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 지표는 삭제하고 개선 지표는 늘리고…갑자기 좋아진 '삶의 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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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 2018년 측정지표 개편 후 / 올 71개 지표 중 54개 좋아져 / 개선율 76%로 껑충 ‘역대최고’ / 지니계수 등 단골 ‘악화’ 지표들 / 대거 삭제… “정책 맞춤통계” 지적

어떻게 하면 국민이 행복할까. 모든 정부는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은 행복할까. 적어도 수치상으로는 그런 것 같다. 통계청이 발표한 ‘국민 삶의 질 지표’가 지난 3월 역대 최고의 개선 실적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 삶의 질이 정말 좋아진 것일까.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통계청의 각종 지표들을 자세히 뜯어봤다. 그랬더니 지난 발표에서 나빴던 지표가 삭제된 게 드러났다. 대신에 좋아진 지표들이 추가됐다. 문재인정부의 삶의 질 개선 정책에 맞춰 통계청이 ‘맞춤 통계’를 내놨다는 논란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
23일 세계일보가 ‘국민 삶의 질 지표’ 홈페이지와 통계청을 통해 받은 자료 등을 분석한 결과 지난 3월 발표된 ‘2019년 3월 기준 삶의 질 지표 종합상황표’에 포함된 71개 지표 중 54개(76%)가 전기 대비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은 2015년부터 지난 3월까지 모두 9차례 국민 삶의 질 지표를 공개했는데, 전기 대비 지표 개선율이 70%를 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통계청은 한 해 두세 차례 삶의 질 지표 종합상황표를 통해 지표별로 전기 대비 ‘개선’ ‘보합(동일)’ ‘악화’로 추세를 판정하고 비율을 공개한다. 지표별로 업데이트 주기는 서로 다르다.

지난 3월 발표된 삶의 질 종합상황표는 △소득·소비·자산 △고용·임금 △주거 △건강 △교육 △여가 △가족·공동체 △시민참여 △안전 △환경 △주관적 웰빙 등 11개 분야 71개 지표로 구성됐다. 지난해 발표 때의 12개 분야 80개 지표와 비교해 크게 달라졌다. 통계청은 이전의 17개 지표를 삭제하고 대신 8개 지표를 신설했다. 25개(31.3%)의 지표를 교체한 셈이다. 특히 지난 발표에서 실적이 좋지 않은 지표들이 대거 삭제되고 좋아진 지표가 추가된 것으로 확인됐다.
개편된 지표를 보면 소득·소비·자산 분야에서 이전 지표에 있던 ‘지니계수’가 지난 3월 사라졌다.

지니계수는 소득 분배의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수치로, 매번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던 지표다. 건강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꾸준히 좋지 않았던 ‘고혈압 유병률’ ‘당뇨병 유병률’ 지표가 삭제됐다. 주거 분야에서는 ‘주거비용’ 지표가, 교육 분야에서는 ‘평생교육 참여율’ ‘학업중단율’ 지표 등이 없어졌다. 모두가 2018년 5월 발표 때 전기 대비 실적이 나빴던 지표들이다. 반대로 ‘토양환경만족도’ ‘소음만족도’ 등처럼 개선된 지표가 새로 들어갔다.

지표 신뢰도 자체를 의심케 하는 항목도 있다. 올해 초 재난 수준까지 보이며 추가경정예산 편성의 이유가 된 ‘미세먼지 농도’ 지표가 개선된 것으로 나온 것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지표 개선율을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지표 체계를 개편한 것은 아니다”면서도 “내부적으로도 개선율이 높게 나와 놀랐다”고 말했다.

◆‘개선’ 입맛에만 맞춘 지표체계… 무너진 ‘통계의 일관성’

지난 3월 통계청이 내놓은 국민 삶의 질 지표는 정작 국민 삶과 동떨어져 있다. 통계청 발표대로 삶의 질 지표가 역대 최고 개선율을 보였다면, 우리 국민이 살아가는 모습은 1년 전보다 눈에 띄게 나아졌어야 한다. 실제 그렇게 느끼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현실은 지표와 너무 다르다.

통계청은 삶의 질 지표체계를 개편하면서 개선에만 방점을 찍었다는 지적을 받는다. 악화 지표는 삭제하고 개선 지표는 늘렸다. 통계청은 정부혁신추진성과 일환으로 네이버 ‘지식iN’ 등 포털사이트 등을 통해 국민 의견을 수렴해 결과를 지표 체계에 반영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체 조사 지표 중 30% 이상을 바꿔가며 개선된 성적을 내놓아 ‘통계의 일관성’을 스스로 떨어뜨렸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악화 지표 삭제, 긍정 지표 신규 편입

23일 세계일보가 통계청 삶의 질 지표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개편 작업에서 삭제된 지표 17개 가운데 전기 대비 ‘악화’를 기록한 지표가 9개나 포함됐다. 새로 추가된 8개 지표 중에서는 5개가 개선 지표였다.

소득 분배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삭제된 것이 대표적이다. 지니계수 지표는 지난해 5월은 물론이고 2017년 12월, 9월에도 줄곧 전기 대비 악화를 기록했다. ‘상대적 빈곤율’ 지표와 겹친다는 것이 공식적인 삭제 이유인데, 공교롭게도 이번 발표에서는 상대적 빈곤율 지표가 전기 대비 개선을 기록했다.

최근 3년간 단 한 번도 전기 대비 개선을 나타내지 못한 ‘균등화중위소비(가구 중위소비)’ 지표도 지표 개편 이후 삭제됐다. 이 지표는 과거 8차례 발표된 삶의 질 지표에 포함됐는데, 이번에는 시계열 안정화를 위해 삭제했다는 게 통계청 설명이다.

주거 분야에서는 ‘주거비용’ 지표가 사라지고, ‘주택 임대료 비율’, 자가점유가구비율’ 지표가 새로 추가됐다. 주거비용 지표도 최근 3차례 조사에서 모두 전기 대비 악화를 나타냈다. 이 지표가 삭제되고 주택 임대료 비율과 자가점유가구비율로 대체됐다. 추가된 두 지표는 모두 전기 대비 ‘개선’으로 나타났다.
건강 분야에서 삭제된 ‘고혈압 유병률’과 ‘당뇨병 유병률’ 지표는 ‘비만율’ 지표로 대체 가능해 뺐다는 게 통계청 설명이다. 두 개 지표가 사라지면서 건강 분야 7개 지표 모두가 전기 대비 개선을 나타냈다.

교육에서는 ‘평생교육 참여율’과 ‘학업 중단율’ 지표 등이 없어졌다. 두 지표 모두 전기에 악화를 기록한 지표다. 가족·공동체 분야에서도 줄곧 악화 흐름을 이어온 ‘한부모가구 비율’ 지표가 빠졌다.

환경 분야에서는 6차례 연속 전기 대비 ‘악화’를 기록한 ‘체감환경만족도’ 지표가 삭제됐다. 해당 지표를 ‘대기질’·‘수질’·‘토양환경’·‘소음’·‘녹지환경’ 만족도로 세분화했다는 설명이지만 신규지표 5개 가운데 3개가 개선을 나타냈다.

이 같은 개편 과정을 거쳐 지난 3월 삶의 질 지표는 역대 최고의 개선율을 기록할 수 있었다.

역대 지표를 보면 2015년 3월에는 70개 지표 중 개선 지표가 35개로, 개선율은 50%였다. 그해 9월에 공개된 2번째 삶의 질 지표에서도 개선율은 51.9%였다. 2016년에 8월에는 개선율이 58%로 올랐지만 12월에 발표에서는 다시 53.8%로 낮아졌다. 2017년에는 모두 3차례 삶의 질 지표가 공개됐는데 개선율은 각각 51.3%(3월), 52.5%(9월), 56.3%(12월)였다.

지난해 5월에는 80개 지표 중 51개가 전기 대비 개선을 나타내며 개선율이 63.8%를 기록했다. 전기 대비 보합(동일)을 나타낸 지표가 4개(5%)였고, 악화한 지표는 25개(31.3%)로 나타났다.

◆교육비·미세먼지까지 개선됐다는데…

지표의 추가·삭제 문제와 별개로 개별 지표를 살펴봐도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다. 소득·소비·자산 분야에서 ‘가구 중위소득’, 상대적 빈곤율 등의 지표가 전기 대비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각종 소득 통계 등으로 확인된 분배 지표 악화 결과 등과는 거리가 있다.

고용과 임금 분야에서는 ‘고용률’과 ‘실업률’은 악화한 반면 ‘월평균 임금’, ‘저임금 근로자 비율’, ‘근로시간’, ‘일자리 만족도’ 등은 개선된 것으로 발표됐다.
최저임금 인상 등의 영향이 나타난 것으로 보이지만 지난해 고용 악화 상황에서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 등을 감안하면 개선 지표를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교육 분야에서 ‘교육비 부담’ 지표가 전기 대비 개선됐다. 특히 환경 분야의 경우 ‘미세먼지 농도’ 지표가 전기 대비 ‘개선’으로 나타나 지표 작성과 추이 판단이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통계청 삶의 질 지표 검토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한준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지표 체계 개편 작업은 국가 주요 지표와 삶의 질 지표를 연동시켜 더 적합한 지표로 통일시키고, 삶의 질 지표와 관련해 기존에 누적된 개선 지적 등을 반영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개선과 악화로 해석이 모호한 지표 등도 재검토했다”며 “지표 체계 개편을 통해 개선율이 높아졌을 수는 있지만 개선율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개편이 이뤄진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韓 ‘삶의 질 지수’는 OECD 조사 40개國 중 30위… ‘제자리’

국제기구가 평가하는 우리나라 삶의 질 수준은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3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발표한 ‘2018 더 나은 삶의 질 지수’(The Better Life·BLI)에 따르면 우리나라 종합순위는 조사국 40개국 가운데 30위를 기록했다. 2017년 38개국 중 29위에서 큰 변화 없이 ‘제자리걸음’ 중이다.

우리나라는 전체 11개 영역 24개 지표에서 평균 점수 10점 만점에 5.03점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종합 평균 점수 8.18점으로 전체 1위를 차지한 노르웨이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영역별로는 사회적 관계, 환경 영역에서 40위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사회적 관계 영역은 10점 만점에 0점을 받았다. 세부 지표로는 ‘필요할 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비율이 78%로 OECD 평균 89%에 한참 못 미치며 가장 낮았다.

환경 영역은 OECD 최고 수준의 초미세먼지 농도 지표와 40개국 중 29위인 수질 지표로 인해 10점 만점에 2.4점을 얻어 꼴찌를 기록했다.

일과 삶의 균형 영역에서는 10점 만점에 4.1점으로 37위, 주거 영역은 6.6점으로 36위를 기록했다. 주관적 웰빙 영역에서도 4.1점으로 33위에 그쳤다.

상위권 지표로는 건강 영역(40개국 중 10위), 교육과 시민참여 영역(각각 13위)이 오른 정도다.

정부는 지난 2월 OECD가 집계하는 삶의 만족도 지수를 2017년 28위에서 2023년 회원국 평균 수준인 20위, 2040년까지는 10위로 향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3월 유엔이 발표한 ‘2019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 2019)에서도 종합점수 10점 만점에 5.895점을 얻어 156개국 중 54위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순위는 2015년 47위, 2016년 58위, 2017년 56위, 2018년 57위, 올해 54위로 대체로 50위권을 맴돌고 있다. 기대 수명 9위, 1인당 국민소득 27위 등으로 상위권도 있었으나 사회적 자유 144위, 부정부패 100위, 사회적 지원 91위 등으로 하위권을 지켰다.

세종=박영준 기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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