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은 가장 먼저 정 교수와 김 차장의 관계가 '일반적인 PB와 고객' 관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김 차장이 정 교수를 도운 행위에 대해서도 '프라이빗뱅커(PB)의 일상적인 일'이라는 식으로 설명했다.
이 녹취록을 들은 이종우 이코노미스트는 "(PB와 고객은)서로 친밀감이 많이 생기니까 금융 관련 부분을 도와주게 되고 좀 더 들어가게 되면 일상적인 부분까지 도움을 주고받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방송에서 패널들이 'PB 업무의 일반성'을 강조하며 대화하던 와중에 정작 중요한 사실은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김 차장이 정 교수 지시로 조 장관 서재에 있는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직접 교체했고, 한밤중 서울에서 경북 영주의 동양대까지 직접 운전하고 가 정 교수 연구실의 컴퓨터를 반출했다는 점이다. 김 차장은 이 때문에 증거인멸 피의자 신분이 됐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우리도 고객에게 서비스를 많이 해주지만 중요한 건 김 차장이 정 교수에 제공한 행동이 금융 투자 등 본업과 다르다는 데 있다"며 "다양한 혐의를 받았던 고객(정 교수가)을 위해 휴일에 운전하고 가서 컴퓨터를 반출한다든지, 자택 컴퓨터 하드를 직접 교체하는 등의 일은 일반적인 PB가 일반적인 고객을 위해 할 수 있는 업무가 아니다"고 말했다.
노무현재단이 영상 댓글로 정리한 시간대별 인터뷰 목록을 보면, 전체 12개 질문 중 5개(약 42%)가 사모펀드 관련 질문이다. 방송은 김 차장 발언을 빌려 사모펀드를 규정한다. 유 이사장이 "김경록씨가 '조범동(조 장관 5촌조카)이 사기꾼이라고 보면 그림이 되게 단순해진다'고 얘기를 했다"고 말하는 식이다.
실제 정 교수는 당시 김 차장이 판단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방식으로 코링크PE에 연관돼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정 교수는 2017년 11월 블루코어밸류업1호 펀드에 총 74억5500만원을 약정하고 10억5000만원을 납입했으며, 2017년 2월엔 동생 정모씨에게 'KoLiEq'라는 문구와 함께 3억원을 송금했다. 동생 정씨는 코링크PE로부터 경영자문료 명목으로 2017년 3월부터 2018년 9월까지 매달 860여만원씩 총 1억5790여만원을 받았고 정 교수도 2018년 12월부터 지난 6월까지 WFM으로부터 매달 200만원씩 총 1400만원을 수령했다.
김 차장은 증거인멸 혐의를 받는 피의자다. 김 차장 본인도 증거인멸의 구체적인 행동을 전부 인정하고 진작부터 검찰 수사에 협조하고 있다. 방송은 김 차장의 증거인멸 혐의 관련 언급을 하면서 여러차례 '말이 꼬인' 장면을 보여준다.
김 차장은 녹취록에서 자신의 증거인멸 행위 고의성을 적극 설명한다. 김 차장은 정 교수와 동양대에 내려간 데 대해 "당연히 검찰이 유리한 거는 빼고 불리한 것만 내서 뭔가 할 거라고 생각을 했다"며 "거기서 뭔가 빠져나올 수 없는 늪에 걸린 거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검찰에 PC를 제출한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도 "약간 감이 없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유 이사장도 억울한 김 차장 입장을 대변하려다보니 오히려 정 교수의 교사 혐의를 인정하는 설명을 늘어놓게 됐다. 유 이사장은 방송에서 "(정 교수가)김경록씨를 시켜서 컴퓨터를 반출해오고 집에 있던 하드디스크 드라이버 두개를 빼서 좀 갖고 있으라고 하고, 다 끝나고 나면 다시 달아달라고 부탁했던 거, 그걸 들어준 것 때문에 이 사람이 증거인멸죄 적용을 받는 피의자가 돼 있다"고 말했다.
김 차장은 기자들이 사실을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패턴(기사)이 다 똑같다. 첫 번째 쓴 사람이 (조 장관이 '아내를 도와줘서 고맙다'고 했다는) 기사를 쓰면 두번째, 세번째는 그걸 아예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기사를 쓰는데, 나중에 되니까 'PC 교체해줘서 고맙다'라고 기사가 그렇게 돼 버리더라"고 말하면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9일 국내 포털, 해외 검색 사이트 등에 올라온 관련 기사를 모두 검색해본 결과 그 어느 기사도 조 장관이 "PC 교체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는 식으로 쓰지 않았다.
김 차장이 지적한 '패턴'은 오히려 유 이사장이 곧바로 보여준다. 유 이사장은 김 차장의 발언을 해설하는 과정에서 "서너단계 거치다보면 '증거인멸 도와줘서 고맙다' 이런 기사가 나가는 거예요" 라고 말했다. 사실에도 맞지 않는 김 차장의 'PC 교체해줘서' 발언은 불과 2분여만에 유 이사장에 의해 '증거인멸 도와줘서'로 바뀌었다.
유 이사장은 언론이 기사를 만드는 방식이 "소름끼친다"고 말했다. 조 장관이 김 차장에게 "아내를 도와줘서 고맙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다룬 언론 보도에 대해 "조국은 늘 '고맙습니다'라고 얘기했다. 그때(28일)도 그렇게 인사했다고 진술했는데 '증거인멸하던 날, 조국과 마주쳐, 조국이 고맙다고 인사 건네' 이게 키워드가 돼서 나갔다"고 말하면서다.
하지만 정작 소름이 끼쳐야 하는 건 알려진 팩트가 그뿐이라는 사실이다. 김 차장이 조 장관 자택 서재에서 하드디스크를 교체하던 중, 퇴근한 조 장관이 집에 들어왔고, 조 장관은 자신의 서재에서 하드디스크를 교체하다 말고 나와 자신에게 인사한 PB에게 "아내를 도와줘서 고맙다"고 했다는 게 그날의 알려진 사실관계 전부다.
조 장관은 "어쩐 일이냐", "왜 서재에서 나오냐"는 등 상식적인 질문은 물론, 김 차장과 함께 있는 동안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검찰이 조 장관 자택의 CCTV를 분석한 결과 김 차장이 조 장관과 집에 함께 있었던 시간은 약 1시간이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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