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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비앤비]
프랑스 노르망디에 살어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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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조쵸

공식

2019.04.23. 08:584,559 읽음

프랑스 파리에 한 달 가까이 머물던 중, 귀국을 앞두고 노르망디로 향했다. 노르망디는 파리에서 차로 약 두 시간 거리에 있는 한적한 바다마을이다. 어디서 들어봤음직한 이름 노르망디(Normandie). 그렇다. 한국전쟁에 인천상륙작전이 있었다면, 2차 세계대전 때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있었다. 독일 본토로 진격하기 위해 영미 연합군이 프랑스 북부 해안에 상륙한 것이다. 상륙 당시 상황이 얼마나 처참했는지는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도입 부분을 보면 대강 감이라도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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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포함해 총 다섯 명의 남녀 동료들이 머물 곳이 필요해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잡았다. 하루 숙박비는 약 30만 원 정도였는데, 다섯 명의 호텔 숙박비보단 더 나아 보였다. 사진에서 확인했던 저 푸른 초원 위의 그림 같은 집을 기대하며 노르망디로 출발했다.

캬. 도착해서 트렁크를 열고 짐을 꺼내려는데 막 이런 그림이 펼쳐진다. 성질 급해서 막 현기증 나시는 분들은 2분만 투자해서 그냥 아래 영상을 보시라.

[airbnb] Crazy fantastic awesome house in Normandie France 프랑스 노르망디의 죽여주는 에어비앤비 숙소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집

집도 집이거니와 집을 둘러싼 풍경이 너무 근사해 드론을 내릴 수 없었다.

문득 House보다 Home의 가치를 느낀다. 부동산으로 돈 좀 벌어보겠다고 우리는 아파트를 사고팔면서 제대로 된 Home의 개념이 사라지는 건 아닌가? 나중에 아이가 성장해 출가한 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정말로 '집'같은 집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려서부터 내가 뛰어놀고 추억이 서린 그런 집.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런 모습이라면?

어서 오렴

현관으로 들어서자마자 왼쪽엔 이렇게 주방이 있다. 여유롭고 쾌적하다. 어떠한 요리도 뚝딱 만들어 함께 식사할 수 있을 것 같다.

거실에 놓인 체스판. 어릴 땐 가끔 두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하는 거였더라? 비숍이랑 퀸만 생각난다.

그 뒤로는 오래돼 보이는 라켓이 놓여있다. 손때가 묻은 걸 보니 오래전에 실제 사용했던 라켓 같다. 테니스인가, 배드민턴인가?

1층 주방에 작은방이 하나 딸려 있고, 2층으로 올라가면 침실이 나온다. 여긴 내가 썼던 방. 호텔 방 부럽지 않을 정도로 넓고 쾌적하고 아늑했다.

닭 볏과 깔 맞춤을 한 듯한 빨강 벽이 인상적이었다. 저 닭은 실제 이 집에 사는 닭 같은데, 주인아주머니가 취미로 그림을 그려서 집 여기저기에 가축들을 그린 그림이 걸려있다.

저 때는 안 보였지만, 요 녀석도 그중 한 명이었던 것 같고.

집 안으로 들이치는 볕이 좋아 특히 해가 질 무렵의 황금빛은 저 닭을 더욱 찬란하게 만들었다.

낡은 옷장과 화장대엔 프랑스 어느 시골 마을의 오랜 시간이 묻어 있다.

창밖으론 초록 초록한 마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창을 통해 평온을 확인하고 즐겼으리라.

마당 너머론 저 멀리 바다가 보인다. 호수처럼 고요한 바다는 평온에 평화를 더한다. 다시는 상륙 작전 같은 거 여기서 하지 말라는 듯이.

샤워실. 내가 좋아하는 건식 바닥이다. 나중에 집 지으면 나도 꼭 이렇게. 북마크.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곳. 이곳에서 난 또 다른 평화를 맛보았다.

다른 침실. 아마도 어린이가 썼던 것으로 보인다.

아기 침대도 있어서 어린아이가 있는 여행객이 와도 걱정 없다. 아이가 있다면 이런 집에서 며칠 머물다 가길 권한다. 꼭 어딜 돌아다니지 않아도 색다른 경험과 생각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

트윈 베드가 놓인 침실. 어느 침실이나 창으로 들어오는 빛과 싱그러움이 너무 감사하다.

2층에서 이렇게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이 집의 하이라이트가 나온다.

바로 다락방. 펜트하우스다.

테이블 풋볼이라고 부르는 푸스볼은 한 번 재미 들이면 쉽게 헤어 나올 수 없다.

모험을 꿈꿀 수 있는 곳. 보물 지도를 펼쳐놓고 위험한 여행을 구상 중인 모험 꾸러기들만 앉아 있으면 딱이겠다. 우린 이곳에서 밤새 술을 마시며 어른들의 모험을 그렸다.

열어보진 않았다. 누군가의 보물 상자일지도 모르니. 집 어딘가에 나만의 보물 상자 한두 개쯤은 있지 않은가?

없던 글솜씨도 마구 샘솟을 것 같은 책상. 내가 꿈꾸는 작업 공간이다.

체력 단련도 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이다. 샌드백이란 걸 처음 쳐봤는데 생각보다 딱딱하더라. 그런데 치다 보니까 재밌다. 체력 단련보다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딱.

노르망디는 칼바도스로 유명하다. 코냑이 프랑스 코냐크 지역에서 포도로 만든 브랜디라면 칼바도스는 노르망디 지역에서 사과로 만든 브랜디다. 노르망디는 토양이 거칠고 바람이 많이 불어 포도 재배에 적합하지 않은데, 대신 사과가 많이 난다. 초원의 말들이 땅에 떨어진 사과를 그냥 씹어 먹고 다닌다. 칼바도스는 마트에 가면 다양하게 흔히 구할 수 있다. 맛은 깔끔한 편이고, 숙성 기간에 따라 풍미가 달라진다. 우리가 묵고 있던 이 집주인도 칼바도스 농장을 운영 중이다.

마트에서 사온 칼바도스도 떨어지고, 소주도 떨어지자 우린 옆집에 살고 있는 이곳 집주인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이 집에서 담근 칼바도스의 맛이 궁금했다.

집에 몇 병 보관하고 있을지도 몰라

우리의 예상대로 그 집엔 칼바도스가 있었다. 많았다. 집에 갈 땐 한 병씩 더 사가기도 했다. 그리고 마트에서 파는 거랑은 맛의 수준이 달랐다.

이 농장 홈페이지다. 더 자세한 정보를 원하시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역시 술은 오래 익을수록 진하다. 진해야 맛있다. 한 모금만으로도 온몸이 감탄한다.

우리의 만찬은 계속 이어졌고, 그렇게 아침을 맞이했다.

따뜻한 커피로 노곤한 몸을 달랬다. 맑은 아침 햇살 덕에 그냥 툭 찍어도 이런 사진이 나온다. 참고로 여기에 올린 모든 사진은 갤럭시 S9으로 찍었다. 사진에 빛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

술병에 이 집 헛간의 풍경이 그대로 담겨있다.

이 그림도 주인아주머니가 직접 그렸으려나?

일 때문에 노르망디에 와서 물론 일을 했지만, 이 집에서는 휴양했다. 그 어느 멋진 리조트와 호텔에서도 누릴 수 없는 귀한 휴식을 얻었다. 무엇보다 이 집으로 파고드는 빛, 그 빛이 너무 좋았다. 보기에도, 몸으로 맞이하기에도. 내 살갗에 부딪혀 파르르 흩어지던 그 햇살을 난 아직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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