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네마리 코끼리’는 왜 사옥 정문을 지키고 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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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9.12. 오전 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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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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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미신이나 종교라고 믿는 풍수지리는 알고보면 수천년의 세월 동안 일상생활의 중요한 가치로 발전해왔다. 현대사회에 이르러서도 집이나 사옥의 터를 고를 때 풍수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하나의 학문으로 인정받기도 한다. 첨단기술로 무장한 기업들도 터를 고를 때 풍수학자의 조언을 듣는가 하면 안 좋은 기운을 털어내려고 사옥에 특이한 조형물을 세우기도 한다. <머니S>는 오랜 세월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온 풍수에 대해 살펴봤다. <편집자 주>

[사옥과 풍수, ‘터’ 놓고 말하다-②] 특별한 조형물 설치한 진짜 이유


풍수지리는 예로부터 우리 일상에 깊게 자리한 정서지만 명확한 실체가 없다. 미신이라며 풍수지리에 전혀 개의치 않는 사람이 많은 건 이 때문이다. 그러나 집을 짓거나 묫자리를 알아볼 때 풍수지리를 따르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첨단기술로 무장한 기업이 풍수지리에 주목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의외로 많은 기업이 풍수지리에 의지해 100년 이상 영속하길 꿈꾼다. 이들은 터를 잡을 때부터 풍수지리 전문가의 조언을 듣는가 하면 안 좋은 기운을 털어내기 위해 사옥 앞에 특이한 조형물을 세우기도 한다. 그들에게는 어떤 속사정이 있을까. 특이한 조형물을 세운 기업의 사옥을 찾아가 봤다.

동자동 KDB생명타원 정문에 세워진 코끼리상. /사진=김창성 기자

◆재물과 화목 불러오는 ‘코끼리’

서울 용산구 동자동 KDB생명타워에 가면 정문에 코끼리상이 있다. 코끼리상은 왼쪽에 한마리, 오른쪽에 세마리 등 총 네마리다. 왼쪽에 혼자 떨어진 조각은 아빠 코끼리, 오른쪽에 있는 세마리는 엄마 코끼리와 아기 코끼리 두마리처럼 보여 마치 코끼리 가족이 한 데 어우러진 듯한 모습이다.

건물을 드나드는 이들에게 코끼리상에 대해 묻자 “잘 모른다”는 답변이 대다수였고 소수의 사람들은 “재물운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말처럼 풍수학에서 코끼리는 재물복과 가족의 화목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옥의 방향이 해가 지는 서쪽을 향한 데다 인근에 자리한 대우그룹과 STX그룹이 모두 도산해 없어진 만큼 회사에 금전적 기운이 감돌고 임직원의 평안을 바라는 마음에서 코끼리상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중구 소공동 웨스턴 조선호텔 정문 입구 양쪽에는 목에 빨간 리본을 두른 사자상이 있었다. 호텔 부지 옆에 임금이 백성의 평안을 기원하며 제를 지내던 환구단이 있는데 음의 기운이 강해 이를 물리치고자 양의 기운이 가득한 사자상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재는 해태상이 있다. 해태는 상상 속 동물이지만 법과 정의의 상징이자 화재와 재앙을 물리치는 영물로 통한다. 경복궁 앞이나 국회의사당 앞에 해태상이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거북의 발을 형상화 한 서린동 SK그룹 사옥 기둥 바닥 문양. /사진=김창성 기자

◆길운 가져오고 장수하는 ‘거북’

사옥에 거북의 기운을 투영한 곳도 있다. 종로구 서린동 SK그룹 사옥이 대표적이다. 1999년 완공된 이 건물은 물의 제왕으로 불리는 거북을 형상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계천 쪽으로 난 정문 계단에 거북의 머리모양을 표현한 하얀 점 8개가 박힌 검은 돌이 있고 건물 모서리 네 곳에 있는 기둥 아래 부분 바닥에는 물결 문양의 마감재를 따로 적용해 거북의 발 모양을 형상화했다.

SK그룹의 한 직원은 “거북이 건물을 등으로 떠받치는 모습을 형상화해 건축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장수의 상징인 데다 좋은 기운을 가져다주는 영물로 여겨져 회사가 번창할 걸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초구 방배동에서 마포구 상암동으로 본사를 이전한 가구·홈 인테리어기업 한샘의 사옥 앞에도 거북 조형물이 있다. 이 조형물은 사옥 정문 앞 사각형 모양의 분수대 네 귀퉁이에 거북이 올라선 형태다.

한샘의 한 직원은 “매일 출퇴근하면서 크게 신경쓰지 않았지만 굳이 길한 동물로 알려진 거북을 택한 데는 사옥의 전 주인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사옥의 전 주인은 팬택이다. 휴대전화를 만들던 벤처신화 팬택은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부도처리된 회사다. 한샘은 부도난 회사가 쓰던 사옥으로 이전하면서 거북 조형물을 설치해 안 좋은 기운을 다스리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문로1가 흥국생명 본사 앞 해머링맨 조형물(뒤쪽)과 옛 금호아시아나그룹 사옥 옆에 자리한 수경시설. /사진=김창성 기자

◆물길로 ‘망치 기운’ 막아봤지만

영물로 여겨지는 동물이 아닌 공공미술 작품이 설치된 곳도 있다. 서울 신문로 흥국생명 본사 앞에는 높이 22m의 움직이는 ‘해머링 맨’이 설치됐다.

이 작품은 미국의 조각가 조나단 브로프스키의 연작 중 하나로 세계 11개 도시에 세워졌고 서울에는 2002년 7번째로 흥국생명 본사 앞에 설치됐다. 망치질하는 모습은 노동과 삶의 가치를 표현한다. 주말과 공휴일, 근로자의 날에는 작동이 중단되는 게 특징이다.

이 조형물은 풍수지리를 고려하지 않은 단순 조형물로 알려졌지만 바로 옆에 있던 금호아시아나그룹에는 눈엣가시였다. 여러 풍수학자는 망치질하는 형상이 회사의 좋은 기운을 해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사옥을 지을 당시 흥국생명 본사와 금호아시아나 본사 사이에 수경시설을 설치했다. 망치가 물을 내리치면 그 충격이 흡수될 것이라는 풍수학자들의 조언을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유동성 위기를 겪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해 5월 신문로 사옥을 독일계 자산운용사 도이치자산운용에 매각하고 올초 약 1㎞ 떨어진 종로구 공평동 센트로폴리스로 이전했다.

직장인 A씨는 “광화문 일대로 출근하는 직장인에게 해머링맨은 상징적인 조형물이라 생각한다”며 “노동의 가치를 표현한 좋은 의미로 세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풍수적으로는 주변 회사에 안 좋은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추석합본호(제608호·60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김창성 기자 solral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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