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선잠단지

Seonjamdan Altar Site, Seoul, 서울 先蠶壇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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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조선시대 유지(遺址). 1963년 1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선잠단지
지정종목 사적
지정일 1963년 1월 21일
소재지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64-1번지 지도
시대 조선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제사유적 / 제사터
크기 면적 1,745㎡

1963년 1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면적 528평의 국유지이다.

조선시대에 왕비의 소임 중의 하나는 친잠례(親蠶禮)를 지내는 일이었다. 누에를 키워 고치에서 실을 뽑아 방적하는 일은 중요한 생산이었기 때문이다. 세종은 양잠을 크게 장려하여 각 도에 적지(適地)를 골라 뽕나무를 심도록 하는 한편, 한 곳 이상의 잠실(蠶室)을 지어 누에를 키우게 하였다. 그리고 잠사가 생산되면 국가에서 엄밀히 심사하는 것을 제도로 삼았다. 1506년(중종 1)에는 여러 도의 잠실을 서울 근교로 집결하도록 하였다. 현재의 송파구 잠실동 일대는 그런 잠실이 있던 지역이다. 한말까지 이 일대에는 수령(樹齡)이 300∼400년이나 되는 뽕나무가 있었다. 1471년(성종 2)에는 뽕나무가 잘 크고 살찐 고치로 좋은 실을 얻게 하여 달라는 기원을 드리고자 동소문(東小門:惠化門) 밖에 선잠단을 지었다. 단에는 대를 모으고 중국 황제(黃帝)의 왕비인 잠신(蠶神) 서릉씨(西陵氏)의 신위(神位)를 배향(配享)하였다. 단의 남쪽에는 1단 낮은 댓돌이 있는데 그 앞쪽 뜰에 상징적인 뽕나무를 심고 궁중의 잠실에서 키우는 누에를 먹이게 하였다.  1908년(융희 2)에 선잠단은 선농단(先農壇)의 신위와 함께 사직단으로 옮겨 배향되면서 폐허화되었고 일제강점기에 민유화(民有化)되었다.

현재는 성북초등학교 옆 길거리에 여러 집들에 둘러싸인 조그만 터전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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