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사상의 최전선>‘포스트 이론’후 등장한 ‘탈인간주의’ 국내 첫 종합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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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9.03. 오후 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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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가이드

오늘의 세계 이해·설명하는데

25년 前 인식의 틀은 한계 지녀

새 思潮 이끄는 사상가들의

핵심적 질문을 풀어가는 형식

저작 요약·논의 시사점도 담아

국내 소장·중견 학자가 필자로

세계적 삽화 작가 이정호 참여


도나 해러웨이


문화일보가 3일부터 매주 화요일 연재하는 ‘21세기 사상의 최전선’은 새 시대에 발맞춰 업데이트한 ‘최신 사상의 가이드’라고 할 수 있다.

국내 학계와 문화·출판계는 여전히 1990년대 중반부터 도입된 ‘포스트 구조주의’(포스트 모더니즘)의 자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학술, 문화비평, 미디어, 출판도 20세기 사상을 끌어다 회고하는 데 머물고 있다. 25년 전 인식의 틀은 오늘의 세계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이 장기화하면 국내 인문학 내 ‘사유의 대침체’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문화일보와 이감문해력연구소가 공동으로 기획한 ‘21세기 사상의 최전선’은 이른바 ‘포스트 이론’ 이후 등장한 21세기 최신 사유를 국내에서는 처음 종합적으로 소개하게 된다. 최신 학문을 공부한 국내 소장·중견 학자가 대거 참여해 길게는 30여 회에 걸쳐 연재를 이어갈 예정이다.

새로운 사유는 느리지만, 근본적으로 세상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킨다. 사람들이 새로운 사유의 도구를 장착하게 되면 기존의 관념 틀을 벗어나 변화를 따라잡고 새로운 세계를 기획할 수 있다. 이는 우리 삶의 진보는 물론 첨단·문화 산업의 발전에도 기본적인 밑거름이 된다. 이 같은 사유의 도구를 업데이트하는 역할은 학문과 출판, 언론의 책무다. 일본의 경우 21세기 사상의 사조가 이미 어느 정도 정리돼 시대를 분석·전망하는 데 적용되고 있다.

21세기 사상은 인문학과 경험과학이 적극적으로 융합하며 발전해가고 있다. 큰 틀에서 보자면, 인간의 의식이라는 한계 안에서 사고를 한정 짓는 ‘현상학의 시대’가 저물고, 물질세계에 관한 탐구로부터 사유의 토대를 마련하는 ‘신물질론의 시대’로 사고의 대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20세기 후반까지 다양한 철학·사유의 흐름이 나타났다고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17세기 전반 ‘근대 철학의 아버지’인 르네 데카르트가 고안한 물질·정신 이원론 및 주체의 발명에 뿌리를 둔 이분법과 인간중심주의의 틀에 갇혀 있거나 거기서 벗어나고자 하는 관념론적 노력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21세기를 맞아 인간을 세계의 중심에 두는 세계관은 결국 종말론적 ‘인류세’(人類世)로 요약되는 에너지, 환경, 종 다양성의 위기와 인공지능(AI) 등 과학이 만들어 내는 급변으로 인해 “과연 인간이 후손에게 지속 가능한 세상을 이어 줄 수 있을까”라는 막다른 회의론에 빠지게 됐다. 21세기 사유의 대전환은 바로 기존의 사유에 내재했던 한계와 인류가 직면한 위기가 그 출발점인 것이다. 장은수 이감문해력연구소 대표는 “오늘날 세계의 문제들은 서구적 인간중심주의의 귀결이자 그 한계를 뚜렷이 드러낸다”며 “이 때문에 21세기 사상가들은 지난 500년 가까이 이어져 내려온 서양 정치경제학 또는 과학의 사고 틀 자체를 뛰어넘는 방식, 즉 탈인간주의적 사유를 시도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재의 총론 격인 ‘전체 개괄’을 집필하고, 출발점에 속하는 중요한 학자인 브뤼노 라투르를 소개하는 김환석 국민대 교수(사회학)는 “현재 인류가 당면한 미세먼지, 식품과 농업 위기, 플라스틱 쓰레기, 동물 문제, 인수 공통 전염병,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과학기술의 변혁 등은 더 이상 자연-사회, 비인간-인간의 근대주의적 이분법에 기초해서는 제대로 이해하거나 처방을 내릴 수 없는 하이브리드적 현상들”이라며 “21세기 사상은 동물, 식물, 무생물, 기상현상, 인공물 등 모든 비인간과 인간을 동등한 행위자로 봐야 한다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존재론적 전회(轉回)’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사유는, 예컨대 정치는 인간-인간 사이의 정치를 넘어서 인간-지구 사이의 정치로 확장되는 중이며, 경제 역시 인간-인간 사이의 경제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자연 사이의 경제를 인식할 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탈인간주의의 흐름은 학문 전 분야에서 나타나는 중이며, 포스트 구조주의 이후 가장 거대한 흐름으로 드러나고 있다.

‘21세기 사상의 최전선’은 현대 사유의 ‘전회’에 크게 네 가지 흐름으로 접근한다. 첫 번째는 ‘사변적 실재론’ 혹은 ‘객체 지향존재론’으로 불리는 일군의 학자다. 인간 주체가 만들어낸 기호나 언어 같은 범주들을 관념론에 속한다고 보고, 인간으로부터 시공간적으로 독립된 대상들을 우선시하는 사유다. 연재에 소개될 브뤼노 라투르, 캉탱 메이야수, 그레이엄 하먼, 제인 베넷, 티머시 모턴 등이 이들 학자다. 두 번째는 서구 인류학으로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다며 인류학에 동물과 산맥 등 자연을 포함시키는 ‘인류학적 전회’, 즉 ‘존재론의 인류학’을 열어가는 학자들이다. 메릴린 스트래선, 필리프 데스콜라, 에두아르두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세 번째는 도시나 마을 같은 장소 또는 공간에 대한 기존의 이론을 전복하는 ‘지리학적 전회’로, 나이절 스리프트, 브루스 브라운 등이 있다. 네 번째는 매체와 인간 문화(사상) 사이의 관계를 뒤엎는 미디어 고고학적 도전으로, 프리드리히 키틀러, 지크프리트 칠린스키, 볼프강 에른스트, 유시 파리카 등의 학자가 소개된다.

연재는 새롭게 등장한 사상적 조류를 이끄는 개별 사상가가 던지는 핵심적인 ‘질문’을 풀어가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구체적인 질문을 통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다. 사상가의 주요 저작의 핵심 내용, 논의의 역사적 맥락·계보 해설, 사회적 의의 및 시사점 등을 담아낼 계획이다. 개별 사상가에 대해 연구한 국내 소장·중견 학자들이 필자로 참여한다. 현재 25회 연재가 예정돼 있지만, 훨씬 늘어날 수 있다. 연재의 삽화는 영국 일러스트레이터협회(AOI)에서 주관한 ‘2016 월드 일러스트레이션 어워즈’에서 북 카테고리 전문가상과 전 부문 최고상을 수상한 이정호 작가가 그린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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