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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3장. 차이나 게이트(3/5)...패를 쥔 홍준표

3장. 차이나 게이트(3/5)...패를 쥔 홍준표2018.01.21.

다음날 아침. 시청역 5번 출구 계단을 오르는 대한일보 조상룡 기자의 핸드폰이 울린다. 100돌이들과 전날밤 기수 대면식에서 마신 사발식 술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다. 2020년 창간 100주년을 맞아 들어온 신입기자 15명을 회사에선 100돌이라고 불렀다. 핸드폰을 귀에 대자 머리가 지끈거린다. 수신 아이콘을 클릭하자 화통이 터진다. 데스크 곽도운 부장이다. 주승우 기사 봤어? 무슨 기사요? 조상룡의 대답이 화통의 볼륨을 높인다. 야 임마. 너 주승우하고 대학동기 맞아? 명색이 대한일보 기자란 놈이 어떻게 족보도 없는 인터넷 기자에게 매번 물을 먹냐. 피부 미인 되시겄다. 물 많이 쳐드셔서. 무슨 기사에요? 물 먹은 걸 갖고 뭘 대학 족보까지 따지세요. 꼴에 존심은. '차이나 게이트' 바로 확인해서 보고해. '중국산 지하철 수입의 전모...1조 규모 차이나 게이트' 청사 앞이에요. 바로 들어... 곽 부장은 이미 전화를 끊어버렸다. 쓰벌. 어쩐지 꿈자리가 뒤숭숭하더니만. 떡이 진 머리를 긁적인다. 서울시 본청 기자실은 주승우가 쓴 차이나 게이트로 발칵 뒤집힌 상태였다. 조 기자. 주승우 기사 봤어? 아 씨발, 본청이고 교통공사고 대변인들 확인이 안돼. 석간 경제지 트리뷴의 이비지 기자였다. 10년 동안 서울시 기자실에 또아리를 틀고 짱박이 노릇을 하는 왕고참이다. 오면서 핸드폰으로 봤어요. 시끄럽겠는데요. 조상룡 기자가 노트북을 켜면서 이비지 기자를 흘끗 본다. 병신 대변인실을 다그치면 확인이 되냐? 그런 기사면 이미 기사가 났어도 여러번 났지. 속말인지 겉말인지 숙취 때문에 조상룡 자신도 헷갈리는 데 이비지가 조상룡쪽을 힐끗 본다. 주승우 기사의 핵심은 1조원 어치 중국산 지하철 수입이 사실은 매매계약이 아니라 임대였다는 점, 계약내용이 중국 쪽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불평등 계약었다는 점, 그 과정에서 돈세탁을 위해 서울중차그룹이란 페이커컴퍼니가 설립됐다는 점 등이었다. 박원순 시장 주재로 긴급대책회의가 진행중이란 점을 감안할 때 서울시와 관련 실국장은 물론 강태석 사장을 비롯한 교통공사의 관계자들도 모두 회의에 참석중일 것이 뻔했다. 조상룡은 어차피 그들과의 전화 연결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조상룡이 핸드폰 연락처 목록에서 누른 이름은 주승우였다. 어 상룡아. 마치 조상룡의 전화를 기다렸다는 듯 주승우는 두 번째 통화벨이 채 울리기 전에 전화를 받았다. 또 한 건 했네. 어제 박완수 의원 전화번호 물어본 게 이 것하고 관련이 있는건가? 어쩌다 보니. 인사는 나중에 하고. 짐작하겠지만 지금 좀 바빠서. 그대로 받아도 무방하지? 조상룡은 단도직입적으로 기사를 받아쓰겠다고 말한 것이다. 같은 기자끼리 더구나 대학동기에게 자존심이 상하는 문제였지만 일단 독자들에게 사안을 알리는 게 중요했다. 조상룡이 그런 기자란 걸 주승우도 잘 알고 있었다. 주승우와 조상룡은 경제학과 학회인 세계경제학회 멤버였다. 아시아개발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였던 이중화 선배가 92년 교수 임용 직후 만든 학회로 역사는 짧았지만 경제부총리까지 배출한 제법 영향력 있는 학회다. 2학년 멤버가 신입생 중에 한명씩을 추천하는 형태로 매년 신규 멤버 두명을 뽑았는데 10학번 중에선 147명 동기들 중에 주승우와 조상룡이 낙점 됐다. 주승우가 인디밴드 활동에 빠져서 학회에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가끔씩 논쟁을 하는 주승우의 모습에서 조상룡은 정체모를 자괴감 같은 것을 느끼고는 했다. 물론. 대한일보에서 써주면 기삿발 받고 좋지. 홍준표 대표가 방아쇠를 당길 지 고민하는 중인 것 같은데 네가 결정을 좀 앞당겨줘야겠다. 홍준표는 또 무슨 얘기야? 그건 기사가 나가면 알게될꺼야. 이번 건이 마무리 되면 동기끼리 소주한잔 하자. 홍준표란 이름이 언급되자 조상룡은 서둘러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대한일보가 차이나 게이트를 후속보도하자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물론 연합뉴스 등 통신까지 잇따라 온라인에 속보를 타전했다. 서울중차그룹이란 페이퍼컴퍼니의 존재 확인만으로도 데스크들의 독촉 전화를 더 이상 버텨낼 맷집이 기자들에겐 없었다. 종합지에 이어 주요 경제지와 인터넷 매체들의 기사가 온라인에 뜨는 데는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어 국회 출입기자들의 핸드폰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긴급 기자회견을 알리는 메시지가 떴다. 전날 점심 시간 아까야 주차장. 이테라에게 줄 초밥 도시락을 챙기면서 주승우는 대한일보 조상룡 기자에게 자유한국당 박완수 의원의 핸드폰 번호를 입수했다. 박완수 의원은 현대로템 공장이 있는 창원 의창구가 지역구다. 박 의원 입장에서 박원순 시장의 중국산 지하철 수입은 3천여명에 달하는 현대로템 직원들과 그 가족들의 표심을 이탈시키는 악재였다. 국내 지하철 전동차는 사실상 현대로템으 독점 체제였기 때문이다. 5천표 정도면 당락을 결정짓기엔 충분한 표수다. 재선 과정에서 박 의원이 고전했던 유일한 이유였다. 주승우가 이테라에게 말한 프레임 전환은 궁극적으로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를 염두해둔 것이었다. 여당의 유력 대선 경쟁자인 박원순 시장을 게이트란 폭풍에 몰아넣을 수도 있는 지하철 전동차 국제입찰 비리 사건이 꽃을 피우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토양은 바로 홍준표의 손에 있었다. 문제는 어떻게 관련 서류들을 홍준표의 손에 쥐어주는가였다. 문자가 왔네요. 문자라뇨? 방아쇠를 당겨줄 사람요. 국회의원이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인터넷 매체 기자의 면담요청에 응할 리 만무했다.전화를 걸어봤자 모르는 번호를 받지 않을 게 뻔했다. 주승우는 임대계약서 사본 사진을 찍어 박완수 의원의 문자로 보냈다. 주승우가 사진과 함께 보낸 판세와 관계의 전환-주승우란 열한자의 문자를 본 박완수 의원은 주승우가 깔아놓은 레일 위에 바퀴를 올렸다. 만납시다. 박완수 의원의 답문자였다. 주승우의 메시지를 받은 박완수 의원은 십여분이란 짧은 시간 동안 주승우의 정체를 조사했다. 보좌관들은 일단 인터넷 검색에서 주승우 기자란 존재를 확인하고 국회 사무처 기자실 담당을 통해 출입기자 등록 여부를 알아봤다. 인터넷 매체 기자로 출입기자 등록 언론사는 아니지만 메일링 서비스로 연결돼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보좌진으로부터 과거 기사 스크랩을 받아본 박완수 의원은 중국산 지하철 관련 주승우의 잇따른 단독보도 기사를 읽어본 뒤 주승우를 만나기로 결심했다. 특히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던 전직 대통령 비자금 창구 기사의 주인공이 바로 주승우란 사실이 박완수 의원의 관심을 끌었다. 상대의 적은 나의 편이다. 이이제이군요. 설명을 들은 이테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도한이 주승우에게 전달한 노란봉투는 정치권에 흘러들어갈 경우 2022년 대선 판도를 일시에 뒤흔들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것이었다. 주승우의 말대로 박완수 의원은 도화선에 불을 당기기에 최적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 서류들이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손에 들어가도록 하는데 박완수 의원이 역할을 할 것입니다. 박완수 의원이 불을 당길 적임자라면 홍준표는 노랑봉투의 폭발력을 배가시킬 주인공이다. 홍준표는 2017년 5월 대선에 출마해 22%에 달하는 보수층의 지지를 끌어낸 인물이다.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에게 패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홍 대표가 출마를 결심한 건 당대표를 향한 경유지로 2017년 대선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승부사가 여당의 유력 대선 후보를 게이트의 구덩이로 몰아 넣을 수 있는 패감을 어떻게 활용할 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주승우가 박완수 의원에게 보낸 판세와 관계의 전환이란 문자 중 판세는 바로 홍준표를 향한 메시지였다. 관계는 박완수 의원과 홍준표 대표간에 형성된 미묘한 분위기를 간파한 주승우의 승부수였다. 홍준표 대표가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한 때 정적이었던 박완수 의원의 경남지사 출마를 권한 건 경남의 수성이 그만큼 절실하다는 정치적 계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박완수 의원이 홍 대표의 권유를 묵살하면서 당시 지방선거에서 한국당이 상당한 고전을 치렀었다. 박완수 의원에게 주승우가 건낼 노랑봉투는 홍준표 대표와의 관계를 복원할 카드인 셈이다. 주승우의 의도를 알아챈 이테라도 더 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았다. 어떻게 하실꺼에요? 만나야죠. 마침 정기국감 시즌이 임박해 서울에 올라와 있다고 합니다. 여의도로 갈 겁니다. 곧바로 홍준표 대표까지 봐야할 수도 있으니까요. 조금만 돌면 수사대에 가는 길이니 태워다 드릴께요. 시계를 보는 이테라. 건강검진 차 인근 성모병원에 들른 한송희 박사와 만나기로 한 약속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지하철로 갑니다. 점심시간이라 올림픽대로가 제법 막힐 겁니다. 이테라가 차의 시동을 걸자 주승우가 당황하며 핸들을 잡은 이테라의 손을 당긴다. 지하철로 간다니까요. 식은 땀을 흘린다. 알았어요. 지하철 입구에 세워드릴께요. 천천히 출발한다. 아뇨. 차 세워요. 소리를 지르는 주승우. 이테라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는다. 끽... 노면에 차가 밀리는 소리가 찢어지며 주차장에 퍼진다. 급하게 차에서 내리는 주승우. 몸을 숙이고 심호흡을 한다. 땅방울이 안경 렌즈에 떨어진다. 어디 안좋으세요? 차에서 내린 이테라가 주승우의 앞에 섰다. 몸을 세우는 주승우의 얼굴이 노랗다. 아뇨 괜찮습... 이테라의 얼굴이 주숭우의 시야에서 서서히 사라진다. 아까야 빨강 벽돌과 검은 기와 지붕이 회오리를 치며 뒤섞인다. 아늑히 빨려들어간다. 잠시후 강남 성모병원 진찰실. 쓰러진 주승우를 태우고 이테라는 인근 성모병원으로 달려왔다. 건강검진 후 만나기로 했던 한송희 박사가 이테라의 전화를 받고 동기인 응급의학과 신강철 박사를 긴급히 호출했다. 엑스레이와 MRI 촬영을 마친 주승우를 응급실에 눕혀놓고 이테라는 한송희 박사와 신강철 박사의 진찰 결과를 듣고 있다. 쇼크로 정신을 잠깐 잃은 것 같아. MRI나 엑스레이 상으로는 특별한 이상은 없고. 신강철 박사의 설명을 따라 한송희 박사와 이테라의 시선은 주승우의 MRI와 엑스레이 사진을 교차한다. 사진 속에 마치 뼈를 바느질 한 것처럼 수십개의 철심이 박혀 있다. 광대뼈와 턱뼈는 좌우 대칭이 맞지 않고 찢어진 지폐 조각들을 다시 꿰맞춘 듯한 이음새들이 지하도시의 거대한 수로처럼 얼굴 전체에 퍼져있다. 큰 사고를 당했었던 모양이네. 이 정도면 정상인들처럼 활동 하기는 불가능했을텐데. 한송희 박사의 말에 신강철 박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엑스레이에 고정됐던 한송희 박사의 시선이 이테라를 향한다. 남자친구니? 아뇨. 최근 수사건 때문에 알게된 기자에요. 그러고 보니 전혀 몰랐었다. 일주일 전에 지정선 위원장 살해현장에서 처음 만나 그동안 서너번 부딪히고 만나기는 했지만 주승우 기자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그의 이름이 전부였다. 감정이라는 게 한칸한칸 계단을 오르듯 고조되는 것만은 아닌가보다. 이테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웃는 것조차 힘들꺼야. 신강철 박사의 말은 이테라의 가슴에 박혀 있던 의문하나를 긁어냈다. 짧은 인연과 스치는 듯한 몇번의 만남이 전부였지만 이테라는 자신을 바라보는 주승우의 얼굴에 아무런 표정이 없다는 게 왠지 서운했다. 그의 시선을 타고 전해지는 따뜻한 감정이 그의 표정에선 매번 싸늘하게 식어버렸기 때문이다. 이테라는 고개를 저었다. 한 사람의 아픈 과거가 자신에겐 위안이 되는 이 순간이 싫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응급실 침대위에 누운 주승우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테라는 생각에 잠겼다. 차의 시동을 거는 순간 쇼크를 받았다면 과거의 아픈 상처는 분명 교통사고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이테라는 추측했다. 이테라의 생각이 꼬리른 무는 사이 주승우는 3년전 악몽의 심연속으로 다시 빠져들고 있었다. 빗줄기가 내리치는 도로위의 차안에서 벌였던 부진과의 말다툼. 차 문을 열고 뛰어내리려는 자신을 잡는 부진과 섬광. 그리고 세상을 둘로 쪼개는 듯한 충격음.... 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과거의 심연에서 주승우는 현실로 돌아왔다. 현실의 문을 여는 순간 주승우가 마주 친 건 자신을 지켜보는 이테라의 얼굴이다. 부진의 얼굴과 이테라의 얼굴이 여러번 교차되다 이테라가 또렷이 나타난다. 식은 땀이 흐르는 주승우의 얼굴을 보면서 이테라는 주머니 속에서 움켜쥐었던 손수건을 꺼내지 못했다. 무엇인지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주승우의 과거 상처를 자신이 건들게 될까봐 겁이 났던 것 같다. 제가 왜 여기... 깨질 듯한 머리를 움켜쥐고 주승우는 잠시 전 아까야 주차장에서의 장면을 떠올렸다. 검붉은 회오리에 휘말려 쓰러진 뒤 3년전 교통사고의 악몽의 순간으로 빠져들었던 자신이 2020년 현재로 돌아온 건 세시간 정도가 지난 뒤였다. 교통사고 직후 의식불명 상태로 침대에서 보낸 석달보다 이 세시간이 더 길게 느껴지는 건 자신이 반드시 깨어나야할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지금 자신의 앞에 서 있다. 지금 몇 시인가요? 제가 얼마나 누워있었던 건지. 정신을 차린 주승우는 불현듯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박완수 의원을 생각했다. 어쩌면 역사를 바꿀 수도 있을 순간 앞에서 과거의 악몽에 무너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서너시간 의식이 없었어요. 계속 문자가 오던데 아무래도 박완수 의원일 듯 해요. 주승우는 이미 신을 신고 있었다. 이테라도 주승우를 말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이라도 지금 이 순간 병원 침대에 누워 시간을 허송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테라는 태워 주겠다는 말이 나올 뻔 한 것을 애써 참았다. 응급실을 나서는 주승우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한 자리에 서 있었다. 그 밖에는 할 수 있는게 무엇인지 그 순간 떠오르지 않았다. 병원문을 나선 주승우는 박완수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급한 목소리의 박 의원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줄곧 주승우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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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이 소설은 2020년 미래의 이야기다. 따라서 모든 스토리는 허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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