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리뷰] 김동률, 변하지 않는 풍경과 맛집처럼
[텐아시아=김하진 기자]
가수 김동률이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서울 방이동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2018 콘서트 ‘답장’을 열었다. / 제공=카스카
“세상의 시간이 어떻든 저만의 속도로 제 길을 걸어가며 음악을 하겠습니다.”
지난 9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체조경기장에 가수 김동률의 진심이 울려 퍼졌다. 그는 “‘세상의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뭐든 금세 바뀌지만 ‘변화를 위한 변화’는 하지 않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동률은 지난 7일부터 3일간 공연을 펼치며 약 3만 명의 관객을 만났다. 180분 동안 26곡을 불렀다. ‘더 콘서트(The Concert)’와 ‘문라이트(Moonlight)’로 콘서트의 막을 올린 그는 ‘사랑한다는 말’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를 연달아 부르며 분위기를 훈훈하게 달궜다.
흐름에 기승전결이 있고, 비슷한 분위기의 곡을 묶어 공연을 구성하는 김동률은 이번에도 자신만의 방식대로 천천히, 관객을 이끌었다. ‘그럴 수밖에’를 부른 뒤에는 “제 곡 중 몇 안 되는 사랑을 시작하는 노래”라며 “‘헌팅’을 미화한 곡”이라고 농담도 던졌다. 이어 ‘오래된 노래’를 부르면서 “밝은 노래는 이제 다 끝났다”며 “이제부터 어둡고 우울한 나의 세계가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빛과 소리의 향연’이라고 불리는 김동률의 콘서트답게 웅장한 오케스트라와 소리의 완성도를 높이는 밴드 연주, 화려한 조명과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영상 등이 돋보였다. 여기에 가슴을 울리는 김동률의 묵직한 목소리가 더해져 관객들은 내내 뜨겁게 환호했다.
금관 6중주와 호흡을 맞춘 ‘오늘’과 탱고풍의 편곡과 반도네온 연주가 빛을 발하는 ‘배려’로 흥을 높이고, 눈을 뗄 수 없는 영상으로 효과를 극대화한 ‘연극’으로 정점을 찍었다. “우주로 떠나볼까요?”라며 현란한 조명으로 공연장을 우주처럼 만들어버린 ‘콘택트(Contact)’도 압권이었다.
‘그게 나야’로 1부의 막을 내린 김동률은 2부에서 흥겨운 ‘꿈속에서’와 ‘J’s bar’를 비롯해 ‘새’ ‘사랑한다 말해도’ ‘하늘 높이’ ‘고별’ 등을 피아노를 치며 불렀다. ‘콘택트’와 ‘답장’ ‘그 노래’로 관객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특히 마이크를 내려놓고 부른 ‘그 노래’는 김동률 콘서트의 백미였다. 1만 석 넘는 규모의 공연장이 그의 목소리로만 가득 찬다. 여러 관객들이 여기서 눈시울을 붉힌다.
김동률은 ‘기억의 습작’과 ‘노래’로 대미를 장식했다.
이번 콘서트의 게스트는 지난해 JTBC ‘팬텀싱어2’에서 우승한 크로스오버 그룹 포레스텔라였다. ‘팬텀싱어’를 즐겨봤다는 김동률은 “응원하는 이들이 우승해 기뻤다”며 “직접 전화를 걸어 섭외했다. 남자 4중창과 호흡을 맞춰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레퀴엠(REQUIEM)’을 같이 부르며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가수 김동률. / 제공=카스카
◆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번 공연이 더 특별했던 건 김동률의 진심이 전해져서다. 1부와 2부 사이 준비한 영상은 김동률의 인터뷰 형식으로 꾸며졌는데, 그는 2015년 콘서트를 떠올리며 “슬럼프가 왔다”고 털어놨다.
‘너무 늦어버려서 미안, 나 알다시피 좀 많이 느려서……뭔가 그럴듯한 말을 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내일 쓸까봐, 또 미룰래’
지난 1월 발표한 김동률의 미니음반 타이틀곡 ‘답장’의 한 구절이다. 그는 이번 콘서트 제목도 ‘답장’으로 정했다. 담담하게 지나간 사랑을 떠올리며 옛 연인에게 늦은 답을 하는 가사처럼 실제 김동률의 신곡 발표도 2014년 내놓은 여섯 번째 정규 음반 ‘동행’ 이후 4년 만이었다. 일곱 번째 정규 음반을 만들며 그는 시간이 길어지자, 다섯 곡을 담은 음반을 먼저 내놨다. 지난 3월부터는 25년 가수 인생 중 처음으로 디지털 싱글 형태로 신곡을 발표했다. 자신의 SNS에 “원래 ‘답장’ 음반에 넣으려고 만든 곡들이니 다른 음반으로 포장하는 것보다 연장선으로 발표하고 싶었다. 한 곡씩 선물처럼 들려드리겠다”고 썼다.
봄기운이 물씬 묻어나는 ‘그럴 수밖에’와 지난 9월 공개한 자신의 이야기를 눌러 담은 ‘노래’, 지난 7일 발표해 음원차트 1위를 차지한 가수 아이유와 호흡을 맞춘 ‘동화’까지 연달아 내놨다. 이번 공연도 2015년 이후 3년 만이어서 어느 때보다 관객들의 기대와 관심이 높았다. 티켓 예매를 시작한 지 3분 만에 3일치가 동났다.
음악 외에는 좀처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김동률은 2015년 ‘동행’ 콘서트를 마치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당시 팬들의 걱정을 샀는데, 이번 ‘답장’ 콘서트에서 “슬럼프였다”고 고백했다.
데뷔 25주년이 된 그는 자신이 가수로 정점을 찍었고 많은 걸 누렸다고 생각해 허무함이 들었다고 한다. 더불어 잘하는 것만 하는데도 시간이 모자란 상황에 혼자 유별난 길을 가는게 아닌가, 의구심도 품었다고.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은 역시 ‘음악’이었다. 김동률은 “작곡가 황성재·정수민, 음악감독 박인영 등과 호흡을 맞추며 버클리대 유학 시절의 초심과 기억을 되찾았다”고 밝혔다. 그런 그의 감정이 오롯이 담긴 곡이 바로 ‘노래’다.
“‘김동률 음악은 늘 같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헷갈려요. 발전이 없다는 건지, 변화가 없다는 건지. 두 가지가 저에게는 달라요. 만약 변화가 없기 때문에 듣는 이야기라면, 왜 변해야 하죠? 요즘엔 많은 것들이 빨리 변하는데, 저는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글, 도시의 풍경, 좋아하는 음식점의 맛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잘하는 걸 계속 잘하는 것도 힘든데…변화를 위한 변화가 아니라, 제가 하던 스타일 안에서 열심히 하자는 게 저의 음악관입니다. 요즘 저의 화두는 한 사람으로, 음악인으로서 잘 늙어가고 싶다는 거예요.”
3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 김동률은 관객들을 향해 “조금 더 멋지게 늙어서 다시 만나자”고 인사하며 활짝 웃었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재배포금지>
가수 김동률이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서울 방이동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2018 콘서트 ‘답장’을 열었다. / 제공=카스카
“세상의 시간이 어떻든 저만의 속도로 제 길을 걸어가며 음악을 하겠습니다.”
지난 9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체조경기장에 가수 김동률의 진심이 울려 퍼졌다. 그는 “‘세상의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뭐든 금세 바뀌지만 ‘변화를 위한 변화’는 하지 않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동률은 지난 7일부터 3일간 공연을 펼치며 약 3만 명의 관객을 만났다. 180분 동안 26곡을 불렀다. ‘더 콘서트(The Concert)’와 ‘문라이트(Moonlight)’로 콘서트의 막을 올린 그는 ‘사랑한다는 말’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를 연달아 부르며 분위기를 훈훈하게 달궜다.
흐름에 기승전결이 있고, 비슷한 분위기의 곡을 묶어 공연을 구성하는 김동률은 이번에도 자신만의 방식대로 천천히, 관객을 이끌었다. ‘그럴 수밖에’를 부른 뒤에는 “제 곡 중 몇 안 되는 사랑을 시작하는 노래”라며 “‘헌팅’을 미화한 곡”이라고 농담도 던졌다. 이어 ‘오래된 노래’를 부르면서 “밝은 노래는 이제 다 끝났다”며 “이제부터 어둡고 우울한 나의 세계가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빛과 소리의 향연’이라고 불리는 김동률의 콘서트답게 웅장한 오케스트라와 소리의 완성도를 높이는 밴드 연주, 화려한 조명과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영상 등이 돋보였다. 여기에 가슴을 울리는 김동률의 묵직한 목소리가 더해져 관객들은 내내 뜨겁게 환호했다.
금관 6중주와 호흡을 맞춘 ‘오늘’과 탱고풍의 편곡과 반도네온 연주가 빛을 발하는 ‘배려’로 흥을 높이고, 눈을 뗄 수 없는 영상으로 효과를 극대화한 ‘연극’으로 정점을 찍었다. “우주로 떠나볼까요?”라며 현란한 조명으로 공연장을 우주처럼 만들어버린 ‘콘택트(Contact)’도 압권이었다.
‘그게 나야’로 1부의 막을 내린 김동률은 2부에서 흥겨운 ‘꿈속에서’와 ‘J’s bar’를 비롯해 ‘새’ ‘사랑한다 말해도’ ‘하늘 높이’ ‘고별’ 등을 피아노를 치며 불렀다. ‘콘택트’와 ‘답장’ ‘그 노래’로 관객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특히 마이크를 내려놓고 부른 ‘그 노래’는 김동률 콘서트의 백미였다. 1만 석 넘는 규모의 공연장이 그의 목소리로만 가득 찬다. 여러 관객들이 여기서 눈시울을 붉힌다.
김동률은 ‘기억의 습작’과 ‘노래’로 대미를 장식했다.
이번 콘서트의 게스트는 지난해 JTBC ‘팬텀싱어2’에서 우승한 크로스오버 그룹 포레스텔라였다. ‘팬텀싱어’를 즐겨봤다는 김동률은 “응원하는 이들이 우승해 기뻤다”며 “직접 전화를 걸어 섭외했다. 남자 4중창과 호흡을 맞춰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레퀴엠(REQUIEM)’을 같이 부르며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가수 김동률. / 제공=카스카
◆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번 공연이 더 특별했던 건 김동률의 진심이 전해져서다. 1부와 2부 사이 준비한 영상은 김동률의 인터뷰 형식으로 꾸며졌는데, 그는 2015년 콘서트를 떠올리며 “슬럼프가 왔다”고 털어놨다.
‘너무 늦어버려서 미안, 나 알다시피 좀 많이 느려서……뭔가 그럴듯한 말을 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내일 쓸까봐, 또 미룰래’
지난 1월 발표한 김동률의 미니음반 타이틀곡 ‘답장’의 한 구절이다. 그는 이번 콘서트 제목도 ‘답장’으로 정했다. 담담하게 지나간 사랑을 떠올리며 옛 연인에게 늦은 답을 하는 가사처럼 실제 김동률의 신곡 발표도 2014년 내놓은 여섯 번째 정규 음반 ‘동행’ 이후 4년 만이었다. 일곱 번째 정규 음반을 만들며 그는 시간이 길어지자, 다섯 곡을 담은 음반을 먼저 내놨다. 지난 3월부터는 25년 가수 인생 중 처음으로 디지털 싱글 형태로 신곡을 발표했다. 자신의 SNS에 “원래 ‘답장’ 음반에 넣으려고 만든 곡들이니 다른 음반으로 포장하는 것보다 연장선으로 발표하고 싶었다. 한 곡씩 선물처럼 들려드리겠다”고 썼다.
봄기운이 물씬 묻어나는 ‘그럴 수밖에’와 지난 9월 공개한 자신의 이야기를 눌러 담은 ‘노래’, 지난 7일 발표해 음원차트 1위를 차지한 가수 아이유와 호흡을 맞춘 ‘동화’까지 연달아 내놨다. 이번 공연도 2015년 이후 3년 만이어서 어느 때보다 관객들의 기대와 관심이 높았다. 티켓 예매를 시작한 지 3분 만에 3일치가 동났다.
음악 외에는 좀처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김동률은 2015년 ‘동행’ 콘서트를 마치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당시 팬들의 걱정을 샀는데, 이번 ‘답장’ 콘서트에서 “슬럼프였다”고 고백했다.
데뷔 25주년이 된 그는 자신이 가수로 정점을 찍었고 많은 걸 누렸다고 생각해 허무함이 들었다고 한다. 더불어 잘하는 것만 하는데도 시간이 모자란 상황에 혼자 유별난 길을 가는게 아닌가, 의구심도 품었다고.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은 역시 ‘음악’이었다. 김동률은 “작곡가 황성재·정수민, 음악감독 박인영 등과 호흡을 맞추며 버클리대 유학 시절의 초심과 기억을 되찾았다”고 밝혔다. 그런 그의 감정이 오롯이 담긴 곡이 바로 ‘노래’다.
“‘김동률 음악은 늘 같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헷갈려요. 발전이 없다는 건지, 변화가 없다는 건지. 두 가지가 저에게는 달라요. 만약 변화가 없기 때문에 듣는 이야기라면, 왜 변해야 하죠? 요즘엔 많은 것들이 빨리 변하는데, 저는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글, 도시의 풍경, 좋아하는 음식점의 맛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잘하는 걸 계속 잘하는 것도 힘든데…변화를 위한 변화가 아니라, 제가 하던 스타일 안에서 열심히 하자는 게 저의 음악관입니다. 요즘 저의 화두는 한 사람으로, 음악인으로서 잘 늙어가고 싶다는 거예요.”
3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 김동률은 관객들을 향해 “조금 더 멋지게 늙어서 다시 만나자”고 인사하며 활짝 웃었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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