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급법 위반 2897건인데… ‘상생 최우수기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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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9.09. 오전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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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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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성장위원회가 대·중소기업 간 상생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대기업에 부여한 ‘동반성장지수’와 이에 따른 혜택이 겉치레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동반성장지수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놓고 실제로는 협력업체에 갑질을 일삼다 적발된 대기업이 잇따라 발생해 제도 자체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다. 특히 동반성장지수에서 높은 등급을 받으면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면제나 국세청 모범납세자 우대 등 많은 정부 특혜를 받는 만큼 평가의 신뢰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제57차 동반성장위원회. /사진제공=동반성장위원회


◆상생 최우수 기업이 갑질

동반위는 국내 매출액 상위기업 중 사회적 관심에 따라 파급효과가 큰 기업을 해마다 확대 선정해 동반성장지수 최우수등급과 우수등급 기업에 공정위 직권조사 각각 2년, 1년을 면제한다. 이뿐만 아니라 정부 산하기관의 기술개발사업 참여를 우대하고 조달청의 공공입찰 시 참가자격 사전심사 가점을 부여한다. 최우수등급 기업은 국세청의 모범납세자 선정도 우대한다.

동반위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2010년 설립됐다. 비록 민간위원회지만 법적근거에 따라 설립된 만큼 공신력 있는 기관이다. 동반위가 지난 6월 발표한 ‘2018년도 동반성장지수’ 평가결과에 따르면 평가대상 189개 기업 중 ‘최우수’는 31개사, ‘우수’와 ‘양호’는 각각 64개사, 68개사를 기록했다. 이하 ‘보통’과 ‘미흡’은 각각 19개사, 7개사로 나타났다.

건설업계에서 최우수등급을 받은 기업은 대림산업·현대건설·현대엔지니어링·호반건설·GS건설·SK건설·KCC 등이다. 우수등급을 받은 건설사는 계룡건설·삼성물산 건설부문·삼성엔지니어링·신세계건설·포스코건설·한양·한화건설·효성중공업·KCC건설·LG하우시스 등이고 양호등급은 금호산업·대우건설·두산건설·롯데건설·부영주택·삼호·코오롱글로벌·태영건설·HDC현대산업개발 등이다.

그런데 공정위는 동반성장지수가 발표된 지 두달 뒤인 지난달 대림산업이 759개 협력업체에 대금과 어음 대체결제수수료를 지급하지 않고 하도급계약서를 늦게 발급하는 등의 불공정 하도급행위를 했다며 시정명령과 과징금 7억3500만원을 부과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대림산업은 하도급대금과 어음 대체결제수수료를 포함해 총 14억9595만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2015년 4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3년 동안 대림산업의 전체 하도급거래 3만~4만건 중 10% 가까운 2897건이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 인해 피해를 입은 협력업체는 759개에 달했다.

더구나 동반위는 지난해 건설업종의 동반성장지수 개선이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건설업종은 6개사가 최우수등급을 받아 2년 새 3배가 됐다. 특히 대림산업은 한번에 3단계가 상승해 보통에서 최우수등급으로 뛰었다.

대림산업은 이번 조사과정에서 지연된 수수료 등을 모두 지급하고 앞으로 하도급계약서 발급이 늦어지지 않도록 전자계약시스템을 개선할 방침이다.

◆유명무실한 동반성장지수?

높은 동반성장지수 등급을 받아놓고 실제로는 협력업체에 피해를 준 사례는 대림산업뿐만이 아니다. HDC현대산업개발도 올초 선급금과 하도급대금을 지연시켜 지연이자 및 어음 대체결제수수료 약 4억4820만원을 지급하지 않은 혐의로 시정명령과 과징금 6억3500만원을 고지받았다. HDC현대산업개발이 2014년 7월~2016년 4월 하도급대금 등을 지급하지 않은 협력업체는 158개에 달했다.

조배숙 민주평화당 의원에 따르면 2014~2018년 동반성장지수 평가대상 100개 대기업의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및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사항은 434건에 달했다. 코오롱글로벌 23건, 대우건설·현대건설 각각 20건, 대림산업·SK건설 각각 17건, HDC현대산업개발 16건, GS건설·포스코건설 각각 14건, 삼성물산 12건, 롯데건설 10건 등이다. SK건설은 3년 연속 동반성장지수 최우수등급을 받았다.

동반성장지수 평가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대기업의 공정거래협약 이행 결과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설문조사 대상은 195개 대기업의 1·2차 협력업체로 중소기업 1만4065개사 최고경영자(CEO)나 임원이다. 거래관계(40점), 협력관계(30점), 운영체계(30점) 등에 대해 6개월 동안 설문에 응답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대기업과 거래를 유지해야 하는 협력 중소기업에 불리하다는 지적이다. 대림산업의 경우 설문조사에서 특이사항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게 동반위의 설명이다. 동반위 관계자는 “설문조사를 난처해하는 기업이 많아서 답변이 가능한 곳만 골라 조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동반성장지수 설문조사의 평균점수는 79.3점으로 전년 대비 1.2점 하락했다. 2차 협력업체의 경우 평균 64.5점으로 전년 대비 1.7점 하락했다.

비난이 고조되자 동반위가 뒤늦게 동반성장지수 등급을 강등하는 사례도 잇따랐다. 2017년 2건, 지난해 4건 동반성장지수 등급이 강등됐다. 동반위는 대림산업의 경우 이달 초 회의를 열어 등급 강등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동반위는 지난해 법 위반 기업이 동반성장지수 상위등급을 받을 수 없도록 기준을 개정해 등급 강등요건을 강화한 바 있다.

◆우리도 노력하고 있다?

대림산업이 협력업체에 부당한 금품요구와 물품구매 강제 등의 갑질을 저질렀다는 의혹은 2017~2018년 국정감사를 통해서도 불거진 만큼 동반위와 공정위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동반성장은 논란의 여지가 남는다.

원청업체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하도급대금 등을 늦게 지급하고 현금 대신 어음으로 대체하는 방식은 부당한 금융이익을 얻는 불공정행위일 뿐 아니라 협력업체의 권익을 침해하는 대표적인 갑질이다.

건설사들도 고충을 토로한다. 협력업체와 소송을 진행 중인 대형건설사 고위관계자는 “그동안 관행으로 인정돼온 갑질문화를 없애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지만 관리감독의 범위가 한정된 데다 반대로 협력업체가 갑질을 일삼는 경우도 있고 고발창구가 많아지다 보니 대기업이 무턱대고 욕을 먹기도 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추석합본호(제608호·60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김노향 기자 merr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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