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희선 장소 대학로 예술가의집
하루가 다르게 신문물이 출현하는 요즘 시대, 가장 소통을 어렵게 만드는 조건은 세대 차이가 아닐까? 10년 차이만 나도 사용하는 말이나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 서로 간의 거리를 좁히기란 결코 쉽지 않다.
나이나 경력을 불문하고 좋은 연주자들에게 무대의 기회를 주고 있는 더하우스콘서트. 7월의 마지막 날, 이곳의 무대에 시간차를 두고 오를 이 연주자들의 나이차는 반세기를 훌쩍 넘는다. 하콘과의 인연부터 슈베르트에 대한 생각, 흑역사라 할만한 경험까지 대화는 술술 이어졌다. 여전히 피아노가 어렵다는 79세 피아니스트와 노는 데 꽂히면 연습하는 걸 잊게 된다는 14세 피아니스트의 만남이다.
김희선(이하 김)-안녕하세요! 두 분 여기 일찍 도착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당연히 오늘 처음 만나신 거지요?
이경숙(이하 이)-그럼요! 그런데 기다리며 이야기 나누다 보니 벌써 친구 됐어요.
고준성(이하 고)-(미소)
김-이렇게 두 분을 모신 건 다가오는 7월, 이곳에서 열리는 더하우스콘서트 줄라이 페스티벌 중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에 출연한다는 공통점 때문입니다.
이-그날 출연자 중 내가 제일 나이가 많고 이 친구가 가장 어려서 부른 거죠?
일동-(웃음)
김-맞습니다. 그렇지만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고 보다 폭넓게 이야기 나누고자 하는데요, 세대가 다른 두 피아니스트가 같은 화두를 두고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을지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했습니다.
김-그럼 먼저 슈베르트 소나타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준성 씨는 11번 소나타, 이 선생님께서는 마지막 21번 소나타를 연주하십니다.
고-11번 소나타는 ‘미완성’이라는 부제가 있는 소나타인데 잘 연주되지 않고 사실 정보도 별로 없는 곡입니다. 그렇지만 이번에 공부하며 무척 단순한 구성을 가진 곡임에도 슈베르트만의 선율미와 점차 진행되는 화성의 아름다움이 무척 매력적이라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관객분들도 충분히 편안하게 들으실 수 있는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이-21번 소나타는 슈베르트의 걸작 중 걸작이면서 개인적으로도 무척 좋아하는 곡입니다. 30대 때 처음 연주했었는데 당시에 ‘내 나이에 연주하기에는 너무 대곡이구나‥ 10년에 한 번씩 계속해서 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도 그렇게 해왔는데, 거듭할수록 쉬워지는 게 아니라 더 어려워지는 곡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김-슈베르트는 어떤 작곡가이고 그의 음악은 어땋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이-한마디로 하면 그의 음악은 노래죠. 음악적으로 아주 심플하고 자연스러운데 화성의 미묘한 변화가 들어와 아주 아름다워요. 그래서 어렵기도 하지만요. 마치 우리 인생처럼 기대치 않은 일들이 자꾸 생기는, 신비롭고 풀고 싶은 숙제 같아요. 음악적인 면에서 베토벤과도 통하는 면이 있고요.
고-슈베르트의 삶을 공부해 보니 일단 생이 너무 짧았고 사는 동안 쉽지 않았더라고요. 제가 어려서인지 그의 정서를 이해하는 게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이-당연하지! 벌써 그걸 이해한다는 건 말이 안 되고 말고. 그럼에도 참 용감한 게 어린 나이임에도 슈베르트 소나타에 도전하고 연구하는 자체가 참 대단한 거예요.
김-그럼 연주자로서 슈베르트에 좀 더 다가가기 위한 방법이 있을까요?
이-가곡의 왕이라고 할 만큼 많은 가곡을 작곡한 사람이죠. 그렇기 때문에 그의 가곡을 공부하는 건 필수예요. 피아니스트라면 가곡 반주를 해보는 거죠.
고-저는 아직 가곡 반주를 해보진 못했고 얼마 전 수행평가로 슈베르트의 가곡을 부른 적은 있어요. 그런데 제가 음치라서..하하
이-저는 어머님이 성악가이다보니 어렸을 때부터 동요보다 슈베르트의 가곡을 자주 들었어요. 특히 <겨울 나그네>의 ‘보리수’를 항상 틀어 놓으셨죠. 그래서인지 슈베르트 가곡을 더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김-더하우스콘서트와의 인연은 언제 처음 맺으신 거지요?
고-저는 올해 초 24시간 프로젝트에서 50분짜리 프로그램을 연주한 게 처음 연주한 것이었습니다. SNS에서 연주자 공모를 보고 지원한 후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연락이 와 깜짝 놀랐었죠.
이-재미있는 게 예전 하콘이 시작된 연희동 박창수 대표님 집이 저희 집 옆 옆집이었어요. 간혹 관객들이 잘못 찾아와 저희 집 벨을 누른 적도 있었어요. 한동안 그렇게 지내다 2015년 하콘 무대에 처음 출연해 베토벤 소나타 ‘비창’, ‘월광’, ‘열정’을 연주했어요. 지방 초등학교에 가서 연주도 몇 번 했는데 특히 작년 말에는 저희 어머니가 교가를 작곡한 울산 강남 초등학교를 방문해 연주도 하고 원하는 학생들에게 피아노도 가르쳐 주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긴장이야 모든 무대가 마찬가지죠. 저는 오히려 관객들과 아이 콘택트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청중들이 나를 보고 있다는 걸 알아야 마음이 안정되거든요.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소통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 참 좋아요.
고-저도 처음에는 너무 가까이 관객들이 계셔서 놀랐는데 연주하면서 차차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하콘 무대는 또 서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김-하콘 무대 중 혹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있으신가요?
이-딸하고 같이 포핸즈 연주를 했는데 시작할 때 제가 약속한 대로 박자를 안 세고 들어가 틀려서 다시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관객들 분위기는 더 편안해지더군요. 사실 요즘은 기계처럼 안 틀리고 연주하는 이들이 정말 많고 콩쿠르에서는 실수 없이 연주하는 게 하나의 평가 기준처럼 되어 가는데 좀 더 큰 시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무보다는 숲을 봐야 하는 것처럼요. 한편으로는 그런 점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김-이제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피아노와의 첫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궁금한데요.
고-초등학교 1학년 때 제가 운동만 좋아하고 너무 산만해 선생님께서 부모님께 음악을 시켜보라고 권유하셨다고 해요. 그래서 피아노 학원을 다니게 되었는데 너무 쉬웠다고 해야 하나, 생각보다 너무 빨리 진도가 나가서 배운지 6개월 만에 첫 콩쿠르에 나갔어요. 그때 상까지 받아와 부모님도 저도 기쁘면서 놀랐었죠.
이-저는 6·25세대예요. 피아노도 부산으로 피난 갔을 때 한 선교사님이 어머님께 피아노를 선물해 우연히 시작한 거예요. 그후 부산에서 개최된 이화경향콩쿠르에 나갔었죠.
김-콩쿠르 이야기가 나왔는데 준성 씨 몇 년 전 음악저널 콩쿠르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고 좋아했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콩쿠르에 대해 어떤 기억이 있으신가요?
고-그때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고 큰 콩쿠르로는 두 번째인가 해, 별 기대 없이 나갔었는데 큰 상을 받아 발표 때 정말 놀랐었습니다.
이-이화경향콩쿠르 첫 회가 전쟁 중에 열린 터라 흙바닥 같은 곳에 있는 피아노에 앉아 연주했던 기억이 나요. 신수정, 한동일 피아니스트도 같이 출전했던 콩쿠르 동기들이랍니다.
김-그럼 그동안의 무대 중 특히 인상적인 순간이 있으신가요?
이-사실 모든 무대가 특별하죠. 잊고 싶은 연주는 많지만 자랑스러운 연주는 없는 거고요. 제가 50대 때 잊지 못할, 무서운 경험을 한 적이 있었어요. 리카르도 샤이가 지휘하는 로열 필하모닉이 아시아 투어로 내한했을 때 제가 협연자로 베토벤의 ‘황제’를 연주하게 되었어요. 원래 계획은 연주 당일 오전에 오케스트라와 리허설을 하고 오후에 드레스 리허설을 하는 일정이었는데 오전에 홀에 가서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는 거예요. 알고 보니 안개 때문이었나 비행기 도착에 문제가 생겨 오케스트라가 제때 오지 못한 거죠. 그런데 오후 리허설 때도 제 시간을 한참 지나서야 단원들이 한 명씩 들어오지 뭐예요. 결국 7시 반 공연인데 6시가 넘어서야 처음 리허설을 했고 전체를 다 쳐보지도 못하고 마칠 수밖에 없었어요. 신경은 예민해지다 못해 화가 날 지경에 이르렀죠. 결국 공연 때 어느 순간 앞에 건반이 하나도 안 보여 연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어요. 8소절인가를 그렇게 앉아있다 다행히 다시 정신이 들어 넘어가긴 했는데 정말 아찔했습니다. 연습에 더 매달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고-작년 이맘때 금호영재독주회 때가 기억이 나는데 첫 곡을 하러 무대에 올라갔는데 너무 떨려 페달을 써야 하는데 발이 안 움직이는 거예요. 몇 군데 해야 할 부분들을 놓쳐 당황했었어요. 점차 안정되어 마지막 프로그램까지 잘 갈 수 있었는데 안도감이 지나쳤는지 신나게 앙코르를 치다 악보를 까먹고 말았어요.
김-피아니스트는 악보를 외워야 한다는 게 참 고된 작업일 것 같은데요, 악보를 외워서 연주하는 것과 연주의 완성도에는 연관이 있는 걸까요?
이-저는 솔로곡을 연주할 때 무조건 외워서 합니다. 악보를 보고 하면 안정적으로 갈 수는 있지만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주는 건 불가능해요. 그래서 현대곡도 외우지 않으면 하지 않았어요. 베토벤을 암보로 연주하듯 창작곡 역시 곡의 구조와 흐름을 이해하고 연주하려면 암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니까요.
고-축복인지 저는 정신을 집중하면 악보를 잘 외우는 편이에요. 물론 외우는 게 다는 아니죠. 살을 붙여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음악을 하는 데 있어서 예전과 요즘의 차이라면 정보가 아닐까 하는데요.
이-예전엔 악보 구하기도 쉽지 않았지만 요즘 연주자들은 정보의 홍수 속에 살죠. 좋은 점이 분명 더 많지만 연주가 영상으로 남아 영원히 떠돌아다니는 건 스트레스를 주기도 해요. 음악은 순간의 예술인데 말이죠.
고-아무래도 어떤 곡을 하면 여러 연주를 듣게 되는데 주로 자기 전에 많이 듣습니다. 그럼 악보가 잘 외워지더라고요.
김-연주를 위한, 무대를 위한 연습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준성 씨는 한창 많이 연습할 나이이고 선생님께서는 어떠세요, 여전히 연습 시간을 고수하시나요?
이-연륜 운운하지만 사실 그건 아니에요. 연습을 해야 연륜도 나오는 거죠. 지금도 가능한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연습하려고 노력합니다. 연주를 하는 한 연습은 필수고 기본이에요.
고-저는 꽂히는 곡이 있으면 질릴 때까지 파고드는 성향이에요. 물론 여러 곡을 할 때는 그렇지 않지만 보통 그때그때 다가오는 곡에 푹 빠지는 편이에요.
김-그럼 특히 애착이 가는 또는 애증인 작품을 꼽아주신다면요?
이-전 그 질문에 늘 이렇게 답해요. 지금 마주하고 있는 곡, 작곡가가 가장 가깝다고요.
고-저는 애증의 곡으로 두 곡을 꼽을 수 있어요. 베토벤의 ‘고별 소나타’와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르슈카’. 그 이유는 제가 공부했을 당시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어려웠던 곡이었지만, 점차 나아져서 연주하는 과정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느껴졌습니다. 제 자신이 음악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곡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이 선생님은 가르치는 일을 오랫동안 하고 계시고 준성 씨는 한창 배우는 일에 전념하고 있지요.
이-사실 티칭과 연주는 동행한다고 봐요. 가르치며 스스로 많이 배우고 연주해야 또 잘 가르칠 수 있게 되거든요. 제가 베토벤 소나타 등 전곡 연주를 시도했던 것도 가르치기 위함이 첫 번째 목적이었어요. 결코 연주 자체에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었죠. 연주하기 위해 제대로 공부해야 또 제대로 가르칠 수 있으니까요.
김-음악 이야기만 했는데 혹시 연습, 연주 외에 취미가 있으신가요?
이-난 아직까지 자전거도 못 타고 수영도 잘 못해요. 연주 생활하며 가르치고 가정을 꾸리다 보니 연습하기에도 하루하루가 늘 빠듯했어요. 시간적 여유를 누리며 살지는 못했습니다.
고-전 놀 때는 하루 종일 놀고 연습할 때는 하루 종일 해요. 연습을 매일 거르면 안 된다고 하는데 그게 잘 안되네요.(웃음)
이-지금은 어리니까 그렇지 나이 들면 하루만 안 해도 다르단다.
김-음악가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족은 중요한 부분이죠.
이-전 온통 주변이 음악가예요. 커티스 나온 사람만 7명이니… 큰 딸은 바이올리니스트, 작은 딸은 피아니스트, 큰 사위는 비올리스트, 사위의 동생은 첼리스트, 남편의 누이들도 피아니스트예요. 우린 만나면 음악 이야기 절대 안 해요. 주로 맛있는 음식 이야기하죠.(웃음)
고-저는 가족 중 저 혼자 음악을 하는데 오히려 음악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음악을 하다 보니 부모님께서 관심을 많이 써주시는 것 같습니다.
김-자 그럼 마지막으로 두 분이 상대의 시간으로 간다면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실까요?
이-만일 지금 준성 군 나이라면 기초적인 피아노 공부를 더 하고 싶어요. 우리 때는 그런 체계가 좀 부족했거든요. 지금 어린 학생들도 너무 어려운 곡으로 바로 건너뛰기 보다는 기본적인 레퍼토리를 꼭 거쳤으면 해요. 결국 나중에 다 재산이 된답니다.
고-전 선생님 나이가 되면 예전을 회상하며 그때 배웠던 곡들을 다시 쳐보고 싶을 것 같아요. 추억을 떠올리며 노년을 보내면 멋있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