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업체 배 불리는 학생부종합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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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정원의 20% 이상 선발

비교과 영역 많아 준비 어려워

200만원짜리 소논문 작성 지도

전략적 독서ㆍ동아리활동 관리 등

불안 심리 파고든 학원들 성업
노량진의 한 대입전문학원에서 수험생들이 수업을 하고 있다. 고영권기자 youngkoh@hk.co.kr

학부모 한모(50)씨는 최근 “소논문을 준비해야 하는데 방법을 도통 모르겠다”는 고교 2학년 딸의 하소연에 주변을 수소문해 서울 대치동의 한 입시컨설팅 학원을 추천 받았다. 딸이 생명공학 계열 진학을 희망한다고 하자 학원장은 대뜸 “이게 지난해 사립 명문 Y대에 입학한 학생이 고교시절 작성했던 소논문”이라며 소논문과 합격생 명단을 들이밀었다. 그는 이어 “회당 50만원에 최소 4,5회 교육을 받아야 틀을 완성할 수 있다. 1대1로 꼼꼼하게 지도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득했다. 한씨는 7일 “수강비가 예상보다 부담스러운 수준이었지만 요즘엔 내신 1,2등급도 대학에 떨어진다고 들어서 솔직히 고민이 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종합전형, 이른바 ‘학종’이 대학입시의 필수 자격이 되면서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사교육업체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학종은 대학수학능력시험 위주의 입시 병폐를 해소하고 학생의 소질, 가능성 등을 다각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2007년‘입학사정관제’라는 이름으로 도입됐다. 2010년 90개 대학이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가 2018학년도엔 204개 대학에서 전체 대입 정원의 23.7%를 학종으로 선발할 만큼 급격히 비중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사교육 의존도를 낮추고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본래 취지와 달리 정규 교육과정을 통해 전형 준비가 쉽지 않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사교육업체들이 학부모들의 불안 심리를 빠르게 파고 들고 있다.

이름도 생소한 ‘R&E(과제연구)’는 학부모들이 학종에 대비해 가장 많이 찾는 사교육 분야다. 주로 특수목적고와 자립형사립고가 시행해 온 연구 및 소논문 작성이 학종에서 경쟁력 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최근 1~2년 사이 일반고에서도 ‘필수 스펙’으로 자리잡았다. 이런 분위기를 틈 타 ‘컨설팅’ ‘연구소’ 등의 간판을 내건 학원들이 서울 강남에만 수십 곳이 성업 중이다.

강남구의 A입시컨설팅 업체에 고교 2학년 학부모를 가장해 상담을 문의하자 “왜 이렇게 늦었느냐. 요즘엔 고교 입학과 동시에 준비해야 한다”는 질책이 먼저 나왔다. 업체 측이 매주 주말 2시간씩, 5회에 걸쳐 주제 선정과 자료조사, 논문작성 방법 등을 알려준다며 제시한 가격은 200만원. 상담원은 “박사급 전문가들이 지도하기 때문에 절대 비싼 가격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일부 업체에서는 같은 코스에 300만원을 요구하기도 했다.



독서활동도 관리 대상이다. 독서활동과 자기소개서 작성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S컨설팅 업체 대표는 “독서라고 아무 책이나 읽어서는 안 된다. 목표하는 대학, 학과에 적합한 책을 골라 전략을 잘 짜야 면접에서 고득점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동아리활동을 위해 학원을 찾기도 한다. 학종에서는 동아리활동 역시 지원자의 잠재능력 평가와 연계돼 소홀히 할 수 없는 탓이다. 법대 진학을 고려 중인 신모(18)양은 “학교에서 정책제안 자율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는데 토론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학생부에 기재되기 때문에 주말마다 토론학원을 다닌다”고 말했다. 경제이해력검증시험이나 한국어능력시험 수상경력 등 외부 스펙은 원칙적으로 학생부 기록이 금지돼 있지만 학원들은 자기소개서에 녹여 쓰는 방식으로 편법이 가능하다며 수험생들을 유혹한다.

이처럼 학종의 맹점은 소논문, 독서활동과 같은 비교과 영역의 평가비중이 크다는 점이다. 일선 학교에서는 맞춤형 대비가 쉽지 않아 자연스럽게 학교 밖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인천의 한 일반고 교사 신모(38)씨는 “고교 교육내용을 충실히 반영하겠다는 학종의 취지를 반대하는 교사는 없다”면서도 “다만 교사 한 명이 수업을 하면서 전형이 요구하는 소논문까지 일일이 지도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사교육 의존도를 높이는 학종의 부작용이 커진 만큼 대학들이 먼저 비교과 영역 평가 비중을 줄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상진 사교육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부소장은 “R&E와 자율동아리 등에서 부담을 호소하는 수험생이 많은 점을 감안해 각 대학이 평가 요소를 명확히 제시하고 비교과보다 교과 중심으로 전형을 새롭게 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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