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으로 끝난 재혼…술-도박에 빠져 생활비 안 준 남편 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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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혼인 생활에서 피고인이 겪었을 어려움에 비추어 범행 경위에 일부나마 참작할 만한 사정 있다” 징역 10년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GettyImagesBank
중학생 아들과 초등생 딸을 사실상 홀로 키워온 50대 여성이 술과 도박에 빠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춘천지법 형사2부(진원두 부장판사)는 살인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된 A 씨(56·여)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A 씨는 지난해 8월 6일 생계를 위해 일하던 음식점에서 해고당한 후 처지를 비관해 남편 B 씨(53)를 살해했다.

한 차례 이혼을 경험한 A 씨는 B 씨와 재혼했지만, 결혼 생활을 순탄하지 않았다. 남편이 술과 도박에 빠져 가정엔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편 B 씨는 지난해 6월 아들이 말을 듣지 않고 돈만 달라고 한다는 이유로 아들의 목을 조르기까지 했다. 이 일 이후 B 씨는 가족과 떨어져 한 다세대주택에서 홀로 생활했다.

A 씨는 집을 나간 B 씨에게 생활비를 보내달라고 했으나 B 씨는 연락을 피했고, 생활비도 보내주지 않았다.

두 달 후 A 씨에 또다시 불행이 찾아왔다. 일하던 식당에서 해고 통보를 받은 것. 식당일을 하며 힘들게 자녀들을 키웠지만 그마저도 좌절되자 A 씨는 술을 마신 뒤 남편 B 씨에게 ‘슬퍼서 죽고 싶다’, ‘너는 정신병자였다’, ‘죽이겠다’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곤 곧장 남편이 있는 집을 찾아갔다.

A 씨는 그곳에서 B 씨가 친구와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을 보고 격분해 “지금 술 마실 때냐, 이혼 서류를 가져와라”라고 소리쳤다.

B 씨는 “알았으니까 가라”라며 맞섰고, A 씨는 술상에 있던 젓가락과 접시를 던진 뒤 갑자기 주방용 가위를 B 씨의 머리 위로 들었다.

놀란 B 씨는 A 씨의 손목을 잡았고, 밀고 당기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B 씨가 손목을 놓치자 A 씨는 B 씨의 왼쪽 가슴을 한 차례 찔렀다.

A 씨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채 달아났고, 심장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B 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결국 지난해 9월 살인 혐의로 법정에 선 A 씨는 첫 공판 내내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렸다.

A 씨 측은 법정에서 가위를 들어 위협하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남편을 찔러 살인의 고의가 없다며 상해치사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사건 당시 만취 상태였던 점을 들어 A 씨 측은 심신미약을 주장했지만, 이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범행 도구의 형태와 가한 힘의 방향과 크기, 피해자의 상처 부위와 정도, 범행 당시 피고인의 심리상태 등을 종합하면 범행 당시 피해자가 사망할 수 있음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며 “피고인의 범행으로 피해자와 피고인 사이에서 출생한 자녀들은 친아버지를 잃게 됐다. 피고인은 범행 후 피해자에 대한 응급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은 채 현장을 이탈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피해자가 도박과 술에 빠져 지냈고 생활비를 지원해주지 않았으며 자녀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면서 “이러한 혼인 생활에서 피고인이 겪었을 어려움에 비추어 범행 경위에 일부나마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며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A 씨와 검찰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장연제 동아닷컴 기자 jej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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