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과 강북 ‘폭염도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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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10.28. 오전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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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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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환경정의 ‘리포트’ 펴내…건강 위험 높은 행정동, 강남엔 적고 강북 밀집
에너지 효율 낮은 단독·다세대 주택 많고 노령·저소득층 인구 비율 높아

“폭염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외출 자제 등 안전관리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폭염 때 행정안전부에서 보내는 재난안전문자에는 언제나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 있으라’는 당부가 있다. 올해 여름도 그렇게 지나갔다. 폭염 때 ‘물, 그늘, 휴식’이라는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로 장시간 실외에 머무는 것은 분명 건강에 위험하다. 하지만 ‘실내’인 집에 있는 것도 그렇다면 어떨까.

259명. 최근 5년간(2016~2020년) 서울에서 발생한 온열질환자들 중 ‘집’에서 온열에 노출된 이들의 숫자다. 같은 기간 길가에서는 222명, 야외 작업장에서는 209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했다. 집은 모두에게 가장 안전한 공간이어야 하지만, 누군가에겐 폭염과 같은 극한 상황에서 바깥보다 위험한 장소가 된다. 폭염에 안전하지 않은 집들은 어느 지역에 몰려 있고, 어떤 이들이 거주하고 있을까.

환경단체인 (사)환경정의는 27일 발간한 ‘폭염 불평등 리포트’를 통해 이를 추정했다. 서울시 423개 행정동의 폭염일수와 에너지 효율이 낮은 단독 및 다세대·다가구 주택 비율, 노인, 기초생활수급가구 등 인구사회학적 지표를 종합 분석해 ‘폭염 불평등’ 점수를 환산했다. 불평등 점수가 높을수록 폭염에 취약한 계층도, 집도 더 많다. 분석 결과 폭염 불평등 점수가 높은 상위 10%에는 강북구(송천동 등 6개 동)와 도봉구(창3동 등 6개 동), 중랑구(묵2동 등 5개 동) 등 44개 동이 해당됐다. 가장 높은 폭염 불평등 점수는 77.4점이었는데, 70점 이상인 지역 10곳 중 3곳이 강북구 내 행정동이었고, 성북구와 동대문구 내 동들이 각 2곳씩 있었다.

이들 지역은 서울 서초구나 송파구, 강남구 등보다 상대적으로 ‘폭염 일수’가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효율이 낮은 단독·다세대 주택에 거주하는 이들이 많고, 폭염에 민감한 65세 이상 노령인구와 독거노인, 기초생활수급자 등 저소득층, 장애인 비율이 높았다.

■주거·소득 나쁠수록 고통…사회적 불평등 된 폭염

서울 ‘폭염 불평등 지도’가 말해주는 것

기초생활수급자인 A씨가 사는 서울 중랑구 옥탑방 외벽 절반은 철판으로 덧대어져 쉽게 달궈진다. 중랑구에서 어머니, 조카와 함께 사는 C씨는 반지하방 창문을 주변의 심한 악취 때문에 여름에도 열어놓지 못하고 생활한다. 한수빈·이준헌 기자


중랑구 옥탑방 사는 67세
한여름 40도까지 올라도
“여름이니 덥지” 꾹 참아
어느 3인 가구 반지하집
폭염·습기·누수에 취약

서울 중랑구에 사는 A씨도 그런 사례다. 올해 67세인 A씨는 다세대 건물 옥탑방에 산다. 그는 기초생활수급자다. A씨의 집이 있는 중랑구 면목3동은 폭염 불평등 상위 15% 안에 속한다.

그가 사는 옥탑방은 중간에 확장된 듯 절반은 건물과 같은 소재인 붉은 벽돌로, 나머지 절반은 컨테이너 박스와 비슷한 철 소재로 돼 있다. A씨와 만난 것은 9월 중순 더위가 한풀 꺾인 날의 오전이었는데도, 외벽은 햇볕을 받아 서서히 달궈지고 있었다. 철로 된 현관문의 절반은 반투명 유리였는데, 유리 하단에 커다란 금이 가 있었다. 살짝 치면 깨질 것 같은 유리에는 직접 붙인 듯한 테이프가 있었다. 현관문을 열면 정면에는 바로 작은 부엌이, 부엌 바로 옆에는 화장실이 있다. 현관문 왼쪽을 보자 A씨가 거주하는 작은 방이 나왔다.

A씨가 사는 방은 언뜻 보면 냉방이 잘 갖춰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방은 전기매트 하나를 펴면 꽉 찰 정도로 작지만 냉풍기도 하나 있고, 한쪽 벽에는 벽걸이형 에어컨도 설치돼 있다. “에어컨 틀어도 시원하진 않아요.” 이 에어컨은 A씨가 이사 온 2014년에 이미 설치돼 있었는데, 그는 에어컨 가스를 충전한 기억이 없다고 했다. “가스를 넣어볼까 했는데, 만만치가 않아요. 가스 충전이라도 하고 싶은데, 충전하려면 기사가 와야 하잖아요. 그 비용이 몇 만원이라도 나는…. 지금 내는 월세가 20만원인데, 지난번에 집주인이 25만원으로 올려달라고 했어요.”

그는 여름이면 버스를 타고 다니며 소일한다. “할 일 없으면 버스 타고 서울 시내를 한 바퀴 돌아요. 버스가 시원하기도 하고, 지하철보다 편하잖아요. 환승해서 갈아타고, 그것 외에는 (하는 일) 없어요.”

A씨는 인터뷰 내내 “여름이니까 덥지”라며, 폭염 때 옥탑방 안의 온도에 대해서도 “그냥 괜찮은 편”이라고 했다. 그가 살고 있는 곳은 겉보기와는 달리 단열이 잘되는 편인 걸까.

“여름에 옥탑 온도가 38도 이상, 40도까지도 올라갔어요.” A씨의 생활지원사 B씨가 말했다. 그는 A씨와 같이 홀로 사는 노인의 안부를 확인하고, 복지관에서 오는 후원물품을 갖다주는 등 생활 전반에 도움을 주는 일을 한다. A씨의 집에 설치돼 있는 사물인터넷(IoT) 기기가 실내 온도를 측정하고, 움직임을 감지해 B씨에게 통보한다.

‘괜찮다’는 A씨 말과 달리, 그가 사는 옥탑방은 이번 폭염에 B씨가 담당한 10여명의 집 중 가장 더웠다. “옥탑방에 선풍기가 있고, 옛날 에어컨도 하나 있지만 여름이면 엄청 더워요. 올여름에 40도까지 올라갔어요. (제가 담당하는 집들 중) 그 어르신이 사시는 옥탑방이 제일 더웠어요.” 여름철 B씨의 주요 업무는 혼자 사는 이들의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것이다. “폭염 때는 거의 매일 전화해서 건강상태를 여쭤봐요. 폭염 때 위험하지만, 어르신 본인은 그렇게 위험하다는 생각을 잘 못하세요. ‘여름이니까 덥지, 더우면 씻지’라고 하시죠.”

반지하·옥탑방처럼 세세하게 구분되진 않지만, A씨와 같은 노인들 중 많은 이들은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는 단독 및 다가구·다세대 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보고서는 “에너지 효율이 가장 낮은 단독주택의 소득 하위 가구 거주비율이 52.3%로 가장 높고, 노인 가구도 46%로 전국 전체 가구의 단독주택 거주비율(31%)보다 높다”며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에너지 효율이 낮은 주택에 더 많이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수도권 지하·반지하·옥탑
저소득층이 일반 가구 2배

실제 B씨가 담당하는 독거노인 14명 중 절반 이상은 폭염에 취약한 반지하나 옥탑방에 거주하고 있었다. 3인 가구인 C씨 역시 A씨와 같은 지역의 반지하에 거주하고 있다. 어머니와 함께 사는 그는 집에서 유일하게 경제활동을 하고 있지만, 최근 파산 신청을 했다. 보고서는 “수도권의 지하, 반지하, 옥탑방 거주율은 저소득 가구가 6.4%로, 일반 가구보다 2배 높다”고 했다.

C씨가 사는 집은 다세대 건물의 반지하다. 건물 앞 계단을 내려가면 C씨의 집이 나온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작은 부엌이 있고, 방 2개와 화장실 한 개가 나란히 붙어 있다. C씨의 집은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지만 습기로 현관문 옆의 벽지는 들떠 있었다. 안방 천장에는 접착식 단열벽지가 붙어 있었다. “직접 붙였어요. 단열 목적보다 어디서 물이 샌 것 같아 붙인 거예요. 천장이 합판으로 덮여 있는데, 천장에서 나온 물이 나무를 적시고, 그 나무가 벽지를 적셔서 얼룩이 생겼어요. 곰팡이 생기면 안 좋으니까 직접 붙였죠.”

C씨는 가전제품 설치기사다. 에어컨 설치 및 수리 일을 오랫동안 했지만, 정작 그가 사는 집에는 에어컨이 없다. 실외기를 둘 공간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가구평균소득이 낮은 지역에는 노후된 집도 많다. 지난해 기준 서울시의 단독 및 다가구·다세대 주택 41만38동 중 30년 이상 된 노후 주택은 48.8%(19만8550동)였는데, 노후 주택이 가장 많은 상위 10개 동 중 80%가 평균가구소득이 1~4분위인 지역에 있었다. C씨가 사는 지역도 포함됐다. 관악구 신림동이 노후 주택 수가 가장 많았고, 이어 강북 미아와 중랑구 면목동, 강북 수유동, 관악 봉천동 등의 순이었다. 같은 서울에 산다고 해도 냉난방 시설이 잘 갖춰진 아파트에 사는 사람과 에어컨이 있으나 작동하지 않는 옥탑방에 사는 A씨, 에어컨이 없는 반지하에 사는 C씨가 받는 폭염 영향은 평등하지 않다. 이런 ‘불평등함’은 보고서 속 불평등 점수가 높은 곳과 낮은 곳의 1인당 전기 사용량에서도 나타났다. 폭염 불평등 점수 상위 10%인 동네가 가장 많은 강북구의 1인당 전기 사용량(7월 한 달 기준)은 122.4kWh로, 서울 25개 자치구 중 가장 적었다.

보고서는 “같은 폭염에도 취약지역의 전기 사용량이 적어 적정 냉방을 유지하지 못해 폭염 불평등이 더 컸을 것으로 보인다”며 “같은 서울 지역에서 온실가스 배출 책임이 상대적으로 낮은 지역이 극한 기후로 인한 피해는 더 크게 나타나는 ‘기후 부정의’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고정근 연구활동가는 “지난 17년간의 폭염 일수, 집의 유형, 인구사회학적 취약성이라는 세 가지 제한적인 지표를 토대로 분석이 진행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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