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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직사각형의 나무로 만든 대(臺)의 중앙에 그물을 치고 상대편 지역에 플라스틱 공을 라켓으로 쳐 넘겨 승부를 가리는 스포츠.

탁구 경기장과 용구
구분 구기경기
기원국 남아프리카·인도
한국도입시기 일제강점기

직사각형의 나무로 만든 대의 중앙에 그물을 치고 상대편 지역에 플라스틱 공을 라켓으로 쳐 넘겨 승부를 가리는 구기 경기이다. 실내 스포츠로서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으며 게임을 즐기는 용구가 간단하다. 2014년 7월부터 셀룰로이드에서 플라스틱으로 공인구 재질이 교체되었다.

라켓의 모양·재질 등이 다른 어떤 스포츠보다 융통성이 많기 때문에 잡는 법과 타구법이 아주 다르며, 이에 따른 기술과 전략이 다양한 점이 특징이다. 라켓을 잡는 방법은 펜홀더그립셰이크핸드그립이 대표적이다.


역사

탁구는 그 역사나 기원이 정확하지 않은데, 중세 이탈리아의 루식 필라리스라는 유희에서 변한 것이라 하기도 하고 15∼16세기 무렵 프랑스 궁전에서 행해진 폼 이란 놀이가 변하여 탁구가 되었다고도 한다.

남아프리카·인도 등 영국 식민지에 살던 영국인들이 더위를 피하여 실내에서 테니스를 할 수 있도록 유희로 변형시킨 놀이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측하는 것이 통설이다. 명칭도 일정하지 않아서 고시마·프림프림·와프와프 등 여러 가지로 불렸다. 탁구가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영국의 크로스컨트리 선수인 제임스 깁이 1898년 미국을 방문했을 때 가지고 온 셀룰로이드 장난감 공을 영국에서 벌어진 경기 때 사용한 뒤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때까지 고시마라고 하던 경기를 핑퐁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송아지 가죽을 붙인 속이 빈 배틀도어 라켓으로 공을 치면, 공이 탁구대와 라켓에 부딪칠 때 '핑(ping)', '퐁(pong)' 소리가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그 당시 운동구 상인의 함레상회에서 공을 칠 때 나는 핑퐁 소리를 따서 상호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후 탁구는 급속도로 보급되고 새로운 용구의 개발과 기술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여, 1900년 무렵에는 전유럽에 탁구가 널리 보급되었다. 1902년에는 세계 최초로 영국핑퐁연맹이 조직되었다. 이후 1923년 영국과 그밖의 유럽 국가에서 핑퐁을 테이블테니스로 개칭하였고, 1926년 독일 베를린(Berlin)에서 레만의 제창으로 ITTF(International Table Tennis Federation:국제탁구연맹)이 조직되어 국제적인 면모를 갖추었으며, 공식 규칙과 용구에 대한 규정을 제정하였다.

1927년 1월 영국 런던에서 ITTF 주최로 제1회 유럽선수권대회가 개최되었으며, 1930년부터 미국이 참가함으로써 후에 세계선수권대회로 인정받았다. 1940년대까지 유럽세가 주도했던 세계선수권대회는 1950년대에 일본(1952)·중국(1953)·한국(1956) 등이 중심이 되는 아시아권의 국가에서 참가하여 두각을 나타내자 크게 아시아권와 유럽권 두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이후 탁구는 각종 국제 규모의 대회에서 아시아출신 선수들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중국은 탁구 인구의 저변 확대와 과학적인 연구를 통하여 독자적인 용구와 기술을 개발하여 최강국으로 군림하고 있다. 1957년까지는 해마다 세계선수권대회를 개최하였으나, 그뒤부터는 2년마다 개최하기로 하였다.

주요 국제 규모의 탁구대회는 각 대륙의 선수권대회, 스칸디나비아 오픈 선수권대회, 전영(全英) 오픈 탁구선수권대회, 캘커타(Calcutta) 국제 오픈 탁구선수권대회 등이 있다.

경기방법 및 규칙

탁구경기는 단식과 복식으로 나누며, 개인전(개인단식·개인복식·혼합복식)과 단체전의 경기방식이 있다. 단체전의 방식은 4단식 1복식, 또는 5단식 2복식,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채택하고 있는 남자의 스웨이들링컵 방식, 여자의 코르비용컵 방식이 있다.

1게임은 11점이며, 10 대 10일 경우 듀스가 되어 먼저 2점을 선취하는 쪽이 그 게임을 이긴다. 심판원이 경기자와 용구를 확인하고 두 경기자 또는 두 팀의 주장이 토스하여 이긴 자가 서브·리시브·엔드를 먼저 선택하게 되며 2분 동안 연습한 후 경기에 들어간다.

서브를 넣을 때, 손은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네 손가락을 모아서 펴고 손바닥 중앙에 공을 놓고 16cm 이상 던져 올려 낙하하는 공을 자기 코트에 먼저 바운드시키고 상대편 코트에 보내야 한다. 서비스하는 동안 서버의 라켓을 든 손과 공을 올려놓은 손은 반드시 코트의 경기면보다 위에 있어야 한다. 서브 이후 모든 타구는 코트 안에 바운드된 후에 이루어져야 한다.

 

서브는 1게임 중 5회씩 교대로 넣고 20 대 20일 경우와 촉진룰이 적용된 이후부터는 1회씩 교대로 실시하며, 게임이 끝날 때마다 엔드를 바꾸어 앞 게임의 최초의 리시버가 서버가 된다. 복식경기는 서브와 리시브 방식이 다를 뿐 모든 규정은 단식과 동일하다. 서버는 자기의 서비스박스에서 리시버의 서비스박스(이때는 리시브박스)에 보내면 리시버는 코트의 어느 곳에나 반구(返球)할 수 있으며 이후 자기의 짝과 서로 교대로 타구해야 한다.

최초에 서버가 5개의 서비스를 끝내면 상대팀의 최초 리시버가 서버가 되며, 최초 서버의 짝이 리시버가 된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리시버는 서버가 되고 서버의 짝이 리시버가 된다. 제2게임에서는 제1게임의 리시버가 첫 서버가 되며 첫서버가 리시버가 된다. 제3게임의 서브 순서는 제1게임과 같으며 어느 팀이든지 10점을 선취하면 엔드를 바꿈과 동시에 리시브하는 조의 리시버를 교대해야 한다.

실점되는 경우는 정규 경기면에 되보내지 못할 때, 랠리 중 고의로 라켓 또는 라켓 핸드 2회 이상 닿을 경우, 탁구대의 경기면에 2회 바운드되는 경우, 신체 및 복장에 공이 닿을 경우, 복식에서 한 사람이 2회 연속 타구하는 경우, 상대편의 타구를 교란시키기 위하여 비신사적으로 발을 구르는 경우, 프리핸드로 탁구대를 짚고 타구하는 경우, 촉진룰이 적용된 후 서버가 12번째 타구까지 득점을 못하는 경우는 상대에게 득점을 준다.

레트가 되는 경우는 정규로 서브한 공이 네트 또는 지주에 닿고 상대편의 코트에 들어가는 경우, 리시버의 준비가 되기 전이나 심판의 스코어 호칭이 끝나기 전에 서브되었을 경우, 랠리 중 볼이 파손되거나 불가항력적인 일로 경기가 방해되었을 때 등이며, 이때는 점수의 변동없이 다시 게임에 들어간다.

유효의 경우는 정규 경기면에 타구하여 보내는 경우, 랠리 중 타구한 공이 코트의 가장자리에 닿거나 복식의 서비스 때 센터라인에 닿는 경우, 지주 바깥쪽이나 밑을 돌아서 경기면에 들어가는 경우 등은 모두 유효하다. 그러나 탁구대의 옆면에 닿을 때는 실점이 된다. 게임의 빠른 진행을 위해 한 게임이 15분 경과하면 그 게임과 그 이후의 게임은 촉진룰을 적용하는데, 서버는 서브를 제외하고 12회의 타구까지 득점하지 못하고 리시브가 13회의 반구에 성공하면 자동적으로 리시버의 득점이 되는 규칙이다.

탁구경기는 아주 섬세한 운동경기이므로 경기자에게 혼란을 주는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으며, 작전 지시도 게임이 끝난 후 심판이 허락하는 시간 안에서만 가능하다.

[2001년 개정된 탁구 규칙]

점수

11점 선승

게임(세트)

3,5,7,9세트 중에서 선택

서비스 교대

매 2포인트 마다 교대

휴식

게임과 게임사이 1분

엔드 교대

마지막 게임에서 한쪽이 5점이 되었을 때

경기형태

탁구경기의 경기 형태로는 전진형, 중진형, 후진형, 전·중진형, 중·진형이 있다. 전진형은 탁구대로부터 0.5m 앞뒤 거리에서 공격과 수비를 하며, 높고 빠른 타이밍의 타법을 주무기로 하는 공격 주도형이다. 중진형은 탁구대로부터 1.5m 앞뒤 거리에서 공수 병행을 하며, 강력한 드라이브를 주무기로 하는 전형이다.

후진형은 탁구대로부터 2m 이상 후방에서 긴 역회전 타법을 주무기로 하고, 타구할 때 회전의 강약과 방향에 변화를 주어 상대의 타구 조절력을 흐트러뜨리는 전술을 구사하는 수비전형이다. 그밖에도 전·중진형 및 중·후진형이 있는데, 어떤 전형이 특별히 유리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후진 수비형은 점점 사라지고 공격 위주의 전진형이나 전·중진형이 주류를 이룬다.

탁구 본문 이미지 4

경기장과 경기용구

◎ 경기장
탁구 경기장의 넓이는 최소 길이 14m, 너비 7m, 천장의 높이는 마루 위에서 5m이어야 한다. 조명은 탁구대의 상판 윗면에서 측정했을 때 세계선수권대회 및 올림픽경기대회에서는 1,000룩스 이상이어야 하고 탁구대 외에는 500룩스이어야 하며, 그밖의 대회에서는 탁구대 위는 600룩스, 탁구대 외에는 400룩스이어야 한다.

◎ 탁구대
탁구대 윗면을 코트라 하며 공식적으로 인정된 공을 30㎝ 높이에서 떨어뜨려서 23cm 바운드 될 수 있는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야 한다. 시합표면은 에지와 코너를 포함하며 평탄하고 반사되지 않도록 하며 일반적으로 청색과 녹색으로 칠해야 한다. 탁구대의 표면 가장자리에 2㎝, 중앙에 0.3㎝의 너비로 흰 선을 긋고 그밖에 어떤 기호나 글자를 써서는 안된다.

탁구대의 크기는 길이 274㎝, 너비 152.5㎝의 직사각형으로 바닥에서 76㎝ 위에 수평으로 설치한다. 네트의 높이는 15.25㎝, 길이는 양 지주를 포함하여 183㎝이며, 지주대를 탁구대의 상판에 단단하게 부착시켰을 때 지주봉은 경기면과 수직이어야 하고, 지주봉의 외부 한계는 경기면의 양 사이드라인으로부터 15.25㎝이다. 네트는 위쪽 가장자리에 너비 1.5㎝의 흰 천 안에 한가닥의 끈을 넣어 그 끈의 양끝을 지주대에 맨다.

◎ 탁구공과 탁구 라켓
공은 플라스틱으로 만들며, 반사하지 않는 백색 또는 오렌지색이어야 하고, 무게는 2.7g, 지름은 4㎝이다.

라켓의 크기·모양·무게에 제한은 없으나 면이 고른 같은 두께의 나무여야 한다. 모양은 라켓의 손잡이를 펜대 잡듯이 잡는 펜홀더그립용 둥근형과 모진형, 악수하듯이 잡는 셰이크핸드그립용의 손잡이가 길고 납작한 둥근형, 하트형, 타원형으로 크게 구분되며, 재질은 단판(單板)·합판(3장 합판, 5장 합판, 카본 파이버 합판)이 있다. 펜홀더그립의 유형은 한국과 일본 선수들이 주로 사용하는 유형과 중국 선수들이 사용하는 유형으로 구분된다.

타법이나 기술이 다양하고 서로 상대적이기 때문에 어떻게 라켓을 잡는 것이 유리한지 한 마디로 단언하기 어렵다. 탁구 러버(고무)는 라켓의 면에 붙이는 것으로서, 크게 핌플러버와 샌드위치러버가 있으며, 고무판의 표면은 반사되지 않는 짙은 색이어야 하고, 두께는 4mm 이내여야 한다. 양면을 고무로 덮어 씌울 경우 질이 다른 고무를 사용해도 되지만, 한면은 밝은 적색으로 하며 다른 면은 검은색으로 하고 무광택이어야 한다. 돌기고무판은 안정성이 높아 전진형에게 적합하고, 평면고무판은 공에 대한 마찰력과 탄력이 크기 때문에 강력한 회전타법(드라이브·커트)에 유리하다.

◎ 복장
복장은 운동화와 양말을 제외하고 흰색이 아닌 반사되지 않는 짙은 단일색이어야 하며, 아래·위 옷이 같은 색이 아니어도 된다. 윗도리는 반팔 셔츠이어야 하고 아랫도리는 짧은 반바지나 스커트이어야 한다.

한국의 탁구

한국에 탁구가 도입된 과정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제강점기에 들어왔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1924년 1월 경성일일신문사(京城日日新聞社)가 주최한 탁구대회가 한국 최초의 공식 대회이며, 1928년 YMCA(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기독교청년회)가 주최한 제1회 조선탁구선수권대회가 한국인이 주도한 최초의 대회였다.

1932년 7월 경성치과의학전문 탁구부의 최초 일본 원정, 1934년 계림탁구구락부(鷄林卓球俱樂部)의 조직 등은 한국의 탁구 발달사에 특기할 만한 사실이다. 1936년부터 일본식(연식) 공 대신 유럽식(경식) 공을 사용함으로써 기술 향상을 한층 더 이룰 수 있었다. 같은해 제1회 전조선경식탁구대회에 등장한 최근항(崔根恒)은 국내대회 및 제5회 전일본탁구선수권대회 등에서 우승하여 국제무대에 진출하는 전환기를 마련하였다.

1945년 9월 발족한 조선탁구협회는 1947년 9월 KTTA(Korea Table Tennis Association:대한탁구협회)로 개칭하고, 제1회 전국종합탁구선수권대회를 개최하였다. 1950년 4월 ATTF(Asia Table Tennis Federation:아시아탁구연맹)와 ITTF(International Table Tennis Federation:국제탁구연맹)에 가입하여 1952년 11월 싱가포르(Singapore)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에 처음 참가하였고, 1954년 1월 KSC(Korea Sports Council:대한체육회)에 경기단체로 가맹하였다.

같은 해 제3회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이경호(李慶浩)·위쌍숙(魏雙淑)이 혼합복식에서 우승, 1957년 제4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여자개인전 우승과 준우승, 처녀 출전한 1956년 제23회 및 1959년 제25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여자단체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또한 1973년 4월 유고슬라비아(지금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사라예보(Sarajevo)에서 개최된 제32회 대회에서 여자단체전을 석권하여 한국 구기 사상 처음으로 세계를 제패하였다.

1984년 10월 ATTF(Asia Table Tennis Federation:아시아탁구연맹)에 가입하였다. 1986년 제10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남녀 모두 우승,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처음 채택한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경기대회에서 남자개인 단식에서 금·은메달, 복식에서 동메달, 여자개인 및 복식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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