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훈의 맛있는 혁신]대추는 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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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10.11. 오전 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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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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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육이 쉽게 물러 건조해 식재료로 사용
- 당도 사과 두 배 달하는 생대추 시장 성장
- 씨알 굵은 보은, 단단한 밀양 대추 경쟁

지난 6일 충청북도 보은군 보은읍에서 한 농민이 주렁주렁 매달린 왕대추와 달걀의 크기를 비교해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푸드비즈니스랩 소장]예전 남쪽 지방에서는 집 마당 한편에 대추나무와 무화과나무 한 그루씩 정도는 있기 마련이었다. 여름을 나며 잘 익어 벌어진 무화과 열매를 따먹고 나면 가을이 와 있다. 그리고 가을과 함께 대추는 익어 간다. 나뭇가지에 달린 빨간 대추를 작대기로 털어서 주워 담은 다음 마당에 널어 말리면 쪼글쪼글 예쁘게 마른다. 이 마른 대추는 제사상에도 올라가고 약식을 만들 때에도 찹쌀과 함께 쓴다. 마른 대추는 이듬해 복날 삼계탕에 닭, 인삼과 함께 중요한 식재료로도 사용된다. 삼계탕에서 대추는 시각적으로나 맛에 있어 다소 밋밋할 수 있는 요리에 ‘포인트’ 역할을 한다.

실은 우리가 먹는 무화과는 열매가 아니라 꽃이다. 그래서 한자로 ‘無花果’로 쓰는데, 엄밀하게는 과일이 아니다. 반면에 말려서 주로 식재료의 일부로 사용하는 대추는 확연히 열매이고 과일이다.
다만 과육이 쉬이 무르고 상하기 때문에 우리의 식문화에서는 대추를 생으로 먹기 보다는 주로 건조 보관하여 식재료의 일부로 썼다.

◇시배지 경남 밀양…최대 산지 충북 보은서 절반 생산

한국의 전통 레시피, 특히 혼례상과 제사상에 주로 오르는 음식에 대추가 흔히 사용되는 것을 보면 대추는 우리 전통 식문화와 함께 해온 식재료라 말할 수 있다. 너무 흔하고 익숙하면 오히려 우리 인지의 영역에서 벗어나 눈에 잘 띄지 않게 되곤 한다. 차례 상에 언제나 올라가 있는 대추, 삼계탕 위에 언제나 하나 올라가 있는 대추. 이렇듯 우리는 언제나 대추를 먹고 있지만 그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이것이 우리 식생활에서 대추의 위치다. 대추는 좀 억울한 면이 있다.

대추가 우리나라에 언제, 어떻게 들어왔는지에 대한 기록은 분명하지 않다. 하나 확실한 것은 중국에서 들어왔으며 아주 오래전이라는 것. 대추나무가 한반도에 뿌리를 내리고 재배한 것은 적어도 400년 전으로 보고 있고, 명확하지는 않지만 아마 1000년 정도는 되었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경남 밀양시 단장면이 우리나라 대추 시배지(始培地)였다는 견해가 있고, 실제 국내 타 지역에서 비교적 최근까지 밀양에서 묘목을 구해갔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밀양은 국내 대추 총생산량의 10% 정도를 점하고 있으며 현재 국내 최대 대추 산지는 충북 보은으로 전체 생산량의 대략 30%에 달하고 있다. 예전에는 대추나무는 산비탈에 심고 기르는 부가적인 작물이었지만 요즘엔 대추만 기르는 평지 대추 농장이 많아졌다. 특히 보은의 경우는 군에서 대추를 대표 육성 작물로 선정해 최근 그 생산면적과 생산량이 빠르게 늘고 있다.

대추나무는 토지가 비옥한 곳 보다는 일교차가 심하고 물 빠짐이 좋은 곳에서 잘 자라고 좋은 열매가 달린다. 그래서 대추 주산지 인근에는 돌산이 많다. 대추나무의 뿌리는 땅속 깊이 들어가지 않고 어느 정도 내려가다가 옆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옆으로 자라던 뿌리에서 마치 죽순 올라오듯 새로운 대추나무가 땅을 뚫고 올라온다. 뿌리를 공유하며 자라는 것이다. 이렇게 새로 올라오는 대추나무 순을 잘라서 다른 곳이 이식하면 그 대추나무는 또 그 곳에 자리를 잡고 성장하게 되는 특이한 작물이다.

우리는 대추를 주로 건조해서 음식의 식재료로 활용해왔다. 건조한 대추를 통으로 쓰기도 하고, 씨앗을 제거한 후 잘라서 편으로 쓰기도 한다. 밀양에서는 수확한 대추를 먼저 열매 그대로 건조 한 후 씨앗을 제거하고 편으로 자른 후 다시 한 번 더 건조한다. 반면에 보은에서는 대추를 생과의 상태에서 씨앗을 제거하고 편으로 자른 후 편 상태에서 한 번만 건조하는 방식을 주로 쓴다. 이 가공 방법의 차이가 미묘한 맛과 식감의 차이를 만든다. 요즘은 간식용으로 먹기 좋게 좀 더 바삭하게 건조한 대추 칩 제품들도 많이 출시되고 있으니 밀양 대추와 보은 대추의 차이를 비교하며 즐기는 것도 좋겠다.

대추를 누구나 건대추로만 즐기고 있을 때 보은에서는 대추를 과일처럼 먹는 생대추 시장을 개척했다. 더 큰 품종의 대추와 새로운 재배법을 도입하고 ‘대추는 과일이다’라는 인식을 소비자들에게 전달하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 집 마당에 대추나무가 있었던 집안의 자제들은 생대추의 달콤함과 아삭한 식감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어 보은 대추를 신선한 과일로 즐겨달라는 가치제안에 긍정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고작 3~4년 전의 일이다. 마트에서 대추를 구매한다는 개념은 아직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새로운 식문화이기도 하다. 유통 기술의 발전이 이를 가능케 했다.

◇생대추 살 땐 껍질 70~80% 붉은 빛 도는 게 적당

보은 대추가 먼저 만들어 놓은 생대추 시장에 밀양 대추도 추격하고 있다. 보은 대추는 알이 조금 더 굵은 편이고 밀양 대추는 상대적으로 조금 작은 편이다. 보은에서 먼저 아기주먹만한 사과 대추를 상품화해 생대추 시장을 선도했고, 밀양은 과육이 단단한 품종을 주력으로 내놓고 있다. 지금 제철인 생대추를 ‘보은 대 밀양’으로 비교해 먹어보는 재미를 느껴보자.

생대추는 저장성이 나빠서 소비자들이 구매해서 즉시 소비하는 과일이지 바나나처럼 집에서 후숙 시켜 먹는 과일이 아니다. 생대추 표피의 70~80% 정도가 붉은 빛이 도는 것을 구매하면 적당하다.

잘 익은 생대추의 당도는 무려 30브릭스를 넘어간다. 잘 익는 사과의 당도가 15브릭스임을 생각하면 생대추의 맛은 실로 꿀맛이다. 다만 특성상 아주 짧은 기간 동안에만 생대추의 맛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아쉽다.

지금부터 11월 초까지가 제철이다. 보은에서는 대추 축제를 오는 12일부터 21일까지, 밀양에서는 20일과 21일 양일간 개최한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보은과 밀양은 우리나라에서 수려한 단풍 경관으로 유명한 곳이다. 올 해 가을에는 대추 산지에서 단풍놀이와 함께 신선한 꿀맛 생대추를 즐기는 호사를 누리시길 제안한다. 대추는 과일이고, 요즘 트렌드다.

최은영 (eun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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