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수입 의존하는 탄소섬유, 文야심작 수소차 발목 잡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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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7.28. 오전 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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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한국은 수소연료 저장용기의 핵심소재인 탄소섬유를 일본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지난 1월 울산에서 열린 '수소경제 전략보고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일본의 무역보복이 장기화하면서 이른바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심사 우대국가) 배제가 현실화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의 주력산업인 반도체·디스플레이에 이어 다음 타깃은 자동차 분야가 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자동차 분야에서 일본 수입 의존도가 높은 소재는 탄소섬유(CFRP)다. 물량이 많지는 않지만 현대자동차그룹이 미래 먹거리로 공을 들이는 수소전기차의 핵심부품 소재다. 불안정한 기체인 수소연료를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수소전기차에는 탄소섬유로 만든 저장용기가 들어가는데 전량 일본에서 수입한다.

문재인 정부가 핵심 미래산업으로 꼽는 수소경제 역시 탄소섬유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수소충전소용 저장용기 역시 탄소섬유로 만들기 때문이다. 일본이 탄소섬유 수출 제한에 나서면 한국 수소경제와 수소전기차는 타격을 입게 될까.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팩트체크를 했다.

전문가, “6개월이면 대체 가능”

결론부터 얘기하면 당장 큰 피해는 없을 것이란 게 업계와 전문가의 분석이다. 현대자동차의 수소전기차 넥쏘에 들어가는 수소연료 저장용기는 국내 기업인 일진복합소재에서 만든다. 이 용기의 소재인 고강도 탄소섬유는 전량 일본업체가 공급한다.
현대자동차의 수소전기차 넥쏘에 들어가는 수소저장용기(왼쪽). 일진복합소재가 일본 도레이의 탄소섬유를 공급받아 생산한다. [사진 현대자동차, 일진복합소재]
엄밀하게 따지면 일본 화학업체 도레이의 국내 투자법인인 도레이첨단소재 구미공장에서 생산하는데, 핵심 중간재인 프리커서(Precursor·원료섬유)는 일본에서 들여오고 국내에선 이를 탄화(炭化)해 탄소섬유를 생산한다.

일본이 프리커서 수출을 중단할지는 알 수 없다. 탄소섬유는 전략물자에 속하지만 중간재인 프리커서는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전략물자 생산에 필요한 원료와 설비가 전략물자로 간주될 가능성은 크다.

도레이첨단소재가 탄소섬유 공급을 중단하면 대체재를 찾는 수밖에 없다. 일진복합소재는 지난해부터 현대자동차, 국내 탄소섬유 생산업체인 효성첨단소재 등과 대체재 연구를 진행해 왔다. 현대차 측은 “이미 대체재 연구가 거의 끝난 상태여서 인증 절차만 밟으면 당장에라도 국산 제품을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대자동차의 수소전기차 넥쏘에는 일본 도레이가 공급하는 탄소섬유로 제작한 수소연료 저장용기가 장착돼 있다. [사진 현대자동차]
이르면 8월 초로 예상되는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발표에 맞춰 바로 대체재 생산이 가능한 건 아니다. 인증 절차에만 최소 6개월이 걸리고, 대체재의 물성(物性) 시험과 양산 테스트 등이 뒤따라야 한다. 국내에선 가스안전공사가 국제인증기관이며, 고강도 탄소섬유의 총격(銃擊)실험은 미국에서 받아야 한다.

기술격차 아직은 크다

탄소섬유는 탄소원자가 결합한 무기섬유다. 강도와 탄성에 따라 스포츠·레저용, 산업용, 우주·항공소재 등으로 널리 쓰이지만, 한국은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연구·생산을 진행해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기술 격차가 있는 편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수소연료 저장용기로 사용되는 탄소섬유는 고강도 제품군에 속한다. 강도가 5~5.5㎬이면서 탄성률은 200~230㎬가량 돼야 한다. 단단하면서도 가볍고 변형이 작아야 한다는 의미다. 국산 고강도 탄소섬유는 이미 일본 제품에 견줘 손색이 없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탄소업계 관계자는 “국산 고강도 탄소섬유는 인장강도에서 일제와 차이가 없고 무게만 조금 더 나간다”며 “충분히 대체가 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강도 6㎬ 이상의 초고강도 제품이나 탄성률 350㎬ 이상인 고탄성 제품은 아직 개발하지 못했다. 우주·항공 분야나 군사용, 골프채 샤프트, 낚싯대 등에 사용하는 탄소섬유다. 효성첨단소재 관계자는 “수소연료 저장용기 등 자동차 관련 분야는 지금 당장 적용과 양산이 가능하다”며 “초고강도·고탄성 제품은 현재 개발 중이지만 기술은 충분히 마련돼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문제는 시장 장악력이다. 일본의 도레이·토호·미쓰비시레이온 등 3개사는 세계 탄소섬유 생산량의 66%를 차지한다. 지난해 무역위원회 연구용역으로 발간된 산업경쟁력조사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탄소섬유 분야에서 일본의 종합경쟁력을 97로 봤을 때 미국과 독일이 89, 한국은 75를 기록했다. 저가 범용 제품에서 중국이 치고 올라오면서 중국의 종합경쟁력은 72로 한국을 바짝 뒤쫓고 있다.

탄소섬유 같은 첨단소재의 경우 검증된 제품을 계속 공급받기 때문에 새로 시장에 진입하는 업체가 경쟁력을 갖기 쉽지 않다. 일본이 시장 장악력을 무기로 국산 제품을 견제할 경우 좋은 제품을 갖고도 판로를 찾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미래 차에는 가벼우면서도 단단한 탄소섬유가 대거 사용될 전망이다. 현대차그룹은 탄소섬유 확보를 위해 다양한 협력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왼쪽)이 사우디 아람코 아민 H. 나세르 사장과 수소에너지 및 탄소섬유 소재 개발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 현대자동차]
경쟁력 강화 기회로 삼아야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일본의 탄소섬유 수출제한 조치가 취해진다 해서 당장 큰 타격을 입는 건 아니다. 인증과 양산 등에 6개월가량 걸리지만 수소전기차나 수소충전소 물량이 아직 많지 않고 재고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향후 고부가 시장으로 성장할 탄소섬유 등 소재 분야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조언이다. 국내 탄소섬유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방윤혁 한국탄소융합기술원장은 “지난 10여년 동안 열심히 노력한 결과 한국의 탄소섬유 기술은 선진국을 거의 따라잡았다”며 “이번 기회에 산업의 기반 경쟁력이 되는 소재 분야 투자를 늘려야 미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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