나오겠다고 합니더. 할렐루야!”

시간이 지날수록 성도들의 입에서 원망 불평이 사라질 뿐 아니라, 가르침 받은 대로 변화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바드리더시스템 중 비전반에서는 부부의 도리에 대해 가르친다. 그 과정이 끝난 후, 한 여집사님이 이런 간증을 했다. “저는 5년 동안 남편과 각방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비전반을 듣고 아내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있는 제 모습을 깨닫고 회개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자는 방문을 그냥 박차고 들어가 무조건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희 부부의 각방 생활이 끝났습니다.”

그 간증 후 다른 여집사님이 입을 열었다. “엄마야, 집사님은 5년 짜리였어예? 저는 10년짜리였는데.” 그 집사님은 10년 전 다른 교회에서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했을 때, 남편의 핍박이 너무 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몰래 새벽기도를 나가기 위해 각방을 쓰기 시작했다. 새벽기도라는 명분도 있지만, 술·담배 냄새로 찌든 방에 남편과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싫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한 각방 생활이 벌써 10년이나 됐다고 했다.

그것이 말씀에 어긋난 행동인 줄도 모르고 지내왔는데, 아내의 도리에 대해 교육받은 후 바로 돌이켰다고 한다. 그랬더니 각방 문제가 해결된 것은 물론이고, 냉랭했던 부부 관계도 회복돼 제사 문제까지 해결됐다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또 한 분, 지금까지 교회를 위해 대외적으로 앞장서 일해 주시는 장로님이 계신다. 연세가 80이 넘은 분이신데, 서울 명문대 출신으로 관직에 있으면서 높은 분들을 보필한 경력이 있었다. 배움이 많아 지식도 남다르고 경력도 있다 보니 매사에 예사롭지 않은 눈빛으로 판단을 했다.

그 눈빛으로 교회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교회 개선점이라든지, 부교역자와 성도들의 모습을 어찌나 매섭게 지적하는지, 그분과 마주치지 않으려는 이들이 제법 있었다. 나 역시 그분 앞에서는 될 수 있으면 흠이 잡히지 않으려 각별히 조심했다.

그런데 아바드리더시스템 수료 후 그분 태도가 180도 변화했다. 온순한 양처럼 자신을 낮추고 주의 종의 말에는 무조건 순종하겠다고 했다. 그 모습은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결같아서, 교회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이처럼 아바드리더시스템을 통해 많은 믿음의 용사들이 나왔다. 이런 열매를 보며 아바드리더시스템의 가치를 더욱 확신하게 됐다.

▒ 아바드리더시스템이란
방언은 ‘혀의 말’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하는 말’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이 임했을 때의 모습을 통해, 성령세례 받았을 때의 표적이 방언임을 알 수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방언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4)

여기에서 ‘방언’은 원어로는 ‘글롯사’, 영어로는 ‘텅스(tongues)’이며 혀의 말,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하는 말을 뜻한다. 그리고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행 2:6~8)라는 말씀에서 ‘방언’은 원어로는 ‘디알렉토스’, 영어로는 ‘랭귀지(language)’로 각 나라의 말, 외국어를 뜻한다.

우리말에도 소리는 하나인데 뜻이 여러 가지인 단어들이 있다. 보는 눈과 하늘에서 내리는 눈, 먹는 배와 타는 배, 먹는 밤과 캄캄한 밤이 그 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경에 기록된 방언 역시 소리는 같지만, 그 뜻이 다른 것이다.

성령이 임하셔서 제자들의 혀를 주장하여 서로 다른 방언(tongues), 곧 혀의 말을 하게 하셨는데, 그 방언이 유대인들의 귀에는 각자 자기들의 난 곳 방언(language)으로 통역돼 들려진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았을 때 말하는 방언은 ‘혀의 말’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하는 말’을 뜻한다.

그럼 이 방언은 어떤 것인가.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고전 14:2) 방언은 하나님께 영으로 비밀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영으로 하나님께 비밀을 말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로마서 8장 26~27절을 보면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말씀한다. 우리는 무엇을 구해야 할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 성령께서 우리의 그런 연약함을 도우셔서 우리를 위해 친히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해 주신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잠 21:2)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생각 또한 아신다.(롬 8:27) 아무도 몰라주는 나의 마음을 다 알아주시는 분이 있다고 생각해보라. 내가 무엇이 힘든지,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간구해 주신다고 생각해보라. 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가.

방언으로 기도하면 성령께서 나의 영으로 더불어 나의 사정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도록 간구해 주신다. 성령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을 말함으로써 우리는 영으로 하나님께 비밀을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토록 좋은 방언을 받고도 왜 방언으로 기도하지 않는 것인가.

초등학교 때 방언을 받았다는 어떤 분의 이야기다. 그는 방언을 받고 아무리 기도해도 자신이 무엇을 기도했는지 알지 못하겠더라고 한다. 그래서 ‘뜻도 알지 못하는 방언을 왜 해야 하는가’하는 생각에 더 이상 방언으로 기도하지 않았다고 한다. 몇 시간을 기도해도, 100일을 작정하고 기도해도 내가 무슨 기도를 했는지 모른다면 그 답답함이 오죽하랴.

하지만 성경에는 방언으로 기도할 때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고전 14:14~15)

입으로는 방언으로 기도하면서 마음으로는 바라는 바를 기도하면 영의 열매와 마음의 열매를 동시에 맺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 14:18)고 고백한다. 그러나 교회에서 남을 가르칠 때는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낫다(고전 14:19)고 한다.

남을 가르칠 때 방언으로 말하면 아무리 많이 말한들 알아듣는 사람이 있겠는가. 알아듣는 사람이 없기에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는 것을 감사한 사도 바울도 가르칠 때는 방언으로 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이경은 목사

정리=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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